<스타를 만나다> 박준규·진송아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법

“서로 마주보면 사랑이 깊어져요”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국내 사회문제의 화두 중 하나가 이혼이다. 수많은 지인의 축복 속에서 백년가약을 맺은 커플이 언제 사랑을 나눴냐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갈라서는 사람이 적지 않다. 사례가 너무 많아 손가락질조차 하지 않는다. 수십년 함께 사는 동안 말하지 못할 사연이 좀 많을까. 이런저런 이유로 갈라서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서로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며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잉꼬부부로 알려진 박준규·진송아 부부가 대표적이다. 결혼 30주년을 넘긴 부부는 여전히 상대를 존중·존경하며, 사랑을 키워가고 있다.

흔히 ‘시대가 많이 변해서’라는 말을 한다. 시대가 변했다는 말은 기술의 발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의식이나 문화의 발전으로 인한 일상의 변화를 일컫는 게 더 정확할 테다. 시대가 변한 만큼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기존의 모든 역할이 바뀌고 있다. 

시대 변해도…
잠재울 매력

특히 세상의 중심이 남자였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잊혔다. 남녀를 불문하고 사회에 진출하며, 남녀의 우열을 가리던 시대는 사라졌다. 이제는 평등한 사회로도 볼 수 있다. 남성 중심사회는 옛 시대의 산물이 됐다.

가정의 가장이 남자라는 말도 이제는 어색하다. 가정 내에서 남녀의 역할이 뚜렷하지 않다. 남자도 여자도 누구나 성역 없이 역할을 한다.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을 성별에 따라 굳이 나누지 않는다. 시간이 남는 사람이 청소하고 빨래를 하는 게 당연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여자가 할 일이 있고, 남자가 할 일이 있다’며 주방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 남자가 있다면, 엄청난 경제력을 갖고 있거나, 모두를 잠재울 만한 매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연애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부장적인 시대의 산물 그 자체로서, 남자와 여자를 명백하게 구분하고 사는 유명인이 있다. 배우 박준규다. 

여전히 그는 “남자는 밖에서 돈 벌어오고, 여자는 밥하고 빨래하고,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목놓아 외친다. 삼시세끼 아내가 차린 밥을 먹는 것도 모자라, 끼니마다 국은 바뀌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으며,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도 크다.

“1년에 겨우 두 번 전 부치는 게 그렇게 어렵냐” “예쁜 여자 욕하는 여자는 다 못생겼어” 등 논란이 될법한 워딩을 방송에서 강력하게 던지고야 만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며 화들짝 놀라는 그의 친구도 적지 않다. 

박준규는 가정에서도 독재다. 그의 말이 곧 법이다. 그가 하자는 대로 가족이 움직인다. 

이런 말만 들으면 굉장히 문제 있는 집안으로 보이지만, 실제 그는 그 누구보다 사랑받는 남편이자 아빠다. 가족 모두가 그를 사랑하고, 그와 함께 있길 원한다.

요즘 시대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박준규·진송아 부부를 지난 18일 서울 성수동 소재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이른바 부부 토크쇼의 터줏대감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서로를 아끼는 모습을 보여준 두 사람은 여전히 손을 잡고 애틋하게 상대를 챙겼다.

30년 넘게 사랑을 이어올 수 있는 이유로 존중과 존경을 꼽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결혼 30주년이 됐다. 방송에서 봐도 그렇고, 지금 봐도 서로에게 애틋하다. 잉꼬부부의 느낌이 강하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모습을 30년째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뭔가?

▲진송아(이하 진) : 그건 저부터 말할게요. 어떤 부부도 저희처럼 살면 30년 넘게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봐요. 제일 중요한 건 첫째 존경심이 있어야 해요. 내 남편이자 내 여자가 정말 멋지고 배우고 상대로 여겨야 해요. 그러려면 스스로 항상 노력해야겠죠. 그게 매력일 수도 있고 능력일 수도 있어요. 그게 가장 중요해요. 

제 남편은 늘 가족 중심이에요. 며칠 전에도 집에서 술파티를 했어요. 아들 둘이 있는데 첫째는 30세고 둘째는 24세에요. 다 큰 애들이 부모랑 술 먹는 걸 누가 좋아하겠어요. 근데 우리 애들은 부모랑 파티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부모라서 좋은 게 아니라 그 시간 자체가 즐거운 거예요. 

구심점이 되는 건 남편이에요. 남편이 그런 분위기가 되도록 주도하거든요. 애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아낌없이 사랑한다고 표현해왔어요. 저에게도 그랬죠. 그렇게 해주는 남편과 있어서 행복한 순간이 정말 많았어요. 저는 감사할 따름이죠.

심플하게 존중과 존경이 있어야 해요. 모계사회라고 하지만, 가정이 화목해지려면 아버지가 역할을 잘해야 해요. 아내는 서포트하는 거고요. 남편이 아버지 역할을 정말 잘해요.

“사랑스러운 독재자 박준규”
“현명하고 매력적인 진송아”

▲박준규(이하 박) : 제 와이프는 정말 멋진 여자예요. 똑똑한 사람이고요. 아이들을 키울 때도 굉장히 현명했어요. 제가 원하는 걸 언제나 해주려고 노력해요. 또 생각 자체가 특별해요. 

제가 ‘명절이 1년에 두 번인데 전 부치는 게 그렇게 힘드냐’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아내 덕분이거든요. 

아내는 명절이 되면 이렇게 말해요. ‘내가 이번에 새로운 레시피를 배워왔는데, 기가 막힌 전을 보여줄게’라고요. 사실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 않잖아요. 귀찮은 일일 수 있는데. 전을 하나 하더라도 맛있고 멋있게 하려고 해요. 이런 모습을 보여주니까, 제가 방송에서 강한 말도 할 수 있는 거예요. ‘내 와이프를 봐라’라는 식으로요.

내 와이프는 제 주변 사람들이 다 좋아해요. 가끔 부부 동반으로 모이면, 남자가 참 괜찮았는데 와이프 만나고 보니, 남자까지 후져 보일 때가 있어요. 저 보면 뭐 그렇게 잘난 거 없다고 볼 수도 있는데, 와이프를 만나고 나면 ‘박준규 뭐가 있는데?’라고 생각을 하더라고요. 어디를 같이 가도 항상 제게 이득을 주는 사람이에요. 가끔 저 대신 술자리에 형수를 보내라고도 해요. 그만큼 분위기 메이커죠. 

존중하고
존경하며

- 많이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박준규는 매우 가부장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방송에서 하는 말은 연기인 건가?


▲진 : 아니에요. 이 사람 진짜 가부장적이에요. 집에서 독재자예요. 이 사람이 하자는 대로 해요. 미국에서 살다 와서 자유분방할 거 같지만, 안 그래요. 

▲박 : 그 독재가 정말 못된 독재는 아닌 거죠. 애들한테 공부하라고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공부하기 싫다고 하면 ‘하지 마’라고 했어요. 수학 못하면 어때요. 계산기가 다 해주는데. 제가 촬영이 많을 땐 일주일에 하루 들어오고 그랬어요. 다른 날은 다 밖에서 자고요. 그러다 드라마가 끝났어요. 그러면 종방 회식하고 곧바로 여행을 가자고 해요. 그럴 때 애들 시험 기간이랑 겹칠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제 뜻대로 여행을 가는 거예요. 학교에 말하고요. 

그때 아내가 ‘애들 시험이라 안 돼요’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그냥 가는 거예요. 그렇게 해도 큰아들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갔고, 둘째는 명지대 연극영화과 갔어요. 그럼 된 거 아니에요?

-부부가 방송에 많이 나온다. 부부가 같이 방송을 하면 피곤하다는 뉘앙스를 풍긴 연예인이 적지 않다.

▲박 : 우리가 나가는 게 일명 ‘부부 토크쇼’인데, 방송 나왔다가 이혼한 사람 많이 봤어요. 부부 사이에도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잖아요. 저희는 정확히 알고 하죠. 사실 방송이 대결구도로 재밌게 만들어야 하는 게 있어서, 공격하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크게 기분 나쁘지 않게 하려고 하죠. 그걸 모르고 그냥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하니까 크게 싸우는 거예요. 

▲진 : 저는 남편 아니면 방송에 나갈 수 없다는 걸 알아요. 저를 갑자기 나오라 하지는 않거든요. 방송하게 되면 예쁘게 화장도 하고, 남편과 즐겁게 지내고 오는 거잖아요. 가기 전부터 설레요. 언제나 행복했어요. 피크닉 가는 느낌이라 정말 좋아요.


-그럼에도 방송 전에 다투거나, 혹은 방송 후에 싸운 적은 없나?

▲진 : 왜 없겠어요. 사실 우리가 일방적으로 혼내지. 서로 싸우지는 않는데, 한 번은 새벽까지 크게 싸운 적이 있었어요. 근데 다음 날 아침 9시부터 촬영이었어요. 이건 프로의식이라고 생각했어요. 일은 일이고 사는 사죠. 촬영은 모든 사람과의 약속이잖아요. 그걸 해결 못하고 굳은 얼굴로 있으면 아마추어죠. 아무도 모르게 웃으면서 촬영했죠.

부부 토크쇼를 하다 보면 별 걸 다 봐요. 따로따로 촬영장에 오고요. 다른 사람들하고는 다 웃으면서 얘기하는데 둘이서는 말을 안해요. 인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보는데, 프로답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죠. 분장실에서 대기하는 시간조차도 활동 안에 있는 부분이잖아요.

고맙고
미안해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말을 참 예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서로 상처받지 않게 하려고. 

▲진 : 저보다는 남편이 그렇게 말을 잘해요. 이 사람이 독재를 하긴 하지만 예쁜 점이 있는 게 커피나 물을 한 잔 달라고 해도 ‘고마워’ ‘미안한데’라는 말을 하면서 부탁해요. ‘나 물!’ 이렇게 해도 주거든요. 근데 ‘물 좀 주세용’이라고 해요. 그러면 저도 주고 싶죠. 아이들한테도 말을 잘하고요. 

덕분에 저도 예쁘게 말하는 법을 배웠어요. 애들이 배우를 하는데, 그러면 아무래도 쉬는 날이 많잖아요. 그럼 애들도 늦게 일어나는 날도 있고요. 그럼 저는 ‘어이 꿀벌’이라고 해요. ‘꿀빤다’고요. 잔소리는 안 해요. 농담 한 마디 하고 말죠. 사람 대할 때는 똑같은 표현이라도 예쁘게 하려고 해요. 남편한테 배운 거죠.

-박준규는 어렸을 때부터 타인에게 예쁘게 말을 한 건가. 언제부터였나. 

▲박: 잘 모르겠어요. 사춘기 때 미국 생활한 게 좀 컸던 거 같기도 하고. 미국에 가면 어떤 매너가 있어요. 뒷사람이 짐이 많고 그러면, 앞사람이 문을 잡아주고 있다거나 하는 매너요. 예전 한국은 그런 에티켓이 좀 부족하기도 했죠.

그런 배려를 좀 배워 온 것 같아요. 아내뿐 아니라 코디네이터나 촬영 스태프에게도 최대한 배려하려고는 해요. 대접받으려고 하는 연예인들도 있는데, 난 그게 그렇게 꼴 보기 싫더라고요. 

▲진: 인간에 대한 배려나 존중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에요. 연극할 때도 굉장히 자유롭게 연기하는데, 멋있었어요. 자신감도 있었고요. 그리고 늘 주위에 사람이 많았어요. 재밌어서요. 처음부터 확 사랑에 빠졌다기보다는, 보다 보니 그에게 스며들었다는 게 맞아요.

“가정이 화목한 이유는 아빠가 잘해서죠”
“아내 같은 사람 없습니다…다 부러워해”

- 원래는 진송아도 연기를 했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서 꿈을 내려놨다. 그때 아쉽거나 서운했던 건 없나. 

▲진 : 사랑에 빠지면 그 정도야 뭐 포기하고 말죠. 

▲박 : 근데 나는 아내한테 연기하지 말라고 한 적은 없어요. 우리 아버지가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한 거지. 난 아내가 연기하는 거 좋아. 다만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 가서 하루 10시간이고 기다리다 한 컷 찍고 오는 그런 게 싫어서 막는 거지. 연극한다고 하면 난 괜찮아요.

학교 동기들이 그래도 김희애, 박중훈 이런 사람들인데 아내가 가서 자존심 상하게 기다리다 오는 게 싫은 거죠.

▲진 : 그럼 에브리데이 밖에서 연습하다 와도 괜찮아요?

▲박 : 여보 나 완전히 변했어. 왜 그래. 용의 대가리로 못살 바에는 뱀의 머리가 되자는 게 저의 주의예요. 연극계에서 머리 역할을 할 수 있으면, 난 좋지. 

-어쩌면 드라마틱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유명 배우의 아들에서, 오랜 무명배우 시절을 거쳐 ‘쌍칼’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후에는 ‘랩규’ 등 예능판을 휘젓는다. 이제는 배우의 꿈을 가진 두 아들의 아버지다. 그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본 아내 역시 드라마의 주연이다. 

▲박 : 사실 저나 애들이나 ‘금수저’로 태어났죠. 그걸 미안해하진 않아요. 잘 베풀고 살자는 마인드만 있죠. 뭐 어떡해요. 그렇게 태어났는걸. 우리 애들도 마찬가지예요. 애들이 드라마에 나오면 제가 꽂아준 줄 아는데, 요즘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요.

PD가 알아보고 연락해서, 오디션 보고 마음에 드니까 캐스팅하는 거예요. 제가 아무리 네트워크가 있다고 해도, 애들이 못하면 캐스팅 안 돼요. 우리 애들은 제 덕을 본 게 거의 없어요. 근데 가끔 캐스팅됐을 때 아버지 덕 봤다고 하면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진 : 문화라는 게 인간의 감정과 마음이 성숙해지고 여유로워져야 발전이 있는 것 같아요. 저의 시아버지와 애 아빠 세대가 있었으니까 <오징어 게임>과 같은 세계적인 신드롬도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애들은 윗세대보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연기하겠죠.

저는 애들한테 ‘네가 어떤 역할을 맡고, 어떤 환경이 주어지더라도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늘 행복하게 임해야 영광을 얻는다’고 해요. 그 부분을 강조해요.

늘 행복하게
늘 화목하게

▲박 : 아내가 학구파예요. 이게 참 고마워요. 저는 이런 말 못해요. ‘그냥 해’라고만 하지. 애들이 아직은 무명인데, 지금 한 계단씩 밟고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빛이 오겠죠. 아내는 저한테도 참 좋게 말해줘요. 좋은 운이 세 번 오는데, 저는 ‘쌍칼’로 한 번 왔다고요. 아직 두 번 있다고요. 저도 <오징어 게임>의 오영수 선배처럼 되지 말라는 법 없다고요.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진송아가 전하는 ‘연예계 비사’

박준규씨의 부인 진송아씨의 ‘3대에 걸친 연예계 비사’가 연재됩니다.

시아버지(고 박노식)와 남편에 이어 두 아들까지, 3대째 연예인 집안을 꾸려오면서 그동안 꺼내놓지 못했던 진솔한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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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