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드러나는 'PC주의' 세태

“완벽한 몸매는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서정 기자 = 최근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을 뜻하는 PC주의가 외모지상주의, 동물 학대, 지나친 선정성, 범죄 묘사 등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형성하며 현실 속에서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고 있다. 

이랜드가 운영하는 SPA(제조·유통 일괄) 브랜드 스파오는 지난 6일 국내 패션 브랜드 최초로 ‘사이즈 차별 없는 마네킹’을 매장에 비치한다고 밝혔다. 스파오가 이번에 제작한 마네킹은 대한민국 25~34세 남녀를 조사해 가장 많이 나온 신체 사이즈를 데이터화한 뒤 이를 기반으로 익숙한 체형을 형상화한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

기존 패션 매장에서 사용하는 마네킹은 남성의 키가 190㎝, 여성의 키가 184㎝에 달했다. 하지만 이번에 스파오 매장에 비치되는 마네킹의 키는 남성이 172.8㎝, 여성은 160.9㎝다. 허리둘레는 기존의 마네킹보다 남성은 2.3인치, 여성은 5.9인치 더 늘렸다. 

새로 제작된 마네킹은 지난 4월 스파오가 샌드박스 네트워크, 국내 1호 내추럴 사이즈 모델 치도가 진행한 보디 포지티브(자기 몸 긍정주의) 캠페인 ‘사이즈 차별 없는 마네킹 - 에브리, 보디’의 일환으로 펀딩을 통해 제작됐다. 

펀딩에는 목표 대비 227%에 달하는 금액이 모였다. 프로젝트 오픈 4시간 만에 목표 금액을 달성하며 성공적으로 펀딩이 마감됐다.


보디 포지티브 캠페인 관계자는 “우리는 사회에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조금씩 변화시키기 위해 그 첫 번째 대상으로 ‘마네킹’을 바꿔 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외모지상주의의 대표 이미지로 각인됐던 완벽한 몸매를 가진 마네킹은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정치적 올바름을 뜻하는 ‘PC주의’는 사전에서 ‘말의 표현이나 용어의 사용에서 인종·민족·언어·종교·성차별 등의 편견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자는 주장’으로 정의한다. 영어로는 Political Correctness, 흔히 ‘PC’라고 부른다. 외모지상주의 등 ‘차별’적 발언을 지양하자는 관점의 PC주의가 국내 패션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3월 또 다른 패션 업체 코오롱 FNC는 시중에서 파는 바지보다 10㎝ 짧은 기장의 바지를 선보였다. 당시 사측은 우리나라 평균 남성 체형을 반영해 만든 남성용 바지라고 소개했다. 상의류 역시 어깨 너비 등을 평균 체형에 맞춰 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17년 10월 모바일 게임 ‘소녀전선’을 두고 선정성 논란이 일었다. 당시 게임 이용자들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항의하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매장 마네킹 사이즈 현실적으로 제작
개인주의 성향 MZ세대 만나 변화 가속

당초 모바일게임 ‘소녀전선’이 문제가 된 것은 이 게임의 숨겨진 일러스트가 선정적이어서다. 수집형 게임인 ‘소녀전선’의 핵심 인기 요소는 일러스트다. ‘소녀전선’에서는 게임 이용자가 특정 치트 코드를 입력하면 기존 여성 캐릭터의 일러스트보다 노출이 강조된 일러스트가 등장한다.

‘소녀전선’은 12세 이용가지만, 상당수 게임을 이용하는 이들은 ‘검열 해제’라 불리는 이 기능을 이용하며 플레이를 해왔다. 


그러자 일부 여성 게임 이용자를 필두로 불만을 제기했다. 

이는 곧 게임 이용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다. 결국 게임물관리위원회는 2개월가량 모니터링과 심사에 들어갔고 직권재분류로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 판정을 내렸다. 검열 해제를 통해 서비스 되는 일러스트가 청소년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직권재분류로 모바일게임에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을 내린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이후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으로 직권재분류 된 모바일게임 ‘소녀전선’은 문제가 된 일러스트를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1년 전 벌어진 카카오게임즈 사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카카오게임즈는 모바일게임 ‘가디언 테일즈’ 내에 원작에서 ‘You whore(성매매 여성)’로 표기되고 있는 문장을 ‘걸레년’ ‘이 광대 같은 게’로 두 번에 걸쳐 수정했다.

이 과정에서 성별 갈등 논란이 피어났고 ‘광대’라는 용어가 급진적 페미니스트 집단 사이에서 남성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으며 결국 ‘광대’라는 단어는 ‘이 나쁜 년이’로 최종 수정됐다. 

카카오게임즈는 이 과정에서 해당 실무진을 전원 교체했고 게임 이용자들에게 사과하는 등 논란 잠재우기에 나섰지만 이 사태 이후 ‘가디언 테일즈’ 게임은 일부 포털사이트에서 ‘광대겜’이라는 수식어를 얻게 됐다.

이외에도 최근 게임업계에서 성별 갈등으로 일어난 문제는 수도 없이 많았다. 업계 전문가들 역시 이러한 목소리를 간과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특히 최근 게임업계에서 ‘페미게임’ 혹은 ‘반페미게임’ 이라는 수식어를 게임에 붙힐 정도로 성별 갈등이 심해졌다. 표현의 자유보다 성별 갈등이 더 중요해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편견 지운다
현실 그대로

최근 기성세대 속 소수를 대변하는 목소리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MZ세대와 만나며 이 같은 변화가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 7일 성전환 수술 후 신체장애를 이유로 고 변희수 전 하사에게 내린 전역처분이 부적절했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전지법 행정2부(오영표 부장판사)는 변 전 하사 측이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제기한 전역처분 취소 행정소송에서 원고인 변 전 하사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변 전 하사의 상태를 군인사법상 심신장애 사유에 해당한다고 본 군의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날 재판부는 “처분사유 자체가 심신장애로 인한 전역이다. 적어도 성전환 수술 후 변 전 하사의 상태를 남성이 아닌 여성을 기준으로 한다면 처분 사유인 심신장애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성전환 수술을 통한 성별의 전환·정정이 허용되며, 수술 후 변 전 하사를 여성으로 평가해 성별 정정을 신청했고, 피고인 군이 이를 알고 있었던 점 등을 들어 변 전 하사의 성별을 여성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변 전 하사는 휴가 중 해외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귀국해 계속 복무하길 희망했지만 육군은 ‘심신장애 3급 판정’을 내리고 지난해 1월 22일 강제 전역을 조치했다. 변 전 하사는 전역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한 뒤 지난 3월 충북 청주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선고 후 변 하사의 복직과 명예 회복을 위해 모인 공동대책위원회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배제를 군에서 배격하기 위해 국방부는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며 환호했다. 

산업에 확산

재판을 지켜본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시대를 역행하는 성차별을 법원이 바로잡은 날이라 생각한다”면서 “국회도 법원 판결에 발맞춰 이번 정기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할 것”이라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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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