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나뉘는 신 계급사회 해부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9.27 15:15:30
  • 호수 13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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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아도 얼굴 못생기면 강등…명문대 나와도 대머리는 감점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최근 현대판 신분 계급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이 국민을 갈라놨다. 서열을 나누는 등급표는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젊은 세대들은 차별과 혐오를 부르는 등급표 놀이에 왜 빠진 것일까.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해 힘든 국민을 위로하고자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지급 대상은 소득 하위 88%이며 1인당 25만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국민 소득에 따라 지급 기준도 달라졌다. 

현대판
골품제도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재난지원금 등급표’라는 글이 공유됐다. 작성자는 이번 국민지원금 지급과 관련해 성골(상위 3%), 진골(상위 7%), 6~4두품(상위 12%), 평민(상위 90%), 노비(상위 100%) 등 계급을 총 5개로 분류했다.

재산세 과세표준 기준 초과로 미지급 대상인 사람은 성골이다. 금융 소득 기준 초과로 미지급 대상인 사람은 진골, 보험료 기준 추가로 미지급 대상인 사람은 6~4두품에 비유됐다. 재난지원금을 받은 사람들은 ‘평민’이나 ‘노비’로 부르고 있다.

재난지원금 유무에 따라 계급을 나눈 것이다.


이 등급표가 공개되면서 네티즌들은 주로 자조 섞인 반응을 보였다. 이를테면 ‘지원금을 받았지만, 평민이어서 좋아해야 할지 모르겠다’ ‘난 노비였구나’ 등이었다. 

또 직장인 커뮤니티나 인터넷 카페에서는 이른바 ‘자부심상’ 게시물도 회자됐다. ‘고소득자’가 수여자인 이 상은 “위 사람은 평소 돈을 많이 벌었기에 재난지원금 대신 자부심상을 드립니다”라고 쓰여있다.

앞서 김부겸 국무총리가 “재난기에도 전혀 소득이 줄지 않았던 고소득자들한테는 사회적 기여를 한다는 자부심을 돌려드릴 수 있다”고 말한 내용을 비꼬아 만든 것이다.

해당 등급표를 두고 우스운 장난쯤이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계급을 분류하는 이 등급표가 서민에게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논란이 나오고 있다. 현대판 골품제도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등급표를 만들어 공유하는 놀이는 예전부터 있었다. 외모, 직업, 패딩, 핸드폰 등을 계급별로 분류했다. 법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계급 사회를 부추기고 있다. 계급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건 결혼정보 회사에서 사용한다는 등급표에서다. 

결혼 등급표에는 직업과 학벌, 재산, 외모 등이 구체적이다. 일부 결혼정보 회사는 이 등급표를 토대로 점수를 매긴 뒤 고객을 분류했다. 

예를 들어 키 185㎝, 몸무게 75㎏으로 보기 심한 흉터가 없고 집안 재산이 100억원이 이상인 서울대 법대 출신 남성 판사는 A+ 등급으로 최상위 상품에 가입이 가능하다.


반면 키 166㎝, 몸무게 73㎏에 머리가 벗겨졌고 집안도 넉넉하지 않으며 2년제 대학교를 졸업한 중소기업 직원이라면 D 등급이 된다. 이 남성이 선택할 수 있는 상대의 폭은 좁아진다.

등급표에 따르면 남성의 경우 법대 출신 판사는 1등급, 서울대 법대 출신 검사와 서울대 행정고시 합격자, 비 서울대 포함해 5대 로펌 변호사는 2등급이다. 같은 판·검사라도 비 서울대라면 3등급으로 매겨진다. 서울대 의대 출신 의사와 같은 등급이다. 해외파 스포츠 스타는 5등급에 위치한다. 

“평민이냐 노비냐” 차별 부르는 등급표 
외모, 세금, 직업, 핸드폰 등으로 분류

서울·연세·고려대 외국계 대기업 재직자나 금융권 공기업 재직자도 5등급이다. 최고경영자(이하 CEO)라도 직원이 몇 명 있느냐에 따라 등급이 달라진다. 300명 이상 CEO는 4등급, 100명 이상 CEO는 7등급, 10명이상 CEO는 9등급이다.

초·중·고 교사, 단순 대기업 재직자, 공무원 9급 합격자는 하위권에 속했다. 전체 15등급 가운데 2년제 대학 출신의 남성 등급은 가장 아래에 있었다. 

1등급은 서울대 법대 출신 판사로 100점을 주고 그 아래 등급부터 3점씩 차감하는 방식으로 계산되며, 2등급은 서울대 법대 출신 검사 97점, 3등급 서울대 의대 출신 의사 94점 등으로 매긴다.  

직업과 출신학교를 같이 묶어 놓고도 학부 졸업 학력은 따로 분류했다.

서울대·카이스트대·포항공대·미국 명문대는 1등급으로 분류하고 연세대·고려대·미국 100위권 대학교는 2등급으로 분류했다. 그 다음부터는 등급이 확 벌어진다. 기타 서울·수도권 4년제는 7등급, 지방 4년제 9등급, 2년제 대학은 10등급이다. 

재산은 부모와 본인 것을 구분하지 않았다. 부동산, 주식, 현금 등을 모두 포함시켜 무조건 많으면 후한 점수를 줬다. 100억원 이상은 1등급, 60억~100억원은 2등급, 10억~20억원은 7등급, 3억~5억원은 9등급에 속한다. 

이 같은 등급을 받으려면 얼굴과 몸매가 ‘무난하다’는 전제 조건이 깔려있어야 한다. 만약 선호하는 외모가 아니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대머리일 경우 10점 차감, 흉터는 5점 차감한다. 

여성의 경우 부모 직업과 재산, 자신의 미모 등이 등급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실제로 몇 해 전 유출된 결혼정보회사의 등급표에 따르면, 전체 점수 100점 만점에 외모가 40점이나 배점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설령 집안 배경, 직업, 학벌도 조금 떨어진다 해도 외모에 대한 가중치가 중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인뿐 아니라 청소년들도 등급표를 만들어 공유했다. 가치관이 아직 형성되지 않다 보니 청소년들은 등급표에 과몰입해 사회적인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적나라한
결혼 등급

예를 들면 고가의 롱패딩이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청소년들 사이에서 ‘패딩 계급표’가 유행했다. 가격과 브랜드에 따라 등급을 나눈 것이다. 50만원 이상 해외 브랜드 제품은 1등급, 아이돌 그룹이 모델이 된 30만~50만원대 국내 브랜드 제품은 2등급으로 매겨졌다.

다운패딩·롱패딩·플리스 등 고가 제품 유행이 모방 심리에서 비롯하면서 또래 집단에서 배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패딩 브랜드가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해 부모 등골을 빼먹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패딩 계급론’으로 인해 학생 사이에서 위화감이 조성돼 고가 패딩 구입을 희망하기도 했다. 

실제 고가의 패딩 때문에 학교폭력이 발생했다.

지난해 인천 중학생 집단폭행 추락사 사건의 가해 학생이 구속 당시 피해 학생의 패딩점퍼를 입어 논란이 된 바 있다. ‘노스페이스 패딩’이 한창 유행했던 2012년 부산의 중학교 3학년생 5명이 친구들에게 폭행을 가해 120만원 상당의 패딩 네 벌을 빼앗아 입고 다니다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바람직한 소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만족할 수 있는 것으로 사는 것이지만 패딩 계급론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알려지면서 합리적 소비가 이뤄지지 않았다.

계급론에 불을 지핀 건 수저 계급표였다. 자본 상태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심지어 흙수저라는 말로 나뉘며 유행어로 자리잡았다. 

자산 20억원 또는 가구 연 수입 2억원 이상일 경우 ‘금수저’, 자산 10억원 또는 가구 연 수입 1억원 이상일 경우 ‘은수저’, 자산 5억원 또는 가구 연 수입 5500만원 이상일 경우 ‘동수저’ 등으로 나뉜다. 흙수저는 여기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우다.

구체적으로는 자산 5000만원 미만 또는 가구 연 수입 2000만원 미만인 가정 출신이다.

수저 계급표가 화제로 떠오르자 같은 시기에 ‘흙수저 빙고 게임’도 유행했다. 가로 다섯 칸, 세로 다섯 칸짜리 표에 흙수저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가정환경이 쓰여있다.

차별·배제
의미 내포

‘여름에 에어컨을 잘 안 틀거나 에어컨 자체가 없음’ ‘TV가 브라운관이거나 30인치 이하 평면TV’ 등 가전제품 유무나 연식, 크기를 따지는 칸부터 ‘고기를 물에 넣고 끓이는 요리로 해먹음’ ‘부모님이 정기 건강검진 안 받음’ 등 구체적인 생활양식이 기재돼있는 칸까지 해당 사항도 다양했다.

내용에 동그라미를 더 많이 칠수록 흙수저에 가깝다. 

취업준비생 A씨는 “요새 취업하려면 해외 연수·인턴·면접 등 거쳐야 하는 단계가 늘어났고, 자연히 단계마다 탈락하는 청년도 많다”며 “수저 계급표를 보고서 더욱 비관하게 됐다”고 했다.

왜 젊은 세대는 이토록 가혹한 ‘등급 분류’를 하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88만원 세대’ ‘3포세대’ 등으로 불리며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2030 청춘들이 ‘노력해도 바뀌는 게 없다’는 자조 끝에 등급 분류를 만들어냈다고 분석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수저계급 등 말이 난무하는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폭력적으로 변화한 결과”라고 현 상태를 진단했다. 신 교수는 “개인들이 생존을 해결해야 하는 위험하고 불안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행복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가 불안해질수록 구성원들이 협력해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데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공격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날수록 고급 교육과 다양한 어학 능력을 갖춰 취업까지 유리하지만 가정환경이 어려우면 아무리 공부를 해도 취직이 어렵고 학자금 대출 등으로 ‘하루하루 빚만 늘어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비교하기·자랑하기 문화가 등급을 나누는 데 있어 한 몫을 차지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발달로 인해 타인의 삶과 비교하고 자신의 삶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신보다 더 높은 곳에 분류되길 희망하는 것이다. 

출신·재산으로 구분되는 위치
타인과 비교·자랑 문화 기인

이처럼 계급을 나누려는 이유는 의존심리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등급표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소속감에 행복을 느끼고 타인과 비교해 심리적인 안정감을 취하기도 한다. 외부 환경요인을 찾아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모든 분야에 있어 등급으로 나뉘어 계급화시키는 형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계급화는 곧 차별을 의미한다. 어느 사회든 계급화에 따른 차별은 있기 마련이지만, 이를 배척해야 할 젊은 세대까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건 ‘건강한 사회’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인터넷에서 공유되고 있는 등급표에는 가난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의미가 내재돼있다. 어른들의 빈자 혐오가 아이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기 때문이다. 

송재룡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이제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시대라며, 아이들이 차별과 배제를 지양하도록 가정과 사회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아이들은 사고가 단순해 차별을 자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대상이 되는 상대편은 정서적으로 위축되고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부모들의 심경도 매우 힘들 것”이라며 “일상에서, 가정에서 아이와 부모가 대화하는 자리에서부터 상대방을 계급화해 차별하거나 무시하는 언사와 행위를 조심해야 하고 이를 하나의 문화로 정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계급에 따른 차별이나 과시가 자연스럽게 내면화될 수 있다”며 “가정과 사회의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급을 구분 짓는 것은 서열을 나눈다는 의미다. 서열이 생기면 혐오와 차별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된다면 불평등의 피라미드에서 한 칸이라도 나은 위치로 이동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수 있다. 때로는 자신의 계급을 유지하기 위해 계급에 집착할 수 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쓴 오찬호 작가는 “학교 서열, 직업, 브랜드 등이 모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승자’의 개념으로 보이는데 이는 차별적 보상도 공정한 경쟁을 통해 만들어진 정당한 보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라며 “서열화를 하면 누군가는 결국 멸시받고 조롱받게 되는데 그에 대한 죄책감도 사라졌다는 것을 방증한다. 학교는 그런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쳐야 하는데, 학교조차 서열화에 앞장서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또 20·30대가 자꾸 계급도를 만드는 현상과 관련해, 젊은 층들이 이를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론 인정하고 싶어하는 심리적 이중성을 지적했다.

불평등
피라미드

오 작가는 “한국 사회에서는 줄을 세워서 쟤는 어디에 있는지 딱딱 이해하는 게 굉장히 익숙하다”며 “자꾸 세분화되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 또는 친구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확인하고 자기보다 뒤처진 계급을 보면서 안심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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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