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보잡' 재벌들 화려한 비상 막전막후

고래 삼킨 새우 ‘배 터질라’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얼굴 없는 재벌’들이 굵직한 인수전에 출사표를 던졌다. 모두 중견기업이라는 데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일각에선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대명화학이 로젠택배를 품었다. 연결 매출 1조3000억원에 이르는 대명화학과 수십여개 투자 브랜드, 자회사 코웰패션이 운영하는 모다아울렛은 모두 이번 로젠택배 인수로 물류 경쟁력에 날개를 달 전망이다.

숨은 강자들
손 뻗기 시작

투자은행업계에 따르면 코웰패션은 지난 7월9일 종속회사 씨에프인베스트먼트가 로젠택배 주식 1482만3496주를 3400억원에 취득한다고 밝혔다. 

코웰패션은 대명화학이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다. 로젠은 택배업계 점유율 4위 업체다. 코웰패션은 이번 인수 목적이 “온라인 경쟁력 강화 및 신규사업 진출”이라고 밝혔다.

대명화학의 핵심 계열사이자 상장사인 코웰패션은 아디다스, 리복, 푸마 등 속옷 라이선스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으며 주로 홈쇼핑을 통해 유통시키는 회사다. 거느린 종속회사의 수만 12개에 달한다. 


지난해 코로나19라는 패션업계 혹한에도 코웰패션은 매출의 경우 전년 대비 8% 증가한 4264억원, 영업이익의 경우 5% 증가한 801억원을 기록했다. 이를 토대로 대명화학 역시 지난해 매출은 1조3000억원으로 전년도 1조1000억원에서 2000억원 늘었다. 그러면서 2019년 1079억원이던 영업이익은 1490억원으로 38% 껑충 뛰었다.

패션 재벌로 성장한 대명화학이지만 아직도 베일에 싸여있다는 평가다. 회계사 출신 권오일 회장이 지분의 90% 이상을 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정도다. 대명화학은 2015년 코웰패션을 인수하며 패션업계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수십여개에 잇달아 투자해 대박을 내면서 M&A(인수·합병)와 투자의 귀재로 알려졌다.

중견 건설사들도 사세 확장과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거침없는 인수·합병(M&A) 행보를 보이고 있다.

3400억 로젠택배 품은 ‘패션재벌’ 대명화학
호남 중견 건설사들 ‘파격’ 대우건설 인수전

대우건설 인수전에 출사표를 던진 기업들도 모두 중견기업다. 지난 7월 업계에 따르면, 대우건설 최대주주인 KDB인베스트먼트(KDBI·지분 50.75%)는전날 중흥 컨소시엄을 대우건설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중흥건설은 최종 경쟁자인 스카이레이크-DS네트웍스-IPM 컨소시엄을 모두 제치고 국내 시공 능력 순위 6위의 대우건설을 품에 안는 이변을 연출했다. 


중흥건설을 보유한 중흥건설그룹은 지난해 시공능력평가(시평) 35위 중흥건설을 포함해 15위 중흥토건을 중심으로 모두 30여개에 이르는 주택·건설·토목 부문 계열사들을 거느리고 있다. 자산총액도 9조2070억원으로 재계 47위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M&A 결과를 두고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시평 6위 대우건설을 계열사로 편입시키면 중흥건설그룹은 시평 순위가 5위 안팎으로 수직상승하게 된다.

피튀는 난투
최종 승자는?

일각에서 제기하는 법적 소송설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되, 정해진 것은 없다고 답했다.

DS네트웍스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예비협상대상자지만, 현실적으로 이번 인수에서는 물러날 가능성이 높다. KDB인베와 중흥건설은 상세실사를 거쳐 연말까지 매각 절차를 종료할 계획이다.

DS네트웍스는 사모펀드 운용사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 해외 인프라 투자사 IPM와 컨소시엄을 이뤄 참전했다. 첫 본입찰 당시 대우건설 지분 50.75% 가치로 1조8000억원의 가격을 제시했다. 2조3000억원을 낸 중흥건설이 수정 제안을 요청하자 DS네트웍스도 2조원 안팎으로 가격을 냈다.

중흥건설도 가격을 낮추면서 양측의 가격 차이는 크지 않았다. 다만 중흥건설은 해외 사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우발채무에 대한 보상 조건을 내걸지 않았고, DS네트웍스 컨소시엄은 이를 요구하면서 KDB인베는 중흥건설을 낙점했다.

DS네트웍스는 2017년에도 대우건설 인수를 검토했고, 두산건설 인수를 추진했다가 부실 사업장 처리에 대한 이견으로 중단했다. 시행사로 출발해 부동산 전문 자산운용사 등 금융으로 영역을 넓혀왔다.

시평 21위의 중견건설사 동부건설도 46위 한진중공업과 한솥밥을 먹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동부건설 컨소시엄은 지난 4월 한진중공업 주주협의회 보유지분 5567만 2910주를 매입하는 계약을 성사시켰다. 매매 주식 지분율 66.85%로 절차가 마무리되면 동부건설 컨소시엄은 한진중공업의 최대주주로 올라선다.

강력 후보 낙방
업계 우려는?

현재 본계약을 위한 실사를 진행 중이며, 3분기에 완료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한진중공업 인수가 마무리되면 동부건설은 국내 건설시장에서 경쟁력 확대와 함께 한진중공업이 보유한 조선업과 친환경 분야도 적극 활용하는 사업 다각화를 노린다. 특히, 건설 분야에서 동부건설은 서울·수도권에서, 한진중공업은 경남에서 지역 브랜드의 강점을 갖고 있다.


또, 동부건설은 해상 풍력과 해상 태양광 같은 해양플랜트 신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어, 한진중공업의 해상 플랜트 기술과 연계한 시너지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이스타항공을 인수한 성정도 기적의 스토리를 쓰고 있다. 성정은 지난 6월17일, 이스타항공 우선 매수권을 행사해 중견기업 쌍방울그룹을 제치고 최종 인수자로 선정됐다. 

성정은 이번 이스타항공 인수를 통해 변방의 향토기업에서 일약 재계 메인무대로 나설 수 있는 디딤돌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성정이 충남 향토기업인 데다 비상장기업이라는 점에서 업계는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은 역시 ‘자금 조달 가능’ 여부다. 충남 부여군에 본사를 둔 성정은 토공 사업과 골프장 관리용역업, 부동산 관련업 등을 하는 종합건설업체다.

관계사로는 2008년 개장한 27홀 백제컨트리클럽과 토목공사업체 대국건설산업을 두고 있다. 백제컨트리클럽과 대국건설산업의 대표는 형남순 회장이며, 성정은 장남인 형동훈 대표가 운영한다.

이스타 인수한 성정 ‘기적의 스토리’
‘대이변’ KH그룹의 알펜시아 공매 낙찰


성정·백제컨트리클럽·대국건설산업 모두 부채가 적은 알짜배기로 알려졌다. 1994년 세워진 대국건설산업은 건설 하도급 대금을 100% 현금으로 결제할만큼 유동성이 좋다. 대전경찰청 청사 신축, 전남 일로~몽탄 도로 확장 공사 등을 진행했다. 

다만 지난해 매출 59억원에 영업이익이 5억5000만원을 기록했다. 이 대목에서 재계 일각에서는 성정이 관계사 매출을 모두 합쳐도 400억원 정도인 만큼 부채만 2000억원에 달하는 이스타항공을 품을 수 있을 지 물음표가 남아있는 상태다. 

여기에 KH 강원개발은 알펜시아리조트 공매 낙찰자로 선정되는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KH 강원개발은 알펜시아 인수를 위해 ‘KH 필룩스’와 ‘KH 일렉트론’이 만든 특수목적법인(SPC)이다. 이는 각각 전자부품 소재와 이어폰 등 음향기기 등을 주력 사업으로 하는 KH 그룹의 계열사들이다. 

이 중 KH필룩스는 4376억원 규모의 자산을 보유한 기업으로, 지난 1분기 영업이익 -23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적자 전환했다.

KH 일렉트론은 코스닥 상장 업체다. KH 강원개발이 속한 KH 그룹은 2019년 그랜드하얏트서울을 인수한 곳으로, 자산규모는 약 2조원이다. KH 강원개발은 지난해 10월 알펜시아리조트 1차 입찰과 6차 수의계약에 참여하는 등 확고한 인수 의지를 보였다.

한우근 KH 강원개발 대표는 “지난 1년간 인수 준비와 개발계획 수립을 위해 많은 인원과 비용을 투입했다”며 “기존 리조트 사업을 강화해 대한민국 최고의 리조트로 발돋움하겠다”고 했다.

기대 반 
우려 반

KH 강원개발이 강원도, 강원도개발공사와 알펜시아리조트 양도·양수 기본협약을 맺기는 했으나 매각이 완료된 것은 아닌 만큼 인수자금 조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KH 강원개발은 앞으로 실사 등을 거쳐 오는 23일 최종 계약을 체결하고 알펜시아리조트 인수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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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라오스가 동남아의 마지막 프런티어이자 신흥 투자처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국제 범죄자들의 주요 거점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수력발전과 광물, 인프라 개발을 앞세운 투자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는 반면, 불법 콜센터를 중심으로 한 사이버 범죄 산업도 동시에 팽창하기 때문이다. 합법과 불법, 투자와 범죄가 교차하는 이 구조는 라오스를 단순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국제 금융·사이버 범죄의 회색지대로 바라보게 만든다. 최근까지 라오스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과거 한국이나 중국에서 인식해 온 단순 전화 사기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대거 이동 범죄 온상 라오스 스스로도 더 이상 ‘내륙 봉쇄국’이 아니라 ‘육상 연결국’을 자임하며 철도와 도로, 에너지, 도시 인프라를 국가 도약의 기반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밝은 전면 뒤에는 국제 범죄도시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지고 있다. 투자시장과 범죄 산업이 동시에 팽창하는 이중 구조다. 라오스에서 발생하는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투자사기는 전화와 메신저, SNS를 결합한 다층적 구조가 정착됐다. 가짜 투자 플랫폼과 암호화폐, 외환(FX) 거래를 미끼로 한 고도화된 금융사기가 핵심 수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범죄는 국경 지대와 특별경제구역을 거점으로 운영된다. 미얀마·태국과 맞닿은 북부지역 경제특구 일대는 외국 자본과 외국 인력이 밀집한 구조를 악용하기 쉬운 환경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겉으로는 카지노나 리조트, 개발사업사무소로 위장하지만, 내부에서는 각국 언어를 담당하는 인력이 분업 형태로 사기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발송한다. 최근에는 캄보디아 내 대규모 범죄조직들이 현지 단속을 피해 라오스 등 인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황도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지난 10월19일 양기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라오스에 체류 중인 한국인 민간봉사단체 관계자는 국제 통화에서 “라오스 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라오스 이동 가능성을 물었지만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었다”고 전했다. 교민사회에서는 태국발 마약 범죄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캄보디아발 범죄조직까지 유입되면 감당이 어렵다며, 한국 정부가 후임 대사를 조속히 임명하고 경찰·영사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 범죄들이 ‘라오스 현지 범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피해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 전역, 유럽과 북미까지 확산돼있다. 라오스는 범죄가 실행되는 물리적 공간일 뿐, 자금은 국제 금융망과 가상자산을 통해 순식간에 국경을 넘는다. 캄 ‘프린스그룹’ 라 ‘킹스 로만스’ 해외투자 뒤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보이스피싱 조직은 가짜 투자 수익 인증 화면과 조작된 거래 내역을 제시해 신뢰를 쌓고, 일정 금액 이상이 입금되면 추가 투자나 긴급 송금을 요구한 뒤 출금을 차단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반복한다. 일부 사례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라오스 광산 개발, 에너지 프로젝트, 부동산 사업을 사기 시나리오에 끼워 넣어 ‘현지 실물 투자’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범죄 구조가 인신매매와 강제노동과 결합돼있다는 점이다. 고수익 IT·마케팅 일자리를 제안받고 라오스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여권을 압수당한 채 콜센터에 감금돼 사기를 강요받는 사례가 국제 언론과 인권단체 보고서를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폭행과 협박이 뒤따르고, 탈출을 시도하면 몸값을 요구받는 구조도 확인됐다. 이는 단순 금융사기를 넘어 국제적 인권 범죄이자 조직범죄로 분류되는 이유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일대에 밀집했던 대형 범죄단지가 해체되며 조직이 점조직 형태로 흩어지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현지 단속 이후 웬치로 불리는 범죄단지 상당수가 텅 비었고, 이들 조직원 상당수가 라오스와 태국, 미얀마 접경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은 과거 세계적인 마약 생산지였지만, 최근에는 다국적 피싱 사기의 온상지로 탈바꿈했다. 울창한 산림 지역에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장비를 설치해 전 세계를 상대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라오스 북부 보케오 지역에는 ‘범죄단지’를 넘어선 ‘범죄마을’도 존재한다. 중국 카지노 그룹 킹스 로만스가 99년간 임차해 카지노와 호텔을 운영하는 이 지역은 사실상 외부 접근이 차단된 치외법권에 가깝다. 불법도박과 마약 밀매, 스캠 사기, 암호화폐 자금세탁이 복합적으로 이뤄진다는 의혹이 제기돼왔고, 미국은 이미 2018년부터 킹스 로만스를 초국가범죄 기업으로 지정해 제재하고 있다. 캄보디아에 프린스그룹이 있다면, 라오스에는 킹스 로만스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경 넘는 나쁜 놈들 마약 범죄 역시 라오스의 또 다른 어두운 단면이다. 최근 라오스 공항에서 마약을 소지한 채 출국을 시도하다 적발되는 한국인이 급증했다. 비엔티안과 지방 공항에서 잇따라 체포된 사례들은 대부분 헤로인과 케타민, 필로폰 등 대량의 마약을 포함하고 있다. 라오스 형법은 마약 범죄에 극히 강경하다.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사형이나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고, 미수나 공범 역시 동일하게 처벌된다. 실제로 2019~2020년 비엔티안 공항에서 필로폰을 소지하다 적발된 한국인 2명은 현재까지도 장기 복역 중이다.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이 “타인으로부터 물건을 위탁받지 말라”고 반복적으로 경고하는 배경이다. 라오스 정부 역시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불법 콜센터 단속과 외국인 범죄자 검거, 장비 압수와 추방 조치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단속이 강화될수록 범죄조직이 인접 국가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는 반복되고 있다. 구조적 취약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범죄의 위치만 바뀔 뿐 산업 자체는 유지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범죄 환경은 라오스 투자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라오스는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 요소를 갖춘 국가다. 수력발전과 광물, 재생에너지, 일부 농업·임산물 가공 분야는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행정 절차의 불투명성, 계약 집행의 불확실성, 외환 규제와 금융 접근성 문제는 오래된 리스크다. 여기에 사이버 범죄가 결합되면서 정상 프로젝트와 사기성 프로젝트의 경계는 더욱 흐려지고 있다. ‘정부 승인’ ‘양허권 보유’ ‘현지 고위 인맥’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공식 검증 없이는 실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동남아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 라오스의 개발 모델 역시 기회와 위험이 교차한다. 인프라를 외부 차관과 ODA로 먼저 구축하고 성장을 통해 상환하는 구조는 철도와 도로, 병원, 상수도 같은 가시적 성과를 냈다. 그러나 정부 부채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60% 후반으로 추정되고, 낍(KIP)화 약세는 상환 부담을 키우고 있다. 빚으로 지은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자산이 아니라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경고다. 현장에서는 인프라가 완공돼도 운영 시스템과 인력, 수요가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다만, 한국 정부는 ‘메콩강 내륙국’으로 외교적 지평을 넓히기 위한 포석으로 라오스를 지목했다. 해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 개발 속도가 더딘 메콩강 유역 내륙국 시장을 선점해 경제협력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판단도 깔려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정상회담 대상국으로 라오스를 선택한 이유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통룬 시술릿 라오스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했다. 이날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라오스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것은 12년 만이다. 라오스는 대표적인 메콩강 유역의 내륙 국가로 꼽힌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은 중국 칭하이성에서 발원해 윈난성과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른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3대 교역국'으로 꼽히는 베트남을 비롯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의 해양국과 활발한 경제·문화·인적 교류를 해온 반면 라오스와 미얀마, 캄보디아 등 메콩강 유역 내륙국과 비교적 교류가 적었다. 조원득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장은 “(한국의) 경제협력이나 투자는 베트남 등에 집중됐고 동남아의 내륙 국가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최근 몇 년간 (한국이) 한미일 외교에 집중하다 보니 (내륙국에 대한) 정치·외교적인 관심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범죄로 얼룩 이면엔 ‘기회의 땅’ 무궁무진 천연 광물과 수력발전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메콩강 유역 국가들은 베트남처럼 경제적으로 한 단계 높은 층위를 차지하는 국가들과 아닌 국가들로 구분돼있다”며 “메콩강 지역 개발의 최대 수혜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얀마는 군부독재라는 문제가 있고 캄보디아는 온라인 ‘스캠’(사기)으로 대표되는 치안 문제가 있다”며 “한국이 메콩 지역 개발을 위해 손잡고 일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로선 라오스”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해양국들뿐 아니라 내륙국들과 교류·협력 등을 통해 아세안에서 영향력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아세안의 GDP 규모는 약 3조8000억달러(약 5590조원)로 국가로 치면 세계 5위 수준이다. 인구 규모는 6억7000만명으로 세계 3위다. 미중 갈등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강’을 넘어 아세안 등 신흥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약 6개월 만에 G7(주요 7개국), 유엔(UN·국제연합)총회,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상생과 연대의 가치를 강조하며 자유무역 질서 및 다자주의 회복에 힘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통룬 주석과의 확대회담에서 “라오스가 통룬 주석의 리더십 하에 내륙 국가라는 지리적 한계를 새로운 기회로 바꿔 역내 교통·물류의 요충지로 발전한다는 국가 목표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이 든든한 파트너로서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 간 호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더욱 확대·발전시켜서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익 보장? 의심부터 결국 라오스의 투자시장과 보이스피싱 범죄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적 공백과 국경 지대의 느슨한 관리, 외국 자본과 인력 유입이 만들어낸 회색지대라는 동일한 토양에서 자라난 두 개의 얼굴이다. 라오스는 여전히 기회의 땅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이제 철저한 검증과 리스크 관리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됐다.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투자 제안일수록, ‘이미 현지에서 잘 돌아가고 있다’는 말일수록 냉정하게 의심해야 하는 이유다. 라오스 투자시장의 성장과 국제 범죄 산업의 확산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구조가 낳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결과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