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리뷰> '제2의 이정은 될까' 이은주와 고서희의 발견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오스카 레이스를 돌 때 “여기까지 오는데,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영화를 만들면서 스스로 가장 잘한 부분을 자평해달라는 속뜻이 담긴 질문이었다. 이에 봉 감독은 “한 여성이 집에 되돌아온 것이 가장 잘한 것 같다”며 재치 있는 답을 남겼다. 

초반부 드라마와 코믹이 버무려지며 이야기를 쌓아가는 <기생충>은 봉 감독이 밝힌 한 여인 문광(이정은 분)이 박사장‧연교의 집에 벨을 누르면서 미스터리 스릴러로 변주한다. 전반과 후반으로 나뉘는 형태의 이 영화의 기점이 되는 부분이다. 그때부터 영화는 거침없이 달린다.  전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은 <기생충>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으로 꼽히는 신이다.

그로테스크한 문광의 얼굴은 영화의 흐름을 완전히 바꾼다. 말 그대로 얻어터진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로 “문 좀 열어주시겠어요”라는 대사를 던진 이는 배우 이정은이다. 이전까지 그리 유명하지 않았던 이정은은 연극계에서 내공을 쌓은 뛰어난 연기자다. 

현실감 있는 외형으로 배역의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 선과 악, 강자와 약자를 오고 가는 중에도 흠결 없는 연기력을 보인다. <기생충> 이후 그는 연기력 최고점의 배우로 분류되며 각종 작품에서 맹활약 중이다. 

최근 이정은의 아성을 넘볼 배우가 나타난 듯 보인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생>)에서 은지 엄마 역의 이은주와 넷플릭스 영화 <제8일의 밤>에서 선녀보살을 맡은 고서희다. 두 배우는 비교적 짧은 분량에도 엄청난 아우라를 선보이며 눈도장을 찍었다.

<슬의생>에서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딸 은지의 엄마로 본인도 견디기 힘든 고통을 감내하는 중에 주위를 살피는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인물이다. 


<슬의생> 3화에서 민찬이 가공된 심장을 달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슬피 우는 민찬 엄마를 발견한 은지 엄마는 쭈뼛쭈뼛 다가가 용기를 준다. 이미 수개월 전부터 딸 은지가 가짜 심장을 달고 중환자실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는 중에 누구보다도 민찬 엄마의 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고 “우리는 마라토너야”라며 장기전으로 가는 중에 마음을 더 굳게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은지가 수개월이나 고통받는 중에 민찬은 예상보다 빨리 심장을 공여받는다. 축하해 줄 일인데도 진심을 다할 수 없는 건 은지에게도 누군가의 심장 공여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은지 엄마 역의 고서희는 첫 등장부터 마치 은지 엄마 그 자체가 돼 연기한다. 아파하는 민찬 엄마에게 고개를 숙이고 눈 맞춤을 하는 장면에서는 극한의 선함이 드러난다. 기술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짧은 신에서조차 고서희는 진심으로 은지 엄마라는 인물을 마음에 담았다.

이외에도 민찬 엄마가 충격을 받지 않도록 정성껏 돕는 부분, 민찬이 먼저 심장을 공여받게 된 사실을 알고 어렵사리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는 장면, 병원에서의 고통스러운 나날을 전해준 하늘이 원망스러운 듯 짐승처럼 울부짖는 장면까지 고서희의 연기는 큰 울림을 준다. 

이후 4화에서 은지가 심장을 공여받고 고개를 돌려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기란 쉽지 않다. 메인 주인공이 아님에도, 주어진 장면에서 탄탄하게 서사를 쌓아 올린 터라 은지가 수술을 받는다는 게 내 자식 일처럼 기쁘기 때문이다. 

배우 이은주는 세종대학교 연극학과 출신으로 주로 연극무대에서 활동했다. 이따금 드라마와 영화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다 <슬의생>에서 강한 내공의 연기를 선보인 것. 그의 퍼포먼스는 무엇이 진심으로 인물을 표현하는 것인지에 대한 연기 교과서나 다름없었다.

이은주가 살아있는 천사를 표현했다면 <제8일의 밤>의 고서희는 광기 가득한 섬뜩한 인물로 등장한다. 


무당으로 등장하는 그는 사실상 죽음을 맞이했어야 하지만, 묘수를 부려 살아남은 인물이다. 사람들의 기이한 죽음의 진실을 찾기 위해 온 호태(박해준 분)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장면에서의 광기에 서려 있는 그의 얼굴은 오싹한 기분을 준다. 

비록 등장한 장면이 짧지만, 영화의 반전을 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특히 대사 도중 진짜 진실을 알아채고 태도를 완전히 뒤바꾸는 과정에서 그가 만들어낸 서스펜스는 영화 내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다. 너무 뛰어난 연기력 덕분에 고서희를 중심으로 서사를 그려나갔다면, 더 강렬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각인이 되는 퍼포먼스다. 

극한의 선과 극한의 광기 앞에서 고서희는 도무지 흐트러짐이 없다. 같은 배우가 연기했다고는 전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만큼 어떤 배역이 들어와도 그 인물이 돼 연기할 수 있는 내공이 있다는 방증이다. 

고서희는 데뷔작인 영화 <박하사탕> 오디션장에서 “엄마가 암으로 곧 죽을 텐데, 사실을 모르는 엄마한테 전화로 어떻게 말하겠느냐”는 이창동 감독의 요구에 “그걸 어떻게 말하냐”며 눈물부터 그렁해졌다고 한다. 그래도 연기를 해보라는 주문에 눈물범벅이 돼 엉망으로 대사를 했다고.

이 감독은 인터뷰에서 “어떻게 연기할까를 고민하기 이전에 그 상황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감성이 연기의 출발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캐스팅했다”고 말한 바 있다. 

또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시절 봉준호 감독과 연을 맺어 <살인의 추억>에도 출연하기도 했다. 수사를 헤매는 두 형사 옆에서 또렷한 정신으로 조력한 여 형사였다. 비교적 작은 배역이었음에도, 많은 이들이 기억할 정도로 잔상이 깊다. 

이후 연극과 영화,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하며 연기적으로 내공을 쌓았다. 단편영화나 독립영화에서 실력파로 알려진 그다.

영화계와 드라마계의 혜안이 부족한 탓일까, 두 배우 모두 뛰어난 연기력을 갖췄음에도 상업적인 작품에서는 그를 중히 쓰지는 않았다. 그러다 오랫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대중성 있는 작품에서 꽃 피운 듯 보인다. 다른 주인공보다 더 강렬한 인상이다. 마치 이정은이 그랬듯 비록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엄청난 실력파 연기자로 사랑받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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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