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유비' 유상철의 끝나지 않은 축구 이야기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6.14 15:47:04
  • 호수 13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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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사에 큰 족적 남기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2002년 한일월드컵 영웅이었던 유상철 인천유나이티드 명예감독. 그는 쉰이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선수 시절 그라운드에서 묵묵하게 투혼을 보여줬던 유 감독은 췌장암 병마와 싸우다 “건강하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 

“이제 하늘나라에서 하고 싶은 축구 원 없이 해라.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마음 편하게 지내길 바란다.” 최용수 전 FC서울 감독이 먼저 하늘나라로 간 유상철 전 인천유나이티드 감독에게 보낸 편지 마지막 문구다. 

국내외
추모 물결

유 감독이 지난 7일, 향년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19년 11월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1년7개월간을 투병했다. 췌장암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 ‘침묵의 살인자’라고도 불린다. 한참 진행된 이후에야 복통과 함께 황달이나 소화불량, 식욕부진, 피로감 등 증상이 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히딩크, 손흥민, 이동국 등 축구계는 물론 정치권, 연예계에서도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큰 감동을 줬던 그였기에 많은 사람이 슬퍼했다.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진 빈소에도 온종일 선후배 축구인과 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이날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함께 쓴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황선홍 전 대전 시티즌 감독, 최용수 전 FC서울 감독, 김남일 성남FC 감독, 이천수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 안정환, 이민성 대전시티즌 감독, 현영민 JTBC 해설위원 등이 빈소를 찾았다.


해외 축구계도 유 감독을 애도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지난 7일 오후 월드컵 공식 계정에 유 감독의 선수 시절 국가대표 경기 출전 사진과 함께 “한 번 월드컵 영웅은 언제나 월드컵 영웅”이라며 추모 메시지를 올렸다.

유 감독이 현역 시절 활약했던 일본 J리그 요코하마 마리노스도 트위터를 통해 “지난해 홈 개막전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안타깝다”며 슬픔을 함께했다. 

2019년 가을. 축구계 내에서 ‘유상철 감독이 많이 아프다’는 소문이 돌았다. 10월경 유 감독은 가까운 기자들에게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달했다. 이후 유 감독은 ”괜찮아진다“는 말을 하며 기자들을 오히려 안심시켰다. “건강하다”는 기사를 내달라고 유 감독은 기자들에게 당부했다. 

유 감독의 몸 상태가 팬들에게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2019년 10월19일 성남FC전이었다. 황달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그는 성남전서 너무도 수척한 얼굴로 나타났다.

결국 성남전이 끝나고 나서 인천 구단에서 유 감독이 췌장암 4기라고 발표했다. 그의 병세가 알려지고 나서 바로 만난 상대는 수원 삼성. 당시 수원의 사령탑은 유 감독의 1971년생 동갑내기 이임생 감독이었다. 두 사람은 연령대별 대표팀부터 국가 대표팀까지 함께 한 절친한 친구였다.

2019년부터 췌장암 말기 투병
항암치료 하며 복귀 의지 보여

성남전이 끝나고 병원에 입원했던 유 감독은 수원전 사전 기자회견에서 “꼭 돌아오겠다고 선수들에게 약속했다. 다행히 약속을 지켰다”고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의연한 친우를 본 이임생 감독은 “사실 상철이에게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냥 안아주기만 했다. 그래도 경기에서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당시 이임생 감독은 유 감독이 힘든 상태로 벤치를 지키는 만큼 수원 선수들에게 골을 넣어도 세리머니를 자제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실제로 타가트가 선제골을 기록한 이후 세리머니를 하며 들뜬 모습을 보이려 하자 도움을 기록한 전세진이 다가가 이임생 감독의 당부를 전하기도 했다.

0대 1로 끌려가던 인천은 후반 추가 시간에 명준재의 극적인 골로 무승부를 거뒀다. 이날 거둔 승점 덕에 인천은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리그 잔류를 확정할 수 있었다. 승부가 끝나자 이 감독과 유 감독의 감정이 표출됐다. 평소 생김새와 달리 잔정이 많다는 소리를 듣는 이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유 감독을 언급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의연한 태도를 유지하던 유 감독도 친구의 마음에는 애틋한 감정을 표했다. 그는 “(이 감독과는)오랜 친구다. 덩치는 큰데 마음이 너무 여리고 눈물도 많은 친구”라며 “임생이가 내 걱정을 하는 것 같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유 감독은 시즌이 끝난 후 1월 인천유나이티드 감독직을 사임하고 명예감독으로 남으며 투병에 전념해왔다. 회복에 강한 의지를 보였던 그는 힘겨운 항암치료를 견디면서도 건강이 많이 호전된 모습을 보였다.

방송과 유튜브 등에 출연해 축구인, 팬들과의 소통을 이어가기도 했다. 지난 시즌 인천이 또다시 강등 위기에 놓이자 감독직 복귀에 의지를 보이는 등 인천과 축구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유 감독의 투병 소식이 알려진 이후 많은 이들이 보여준 반응은 ‘인간 유상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수많은 축구 팬들과 축구계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유 감독이 J리그 시절에 활약했던 요코하마 팬들까지 ‘할 수 있다. 상철이형’이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일관계가 경색돼 민감할 때, 그것도 팀을 떠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선수의 투병 소식에 일본 팬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매너는 축구에는 국경도 편견도 없다는 것을 확인시키며 깊은 감동을 남겼다.

A매치 124경기
멀티플레이어

국가대표 경기를 뜻하는 A 매치를 100경기 이상을 뛰면 대단한 선수라고 인정받는다. 무려 124경기를 출장했던 유 감독은 한국 국가대표 역대 출전수에 차범근(136), 홍명보, 이운재(133)에 이어 5위에 랭크됐다. 124경기 금자탑을 쌓은 투혼의 멀티플레이어 유상철은 데뷔 때부터 화려했다. 

유 감독은 서울 은평구 응암초등학교에서 처음 축구를 시작했다. 이후 경신중학교와 경신고등학교를 거쳐 건국대학교를 졸업해 신인드래프트 1순위로 1994년 현대 호랑이에 입단했다. 유 감독은 어느 포지션에서나 활약할 수 있는 선수였다.

대학교 1학년때까지만 해도 공격수로 뛰었으나 1993버펄로유니버시아드대회 이후 수비수로 자리를 옮기면서 일찍부터 프로구단의 스카우트 표적이 돼왔다.

키 183cm의 탄탄한 체구에서 나오는 뛰어난 체력 덕분에 그는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위치에서 뛸 수 있는 선수로 유명했다. 스트라이커,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등 소화가 불가능한 포지션이 없는 선수였다.


K리그에서는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 부문에서 모두 베스트 11에 선정된 2명의 선수 중 한 명이 유 감독이다. 그를 사람들이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멀티플레이어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비수로 있으면서도 순식간에 상대 그라운드 깊숙하게 침투하는 것이 장기인 유 감독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때 일본과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었다. 1996년 홍콩에서 열린 칼스버그컵 대회 때 비쇼베츠 감독의 선택을 받아 올림픽팀 멤버로도 활약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아시아 1위로 월드컵에 진출한 한국은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멕시코에 1대 3으로 역전패당한 한국은 2차전에서 네덜란드에 0대 5로 대패했다. 이 경기 이후 차범근 감독이 대회 도중 경질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벨기에전 전반 7분 만에 뤼크 닐리스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밀리기 시작했다. 감독도 없이 치르는 경기에서 4년을 기다린 월드컵이 허무하게 끝나가는 상황이었다. 또다시 4년을 기약해야 했다. 월드컵에서 단 1승도 거둔 적 없는 한국으로서는 한 골이 간절했다. 후반 25분 분위기를 반전할 수 있는 골이 터졌다.

왼쪽 측면에서 얻은 프리킥 기회에서 하석주가 올려준 공을 유 감독이 슬라이딩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벨기에 골문을 열었다. 유 감독은 득점 후 포효했다. 한국은 이후 추가 득점을 거두지 못하며 월드컵 첫승 기회를 4년 뒤로 미뤄야 했지만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이 부임했다.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 상대가 멕시코전. 첫 번째 경기였던 프랑스전에서 0대 5 대패를 당한 뒤 최악의 분위기에서 상대하기에 멕시코는 버거운 팀이었다. 이날 선발로 나선 유 감독은 전반 경기 중 상대 선수와 경합하다가 얼굴에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유 감독은 의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으로 다시 들어갔다. 한국은 후반 11분 황선홍의 선제골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갔지만 후반 36분 멕시코에 동점골을 내주면서 흔들렸다. 후반 44분 투혼의 결승골이 터졌다.

박지성의 코너킥을 유 감독이 완벽한 스파이크 헤더로 연결한 것이다. 

더 놀라운 건 당시 유 감독은 전반전부터 이미 코뼈가 골절된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후에 거스 히딩크 감독은 “유상철은 가장 말을 듣지 않는 선수였다”며 “나를 벤치로 몰아내지 말라며 내 말을 끝까지 어기고선 후반전에 중요한 골을 넣었다”고 언급했다.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건 2002년 폴란드 전 추가골이다. 황선홍이 선취골을 넣은 뒤 1대 0으로 앞서갔지만 불안한 한국팀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후반 8분, 유 감독은 강한 중거리 슈팅으로 폴란드 골키퍼 두덱의 방어를 피해 골네트를 갈랐다.

월드컵 첫 승
쐐기골 주인공

한국의 월드컵 첫 승에 가까워진 쐐기골이었고 결국 한국은 1승을 먼저 챙겼다. 

당시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휘젓던 유 감독의 세리머니는 아직도 국민들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사상 첫 월드컵 승리를 이끌었고 숙원이었던 16강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유 감독은 황선홍, 홍명보, 이운재, 안정환, 김남일, 설기현, 송종국, 이영표, 박지성 등과 함께 4강 신화를 쓰며 한국 축구사에 족적을 남겼다. 당시 히딩크는 유 감독을 김남일과 함께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했지만 상황에 따라서 공격수나 수비수로 활용했다. 

특히 큰 활약을 펼쳤던 것은 16강 이탈리아전. 당시 한국은 0대 1로 이탈리아에 뒤지고 있던 상황. 히딩크 감독은 후반전에 수비수 3명을 빼고 황선홍, 이천수, 차두리 3명의 공격수 투입했다. 공격수 5명을 필드에 두는 전술을 쓸 수 있었던 데는 유 감독과 박지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 감독은 선발 때는 미드필더로 뛰다가 선수교체가 이뤄지면 백3의 좌측 스토퍼로, 홍명보가 빠지면 다시 중앙 수비수로 들어가 안정적인 수비수를 보였다.

결국 이날 유 감독의 활약에 힘입어 한국은 이탈리아에 2대1 역전승을 거둔다. 2004년엔 아테네올림픽에 와일드카드로 출전해 8강 진출을 돕기도 했다. 2005년까지 대표팀을 뛴 그는 성인 국가대표로만 총 124경기에 출전하는 기록을 세웠다.

유 감독은 은퇴 후 3년 뒤인 2009년 춘천기계공고에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011년에는 대전 시티즌(현 대전 하나시티즌)을 맡으면서 프로 감독으로 데뷔한다.

유 감독은 최용수 FC서울 전 감독에게 화가 났던 일화를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털어놨다. 유 감독은 팀 사정상 즉시 전력감이 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했다.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최 전 감독에게 FC서울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를 추천받았다.

최 전 감독은 팀에서 출전을 잘하지 못하는 A 선수를 대전 시티즌으로 이적시켰는데 알고 보니 해당 선수는 디스크 부상이 있었던 것. 유 감독은 최 전 감독에게 부상선수라고 하자 최 전 감독은 자신도 몰랐다고 했다.

한일 월드컵 4강 ‘2002 스타’
“함께한 영광 기억하겠습니다”

훗날 유 감독은 “감독이 모르는 게 말이 되느냐”며 억울해했다. 2014년부터는 울산대학교 감독으로 경험을 쌓은 뒤 2018년 전남 드래곤즈로 프로 무대에 복귀했으나 8개월 만에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듬해인 2019년 인천유나이티드 감독직을 맡는다. 

유 감독은 인천 감독 선임 직전 “실패한 감독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게 두렵다”면서 인천에서 재기를 노렸다. 시즌 중반부터 팀을 맡았기에 초반엔 다소 부침이 있었지만 세 경기 만에 제주 원정에서 2-1 승리를 거두면서 인천 감독으로서 첫 승리를 거뒀다. 

여름 이적 시장 동안 당시 인천의 전력강화실장이었던 이천수 실장과 함께 김호남, 장윤호, 마하지, 케힌데 등 여러 선수를 보강하면서 K리그1 생존을 위해 애썼다.

시즌은 어느 덧 종반으로 향했고 파이널 라운드가 시작됐다. 유상철호의 인천은 성남 원정에서 무고사가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넣으며 1대 0으로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이날 경기가 끝나자 선수들을 비롯해 이천수 실장까지 오열하는 모습이 중계화면을 통해 팬들에게 전달됐다.

귀중한 승점 3점을 챙긴 팀의 모습치곤 묘한 분위기가 인천을 감쌌다. 이날 결승골을 넣었던 무고사도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고 경기장을 빠져나갔고 김호남도 “나중에 알게 되지 않을까”라며 자리를 피했다.

이후 유 감독은 병원에 입원하면서 잠시 훈련장을 떠났지만 본인의 강력한 의지로 다시 인천 훈련장을 찾았다. 췌장암 4기 판정 소식이 구단 공식 SNS를 통해 전해졌지만 유 감독은 자신의 말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듯 여전히 인천 벤치를 지켰다. 

유 감독은 2019시즌 최종전 경남FC와의 경기에서 0대 0으로 비기면서 K리그1 생존을 확정했다. 유 감독은 팬들과의 약속을 지킨 사람이 됐다. 생존이 확정된 뒤 인천 팬들은 “남은 약속 하나도 꼭 지켜줘”라는 피켓을 들었다.

인천유나이티드는 유 감독이 건강상 이유로 감독에서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신임 감독 선임을 서두르지 않았다. 함께했던 코치진에 대한 신뢰를 보내며, 지난 1차 태국 전지훈련도 기존 코치진으로 치러냈다. 

기존 선수단과 코칭스태프와 함께 소통하고 화합할 수 있는 지도자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잡고 접근한 끝에 임완섭 신임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낙점했다.

이 과정에서 유 감독의 추천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유나이티드 수뇌부는 새로운 감독을 찾으며 유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임 감독은 임 감독은 88학번이고 유 전 감독은 90학번으로 특별한 인연이 있다.

인천 팬들과 
약속 지켰다

과거 19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에도 같이 선발됐을 정도로 잘 아는 사이며 서로 안부를 묻는 친한 선후배 사이였다. 또 임 감독을 코치로 데뷔시킨 사람이 바로 유 전 감독이다. 임 감독은 “유상철 감독이 건강하게 돌아오면 언제든 자리를 내어줄 마음이 돼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감독은 지난해 6월, 7연패를 책임지며 지휘봉을 내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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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