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면 나온다’ 강력 사건에 빠진 TV 

“드라마도 예능도 범죄를 좋아해”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최근 TV 속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핫한 장르는 범죄다. 단순히 사건 사고를 풀이해주는 수준이 아니다. 이 같은 범죄가 왜 일어났으며, 그 이면의 사법체계는 제대로 작동했는지까지 꼬집는다. 범죄물이 진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 범죄를 다룬 장르 드라마가 적지 않았다. 대부분 주인공은 형사나 검사였으며, 범죄 사건의 범인을 찾는 내용이 이야기의 핵심이었다. 얼마나 강력한 반전을 주는가가 성패를 갈랐다. 

진화한
범죄물

이 틀을 벗어난 작품이 tvN <비밀의 숲>이다. 단순히 범죄 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닌, 범죄가 일어나게 된 배경과 범죄자를 다루는 사법 시스템의 오작동을 날카롭게 짚어냈다.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 중 하나인 사법개혁이 불씨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른바 ‘진화한 범죄물’의 시발점이다.

지난해 검경수사권 조정을 주제로 만든 <비밀의 숲2>까지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면서, 범죄 장르물은 급물살을 탔다. JTBC <괴물>과 <로스쿨>, tvN <마우스>와 <빈센조>, SBS <모범택시> 등 인기리에 종영했거나 방영 중인 대다수 드라마가 범죄를 다루고 있다. 

대다수 드라마가 단순한 사건 사고에 그치지 않는다. 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이면의 문제점을 속속 짚어낸다. 

현재 가장 눈에 띄는 드라마는 <빈센조>와 <모범택시>, <로스쿨>이다. <빈센조>는 자본이 낳은 괴물을 처치하는 다크 히어로물로 평가된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범죄 이야기를 블랙코미디 형태로 풀어낸 참신한 기획과 함께 송중기를 비롯한 배우들이 안정적인 연기를 펼치는 등의 장점만큼 주목받는 건 이른바 ‘사적 복수’ 코드다. 

범죄자를 법의 시스템이 아닌 개인이 직접 나서서 벌을 내린다.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송중기 분)가 거대 경제권력과 그들과 끈끈한 연을 맺고 있는 카르텔을 모조리 박살 낸다는 내용이다. 

극 중 빈센조는 변호사이긴 하지만 법을 정의구현의 방법으로 쓰지도 않을뿐더러, 가능하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함정 수사를 펼치거나, 위법한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하는 등 악당의 방식으로 악을 처단한다. 정의를 부르짖던 사람들조차 악행을 저지르는 강자들에 짓밟히다 보니 빈센조의 방식을 따르게 된다. 

<빈센조>와 비슷한 맥락의 작품이 <모범택시>다. 사적 복수를 대행해주는 택시기사의 이야기다. 공권력의 사각지대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악인을 단죄한다는 인물을 그린다.

드라마 속 모범택시를 운행하는 무지개 운수는 사적 복수를 대행해주는 조직이다. 김도기(이제훈 분)는 그 사적 복수를 실행하는 인물이고, 장성철(김의성 분) 무지개 운수 대표는 이 조직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사법 시스템’ 불신서 오는 갈증
법보다 주먹이 앞선 드라마 열광

김도기가 악을 대하는 방식은 빈센조의 그것과 궤를 같이한다. 그나마 다른 점을 꼽자면 김도기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택한다. 

지적장애가 있는 이들을 폭행, 구금하며 강제노동을 일삼은 젓갈 공장 사람들이나, 가난한 친구를 괴롭힌 왕따 가해자들을 그들이 약자를 괴롭힌 방식으로 갚아준다. 

생선이 담긴 대야에 머리를 쑤셔 넣어 물고문하고, 흠씬 두들겨 팬 후 커다란 통에 담아 무지개 운수와 연결된 낙원 신용정보 대모(차지연)가 운용하는 사설 감옥으로 보내버린다. 또, 대마초를 피운 것을 약점 잡아 협박하고 평생 노예 계약을 맺는다.

“이건 말이 안 되잖아요”라며 우는 가해자에게 “너는 말이 되서 괴롭혔냐”며 반박한다.

4회까지 방영된 <로스쿨>은 법 집행자들의 잘못된 행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작품이다. 

<로스쿨>은 극 중 명문대학교인 한국 대학교 법학과 서병주(안내상 분) 교수가 모의법정 중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검사 출신 법학과 교수 양종훈(김명민 분)과 사시 2차까지 합격한 로스쿨 학생 한준휘(김범 분)이 용의자로 떠오르면서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된다.

재밌는 포인트는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두 사람은 마치 경찰과 검사를 손바닥 위에 놓고 가지고 노는 대목이다. 법에 통달한 두 사람이 심리전을 펼치면서, 악할 뿐 아니라 무능력한 검사와 경찰을 요리한다. 이들 역시도 법망의 사각지대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등의 악한 방식으로 악을 대한다.

공권력을 조롱하는 두 사람의 행태가 공권력에 대한 분노를 지닌 대중의 갈증을 해소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아울러 수사와 기소 과정에서 벌어지는 문제점을 노골적으로 그려낸다. 검사가 수사 과정에서 기소 전에 언론이나 타인에 미리 알려주는 피의사실 공표죄가 얼마나 무의미한지나, 경찰이 초동조치 과정에서 목적을 갖고 증거를 은닉하는 대목, 검사와 범죄자의 은밀한 거래 등 법 집행자들의 잘못된 행태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빈센조>와 <모범택시> <로스쿨>은 가상의 설정을 통해 더 악랄하게 악을 처단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세 드라마 모두 높은 화제성을 보인다. 특히 <빈센조>와 <모범택시>는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상승세에 있다.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스타성 있는 배우들의 열연을 바탕으로 다소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처단 방식, 그 사이에서 숨통을 틔우는 유머 등이 세 드라마의 인기 요인으로 분석되지만, 그보다 더 밑바탕에 깔린 건 ‘사법 시스템의 불신’이다. 

지강헌이 외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무려 30여년이 지났지만, 그 말은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가진 자들은 부와 권력을 이용해 범죄를 저질러 더 큰 부를 축적하는 한편, 약자들은 강자들의 부정한 힘 앞에 무릎을 꿇는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벌을 받지 않는 이른바 ‘법꾸라지’들과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법을 악용하는 변호사, 대중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판결과 짧은 형기를 마치고 금세 사회로 돌아온 전과자들이 재차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이 연이어 발생한다. 

이 같은 드라마가 높은 인기를 얻는다는 건, 대중의 눈에 비친 불편한 현실에서 쌓이는 갈증을 드라마가 풀어주고 있는 것을 방증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론칭하는 범죄 장르물이 인기를 얻는 요인은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이다. 법조계의 문제점을 대중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 사회는 변하지 않고 있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사적 복수’ 코드는 현실을 반영한 시대의 거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범죄 장르의 본원은 교양국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나 <궁금한 이야기 Y>, MBC <실화탐사대> 등 사건 사고를 다루는 교양 프로그램은 꾸준히 호성적을 이루고 있다.

멀리 내다보면 넷플릭스를 비롯해 영미권에서 가장 뜨거운 장르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범죄 다큐다.

마치 트렌드에 편승하듯 국내 예능계도 범죄와 손을 잡았다. 범죄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속속 론칭하고 있다. 그중 가장 각광 받는 프로그램이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와 tvN <알아두면 쓸데 있는 범죄 잡학사전>(이하 <알쓸범잡>)이다.

완성도↑
몰입도↑

시즌2에 접어든 <꼬꼬무>는 매회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다룬다. 이른바 ‘장트리오’로 불리는 장항준 감독, 방송인 장성규, 장도연이 게스트를 모시고 사건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꼬꼬무>는 늦은 시간대에 방영함에도 5% 시청률을 넘겼으며, 유튜브에서는 매회 수백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꼬꼬무>의 주제가 된 사건은 검색어 상위권에 랭크되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급속도로 퍼진다. 시청률과 비교해 화제성이 어마어마한 프로그램이다.

시즌1에서는 사건의 줄거리를 푸는 데 집중했다면, 시즌2부터는 이야기의 소재가 확장될 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매우 깊어졌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다각화됐다.

이 프로그램의 관전 포인트는 역사를 다루는 방식이다. 역사를 거시적으로 다룬 프로그램이 많았던 반면, <꼬꼬무>는 역사를 한 명의 인물로부터 출발해 사회문제의 이야기로 변형해간다. 이를 통해 당시의 사건이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전달한다. 

예를 들어 박흥숙 사건을 박흥숙 개인을 중심으로 풀어내다가 자연스럽게 빈민 운동의 관점에서 강남 개발의 역사와 철거민들의 역사를 돌아보는 대목이나, 한 군인의 의문의 죽음을 시작으로 한 이야기가 하나회 소속 군인들이 시스템을 무시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12·12 사태로 확장되는 형태 등이다. 

여대생 살인사건을 통해 한 여대생의 의문의 죽음을 들춰내는 과정을 거쳐, 끝내 사법 기득권과 의료 기득권이 경제권력에 기생하는 현실로 전개되는 대목은 <꼬꼬무>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의 완성도가 얼마나 높은지 보여준다. 

아울러 단순히 과거의 ‘야만의 시대’에서 불거졌던 사건을 풀어내는 데 멈추지 않는다. 그 사건이 당시에는 어떻게 또는 왜 발생하게 됐는지를 살펴본다. 

당시 사건의 유가족이나 담당 경찰 등 당사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사건이 개인에게 미친 영향을 비롯해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 사건으로 인해 사회의 시스템은 어떻게 바뀌었는지와 아울러 재발 가능성에 대한 여부까지 깊숙하게 들춰낸다. 

‘야만의 시대’를 들춰내는 예능 
“관심 갖지 않으면 또 발생할지도”

<꼬꼬무>의 유혜승 PD는 “프로그램 회의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던지는 질문은 ‘이 아이템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다. 그 질문을 던졌을 때 분명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이 아이템은 지나간 이야기일 수 있다”며 “이 이야기가 현재 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명분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이야기만 풀어내는 건 그 사건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2차 가해를 하는 성격도 지닌다. 사건 이후 한국 사회는 어떻게 변했고, 어떤 문제점을 보완해야 하는지까지 말하려고 한다. 그래야만 과거의 상처를 헤집는 행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 <알쓸신잡>) 제작진이 야심 차게 준비한 프로그램은 <알쓸범잡>이다. 윤종신이 메인 MC가 돼 과거 <알쓸신잡> 유희열의 롤을 맡았다. 장항준 감독과 박지선 프로파일러, 정재민 법무부 법무심의관, 김상욱 물리학 박사가 게스트로 나와 범죄로부터 파생된 이야기를 나눈다. 

대중 지식인이 된 김상욱 박사를 제외하곤 출연진이 모두 교체됐지만, 각기 다른 전문 분야를 가진 출연진이 함께 또는 따로 여행을 다니면서 얻은 정보와 지식을 퍼즐 맞추듯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알쓸신잡>과 비슷하다. 

범죄라는 특정 주제를 잡은 <알쓸범잡>은 박지선 교수와 정재민 심의관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들은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31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엄궁동 사건,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형제복지원 사연, 부산의 마약 이야기, n번방 조주빈, 정남규와 유영철을 비롯한 싸이코패스 등을 소개하면서 범죄 관련 정보도 함께 제공한다. 

<꼬꼬무>와 <알쓸범잡>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범죄의 일상성이다. 강력범죄가 남의 일 같지만, 실제로는 우리 주위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이라는 것. 그래서 더더욱 범죄의 재범을 예방해야 하며, 범죄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는다. 

범죄의
일상성

<알쓸범잡>의 양정우 PD는 “범죄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일이다. 박지선 교수가 ‘왜 당시 아무도 누명 쓴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는가’를 가슴 아파하는 것처럼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으면 같은 사건은 또 벌어질 수도 있다”며 “박 교수의 마음에 다 같이 공감하길 바라며, 그 과정에서 희망도 함께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사 속 기사> 범죄 예능 스타는 누구? 전문성·재치 갖춘 권일용·박지선 교수
“방송인 못지않게 웃겨요”

범죄와 관련된 예능이 늘어나면서 방송에 얼굴을 내비치는 범죄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범죄 전문가들이 범죄 현장에서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풀어내는 이야기는 강력한 자극성이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정보도 얻을 수 있어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 가운데 권일용 교수와 박지선 교수가 범죄 예능계의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무수히 출연하면서 범죄자들의 심리를 읽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 권 교수와 박 교수는 깊이 있는 지식은 물론 재치있는 언변으로 방송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박 교수는 <알쓸범잡>에 패널로 맹활약 중이며, 권 교수는 28일 론칭하는 <당신이 혹하는 사이>에 고정 패널로 출연한다.

한 관계자는 “두 분 모두 오랫 동안 방송활동을 하면서 카메라와 익숙하다. 깊이는 당연하고 여느 방송인 못지않은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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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