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면 나온다’ 강력 사건에 빠진 TV 

“드라마도 예능도 범죄를 좋아해”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최근 TV 속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핫한 장르는 범죄다. 단순히 사건 사고를 풀이해주는 수준이 아니다. 이 같은 범죄가 왜 일어났으며, 그 이면의 사법체계는 제대로 작동했는지까지 꼬집는다. 범죄물이 진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 범죄를 다룬 장르 드라마가 적지 않았다. 대부분 주인공은 형사나 검사였으며, 범죄 사건의 범인을 찾는 내용이 이야기의 핵심이었다. 얼마나 강력한 반전을 주는가가 성패를 갈랐다. 

진화한
범죄물

이 틀을 벗어난 작품이 tvN <비밀의 숲>이다. 단순히 범죄 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닌, 범죄가 일어나게 된 배경과 범죄자를 다루는 사법 시스템의 오작동을 날카롭게 짚어냈다.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 중 하나인 사법개혁이 불씨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른바 ‘진화한 범죄물’의 시발점이다.

지난해 검경수사권 조정을 주제로 만든 <비밀의 숲2>까지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면서, 범죄 장르물은 급물살을 탔다. JTBC <괴물>과 <로스쿨>, tvN <마우스>와 <빈센조>, SBS <모범택시> 등 인기리에 종영했거나 방영 중인 대다수 드라마가 범죄를 다루고 있다. 


대다수 드라마가 단순한 사건 사고에 그치지 않는다. 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이면의 문제점을 속속 짚어낸다. 

현재 가장 눈에 띄는 드라마는 <빈센조>와 <모범택시>, <로스쿨>이다. <빈센조>는 자본이 낳은 괴물을 처치하는 다크 히어로물로 평가된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범죄 이야기를 블랙코미디 형태로 풀어낸 참신한 기획과 함께 송중기를 비롯한 배우들이 안정적인 연기를 펼치는 등의 장점만큼 주목받는 건 이른바 ‘사적 복수’ 코드다. 

범죄자를 법의 시스템이 아닌 개인이 직접 나서서 벌을 내린다.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송중기 분)가 거대 경제권력과 그들과 끈끈한 연을 맺고 있는 카르텔을 모조리 박살 낸다는 내용이다. 

극 중 빈센조는 변호사이긴 하지만 법을 정의구현의 방법으로 쓰지도 않을뿐더러, 가능하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함정 수사를 펼치거나, 위법한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하는 등 악당의 방식으로 악을 처단한다. 정의를 부르짖던 사람들조차 악행을 저지르는 강자들에 짓밟히다 보니 빈센조의 방식을 따르게 된다. 

<빈센조>와 비슷한 맥락의 작품이 <모범택시>다. 사적 복수를 대행해주는 택시기사의 이야기다. 공권력의 사각지대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악인을 단죄한다는 인물을 그린다.

드라마 속 모범택시를 운행하는 무지개 운수는 사적 복수를 대행해주는 조직이다. 김도기(이제훈 분)는 그 사적 복수를 실행하는 인물이고, 장성철(김의성 분) 무지개 운수 대표는 이 조직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사법 시스템’ 불신서 오는 갈증
법보다 주먹이 앞선 드라마 열광

김도기가 악을 대하는 방식은 빈센조의 그것과 궤를 같이한다. 그나마 다른 점을 꼽자면 김도기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택한다. 

지적장애가 있는 이들을 폭행, 구금하며 강제노동을 일삼은 젓갈 공장 사람들이나, 가난한 친구를 괴롭힌 왕따 가해자들을 그들이 약자를 괴롭힌 방식으로 갚아준다. 

생선이 담긴 대야에 머리를 쑤셔 넣어 물고문하고, 흠씬 두들겨 팬 후 커다란 통에 담아 무지개 운수와 연결된 낙원 신용정보 대모(차지연)가 운용하는 사설 감옥으로 보내버린다. 또, 대마초를 피운 것을 약점 잡아 협박하고 평생 노예 계약을 맺는다.

“이건 말이 안 되잖아요”라며 우는 가해자에게 “너는 말이 되서 괴롭혔냐”며 반박한다.

4회까지 방영된 <로스쿨>은 법 집행자들의 잘못된 행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작품이다. 

<로스쿨>은 극 중 명문대학교인 한국 대학교 법학과 서병주(안내상 분) 교수가 모의법정 중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검사 출신 법학과 교수 양종훈(김명민 분)과 사시 2차까지 합격한 로스쿨 학생 한준휘(김범 분)이 용의자로 떠오르면서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된다.

재밌는 포인트는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두 사람은 마치 경찰과 검사를 손바닥 위에 놓고 가지고 노는 대목이다. 법에 통달한 두 사람이 심리전을 펼치면서, 악할 뿐 아니라 무능력한 검사와 경찰을 요리한다. 이들 역시도 법망의 사각지대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등의 악한 방식으로 악을 대한다.

공권력을 조롱하는 두 사람의 행태가 공권력에 대한 분노를 지닌 대중의 갈증을 해소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아울러 수사와 기소 과정에서 벌어지는 문제점을 노골적으로 그려낸다. 검사가 수사 과정에서 기소 전에 언론이나 타인에 미리 알려주는 피의사실 공표죄가 얼마나 무의미한지나, 경찰이 초동조치 과정에서 목적을 갖고 증거를 은닉하는 대목, 검사와 범죄자의 은밀한 거래 등 법 집행자들의 잘못된 행태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빈센조>와 <모범택시> <로스쿨>은 가상의 설정을 통해 더 악랄하게 악을 처단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세 드라마 모두 높은 화제성을 보인다. 특히 <빈센조>와 <모범택시>는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상승세에 있다.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스타성 있는 배우들의 열연을 바탕으로 다소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처단 방식, 그 사이에서 숨통을 틔우는 유머 등이 세 드라마의 인기 요인으로 분석되지만, 그보다 더 밑바탕에 깔린 건 ‘사법 시스템의 불신’이다. 

지강헌이 외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무려 30여년이 지났지만, 그 말은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가진 자들은 부와 권력을 이용해 범죄를 저질러 더 큰 부를 축적하는 한편, 약자들은 강자들의 부정한 힘 앞에 무릎을 꿇는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벌을 받지 않는 이른바 ‘법꾸라지’들과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법을 악용하는 변호사, 대중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판결과 짧은 형기를 마치고 금세 사회로 돌아온 전과자들이 재차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이 연이어 발생한다. 

이 같은 드라마가 높은 인기를 얻는다는 건, 대중의 눈에 비친 불편한 현실에서 쌓이는 갈증을 드라마가 풀어주고 있는 것을 방증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론칭하는 범죄 장르물이 인기를 얻는 요인은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이다. 법조계의 문제점을 대중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 사회는 변하지 않고 있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사적 복수’ 코드는 현실을 반영한 시대의 거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범죄 장르의 본원은 교양국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나 <궁금한 이야기 Y>, MBC <실화탐사대> 등 사건 사고를 다루는 교양 프로그램은 꾸준히 호성적을 이루고 있다.


멀리 내다보면 넷플릭스를 비롯해 영미권에서 가장 뜨거운 장르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범죄 다큐다.

마치 트렌드에 편승하듯 국내 예능계도 범죄와 손을 잡았다. 범죄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속속 론칭하고 있다. 그중 가장 각광 받는 프로그램이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와 tvN <알아두면 쓸데 있는 범죄 잡학사전>(이하 <알쓸범잡>)이다.

완성도↑
몰입도↑

시즌2에 접어든 <꼬꼬무>는 매회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다룬다. 이른바 ‘장트리오’로 불리는 장항준 감독, 방송인 장성규, 장도연이 게스트를 모시고 사건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꼬꼬무>는 늦은 시간대에 방영함에도 5% 시청률을 넘겼으며, 유튜브에서는 매회 수백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꼬꼬무>의 주제가 된 사건은 검색어 상위권에 랭크되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급속도로 퍼진다. 시청률과 비교해 화제성이 어마어마한 프로그램이다.

시즌1에서는 사건의 줄거리를 푸는 데 집중했다면, 시즌2부터는 이야기의 소재가 확장될 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매우 깊어졌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다각화됐다.

이 프로그램의 관전 포인트는 역사를 다루는 방식이다. 역사를 거시적으로 다룬 프로그램이 많았던 반면, <꼬꼬무>는 역사를 한 명의 인물로부터 출발해 사회문제의 이야기로 변형해간다. 이를 통해 당시의 사건이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전달한다. 

예를 들어 박흥숙 사건을 박흥숙 개인을 중심으로 풀어내다가 자연스럽게 빈민 운동의 관점에서 강남 개발의 역사와 철거민들의 역사를 돌아보는 대목이나, 한 군인의 의문의 죽음을 시작으로 한 이야기가 하나회 소속 군인들이 시스템을 무시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12·12 사태로 확장되는 형태 등이다. 

여대생 살인사건을 통해 한 여대생의 의문의 죽음을 들춰내는 과정을 거쳐, 끝내 사법 기득권과 의료 기득권이 경제권력에 기생하는 현실로 전개되는 대목은 <꼬꼬무>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의 완성도가 얼마나 높은지 보여준다. 

아울러 단순히 과거의 ‘야만의 시대’에서 불거졌던 사건을 풀어내는 데 멈추지 않는다. 그 사건이 당시에는 어떻게 또는 왜 발생하게 됐는지를 살펴본다. 

당시 사건의 유가족이나 담당 경찰 등 당사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사건이 개인에게 미친 영향을 비롯해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 사건으로 인해 사회의 시스템은 어떻게 바뀌었는지와 아울러 재발 가능성에 대한 여부까지 깊숙하게 들춰낸다. 

‘야만의 시대’를 들춰내는 예능 
“관심 갖지 않으면 또 발생할지도”

<꼬꼬무>의 유혜승 PD는 “프로그램 회의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던지는 질문은 ‘이 아이템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다. 그 질문을 던졌을 때 분명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이 아이템은 지나간 이야기일 수 있다”며 “이 이야기가 현재 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명분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이야기만 풀어내는 건 그 사건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2차 가해를 하는 성격도 지닌다. 사건 이후 한국 사회는 어떻게 변했고, 어떤 문제점을 보완해야 하는지까지 말하려고 한다. 그래야만 과거의 상처를 헤집는 행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 <알쓸신잡>) 제작진이 야심 차게 준비한 프로그램은 <알쓸범잡>이다. 윤종신이 메인 MC가 돼 과거 <알쓸신잡> 유희열의 롤을 맡았다. 장항준 감독과 박지선 프로파일러, 정재민 법무부 법무심의관, 김상욱 물리학 박사가 게스트로 나와 범죄로부터 파생된 이야기를 나눈다. 

대중 지식인이 된 김상욱 박사를 제외하곤 출연진이 모두 교체됐지만, 각기 다른 전문 분야를 가진 출연진이 함께 또는 따로 여행을 다니면서 얻은 정보와 지식을 퍼즐 맞추듯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알쓸신잡>과 비슷하다. 

범죄라는 특정 주제를 잡은 <알쓸범잡>은 박지선 교수와 정재민 심의관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들은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31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엄궁동 사건,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형제복지원 사연, 부산의 마약 이야기, n번방 조주빈, 정남규와 유영철을 비롯한 싸이코패스 등을 소개하면서 범죄 관련 정보도 함께 제공한다. 

<꼬꼬무>와 <알쓸범잡>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범죄의 일상성이다. 강력범죄가 남의 일 같지만, 실제로는 우리 주위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이라는 것. 그래서 더더욱 범죄의 재범을 예방해야 하며, 범죄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는다. 

범죄의
일상성

<알쓸범잡>의 양정우 PD는 “범죄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일이다. 박지선 교수가 ‘왜 당시 아무도 누명 쓴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는가’를 가슴 아파하는 것처럼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으면 같은 사건은 또 벌어질 수도 있다”며 “박 교수의 마음에 다 같이 공감하길 바라며, 그 과정에서 희망도 함께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사 속 기사> 범죄 예능 스타는 누구? 전문성·재치 갖춘 권일용·박지선 교수
“방송인 못지않게 웃겨요”

범죄와 관련된 예능이 늘어나면서 방송에 얼굴을 내비치는 범죄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범죄 전문가들이 범죄 현장에서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풀어내는 이야기는 강력한 자극성이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정보도 얻을 수 있어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 가운데 권일용 교수와 박지선 교수가 범죄 예능계의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무수히 출연하면서 범죄자들의 심리를 읽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 권 교수와 박 교수는 깊이 있는 지식은 물론 재치있는 언변으로 방송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박 교수는 <알쓸범잡>에 패널로 맹활약 중이며, 권 교수는 28일 론칭하는 <당신이 혹하는 사이>에 고정 패널로 출연한다.

한 관계자는 “두 분 모두 오랫 동안 방송활동을 하면서 카메라와 익숙하다. 깊이는 당연하고 여느 방송인 못지않은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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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