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박수칠 때 떠난 김종인

윤석열 데리고 다시 돌아올까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공언했던 대로 당을 떠났다. 총선에 참패한 당을 맡은 지 1년 만에 선거에 이길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당 안팎의 잡음은 끊이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김종인의 정치력‘은 또 한 번 증명됐다는 데 이견이 없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선거 다음날인 8일 퇴임을 공식 선언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승리에 대해 자만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며 “더 많이, 더 빨리 그리고 더 결정적으로 변화하여 국민의 마음에 더욱 깊숙이 다가갈 수 있길 소원한다”고 밝혔다. 

또 증명된
김의 정치력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이유는 문정부의 무능과 폭정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이번에 압도적 지지로 서울과 부산 재보선에 승리함으로써 정권교체와 민생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저는 이제 자연인의 위치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을 내려놓는 건 지난해 6월 취임한 지 10개월만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고별사를 통해 국민의힘에 강도 높은 경고의 메시지를 냈다. 그는 “지난 1년간 국민의힘은 근본적인 혁신과 변화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아직 부족한 점 투성이”라며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내부분열과 반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서울시장 경선 과정에서 보았듯이 정당을 강화할 생각은 하지 않고 외부세력에 의존하려 한다든지 그것에 대해 당을 뒤흔들 생각만 한다든지 정권을 되찾아 민생을 책임질 주권의지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당권에만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이 아직 국민의힘 내부에 많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그런 욕심과 갈등은 그동안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으며 언제든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이번 재보선 결과를 국민 승리로 겸허히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이 승리한 것이라 착각하면서 개혁 고삐를 늦춘다면 당은 다시 사분오열하고 민생회복할 천재일우의 기회는 소멸될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취임 당시부터 우여곡절을 겪었다. ‘김종인 비대위’는 더 이상 외부인사에 운명을 맡기지 말고 스스로 혁신하자는 이른바 자강론에 막혀 무산될 뻔 했지만 다른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선택받았다. 

“착각 말라” 가는 날까지 경고 메시지 
재보선 완승 안겨주고…당분간은 휴식

김 위원장은 취임 초기부터 “보수라는 말을 안 좋아한다”며 당내에 의도된 파열음을 만들어냈다. 일련의 변화는 중도층을 잡기 위한 강도 높은 체질 개선이었다.

당 이름을 변경하고 기본소득이 명시된 정강·정책을 새로 만드는 등 당의 겉과 속을 다 바꿨다.

불편함을 느끼는 의원들과 보수진영의 비판도 적잖았지만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끊임없는 호남 구애 행보도 펼쳤다. 지난 여름 수해 때 여당보다 먼저 전라도를 찾았고 5·18 묘역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수감에도 대국민사과를 했다.

보궐선거 야권 단일화에서도 ‘김종인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1월만 해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대세로 여겨졌지만 김 위원장은 안 대표에게 입당 카드를 던진 뒤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3월 협상으로 전격 방향을 틀었다. 결국 ‘기호 2번 단일화‘를 성공시켰다.

물론 갈등도 있었다. 안 대표를 철저히 무시하는 언행을 안 좋게 보는 여론도 있었고 홍준표 의원의 복당을 막은 것에도 비판적 시각이 상당했다. 

경제3법, 중대재해처벌법 등 기업들이 강력 반발한 법에 비교적 긍정적 입장을 보였던 것도 논란이 됐다. 재계에서는 국민의힘조차 기업들의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불만이 나왔다.

11개월 행보
압도적 평가

그러나 박수를 받으며 떠나는 상황이 된 것은 분명하다. 누구보다 김 위원장에게 비판적이었던 한 중진의원은 “결론적으로 김 위원장의 공헌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한 후 약 10개월 만에 물러나는 김 위원장에 대해 당 안팎에서는 ‘재추대론’까지 거론될 정도로 높은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당직자 노조는 이날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김 위원장과 함께 한 지난 11개월이 ‘별의 순간’이었다”며 “붙잡고 싶지만 목소리가 작고 가진 힘이 없어 슬프다”고 했다. 

당내 최다선(5선)인 정진석 의원도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솔직히 잡고 싶다. 김 위원장만한 경륜가가 사실 주위에 찾기 어렵다”며 “그래도 내년도 우리 정권 창출, 정권 교체를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하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김 위원장 퇴임과 동시에 의원총회를 개최하고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차기 전당대회 준비에 돌입한다. 차기 지도부가 선출되기 전까지 당은 주호영 원내대표의 대표 대행체제로 운영된다.

국민의힘은 의원총회에서 지도체제, 안철수 대표가 이끌고 있는 국민의당과의 통합 전당대회 개최, 원내대표-정책위의장 러닝메이트 선출 방식 변경 등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서울·부산 보궐선거 승리가 확정된 뒤 서울 여의도 당사를 찾아 “국민의힘은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정당으로서 최대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며 “이렇게 해서 내년 실시되는 대선에 정권을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나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비대위원장 직에서 물러나더라도, 당분간 국민의힘 내에서 역할을 계속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다만 향후 계획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엔 “별다른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차기 전당대회 전까지 당을 맡아달라는 요구가 있을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이번 선거가 끝나면 일단 정치권을 좀 떠나 있겠다고 생각했다. 별로 구애받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당내에선 재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끈 김 위원장에게 어떤 역할을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부 의원들은 김 위원장 체제 연장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 예정된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차기 지도체제에 대한 종합적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단일화 성공
압도적 당선

김 위원장이 본인 말대로 완전히 정치권을 떠난다고 보는 이들은 없다. 언제든 복귀해 자신의 존재감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그의 퇴임 소감을 뒤집어보면 알 수 있다.

당이 이번 재·보선 승리로 자만에 빠져 제자리걸음을 한다면 정권 창출의 길은 멀어진다. 대선을 앞두고 위기가 닥친다면, 자신이 또 다시 나서서 당을 구해내겠다는 숨은 의미가 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세간의 예상대로 그가 복귀를 한다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그림이 가장 이상적이다. 지난달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윤 전 총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기록하는 등 대권 잠룡으로 불리고 있다. 

김 위원장도 꾸준히 윤 전 총장을 주시하는 모양새였다. 한때 그는 윤 총장을 향해 “‘별의 순간’을 붙잡았다”고 표현하면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하기도 했었다. 윤 전 총장이 결심만 선다면, 제1야당을 본궤도에 올려놓은 김 위원장을 믿고 국민의힘에 들어오는 것이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도 김 위원장의 역할론에 무게를 둔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전당대회를 통해 국민의당과 합당하고 이어 홍준표 무소속 의원 거취 문제 등을 정리할 것이라고 보고, 자신은 윤 전 총장과 범 보수진영을 엮는 역할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도 “윤 전 총장도 김 위원장과 손을 잡아야 실수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자연인, 할 수 있는 일 하겠다”
윤·안 세워 막후 ‘킹메이커’ 역할?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번 선거에서 김 위원장의 역할은 매우 컸다. 그는 호남에서도 먹힐 수 있는 인물로, 대선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며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시기와 김 위원장의 복귀는 관련이 매우 깊다. 김 위원장을 추대를 하는 한이 있어도 빨리 복귀를 해야 한다”고 전망했다.

관건은 윤 전 총장의 결정이다. 대권도전을 결심하고 김 위원장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대선 전략 등에서 거의 전권을 줘야할 수도 있는데 쉽지 않은 판단이다.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한 김 위원장이 윤 전 총장과 만난 이후에 부정적 평가를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그 또한 부담이다.

당장 특정 주자에 힘을 실지 않더라도 제1야당 후보가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선거 대응을 위해 당에 복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선거의 달인으로 불리는 김 위원장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2016년 19대 총선 당시에는 더불어민주당에 승리를 안겨주며 신화를 써냈다.

지난해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에 180석을 내주며 참패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을 맡은 그는 당명은 물론 정강·정책까지 바꿔가며 당에 혁신을 불어넣었다. 최순실 사태 이후 처음으로 민주당 지지율을 넘어서기도 했다.

완전히 떠난다?
관건은 타이밍

사실상 이번 보궐선거의 승리는 그런 김 위원장의 ‘마법’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서울에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지율에서 우세한 상황이 연출되자,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자칫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위기설이 나돌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의 지휘 하에 안 대표와의 단일화에 성공했고. 최종적으로 오세훈 시장의 압도적인 당선을 일궈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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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