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박수칠 때 떠난 김종인

윤석열 데리고 다시 돌아올까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공언했던 대로 당을 떠났다. 총선에 참패한 당을 맡은 지 1년 만에 선거에 이길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당 안팎의 잡음은 끊이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김종인의 정치력‘은 또 한 번 증명됐다는 데 이견이 없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선거 다음날인 8일 퇴임을 공식 선언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승리에 대해 자만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며 “더 많이, 더 빨리 그리고 더 결정적으로 변화하여 국민의 마음에 더욱 깊숙이 다가갈 수 있길 소원한다”고 밝혔다. 

또 증명된
김의 정치력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이유는 문정부의 무능과 폭정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이번에 압도적 지지로 서울과 부산 재보선에 승리함으로써 정권교체와 민생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저는 이제 자연인의 위치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을 내려놓는 건 지난해 6월 취임한 지 10개월만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고별사를 통해 국민의힘에 강도 높은 경고의 메시지를 냈다. 그는 “지난 1년간 국민의힘은 근본적인 혁신과 변화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아직 부족한 점 투성이”라며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내부분열과 반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서울시장 경선 과정에서 보았듯이 정당을 강화할 생각은 하지 않고 외부세력에 의존하려 한다든지 그것에 대해 당을 뒤흔들 생각만 한다든지 정권을 되찾아 민생을 책임질 주권의지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당권에만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이 아직 국민의힘 내부에 많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그런 욕심과 갈등은 그동안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으며 언제든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이번 재보선 결과를 국민 승리로 겸허히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이 승리한 것이라 착각하면서 개혁 고삐를 늦춘다면 당은 다시 사분오열하고 민생회복할 천재일우의 기회는 소멸될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취임 당시부터 우여곡절을 겪었다. ‘김종인 비대위’는 더 이상 외부인사에 운명을 맡기지 말고 스스로 혁신하자는 이른바 자강론에 막혀 무산될 뻔 했지만 다른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선택받았다. 

“착각 말라” 가는 날까지 경고 메시지 
재보선 완승 안겨주고…당분간은 휴식

김 위원장은 취임 초기부터 “보수라는 말을 안 좋아한다”며 당내에 의도된 파열음을 만들어냈다. 일련의 변화는 중도층을 잡기 위한 강도 높은 체질 개선이었다.

당 이름을 변경하고 기본소득이 명시된 정강·정책을 새로 만드는 등 당의 겉과 속을 다 바꿨다.

불편함을 느끼는 의원들과 보수진영의 비판도 적잖았지만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끊임없는 호남 구애 행보도 펼쳤다. 지난 여름 수해 때 여당보다 먼저 전라도를 찾았고 5·18 묘역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수감에도 대국민사과를 했다.

보궐선거 야권 단일화에서도 ‘김종인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1월만 해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대세로 여겨졌지만 김 위원장은 안 대표에게 입당 카드를 던진 뒤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3월 협상으로 전격 방향을 틀었다. 결국 ‘기호 2번 단일화‘를 성공시켰다.

물론 갈등도 있었다. 안 대표를 철저히 무시하는 언행을 안 좋게 보는 여론도 있었고 홍준표 의원의 복당을 막은 것에도 비판적 시각이 상당했다. 

경제3법, 중대재해처벌법 등 기업들이 강력 반발한 법에 비교적 긍정적 입장을 보였던 것도 논란이 됐다. 재계에서는 국민의힘조차 기업들의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불만이 나왔다.

11개월 행보
압도적 평가

그러나 박수를 받으며 떠나는 상황이 된 것은 분명하다. 누구보다 김 위원장에게 비판적이었던 한 중진의원은 “결론적으로 김 위원장의 공헌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한 후 약 10개월 만에 물러나는 김 위원장에 대해 당 안팎에서는 ‘재추대론’까지 거론될 정도로 높은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당직자 노조는 이날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김 위원장과 함께 한 지난 11개월이 ‘별의 순간’이었다”며 “붙잡고 싶지만 목소리가 작고 가진 힘이 없어 슬프다”고 했다. 

당내 최다선(5선)인 정진석 의원도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솔직히 잡고 싶다. 김 위원장만한 경륜가가 사실 주위에 찾기 어렵다”며 “그래도 내년도 우리 정권 창출, 정권 교체를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하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김 위원장 퇴임과 동시에 의원총회를 개최하고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차기 전당대회 준비에 돌입한다. 차기 지도부가 선출되기 전까지 당은 주호영 원내대표의 대표 대행체제로 운영된다.

국민의힘은 의원총회에서 지도체제, 안철수 대표가 이끌고 있는 국민의당과의 통합 전당대회 개최, 원내대표-정책위의장 러닝메이트 선출 방식 변경 등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서울·부산 보궐선거 승리가 확정된 뒤 서울 여의도 당사를 찾아 “국민의힘은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정당으로서 최대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며 “이렇게 해서 내년 실시되는 대선에 정권을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나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비대위원장 직에서 물러나더라도, 당분간 국민의힘 내에서 역할을 계속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다만 향후 계획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엔 “별다른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차기 전당대회 전까지 당을 맡아달라는 요구가 있을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이번 선거가 끝나면 일단 정치권을 좀 떠나 있겠다고 생각했다. 별로 구애받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당내에선 재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끈 김 위원장에게 어떤 역할을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부 의원들은 김 위원장 체제 연장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 예정된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차기 지도체제에 대한 종합적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단일화 성공
압도적 당선

김 위원장이 본인 말대로 완전히 정치권을 떠난다고 보는 이들은 없다. 언제든 복귀해 자신의 존재감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그의 퇴임 소감을 뒤집어보면 알 수 있다.

당이 이번 재·보선 승리로 자만에 빠져 제자리걸음을 한다면 정권 창출의 길은 멀어진다. 대선을 앞두고 위기가 닥친다면, 자신이 또 다시 나서서 당을 구해내겠다는 숨은 의미가 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세간의 예상대로 그가 복귀를 한다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그림이 가장 이상적이다. 지난달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윤 전 총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기록하는 등 대권 잠룡으로 불리고 있다. 

김 위원장도 꾸준히 윤 전 총장을 주시하는 모양새였다. 한때 그는 윤 총장을 향해 “‘별의 순간’을 붙잡았다”고 표현하면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하기도 했었다. 윤 전 총장이 결심만 선다면, 제1야당을 본궤도에 올려놓은 김 위원장을 믿고 국민의힘에 들어오는 것이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도 김 위원장의 역할론에 무게를 둔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전당대회를 통해 국민의당과 합당하고 이어 홍준표 무소속 의원 거취 문제 등을 정리할 것이라고 보고, 자신은 윤 전 총장과 범 보수진영을 엮는 역할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도 “윤 전 총장도 김 위원장과 손을 잡아야 실수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자연인, 할 수 있는 일 하겠다”
윤·안 세워 막후 ‘킹메이커’ 역할?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번 선거에서 김 위원장의 역할은 매우 컸다. 그는 호남에서도 먹힐 수 있는 인물로, 대선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며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시기와 김 위원장의 복귀는 관련이 매우 깊다. 김 위원장을 추대를 하는 한이 있어도 빨리 복귀를 해야 한다”고 전망했다.

관건은 윤 전 총장의 결정이다. 대권도전을 결심하고 김 위원장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대선 전략 등에서 거의 전권을 줘야할 수도 있는데 쉽지 않은 판단이다.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한 김 위원장이 윤 전 총장과 만난 이후에 부정적 평가를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그 또한 부담이다.

당장 특정 주자에 힘을 실지 않더라도 제1야당 후보가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선거 대응을 위해 당에 복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선거의 달인으로 불리는 김 위원장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2016년 19대 총선 당시에는 더불어민주당에 승리를 안겨주며 신화를 써냈다.

지난해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에 180석을 내주며 참패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을 맡은 그는 당명은 물론 정강·정책까지 바꿔가며 당에 혁신을 불어넣었다. 최순실 사태 이후 처음으로 민주당 지지율을 넘어서기도 했다.

완전히 떠난다?
관건은 타이밍

사실상 이번 보궐선거의 승리는 그런 김 위원장의 ‘마법’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서울에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지율에서 우세한 상황이 연출되자,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자칫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위기설이 나돌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의 지휘 하에 안 대표와의 단일화에 성공했고. 최종적으로 오세훈 시장의 압도적인 당선을 일궈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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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한상진 기자 =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28일 실행에 옮겼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란 핵 보유 가능성 차단’ ‘이란 정권교체’ ‘중동지역 미국 영향력 강화’ ‘석유 패권 우위’ 등이다. 아울러 이란 석유의 상당 부분을 수입하는 중국 견제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란과 8차례에 걸쳐 핵 협상을 진행했다. 이란 측에서 트럼프정부에 큰 사업적 이익을 제안하기도 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봤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란이 핵 능력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이란 수뇌부 제거 없이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공습 이틀 후인 지난 2일(현지시각) 37년간 이란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 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공습 결정 여러 요인 하메네이는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 및 국방 관련 요직을 거치며 권력기반을 다졌다. 이후 국회의원과 이슬람공화당 지도부를 역임했고, 지난 1981년 대통령에 선출돼 두 차례 연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란 내에서 발생하는 시위에 대해서도 잇달아 강경하게 진압했다. 지난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반발하는 시위를 비롯해, 지난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특히 올해 초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해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시위는 이란 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가 수년간 이어지며 경제난이 누적됐고,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번진 것이었다. 이란 당국은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를 3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는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이란 내 정치 지형은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행동이 끝난 후 이란인들에게 “여러분의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직접 나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 있었던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다시 붙으면 친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정부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처럼 직접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않더라도, 향후 이란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는 세력이 원유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미·이 전쟁 여파 국내 강타 금융, 산업 등 전방위 요동 이렇게 되면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중동지역 원유 생산에도 관여하게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훨씬 넘어서는 시장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지난 3일 코스피가 역대 최대 낙폭(452.22포인트)을 기록했고,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377조원 넘게 줄었다. 주요 코피스 종목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4769조4000억원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 대비 376조9396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전 거래일 대비 약 126조6803억원 감소했다. 주가는 이날 9.88% 급락하며 5거래일 만에 20만원 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도 100만원 선이 깨지며, 시총이 86조9497억원(11.50%) 줄었다. 이 밖에 현대차(-11.72%), LG에너지솔루션(-7.96%), 삼성바이오로직스(-5.46%) 등 주요 기업들의 시총 감소분이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방산주는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가가 19.83% 오른 143만2000원, 한화시스템은 29.14% 오른 14만67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LIG넥스원은 11.15% 오른 68만8000원을 기록하며 상한가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투자심리가 악화하며 7.24% 급락한 5791.91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다.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고,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지난 3일과 4일 이틀 연속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중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금융권 직격타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지난달 6일 이후 한 달 만이다. 지난 4일 오전 9시25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189.43포인트(3.27%) 내린 5602.48에 거래되고 있다. 지수는 199.32포인트(3.44%) 내린 5592.59에 개장했다. 코스닥지수는 35.83포인트(3.15%) 내린 1101.87에 거래 중이다. 지수는 전날보다 25.62포인트(2.25%) 내린 1112.08에 개장했다. 환율 역시 급등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 자산 회피 심리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돌파했다. 1500원 돌파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이다. 4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79.0원에 개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20분쯤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은 1506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1500원 밑으로 하락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돼 환율이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산업계도 고환율에 따른 환경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단가 측면에서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과 결합할 경우 실질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다. 반도체와 조선 업종은 단기 방어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항공과 철강은 비용 부담이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현재 시장의 공급 제약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가 상승 일정 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선의 경우 수주 산업인 만큼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고환율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을 건조해 선주사에 인도하는 구조라, 이미 3~4년치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 환율 흐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울러 조선 업계 특성상 달러로 수주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단기적 관점에서 환율 상승은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양날의 검이다. 미국 수출 및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 달러 강세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자동차 한 대에 수백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원자재 부담이 상존한다. 다른 업종 대비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지만, 역시 환율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종 별로 희비 교차 항공의 경우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 주요 비용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업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3~4월은 항공업계 전통적 비수기다. 개학과 함께 공휴일이 적어 여객 수요가 일시적으로 둔화되기 때문이다. 항공기 이용률이 낮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 부담도 확대돼 수요 위축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항공사들의 유류할증료는 1개월 시차를 두고 항공권 가격에 반영된다. 다음 달에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인상된 유류할증료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철강업계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가운데, 고환율 부담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철강은 업종 특성상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이를 철강 제품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구조다.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정유업계에는 환율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다. 달러 상승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지만, 수출할 때에도 높아진 달러가 적용돼 비용 부담이 상쇄된다. 특히 이전에 저렴하게 사들인 원유에 대한 재고 평가이익 인식은 재무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원유 재고 평가이익은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재고) 가치가 시세 변동으로 장부상에 이익으로 올라가 실적에 반영되는 현상을 뜻한다. 유가 상승 시 저가로 산 원유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기름값도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기준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L당 56.9원 오른 1845.4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18일(1802.7원) 이후 약 2개월 반 만이다. 주가·환율·유가 변동 산업계 직결 모건스탠리 “수출지향 한국 더 민감”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L당 61.6원 상승한 1784.6원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 상승 폭은 더 컸다. 서울 지역 경유 평균 판매가는 1811.2원으로 전날보다 103.8원 뛰었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도 1741.8원으로 하루 만에 1700원을 돌파했다. 싱가포르 석유 제품 시장가에 연동된 국내 주유소 가격은 통상 2∼3주 차이를 두고 국제 유가 변동이 반영된다. 다만 전쟁 확산 우려 등에 따라 주유 수요가 늘고 환율 변수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 국제 유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2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식 경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을 틈타 기름값을 과도하게 올리는 주유소들을 제재하기 위해 ‘최고가격 지정’ 작업에 착수했다. 주유소 담합 조사 등 시간이 필요한 조치에 앞서, 즉각적인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이다. 또 주유소 담합 적발 시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리기로 하는 등 유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 장관 태스크포스(TF)를 주재하고 ‘중동 사태에 편승한 시장교란 행위 근절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현재 국내 석유류 수급 상황은 안정적이며 국제 가격의 국내 반영 시차 등을 고려할 때 아직 국내 가격에 실질적 영향을 줄 시점은 결코 아니다”며 “석유류 최고 가격의 지정 등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행정 조치를 활용해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에서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 가격 지정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가운데,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수입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쟁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심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중국보다 원유·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일(현지시각)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체탄 아야 등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전망했다.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지향 경제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유가 변동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진짜 대전 터지면… 이어 석유·가스 무역적자 수준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해 태국·대만·인도 등이 상대적으로 성장 측면에서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전쟁에 따른 아시아의 전체적 여파는 유가 상승 수준과 고유가 지속 기간에 달려있다”면서 “현재까지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jins.h@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