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영원한 현대맨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

‘51년’ MK시대 막 내리다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지난해 10월 공식 은퇴를 선언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이 현대모비스 등기 이사직 사임을 마지막으로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정 명예회장은 51년간 현대자동차를 이끌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경영권은 아들 정의선 회장에게 넘겼다.

 

▲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

정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은 현장경영, 품질경영, 뚝심경영이다. 이를 통해 그는 현대자동차를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5위에 이르기까지 끌어올리며 세계적인 그룹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통 통한
현장경영

정 명예회장은 1970년 현대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1974년에 현대자동차 서비스의 사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인의 능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부품 조달을 위해 직원들과 함께 트럭에 자동차 부품을 싣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때부터 그는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경험을 얻고 해결책을 찾았다. 

일을 마치는 저녁 시간에는 서비스센터 한쪽에 놓인 드럼통에 삼겹살을 굽고 직원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애로사항에 대해 듣고 소통했다고 한다. 그는 직원과의 소통이 현장 경영을 함에 있어 중요하다고 여겼다. 

경영에서 물러나기 전까지는 현장을 찾아 직원의 이야기를 들었다. 신입사원 연수에 빠짐없이 참석해 새내기들의 손을 잡고 “회사의 미래를 잘 부탁한다”고 말을 전하기도 했다. 


현장에 직접 가서 직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소통한 그는 1977년에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을 설립했다. 현대정공은 컨테이너 사업으로 전 세계 공급량의 30%를 차지하는 등 크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정 명예회장을 경영인으로서 인정하게 된 계기라고 전해진다.

현대정공은 사업 내용에 자동차 제조판매업을 추가해 갤로퍼를 생산했고, 이는 정 명예회장이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다시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게 했다. 갤로퍼의 성공을 앞세워 ‘포니 정’이라 불리던 고(故) 정세영 명예회장에게 현대자동차의 경영권을 이어받고 독립해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 후 경영 위기에 처한 기아자동차를 인수해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다. 자동차 관련 지식이 많았던 그는 기아의 발전을 위해 엔진공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엔진이 자동차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중요하게 생각해 현장에서 문제점을 지적했다.

불꽃 튀는 위험한 현장까지 
직접 발로 뛰는 현장경영 

정 명예회장은 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 반드시 현장으로 갔다. 보고서를 검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현장을 방문해 개선을 촉구했다.

현장경영을 중요하게 여겨 해외 출장도 잦았다. 미국, 인도 등 해외 공장으로 가 직원들에게 현장의 문제점을 옆에서 듣고 문제를 개선할 방법을 찾아 해결하고 돌아왔다. 

그의 현장 경영철학은 과거 제철소 사업 추진에서도 드러난다. 현대제철 일관제철소는 정 명예회장이 애정을 갖고 있던 곳이다. 그는 임원에게 “양재동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당진이 아른거린다. 자려고 누워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현장이 보인다.”며 3일에 한 번은 반드시 현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정 명예회장의 현장경영으로 제철소는 3년 만에 착공을 완료해 연간 400만톤 이상의 조강 생산능력을 갖춰 자체적으로 강판과 후판을 생산했다. 정 명예회장이 갑작스럽게 건설현장을 방문하는 일이 잦다 보니 직원들도 현장을 챙기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전해진다.
 

▲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

불꽃이 튀고, 철골구조가 많은 위험한 현장에 경영자가 직접 나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한 건설책임자는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맡은 분야를 열심히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현장경영과 더불어 정 명예회장이 강조한 것은 품질경영이다. 미국에 현대자동차가 처음 진출한 시기는 1986년이다. 저렴한 자동차로 주목받았지만, 품질과 성능 평가에서 최하위를 기록했고 차량 판매 역시 적자 상태였다.

심지어 1998년 10월 미국의 한 토크쇼에서 진행자가 “우주에서 장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출연자는 “우주선 계기판에 현대자동차 로고를 붙이면 우주 비행사가 돌아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농담하기까지 했다.

파격적
품질경영

미국 언론 역시 현대의 영문 로고를 두고 ‘저렴하지만 운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 달라(Hope You Understand Nothing’s Driveable And Inexpensive)’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정 명예회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자동차에 대한 품질 경영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에서 판매된 현대의 자동차는 무상보증 기간을 3년·5만마일에서 10년·10만마일로 바꿨다.

미국 자동차 업계는 현대자동차가 품질에서 뒤처져 수리비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으나 정 명예회장은 문제점을 파악하고 사장과 임원을 모아 노동자 옆에서 배우게 해 자동차의 품질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 결과 현대자동차의 미국 판매량은 1998년 9만대에서 2003년 40만대로 늘었다.

차량 전체 누적 판매량은 1999년 2100만대에서 20년이 지난 현재 5배가 넘는 1억1000만대로 늘었다. 팔렸다. 매출 역시 현대자동차가 기업으로 분리하기 이전보다 10배 이상 증가했다. 현대 자동차는 품질 평가 부문에서 2000년 37개 자동차 회사 중 34위에서 2006년 3위로 상승, 2016년은 포르셰를 제치고 1위를 달성했다.

품질을 강조한 그의 경영정신은 남양연구소 투자에서도 드러난다. 남양연구소는 국내 최대 규모의 연구소로, 현대의 울산연구소와 기아의 소하리공장을 하나로 통합한 곳이다.
 

▲ 현대기아차 사옥 ⓒ고성준 기자

정 명예회장이 좋은 품질의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 많은 자본을 투자했다고 알려진 곳이다. 그는 남양연구소에 투자한 이유로 “연구개발 역량과 효율 극대화를 통해 품질을 높여 세계 5대 자동차 회사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정 명예회장은 제철소만큼 남양연구소를 자주 방문해 직접 주행 테스트 등에 직접 참여했다고 한다. 실제로 오피러스의 성능 시험 중 정 명예회장의 귀에 소음이 포착된 적이 있다. 


스피드
뚝심경영

임원들은 소음이 차량 운행에 전혀 문제가 없고, 소음 문제를 해결하면 차량의 선적 날짜에 맞출 수 없다고 전했지만 그는 “이대로 팔 수 없다”며 소음 제거를 위한 팀을 꾸려 완벽한 자동차로 만들 것을 요구했다. 정 명예회장은 부족한 차량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개선했고, 오피러스는 높은 판매율을 기록했다. 

품질 개선에 힘을 쏟자 세계는 현대자동차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동차산업 공헌상을 수상해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2004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 비즈니스위크 자동차 부문 최고의 경영인에 선정됐다.

정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과 경영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의견이 있다. 모두가 힘들 것이라 예측해도 그는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면 일을 진행시켜 결과를 만들었다. 한국전력의 부지 입찰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과감한 투자를 했던 성향이 그렇다.

정 명예회장은 지난 2015년 세계 유가 하락과 미국의 경제 보복으로 러시아 경제가 타격을 받았을 때, 그가 직접 러시아 공장을 방문해 “러시아에 기회가 다시 올 것”이라며 시장에서 철수하는 다른 업체와 다르게 과감하고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했다고 전해진다. 
 

기아자동차를 인수했을 때도 비슷하다. 당시 현대자동차그룹은 삼성그룹과 기아자동차의 인수를 두고 경쟁하고 있었다. 계속된 유찰로 3차까지 간 입찰경쟁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은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기아자동차의 부채 7조4000억원과 1조1781억원 인수 비용을 모두 떠안았다. 임원들은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위기라며 정 명예회장을 말렸지만, 그는 위기를 기회로 여겨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인도 공장을 확장하고, 중국에 생산거점을 확보해 사업을 확장했다. 현대·기아차의 해외 공장 건설에 관련해 우려하는 시선이 많았지만 국내 부품업체와 공동 진출을 하는 방법을 적용해 협력업체의 성장을 꾀해 한국 자동차 산업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경제계는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위기가 기회“ 공격적 투자
부친 닮은 과감한 사업운영

정 명예회장은 자동차 산업이 점차 발달하자 뚝심경영을 발휘한다. 바로 제네시스 브랜드를 만드는 행보를 선택한 것이다. 당시 경제 대침체로 인해 미국 자동차 시장이 큰 타격을 입은 상황이었다. 그는 새로운 시도를 망설이는 소극적인 다른 업체와 달리 고급 자동차 제작에 주력했다.

제철소 건립으로 이미 현대자동차그룹은 세계 주요 자동차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자동차용 강판 자체 개발 및 생산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췄다. 기초 소재 단계부터 차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구조를 갖춰 차체 주행 성능, 디자인 등에서 모든 준비를 끝냈다. 

당시 출시된 2세대 제네시스를 두고 업계 전문가는 “견고한 차체를 기반으로 한 차량의 5대 기본성능(동력, 승차감, 안전성, 내구성, 정숙성)과 디자인이 높은 수준의 자동차”라고 평가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수소 자동차의 초석도 정 명예회장이 마련했다. 오일쇼크와 외환위기로 자동차 수요가 줄자, 발 빠르게 수소·전기 자동차 개발에 착수한 현대자동차그룹은 2000년 시험용 산타페 수소 전기차를 선보였다. 
 

정 명예회장은 마북연구소를 찾아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도 자동차를 굴려야 한다”며 “하고 싶은 기술을 마음껏 다 적용해 반드시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개발을 지시했다. 정 명예회장의 지시와 연구 개발 끝에 2013년 투싼 수소 전기차가 세계 최초 출시됐다. 

정 명예회장은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단기간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세계시장으로 손을 뻗어 생산 판매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현대자동차그룹을 내수기업에서 세계 자동차 경쟁업체들과 경쟁하는 기업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 자동차 업계는 ‘현대 스피드’라는 수식어로 정 명예회장의 추진력과 과감함을 높게 평가한다.

그의 좌우명은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로 부지런하면 세상에 어려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새벽부터
대책 마련

정 명예회장은 새벽 6시30분에 출근해 하루 종일 문제점에 대한 대책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과감한 투자를 바탕으로 현장과 제품 품질을 직접 챙기며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업계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의 퇴임으로 경영 환경과 방식이 바뀌고 있지만, 현장에서 쌓은 그의 경험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며 “중요한 결정에 대해 정 명예회장이 자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현대차 3세 정의선 청사진

정몽구 명예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현대 자동차가 완벽한 정의선 체제로 새 출발한다. 아직 공정거래위원회가 정의선 회장을 총수로 지정하는 단계가 남았지만 현대자동차그룹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위해 투명경영위원회를 지속가능경영위원회로 확대하는 안건도 함께 의결했다.

주주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이들은 “코로나로 힘든 상황에 기업 실적이 양호한 것 같다”며 “형식만 갖춘 준비가 아니라 제대로 된 개선을 통해 새롭게 출발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새로운 사업의 한 축인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관련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며 이에 따라 첫 여성 사외이사를 영입했다.

현대자동차그룹 관계자는 “부진했던 중국 시장에 재진출해 그룹의 위상을 회복하고 상용차 분야 수익성을 높여, 미래사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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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이후···4인 파워게임> 화려한 부활 조국

[4·10 이후···4인 파워게임] 화려한 부활 조국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두 자리 의석수를 확보하면서 원내 3당으로 자리 잡았다. 조국 대표는 비례순번 2번으로 단숨에 여의도행 티켓을 따냈다. 문재인정부 초대 민정수석비서관과 66대 법무부 장관 등 굵직한 이력을 지녔지만 초선인 만큼 처음부터 입지를 다져야 한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조 대표의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과반을 넘기면서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의 표정도 덩달아 밝아졌다. 지난 10일, 민주당의 압승에 가까운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서 상황을 지켜보던 조국당 지지자들도 감탄사를 내뱉었다. 조국당이 기대하던 ‘10석+알파(α)’가 확실해졌다. 주먹을 쥔 지지자들은 연신 “조국”을 외쳤다. 총선 뒤흔든 조국혁신당 조 대표는 이날 총선 출구조사 결과에 대해 “국민이 승리했다”고 소리 높였다. 그는 “국민께서 윤석열정권 심판이라는 뜻을 분명하게 밝히셨다”며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의 퇴행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국민 여러분이 이번 총선 승리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밝혔다. 이어 “윤 대통령은 이번 총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라. 그리고 그간 수많은 실정과 비리에 대해 국민께 사과하라”며 “이를 바로잡을 대책을 국민께 보고하라”며 “총선은 끝났지만 조국당이 만들 우리 정치의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개원 즉시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강조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비례대표 개표 현황에 따르면, 조국당은 12석으로 집계됐다.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가 18석으로 가장 많은 당선자를 배출했다.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하 민주연합)이 14석을 얻었으며 개혁신당과 진보당은 각각 1석을 얻는 데 그쳤다. 조국당은 24.2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신생정당이 20%가 넘는 지지율을 거두자 정치권에서는 이례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로써 조국당 비례대표 12번까지는 무난히 당선권에 들었다. 차례대로 ▲박은정 ▲조국 ▲이해민 ▲신장식 ▲김선민 ▲김준형 ▲김재원 ▲황운하 ▲정춘생 ▲차규근 ▲강경숙 ▲서왕진 등의 후보가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한때 여권서 “조국이 나오면 땡큐”인 ‘조나땡’이란 말까지 나왔지만 이를 상쇄시킬 정도로 조국당의 돌풍은 거셌다. 조 대표가 부산 민주공원서 신당 창당 선언문을 낭독했을 때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한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기세 좋게 제3지대로서의 존재감을 키워가던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조국 열풍’ 또한 금세 식을 것이란 분석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조 대표는 지난 2월8일 자녀들의 입시 비리 및 청와대의 감찰무마 혐의 등으로 항소심서도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마찬가지로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힐 것이란 해석에 무게가 실렸다. 총선 한 달 앞두고 등장한 루키 정당 민주당과 정권 심판론 쌍끌이 전략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조국당은 이번 총선서 가장 큰 변수로 자리 잡았다.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정권 심판론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종섭 전 주호주대사 사건과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논란이 연이어 터지면서 이는 조국당의 동력으로 이어졌다. 조국당의 슬로건은 윤 대통령의 탄핵을 암시하는 “3년은 너무 길다”였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중도층 여론을 의식해 탄핵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일 수밖에 없다. 결국 ‘윤정부 무력화’를 거침없이 외치는 조국당에 심판을 벼르던 강성 유권자들이 동참한 것이다.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다소 약한 목소리에 갈증을 느끼던 지지층의 표를 흡수한 셈이다. 22대 총선을 통해 조 대표는 완벽한 정치적 부활에 성공했다. 하지만 1·2심 모두 실형이 나온 만큼 조 대표가 22대 국회를 완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의 대표이자 간판인 조 대표가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의원직을 상실한다면 사실상 조국당은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조 대표가 집어든 여의도 생존 전략은 ‘검찰 탄압 프레임’을 굳히는 것이다. 자신을 여의도로 이끈 ‘검찰 탄압’이라는 명분을 긴 호흡으로 유지하면서 원포인트 전략으로 내세우겠다는 설명이다. 이는 조 대표가 출소 후 여의도로 돌아오기 위한 명분으로도 내세울 수 있다. 국회에 입성한 조 대표는 그동안 강조해온 한동훈 특검법을 띄우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그동안 조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원내에 진입하면 한동훈 특별법을 1호 법안으로 발의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한동훈 특검법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징계 관련 의혹 ▲검찰 고발사주 의혹 ▲논문 대필 등 자녀 입시 비리 의혹 등을 수사 대상으로 삼는 걸 골자로 한다. 이 밖에도 조 대표는 ‘윤석열정권 관권선거운동 의혹 국정조사’를 실시하거나 ‘검찰의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 국정조사’를 추진해 윤 대통령을 국회에 출석시키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12석 확보 완벽한 성공 당선권에 진입하자 조 대표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지난 11일 조국당은 총선 당선자들과 함께 첫 공식 일정으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찾았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에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김건희를 수사하라”고 외쳤다. 조 대표는 “이번 총선서 확인된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 심판’이라는 거대한 민심을 있는 그대로 검찰에 전하려 한다”며 “검찰은 즉각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소환해 조사하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도 거론했다. 그는 “검찰은 ‘몰카 공작’이라는 대통령실의 해명에 설득력이 있다고 보느냐”며 “몰카 공작이라면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하고 처벌하라. 그것과 별개로 김 여사도 당장 소환하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조 대표는 “조국당은 검찰이 국민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22대 국회 개원 즉시 ‘김 여사 종합 특검법’을 민주당과 협의해 신속하게 추진할 것”이라며 “검찰이 수사에 나서지 않는다면 김 여사는 특검의 소환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조국당이 검찰만 정조준하는 이유는 조 대표가 ‘정치적 죽임’을 당했다는 여론 때문이다. 따라서 조 대표를 향한 동정론도 조국당이 꺼내들 수 있는 카드 중 하나로 여겨진다. 검찰에게 탄압받았다는 이미지를 가진 조 대표가 법정에 모습을 드러낼수록 오히려 지지자의 결집력이 높아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난 몇 년 동안 조 대표 본인은 물론 그의 가족까지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이를 시작으로 조 대표와 그의 일가족이 잘못한 부분은 있지만 죄명에 비해 과도하게 탄압받았다는 동정론이 형성됐다. 동정론은 조국당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강한 무기다. 오래전부터 조 대표를 지지해 왔다는 A씨는 기자회견 현장에서 <일요시사> 취재진과의 만나 “조 대표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짠하다”고 말했다. 함께 온 B씨도 “온 가족이 풍비박산이 나지 않았나. 힘든 일이 많았을 텐데 역경을 딛고 나선 것을 보면 마음이 이쪽(조국당)으로 간다”고 말했다. 이 VS 조 동상이몽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미 이 대표의 재판에 익숙해져 있기 떄문에 조 대표의 범죄 혐의가 비교적 희석됐다는 평도 나온다. 조국당이 총선 직전까지 지지율을 견인하자 여권에서는 급하게 견제에 나섰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은 총선 기간 동안 조 대표를 ‘범죄자’로 규정하며 “범죄자들에게 미래를, 아이의 미래를 맡길 수 없지 않냐”고 강조했다. 이에 조 대표는 “‘한동훈 특검법’에 동의부터 하라”며 맞불을 놨다. 조국당은 한동훈 특검법에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동의할 것이란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중도층을 포섭해야 하는 입장이다. 또한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한 조 대표의 존재가 부담스럽기도 하다. 정치권에서는 여의도 신입인 조 대표와 이재명 대표를 동일선상서 바라보는 모양새다. 총선 다음 날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이번 선거를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던 (윤석열)대통령에게 보낸 마지막 경고”라고 평가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은)하루빨리 이재명·조국 대표를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제1야당 대표인 이 대표뿐만이 아니라 조 대표까지 함께 언급된 만큼 조 대표의 몸값이 크게 뛰었다고 해석했다. 조 대표는 대권주자로서의 가능성은 닫아뒀지만 민주당에서는 견제하는 분위기가 이어진다. 이 같은 흐름을 두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현해 “야권의 분열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의 속도 차이가 있을 것”이라며 “(야권이) 윤정부에 대한 심판론을 갖고 거대 의석을 이뤘지만 조 대표와 이재명 대표의 시간표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녀 입시 비리’ 사법 리스크 여전 대법 판결 정치생명 마침표될 수도 현재 조 대표는 대법원 판결만 남은 만큼 모든 일정을 빠르게 해치워야 한다.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정치판에 뛰어든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대법원과 견줄 만큼 몸집을 키우거나 진보 진영서 대권을 잡아 스스로의 힘으로 사면해야 한다는 게 이준석 대표의 시나리오다. 반면 이재명 대표는 급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준석 대표는 “이재명 대표는 많은 의석을 가진 정당의 대표기 때문에 서서히 조여 들어가려고 할 것”이라며 “그 속도 차이가 역설적으로 두 세력의 분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현재 조 대표의 생존 전략은 조국당의 원동력을 유지하거나 추후 여의도 복귀를 위한 명분을 쌓는 데 그칠 뿐이다. 조국당의 정치 공간을 넓히고 다른 당과 손을 잡기 위해 매력적인 묘수를 꾀어내는 게 조 대표의 숙제로 남아 있다. 조국당 의석은 12석으로 교섭단체를 충족시키는 20석을 채우기 위해서는 8석이 더 필요하다. 1석씩 얻은 새로운 미래와 진보당, 혹은 소수 야당과 손을 잡고 공동 교섭단체를 꾸리는 것도 방법 중 하나로 제시된다. 이제까지 민주당과 조국당 모두 합당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다. 조국당이 내세운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 슬로건에 민주당은 ‘몰빵론’을 내세우기도 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얻은 지금으로서는 조국당이 거대야당에 협력하는 관계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의외의 성적을 거둔 조국당이 22대 총선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쥐면서 꼬리가 몸통을 흔들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민주당·민주연합·조국당 등 범야권이 힘을 합치면 의석수가 국회의원 전체의 5분의 3인 180을 넘기게 된다. 이 경우 신속처리안건인 패스트트랙 지정을 통해 법안을 강행할 수 있다. 아울러 패스트트랙에 저항할 수 있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도 강제 종료시킬 수 있다. 혼자일 때 더 강하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조국 대표가 민주당과 합칠 가능성은 매우 적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추후 민주당서 탈당할 의원이나 제3지대 의원이 합류한다면 원내교섭단체인 20석이 충분한 만큼 조 대표가 숙이고 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전적으로 조 대표의 판단에 달렸지만 민주당과 손을 잡으면 지금과 같은 선명성이 묻히고 특유의 아이덴티티를 잃게 된다”며 “조 대표는 이번 총선의 캐스팅보트다. 살아남는 방법은 지금과 같은 목소리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다급해진 대법원? 대법원이 업무방해·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받는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상고심 사건의 재판부를 결정했다. <뉴스1>에 따르면 주심은 엄상필 대법관으로 2021년 조 대표의 배우자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항소심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이력이 있다. 현재 대법원은 엄 대법관이 상고심 재판을 맡더라도 형사소송법상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조 대표 사건의 하급심 판결에 엄 대법관이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엄 대법관에게 유죄의 심증이 있으므로 조 대표 측은 재판부를 교체해달라는 기피 신청을 낼 수는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