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팬들과 하나 된 안일권의 세계

“내 능력 놓치지 마라, 방송국 놈들아!”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예능인 안일권을 두고 흔히들 ‘개웃개’라고 한다. 개그맨을 웃기는 개그맨이 본뜻이다. 누구나 좋아할만한 대중적인 유머가 아닌, 개그 영역에서 감이 뛰어난 선수들이 인정하는 선수인 셈이다. 2018년 개인 유튜브 채널 ‘일권아 놀자’를 개설한 이후 ‘안일건달’ 캐릭터로 확 떴다. 이후 유튜브와 방송 예능에서 활약 중이다. 최근 MC의 영역까지 넘보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안일권을 만났다. 
 

▲ 최근 부캐릭터 안일건달로 인기 절정을 달리고 있는 개그맨 안일권 ⓒ박성원 기자

MBC <라디오스타>의 MC였던 윤종신은 가장 기억나는 게스트 중 한 명으로 안일권을 꼽았다. KBS2 <개그콘서트>에서 이미 연기력만큼은 확실하게 인정받은 안일권. 이야기를 푸는 재주도 뛰어나며, 순간 기지를 발휘하는 애드리브 유머를 구사하는 데도 탁월한 점이 수많은 게스트를 초대해본 윤종신에게도 특별하게 보였던 것 아닐까.

이야기를 
푸는 재주

사실인지 아닌지 분간이 쉽게 되지 않는 허언성 애드리브를 남발하는데, 연기력이 뛰어나 거짓이 느껴짐에도 속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아울러 소나 고양이, 말처럼 남들은 따라 하지 않는 개인기를 선보이기도 한다. 

당일 방송 중에서 화제를 모았던 건 배우 마동석과 싸웠다는 일화다. 가볍게 허리를 두 대 때리고 승부가 마무리됐다는 이 이야기는 누가 봐도 조작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유튜브 채널에 모인 댓글러들은 자신이 목격자라며 목격담을 내놓는다.

샌프란시스코, LA, 호주 등 에피소드도 각양각색이다. 안일권이 방송에서 한 이야기는 목격자들을 통해 실화로 번진다. 안일권의 유튜브 채널 ‘일권아 놀자’에만 있는 특색이다. 


개그맨을 웃기는 개그맨이라 그런지, 그의 팬들도 개그맨 수준의 센스를 자랑한다. 허를 찌르는 댓글이 ‘일권아 놀자’에 무수히 달린다. 줄리엔 강과의 스파링 영상에서는 안일권이 진짜로 맞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댓글란에는 ‘줄리엔 강 주먹을 배랑 얼굴로 다 막았다’, ‘저러다 줄리엔 강 주먹 크게 다치겠는데?’ 등의 글이 달린다. 

안일권의 정강이를 강하게 찬 유튜버 소녀주먹은 ‘안일권의 정강이를 차고 깁스를 했습니다’라는 글을 달며, 안일권의 위상을 높이 세운다. 그러면 댓글러들은 ‘여자한텐 한없이 약한 생물’ ‘자라나는 새싹의 꿈에 희망을 주는 안일권’ 등의 글로 마음을 모은다. 

‘일권아 놀자’의 세계에서는 안일권이 신이고 교주다. 안일권이 한 말은 모든 게 사실이 된다. 김창열이나 김종국에게 끌려가는 영상에는 ‘일권이 형님 또 약한 척 한다’는 글들이 달리며, 그의 배려심이 부각된다. 팬들의 센스가 이 세계를 채운다. 

유튜브 ‘일권아 놀자’ 제2의 전성기
연기부터 애드리브, MC 능력도 탁월

이른바 ‘복 받은 개그맨’으로, 팬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는 안일권을 직접 만났다. 전설의 협객이자, 국내 최고의 싸움꾼이지만 절대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않고, 삼강오륜을 중시하는 그의 태도가 인터뷰 내내 전달됐다. 팬들로부터 우상화되고 있는 그의 마음 속에는 팬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공존했다.

“구독자분들에게 정말 죄송한 게, 구독자분들이 저를 키워주셔서 예능 프로그램 고정도 하게 됐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예전만큼 영상을 못 올리고 있어요. MBC <복면가왕>을 하고 있고, 그 외에도 일이 계속 들어오고 있어요. 영상 올릴 시간이 부족해요. 최근에는 JTBC 유튜브 채널 ‘룰루랄라’에 (김)준호 형이 추천해주셔서 들어가게 됐어요. 준호 형이 만날 때마다 저 웃기다고 해주셨거든요. 부족한 거 아는데도 그렇게 매번 칭찬해주셔서 감사하죠.”

한동안 ‘안일건달’로 인기를 끈 이후 이렇다 할 화제작이 없는 게 사실이다. ‘남자의 착각’ ‘조작 몰카 방송’ 등을 소재로 본질을 꿰뚫는 강의를 하는 콘텐츠나, 무도인인 안일권이 직접 창시한 ‘안일권도’, ‘사기꾼과의 대화’ 등 여러 콘텐츠가 올라왔으나, 초반부 화제를 모은 안일건달 시리즈에 비해서는 화제성이 덜했다.
 

▲ 개그맨 안일권 ⓒ박성원 기자

그런 가운데 최근 후배 개그맨들을 섭외해 근황을 들어보는 ‘안일쇼’와 추억이 많은 동료 개그맨과의 애드리브로만으로 몰래카메라를 찍은 ‘아이콘택트’를 만들었다. 제2의 전성기를 안겨준 ‘안일건달’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은 포맷으로 보인다.  

조윤호와의 연기 맞대결 뿐 아니라 미키광수와의 폭로전, 리그오브레전드 게임을 하며 성대모사를 하는 포맷의 채널을 유지 중인 KBS 공채 출신 조충현 등이 그의 방송에 나왔다. 대화는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진행되며, 순간적인 애드리브가 큰 웃음을 터뜨린다. 게스트를 존중하는 태도가 엿보인다. 아직 본 적 없는 MC의 자질이 드러난다. 

“조윤호 형하고 우연히 시작하게 됐어요. 윤호 형도 유튜브를 시작했거든요. 그 형이 하는 채널에서 영상통화를 한 번 하자고 하길래, 도와줬어요. 그래서 저도 형에게 나와달라고 했어요. 전화를 그냥 끊었는데, 채널A <아이콘택트>가 딱 생각나더라고요. 시청자를 속여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 MC
성공적

조윤호와의 영상은 몰래카메라 같기도 하면서, 페이크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도 난다. 실화를 바탕으로 진지하게 다툼을 벌이는데, 자세히 봐야지만 가짜인 게 드러나는 영상이다. 워낙 사실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할 뿐 아니라 인물들의 연기력이 탁월해, 일반적인 유튜브 몰래카메라와는 결이 다르다. 

조충현과 후배 윤한민과 함께 한 ‘안일쇼’도 현실과 가상을 오간다. 마치 미국 토크쇼 같은 ‘안일쇼’에서 그는 후배들의 마음을 알아봐 줄 뿐 아니라 이들의 매력도 뽑아내는 재능을 드러낸다. 

“자유로운 토크쇼를 하고 싶었어요. 이 시기에 이런 걸 한 이유가 있어요. 사람들이 <개그콘서트> 욕은 하는데, 그리워하고 있더라고요. <개그콘서트>가 일요일의 마무리였던 그 시기가 그립나 봐요. 그래서 동료들이 나오는 방송에 반응이 뜨거워요.”

연기에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안일권은 제작 아이디어뿐 아니라 MC 분야까지도 섭렵하려고 한다. 기본적으로 센스가 넘치는 애드리브로 분위기를 이끌 뿐 아니라, 이야기가 물줄기를 타고 흐르는 듯 매끄럽다.

“제가 한마디 좀 하겠습니다. ‘나의 진행 능력을 빨리 보지 않으면 인재를 놓치는 거다, 이 방송국 놈들아.’ 제가 연기 말고도 무기가 많아요. 저 아이디어도 좋습니다. 저는 다 잘해요. 자신이 있어요. 특히 MC는 웃기고 싶어하는 사람이 하면 안 돼요. 게스트를 띄워주면서 적절하게 자신의 개그를 넣는 사람들이 해야 해요. 대표적으로 신동엽 선배님이죠. 정말 매끄럽게 하잖아요. 게스트도 잘 챙기면서요. 반대인 경우도 있죠. 한 번은 제가 다른 방송에 나갔는데, MC가 저를 무시하더라고요. 그때 많이 배웠어요.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걸요.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토크쇼를 만들어봤죠.”

최근의 토크쇼를 비롯해 한동안 재미를 본 ‘안일건달’도 페이크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김종국, 김창열, 강호동, 마이크 타이슨, 안젤리나 졸리 등이 등장하는 그의 과거 이야기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실재와 허구를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안일권의 개인기와 노우진의 진행만으로 실감 나는 유머가 탄생한다. 

“애초 방송을 할 때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하자’고 콘셉트를 잡은 건 아니었어요. 찍다 보니까 그런 형태가 된 거예요. 노우진이 큰 몫을 했죠. 그 방송들은 사실 주제만 제가 던졌어요. ‘오늘은 창열이형이랑 싸운 얘기할게’라는 정도로 얘기를 해요. 나머지는 다 애드리브예요. 서로 얘기를 하면서 막 웃는단 말이에요.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하는데, 이게 다 예상 밖이니까 서로 웃음이 터지는 거예요. 중학교 1학년 때 고등학교 3학년을 때렸다는 얘기도 그냥 만나서 놀다가 ‘하나만 찍고 갈까’하다가 만든 거예요.”

희안하게
보게 되네∼


애드리브로 시작한 이야기는 목격자들을 통해 완성된다. 안젤리나 졸리가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안일권을 24시간 기다렸다는 썰이나, 고등학생 10여명과 싸워 이긴 전설적인 지역이 배차구 레피동 출신이라는 썰, 북한에 다녀온 HID 출신 썰 등에는 늘 목격자가 생겨난다. 배차구 레피동은 행정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음에도, 그 지역 출신들이 나온다. 

“저는 제 팬들이 동료이자 팀원이라고 생각해요. 제 개그를 알아주는 진짜 팬들인 거죠. 안일권도 카페도 있어요. 거기서도 소통을 많이 하죠. 그런데 가끔 보면 부정적인 분들도 있어요. 제 개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욕하는 분들이요. 그런 분들의 댓글은 지우기도 해요. 부정적인 댓글이 그대로 남아있으면, 안일권의 세계를 즐기는 분들로부터 댓글을 단 분이 욕을 먹기도 하거든요. 실생활에도 많이 있잖아요. 말귀 못 알아듣고 화만 내는 사람이요. 그런 경우면 차라리 댓글을 지우는 게 서로 좋은 거 아닌가 싶기도 해요.”
 

▲ 개그맨 안일권 ⓒ박성원 기자

가끔 이상한 팬들이 존재하기는 하나, 다른 방송인에 비하면 미미한 편이다. 대부분 안일권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웬만한 개그맨 이상의 감각으로 안일권을 찬양한다. 팬들로 인해 새로운 웃음이 창조된다. 이러한 시너지는 안일권의 전유물로 보인다. 

“제가 <개그콘서트> 시절에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어요. 그때는 <개그콘서트> 게시판을 봤는데 ‘안일권은 아스트랄한 연기를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글을 보고 정말 기뻤어요. 과대평가일 수도 있는데, 제 의도를 알아봐 주신 것 같아서 감사하더라고요. 저를 알아주는 게 얼마나 좋아요. 개그는 설명이 아니라 그 자체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거거든요. 연기도 과장하는 게 아니라 절제된 모습에서 포인트를 딱 짚어주는 거죠.”

“배우분들 오열한다고 다 감동을 주는 건 아니잖아요. 제 개그의 대부분이 풍자인데, 제 팬들은 제 개그를 알아봐 주시는 것 같아요. 조회 수가 안 나와도 저만의 개그 방식을 유지하려고요.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사실 제 개그가 인기가 있었던 건 제 이야기를 정말 잘 받아준 우진이가 있어서예요. 우진이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화제가 되는 영상은 만들 수 없었을 거예요.”

꾸준한 성장세에 있던 ‘일권아 놀자’가 다소간 흔들린 배경은 동료였던 노우진이 음주운전으로 인해 방송에서 하차한 데 있다. 최고의 파트너를 잃은 안일권은 혼자서 여러 가지 방송을 해봤지만, 노우진과의 ‘티키타카 대화’만큼 재미를 주진 못한다. 


“센스만점 팬들은 동료이자 최고의 파트너”
“아스트랄한 개그 방식, 변치 않고 가겠다”

그런 중에 지난 6일 안일권은 노우진을 불러 사과방송을 진행했다. 음주운전 방송에 대해 깊이 뉘우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한 것. 사실 안일권에게도 위험성이 큰 방송이었다. 

“다행히도 제 진심을 알아봐 준 팬들이 많이 있었어요. 제가 손해 볼 것을 알면서도 그 영상을 올렸다는 점에 칭찬해주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제가 멋있어 보이려고 그 영상을 올린 건 아닙니다. 우진이를 용서해달라고 올린 것도 아니에요. 복귀하려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얘가 자기가 잘못한 점에 있어서 사과를 하고 싶은데, 할 곳이 없어서예요. 이미 없어진 본인 채널에서 하기도 뭐하고요. 그래서 우진이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았던 제 채널에서 올린 거죠. 사실 걱정이 많아서 바로 올리진 못했어요.”

음주운전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냉혹하다. ‘잠재적 살인’으로 바라보면서, 다시는 방송에 나오지 못하도록 하려는 강한 비난을 남긴다. 방송인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이후 방송에 나오더라도 음주운전에 대한 꼬리표가 붙는다. 
 

▲ 안일권 유튜브 ⓒ유튜브

안일권의 호감 있는 이미지 덕분일까. 노우진을 향한 댓글의 수위는 비교적 완만하다. ‘다시는 그런 행동하지 말라’는 쓴소리가 대부분이다. 모욕적인 댓글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긴 해요. 근데 우진이를 보니까 또 웃기고 싶어져서 혼났어요. 그래서 ‘범죄자 같이 생겼다’고 한 거예요. 아직 우진이랑 방송할 생각은 없어요. 그저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어서 한 거예요. 시간이 더 지난 뒤에 대중의 분이 풀리시면 다시 할 수도 있겠죠. 그때가 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개그맨이 돼서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았다. 감이 떨어질 법한 40대임에도, 자기 스타일이 분명한 색감의 개그를 구사한다. 연기력을 인정받아 드라마와 영화에도 출연했으며, 누구보다도 발 빠르게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꽤 안정적인 구독자 수를 만들었다. 미래의 안일권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냐고 물어봤다. 

순리대로
즐기면서

“예전에는 야망이 컸어요. 질투도 많았고요. 주변 사람 중에 누가 잘되면 ‘나는 왜 최고가 되지 못할까’라고 생각했어요. 부족한 무언가가 있어서겠죠. 예전에는 좌절도 했는데, 이제는 그저 감사하게 생각해요. 욕심부리지 않고, 제가 잘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복싱에서도 힘을 빼야 오랫동안 싸우거든요. 잘되든 안 되든 여유가 있게 순리대로 가려고 합니다. 연기하고 싶으면, 희극배우가 될 수도 있고요, 아니면 다른 걸 할 수도 있겠죠. 최선을 다하면서 즐겨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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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