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야구단 품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2.01 11:56:07
  • 호수 13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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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볼~” 유통+스포츠 야구로 만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야구장에 ‘용진이형’이 뜬다. ‘용진이형’은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을 친근하게 부른 표현이다. 최근 신세계그룹 핵심 계열사인 이마트는 프로야구 명문구단 SK와이번스를 인수했다. 이로서 정 부회장은 유통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야구팬을 모아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계획이다.
 

▲ SK와이번스 인수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프로야구단 SK와이번스를 인수하며 야구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신세계 계열사인 이마트가 SK텔레콤의 SK와이번스 지분 100%를 인수하는 방식이다. 인수 금액은 훈련장 등 자산을 포함해 총 1352억원이다. 신세계는 코치진을 비롯한 선수단과 프런트를 100% 고용 승계한다는 방침이며 연고지도 인천으로 유지한다.

‘용진이형’
1352억원 인수

정 부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고객의 변화된 요구에 맞춰 광적인 집중을 해달라”며 “자신이 속한 사업만 바라보는 좁은 사고에서 벗어나자”며 사업의 방향성을 넓혔다. 

신세계그룹은 온·오프라인 사업 통합과 온라인 시장 확장을 위해 수년 전부터 프로야구단 인수를 타진해왔다. 프로야구 팬과 그룹 고객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고객 경험의 확장’을 꾀할 수 있고, 야구팬들이 모바일 등 온라인 환경에 익숙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온라인 시장의 주도적 고객층과 일치하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신세계그룹은 “야구장을 찾는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과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즐기는 야구’를 표방해 프로야구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를 위해 야구장을 ‘라이프스타일 센터’로 바꿔 야구뿐만 아니라 신세계그룹의 서비스를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장기적으로는 팬과 지역사회, 관계 기관의 의견을 수립해 돔을 비롯한 다목적 시설의 건립 추진 등 인프라 확대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좋은 선수를 발굴·육성하고 선수진의 기량 증가를 돕기 위해 훈련 시설 확충 등 시설 개선에도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조만간 구단 이름과 캐릭터를 확정하고 오는 3월 중 정식 출범한다는 방침이다. 야구단 이름으로 새로운 팀 이름 앞에 ‘SSG’를 붙이는 방안이 내부적으로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트나 신세계가 국내에 익히 알려진 터라 야구단 이름에 붙이면 마케팅 효과가 적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SSG는 신세계그룹 온라인 쇼핑 통합 브랜드다. 2014년 브랜드 출범 당시 SSG를 발음 그대로 한글로 옮긴 ‘쓱’을 활용한 TV 광고 등이 화제가 되면서 함께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국내에서 신세계나 이마트에 대한 브랜드 인지도는 이미 높아서 그룹 전체의 온라인 쇼핑 브랜드인 SSG 등을 구단명 앞에 넣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SK 야구단 관계자는 “와이번스라는 이름은 바뀌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세계는 그동안 야구단 매각 때마다 유력한 인수 후보로 꼽혀왔다. 특히 이번 SK와이번스 인수에는 정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회장은 동호회에서 투수로 활약했을 정도로 야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세계는 온라인 시장의 확장을 위해 수년 전부터 프로야구단 인수를 타진해왔다.

돔구장·다목적 시설 건립 추진
새로운 경험 제공…즐기는 경기

두터운 야구팬층을 ‘신세계 팬’으로 만든다는 전략이다. 이는 충성고객이 많은 경쟁사 쿠팡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세계 내부에서는 프로야구단 인수에 정 부회장의 경영철학이 크게 작용했다는 말이 나온다. 야구장은 정 부회장이 유통업의 경쟁상대로 수차례 거론한 곳이다. 그는 2016년 ‘스타필드 하남’ 개장식에서 “향후 유통업의 경쟁상대는 테마파크나 야구장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일각에선 신세계그룹과 프로스포츠와의 인연이 좋지 않기 때문에 프로야구 진출을 곱게 보지 않는 시선도 존재한다. 신세계는 여자프로농구 원년부터 리그에 참가해 1999~2002년 우승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정선민의 이적과 주전의 노쇠화 및 구단의 투자 부진 속에 팀 성적은 내리막을 걸었다. 그 뒤로 2012년 4월 팀 해체를 선언했다. 15년간 이끌던 팀을 단번에 없애버린 것이다.

프로 스포츠계 관계자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비시즌 중에 갑자기 다음 시즌부터 팀을 해체하겠다고 팩스 한 통으로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에 통보했다”며 “사전에 어떤 언질도 없이 팩스 한 통으로 팀 해체를 전하는 모습이 스포츠계 입장에서 봤을 때 너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팀을 운영할 때 선수 영입 등에 있어서 굉장히 인색했다”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성적이 나빠지고 모기업에선 굳이 스포츠단을 운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손들고 나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 이마트 라이브 ⓒ유튜브

이 때문에 스포츠계에서는 여자농구단을 무책임하게 해체했던 신세계가 프로야구단을 인수할 자격이 있는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스포츠를 무시했던 기업이 야구단을 맡겠다고 하니, 스포츠업계에서는 또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과거 농구단 신세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를 두고 스포츠업계에 발을 들일 때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1968년 9월19일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과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정 부회장은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브라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학창시절 정 부회장을 기억하는 동창들은 이구동성으로 ‘팔방미인’이었다고 말한다. 정 부회장은 활달한 성격인 만큼 친구들을 좋아해 모임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특히 사회에서 만난 인사들보다 초·중·고 동창들과 가깝게 지낸다고 한다. 

경쟁상대로
거론하더니?

호남형의 정 부회장을 시원시원한 성격에 대단한 ‘학구파’였다고 지인들은 입을 모았다. 정 부회장과 같은 반이었다는 한 지인은 “용진이는 학창시절에 공부도 잘했다. 고3 때 모의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한 적도 있다. 남자답고 활달한 성격으로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1995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신세계 전략기획실에 입사한 후 15년 만에 그룹의 얼굴로 전면 등장한 그는 부회장으로 승진한 2006년 이후 구학서 부회장의 뒤에서 묵묵히 현장을 돌며 3년여 동안 굵직한 프로젝트를 직접 챙기는 등 경영 수업을 받았다. 정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현장을 중시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새로 여는 이마트 개점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백화점 점포도 수시로 들르는 등 현장 경영을 강조한다. 신세계 측에 따르면 정 부회장은 해외의 선진 유통 현장도 자주 시찰하는 등 풍부한 경험으로 쌓아 다진 전문적인 식견엔 담당 직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우락부락한 외모와는 달리 ‘꼼꼼함’도 정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 중 하나로 꼽힌다. 유통업의 특성상 모든 게 잘 돼있어도 사소한 한두 가지 제품이나 서비스가 잘못되면 매장 전체에 대한 신뢰가 상실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MD(상품기획), 집기 개발, 상품 포장 등 매장 운영에서부터 상품정보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지적해 담당자들의 진땀을 빼놓기도 한다. 


그렇다고 사원들과 거리를 두는 스타일은 아니다. 과거 직원들과 소주에 삼겹살 회식은 물론 이마트 개점 때는 고사에도 참석, 직원들이 건네는 막걸리를 몇 잔이고 받아 마셨다고 한다. 직원들에게도 꼭 두 손으로 술을 따르며 몸을 낮춘다.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지하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 부회장의 친화적인 성격은 소비자와의 활발한 소통으로 이어졌다. 정 부회장은 인스타그램 팔로워 52만9000여명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마트 유튜브 채널에 직접 출연하기도 한다. 

‘부회장’이라는 딱딱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인플루언서로서 고객에게 직접 다가가 효과를 봤으며 이 같은 정 부회장의 SNS 마케팅은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실제로 이마트 PB브랜드를 소개하면 해당 제품의 매출이 곧바로 늘어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지난 1일 ‘이마트LIVE’는 ‘배추밭 비하인드와 시장에서 장 본 이야기 공개!’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앞서 정 부회장은 그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영문 이니셜을 딴 ‘YJ로그’ 공개를 알린 바 있다.

꼼꼼하고
친밀하게

이날 공개된 영상은 지난해 12월17일 이마트LIVE가 공개한 ‘정용진 부회장이 배추밭에 간 까닭은?’의 촬영 뒷이야기를 담고 있다. 해당 영상은 정 부회장이 이마트를 홍보하는 영상으로, 전남 해남의 한 배추밭에서 배추를 직접 수확하고, 배추를 활용한 요리 역시 직접 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정 부회장이 출연한 이마트 홍보 영상은 그가 직접 연기와 내레이션을 한 것이 알려지며 네티즌의 주목을 받았다. 해당 영상은 조회 수는 125만회(지난달 11일 기준)를 넘기며 이마트 홍보에 톡톡한 역할을 했다. 이날 첫선을 보인 YJ로그는 정 부회장의 공식 유튜버 데뷔인 만큼 ‘마트맨 Y’라는 호칭으로 소개됐다.

영상은 정 부회장의 이마트 홍보영상 촬영 뒷이야기를 주로 담았는데, 추위에 몸을 떨면서도 직접 배추를 나르고 요리하는 모습들이 생생하게 담겼다.

또 배추로 2행시를 짓거나 오일장에서 직접 장을 보는 등 일상 속 모습도 공개됐다. 해남읍 오일장에서 장을 보는 정 부회장에게 상인이 “뭐하시는 분이냐”고 묻자, 정 부회장은 “장사해요”라고 답하며 촬영 스태프들을 웃게 만들었다. 끝내 정 부회장의 정체를 알지 못한 상인이 “셰프냐”고 묻자, 정 부회장은 “네”라고 답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이날 공개된 5분 분량의 YJ로그는 배추밭 광고 촬영의 뒷이야기만 담고 끝났지만, 앞으로 정 부회장의 일상 속 모습을 소개하는 영상이 추가로 업로드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정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한 예고 영상에는 ‘스타워즈 다스베이더’ 앞치마를 두르고 직접 요리하는 모습과 한복을 차려입고 직접 슬레이트를 치는 모습이 담겼지만, 이날 영상에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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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취미는 각종 스포츠와 음악이다. 정 부회장은 사석에서 “나는 경영인이 안 됐다면 음악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한다고 한다. 학창시절 어머니 이명희 회장의 조언에 따라 ‘체르니 40번’까지 피아노를 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클래식을 좋아해 클래식 음악 파일만 수천개 들어 있는 MP3와 아이팟을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듣고, 국내서 열리는 유명 음악 공연도 빠짐없이 본다고 한다. 

또 자녀들과 함께 첼로를 배우는 등 음악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주량은 소주 2병 정도로 와인 애호가로도 알려져 있다. 한때 신세계 직원들 사이에 ‘와인 공부를 열심히 하면 비서실로 특채될 수도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인스타그램·유튜브서 활발한 활동
배추 직접 수확하고 요리까지 콜∼

정 부회장이 즐기는 스포츠 가운데 오토바이 레이싱은 수준급이다. 정 부회장은 할리 데이비슨, BMW 등 60여대의 명품 바이크를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오토바이 레이싱을 즐기는 편이라고 알려져 있다. 한때 모터사이클 동호회 회장직을 맡아 서울에서 해남 땅끝마을까지 1000㎞를 달린 적도 있다.

최근에 그룹 전반을 책임지고부터는 시간을 낼 수 없어 오토바이는 거의 타지 않는다. 오토바이 외에 요트도 즐기는 편이다. 일각에선 정 부회장이 만능스포츠맨이지만 호화스포츠만 즐긴다는 지적도 있다.

운동 마니아기도 한 정 부회장은 소문난 ‘몸짱’이다. 건장한 체격을 유지하는 비결은 바로 매일 거르지 않는 웨이트 트레이닝에 있다. 지금도 하루 2~3시간씩 꼭 짬을 내서 몸 관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체력이 밑받침돼야만 좋은 사고도 나온다는 지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골프 실력은 핸디 18, 보기 플레이어 수준이다. 예전에는 80~85타를 쳤지만 경영에 매진하면서 골프를 거의 못 치고 있다고 한다. 힘이 좋아 250~300야드를 치는 장타자로 소문이 나 있다. 

정 부회장이 신년사에서 임직원들에게 “관성을 버리고 반드시 ‘이기는 한 해’를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고 지나간 후 르네상스라는 화려한 꽃이 피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시장 경제 환경이 급격하게 재편되는 올 한 해가 오히려 최상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지금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한다. 10년, 20년 지속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판을 바꾸는 대담한 사고가 필요하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정 부회장은 ▲고객을 향한 불요불굴(不撓不屈) ▲구성원 간의 원활한 협업과 소통 ▲다양성을 수용하는 조직문화 등 세 가지 중점 과제를 제시했다. 먼저 정 부회장은 ‘결코 흔들리지도 굽히지도 않고 목표를 향해 굳건하게 나아간다’는 의미의 사자성어 ‘불요불굴’을 언급하며 “우리에게 불요불굴의 유일한 대상은 고객”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신세계백화점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매장 방문을 꺼리는 고객들을 위해 SSG닷컴의 라이브방송 채널 ‘쓱라이브’와 손을 잡고 화장품 쇼케이스를 기획했던 시도 등을 예로 들었다.

또 정 부회장은 고객에게 광적인 집중을 하기 위해서는 ‘One Team, One Company’가 돼야 한다며 온·오프라인 시너지 등 관계사 간, 부서 간의 협업과 소통을 강화해달라고 주문했다. 

음악 좋아하는
만능 스포츠맨

그는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리테일 시장의 온라인 전이가 최소 3년 이상 앞당겨졌다며, 새로운 IT기술을 기반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묶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이끌 인재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절대 후회하지 마라. 좋았다면 멋진 것이고, 나빴다면 경험인 것이다’라는 소설가 빅토리아 홀트의 명언을 인용하며 “새로운 기회를 잡을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신세계그룹을 스스로 재정의하는 한 해로 만들어달라”고 신년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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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