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7년 만에 빅리거 김하성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1.01.04 09:56:42
  • 호수 13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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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팀서 월드시리즈 정조준!

[일요시사 취재2팀] 최현목 기자 = ‘평화왕자’ 김하성이 꿈을 이뤘다. KBO리그 최고 유격수를 꼽는 각종 토론에서 이견 없는 최고 유격수로 뽑혀 평화왕자라는 타이틀을 얻은 김하성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거로 발돋움하는 데 성공했다. 행선지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지난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강팀이다. 올해 야구팬의 볼거리가 또 하나 늘었다.
 

▲ 7년 만에 메이저리그에 입성하는 김하성

야구팬들에게 희소식이 전해졌다. MLB닷컴은 지난달 29일(한국시각) “김하성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입단에 합의했다. 아직 구단은 계약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피지컬 테스트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약 규모도 알려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MLB닷컴 외에도 수많은 외신들이 김하성의 샌디에이고 입단 소식을 앞다퉈 전했다.

국내 최고
유격수 출격

디애슬레틱의 데니스 린 기자는 현지 취재진 중 가장 먼저 자신의 트위터에 “김하성이 샌디에이고 입단에 합의했다”고 썼고, MLB네트워크의 존 헤이먼 역시 트위터를 통해 “김하성이 샌디에이고와 최소 4년 이상의 계약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하성은 2020년 키움 히어로즈에서 30홈런을 치며 유격수와 3루수로 뛰었다”고 설명했다.

김하성은 포스팅 시스템(자유계약 자격이 없는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위해 소속 구단의 동의를 얻는 제도)을 거쳐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역대 5번째 한국 선수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첫 번째는 토론토 블루제이스 소속 류현진 투수. 한화 이글스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던 류현진은 지난 2012시즌을 마친 뒤 포스팅 시스템을 거쳐 LA 다저스와 6년 3600만달러에 계약했다. 당시 다저스가 지불한 포스팅 비용 2573만7373달러33센트(한화 약 280억원)를 합하면 그 규모는 더 커진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이는 국내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입장벽을 낮추는 효과로 이어졌다. 류현진 이후 야수인 강정호와 박병호가 메이저리거의 꿈을 이뤘다.

투수인 김광현 역시 지난 2019년 12월 포스팅 시스템을 거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입단, 선발 로테이션에 진입하며 연착륙했다.

김하성이 선배들의 뒤를 이어 역대 5번째로 포스팅 시스템을 거쳐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프로 데뷔 7년 만이다. 지난 2014년 넥센(현 키움) 히어로즈는 2차 3라운드 29순위로 김하성을 지명했다.

역대 5번째 포스팅 통해 MLB 직행
꾸준한 성장, 강정호 넘을 만하다!

입단 첫해 김하성은 백업 내야수와 대주자 요원이었다. 김하성의 주 포지션인 유격수 자리에는 강정호라는 거대한 산이 위치하고 있었다. 강정호는 2014년 시즌 117경기에 출전해 타율 0.356(4위), 40홈런(2위), 117타점(3위)이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남겼다. 장타율과 OPS(출루율+장타율)는 전체 1위였다.

반면 김하성은 단 60경기에 출전해 타율 0.188, 2홈런, 7타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프로 무대는 녹록지 않았다.

부진한 데뷔 시즌에도 구단은 김하성을 차기 주전 유격수로 점찍었다. 강정호는 2014년 시즌이 끝난 후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구단에 전했기 때문이다. 당시 히어로즈를 이끌던 염경엽 감독과 홍원기 코치는 김하성을 지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강정호는 결국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김하성에게 기회가 열린 것이다. 2015시즌부터 김하성은 팀의 유격수 자리를 꿰찼다. 김하성은 그해 140경기에서 타율 0.290, 19홈런, 73타점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아쉽게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구단의 기대에는 충분히 부응했다.

이후 김하성은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웨이트트레이닝 등을 통해 힘을 키웠다. 이를 통해 2016년 시즌에 20홈런, 28도루를 수확, 호타준족의 상징인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2017년에는 타율 0.302, 23홈런, 114타점으로 데뷔 후 처음으로 3할 타율을 넘어섰다. 
 

2018년에는 타율 0.288, 20홈런, 84타점의 성적으로 각 포지션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하는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19년에도 타율 0.307, 19홈런, 104타점을 올리며 다시 한 번 골든글러브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김하성은 강정호를 이어 30홈런 이상 치는 유격수의 계보를 이을 선수로 주목받았다. 그리고 이는 2020년 시즌에 현실이 됐다. 그해 김하성은 타율 0.306, 30홈런, 109타점이라는 개인 최고 시즌을 만들어냈다.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 에디슨 러셀이 시즌 중 합류함으로써 김하성은 유격수와 3루수를 오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부진한 데뷔
강정호 가고…

김하성이 7시즌 동안 기록한 KBO리그 통산 성적은 타율 0.294, 133홈런, 575타점이다. 이는 강정호가 9시즌 동안 기록한 타율 0.298, 139홈런, 545타점과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는 성적이다. 강정호의 뒤를 이어 진출에 성공한 김하성에 대해서도 메이저리그에서의 좋은 성적을 기대케 하는 이유다.

김하성은 국제대회에서도 활약했다. 2017년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다. 그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전을 시작으로 2017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 참가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는 금메달 획득에 선봉장 역할을 했다.

가장 최근 국제대회인 2019 WBSC 프리미어12에서도 김하성은 주전 유격수로 뛰었다. 

김하성은 포스팅 시스템 참가 자격인 데뷔 시즌 1군 등록일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포스팅 시스템을 거칠 수 있었던 이유는 국제대회 출전으로 1군 등록일수 혜택을 받은 덕분이다. 결국 김하성은 지난 11월 말, 소속팀 키움을 통해 메이저리그 포스팅 공시를 요청하며 꿈을 향해 나아갔다. 

복수의 구단이 김하성에게 관심을 보였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텍사스 레인저스, 보스턴 레드삭스, 뉴욕 메츠 등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한 구단들이 달려들었다. 결국 김하성은 내셔널리그(아메리칸리그와 함께 메이저리그의 양대 리그 중 하나) 서부 지구에 속해 있는 샌디에이고의 유니폼을 입고 새로운 꿈을 펼칠 전망이다.

김하성은 피 튀기는 경쟁을 앞두고 있다. 샌디에이고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최상급으로 꼽는 내야진을 갖춘 팀이다. 3루수 매니 마차도는 올스타로 네 차례나 뽑힌 슈퍼스타다. LA 다저스 소속이던 마차도는 지난 2019년 샌디에이고와 계약 기간 10년, 총액 3억달러(약 3385억원)에 계약했다. 이는 김하성의 계약금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다.

메이저리그는 성적이 부진하더라도 연봉이 높은 선수를 우선 기용한다.


스타군단
일원으로

1루는 에릭 호스머가 차지하고 있다. 9시즌 통산 타율 0.278, 176홈런, 770타점을 거둔 팀의 주포다. 파워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지만, 4번의 골드글러브(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수비수에게 주는 상)를 받을 정도로 안정적인 수비를 자랑한다. 이런 성적을 앞세워 호스머는 샌디에이고와 지난 2018년에 계약 기간 8년, 총액 1억4400만달러(약 1700억원)에 계약했다.

김하성의 주 포지션인 유격수 자리에는 빅리그 2년 차에 ‘최정상급 내야수’로 성장한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가 자리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유격수 유망주로 평가받던 타티스 주니어는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단축 시즌임에도 59경기 타율 0.277, 17홈런, 45타점이라는 괄목할만한 성적을 거뒀다.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샌디에이고의 주전 유격수는 타티스 주니어가 될 예정이다.

결국 김하성은 제이크 크로넨워스와 2루수 자리를 두고 경쟁을 펼칠 전망이다. 크로넨워스는 지난 시즌 54경기 타율 0.285, 4홈런, 20타점을 기록해 내셔널리그 신인왕 투표에서 공동 2위를 차지했다. 8경기(39이닝)에 출전해 3승(1세이브), 평균자책점 1.62, 탈삼진 24개를 따냈음에도 신인왕 투표 최종 순위에 오르지 못한 김광현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크로넨워스가 버티고 있지만, 김하성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존재한다. 바로 크로넨워스의 부진한 좌투수 상대 성적이다. 우투좌타인 크로넨워스는 지난 시즌 좌투수 상대 타율은 0.218에 불과하다. 만약 제한된 기회 속에서 김하성이 좌투수 상대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출전기회는 시즌이 지날수록 더욱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포지션을 변경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외야수로의 전향이다. 이는 김하성과 크로넨워스 두 선수 모두에게 해당된다. 디애슬레틱 데니스 린 기자는 “샌디에이고는 크로넨워스뿐 아니라 김하성에게까지 외야수로의 포지션 변경을 고려할 것이다. 크로넨워스는 내야수가 아닌 포지션은 거의 경험해 보지 못했다. 김하성 역시 공식적으로 외야수로 뛴 적이 없다. 지명타자 도입이 가장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팀내 주전 경쟁 불가피
‘타도 다저스’ 선봉장?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내셔널리그는 지난해 아메리칸리그의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해 시즌을 치렀다. 시즌 초반에는 내셔널리그 감독 및 선수들을 중심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이후 오히려 지명타자 제도를 내셔널리그에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시즌 월드시리즈 우승 감독인 LA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투수도 타석에 들어가야 한다는 오랜 규칙에 집착했었지만, 지금은 지명타자 제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콜로라도 로키스의 버드 블랙 감독 역시 “내셔널리그의 지명타자 제도 도입을 반대했다.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다. (과거에 비해) 구속이 빨라지고 변화구가 날카로워졌다. 타석에서 팀에 도움이 되는 투수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다음 시즌에서 내셔널리그에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할지 여부를 확정하지 않았다. 만약 지명타자 제도가 내셔널리그에 도입된다면 김하성의 출전 시간 역시 늘어날 전망이다. 

샌디에이고는 ‘타도 다저스’를 천명했다. 다저스는 지난 시즌 32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반면 샌디에이고는 와일드카드 시리즈에서 김광현이 속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눌렀지만, 디비전 시리즈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샌디에이고를 꺾은 상대가 바로 다저스였다. 샌디에이고 입장에서는 같은 지구인 다저스를 누르지 않고서는 월드시리즈 진출을 노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샌디에이고는 영입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김하성을 영입하기 전 탬파베이 레이스의 에이스 블레이크 스넬을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스넬은 2018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각 리그 최고의 투수에게 주는 상) 수상자다. 이어서 샌디에이고는 시카고 컵스의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와의 트레이드에도 합의했다.

서부 지구
박 터진다

다르빗슈는 지난 시즌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2위를 차지한 에이스다. 

샌디에이고는 여기서 그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지난 시즌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자인 신시네티 레즈의 트래버 바우어 영입전에 뛰어들었다. 샌디에이고 A.J. 프렐러 단장은 현지에서 ‘매드맨’으로 불리고 있다.

만약 샌디에이고가 바우어까지 손에 넣는다면 바우어-다르빗슈-스넬-다넬슨 라멧으로 이어지는 사이영상 투수진이 꾸려진다. 이미 호스머-김하성-크로넨워스-타티스 주니어-마차도로 이어지는 막강 화력의 타선을 구축한 상태다. 당장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려볼만한 로스터 구성이다.

MLB닷컴은 지난달 30일(한국시각) “즉시 전력감 다수를 영입한 샌디에이고는 새 시즌 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WAR)에서 선두권으로 뛰어올랐다”며 “지난 시즌 월드시리즈 우승팀이자 같은 지구팀인 다저스를 추격했다”고 밝혔다.

과연 김하성은 메이저리그에서 어떤 성적을 기록할 것인가. 야구 예측 시스템 ZiPS(SZymborski Projection System)는 “김하성의 2020년 KBO리그 성적을 메이저리그 성적으로 변환하면 타율 0.274, 출루율 0.345, 장타율 0.478, 24홈런, 17도루가 된다”고 내다봤다. 

이는 메이저리그 주전은 물론 올스타를 노려볼만한 성적이다. 김하성은 내년에 만 25세로, 젊은 나이다. 선수로서의 전성기를 시작할 시점이다. 김하성은 KBO리그에서 부상 없이 활약을 꾸준히 펼쳤다. 만약 이러한 기세가 메이저리그에서까지 이어진다면, KBO리그 출신의 타자 중 최초로 메이저리그 올스타에 선정되는 장밋빛 미래를 그려볼만하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 분석가의 김하성 성공요건

김하성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확정된 가운데 미국 현지 매체가 김하성의 성공요건으로 그의 빠른 공 대처 능력을 꼽았다.

미국 야구 통계사이트 ‘팬그래프닷컴’은 지난해 12월30일 “KBO 리그에는 시속 88~90마일(142~145km)대 속구를 던지는 투수들이 많고 드물게 접한 95마일(153km)이 가장 빠른 공이었을 것”이라며 “김하성은 이제 매일 95마일대 강속구를 공략해야 하는데, 적응 기간이 필요할지 모른다”고 짚었다.

타구 속도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지난 시즌 김하성의 가장 빠른 타구 속도는 105마일 정도였는데, 이는 메이저리그 기준으로 하위권이라는 것.

결국 메이저리그 강속구 투수들을 상대로 얼마나 선전할지가 관건이다.

실제로 김하성보다 먼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박병호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빠른 공에 적응하지 못하고 씁쓸하게 KBO 리그로 복귀했다.

다만 이 매체는 김하성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메이저리그에서 적응에 성공할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김하성에게 기회가 충분히 주어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샌디에이고의 홈구장인 펫코파크가 우타자에게 친화적이라는 점 역시 긍정적이다.

다만 생소한 경기장 환경으로 김하성이 어느 정도의 수비력을 보여줄지가 관건이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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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계엄 후폭풍> 윤석열의 무리수 미스터리

[12·3 계엄 후폭풍] 윤석열의 무리수 미스터리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진짜 속내는 담화문서 깨알같이 발견되는 두 글자로 확인할 수 있다. 꼭꼭 숨기려고 했지만, 끝내 숨기지 못했던 두 글자 ‘특검’. 과연 그 두 글자가 군을 동원하려고 했던 진짜 이유였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오후 10시27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윤 대통령이 밝힌 비상계엄 선포 사유는 ▲야권의 정부 관료 탄핵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제1심 선고 전 대규모 시위(판사 겁박) ▲야권의 검사 탄핵(사법 업무 마비) ▲야권의 특활비 삭감(국가의 본질적 기능 훼손) ▲야권의 민생 예산 삭감(대한민국 국가 재정 농락) 등이다. 모르고? 알면서? 이 사유들을 열거한 윤 대통령은 “자유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라며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명분을 강조했다. 이어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됐고, 입법 독재를 통해서 국가의 사법 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 민주주의체제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 정국을 ‘범죄자 집단 소굴의 자유 민주주의체제 전복 기도’라고 규정한 것이다. 범죄자 집단 소굴로 규정된 야권은 곧바로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으로 ‘격상’됐다. 윤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며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야권을 일컬어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이라고 거듭 비난하면서 “반드시 척결하겠다”고 다짐했다. 윤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6시간 후인 지난 4일 오전 4시26분에 마무리됐다. 이날 우원식 국회의장은 경찰의 국회 통제에 담을 넘어 진입해 의원들의 긴급 소집을 발동했고, 야권 의원들 및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중립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오전 0시29분 본회의를 개최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비상계엄 선포 후 약 19분이 지난 3일 오후 10시46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약속했다. “야권과 국민의힘 내 친한계 의원들이 모여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할 것”이라는 결말은 이때 이미 예측됐다. 국회의원 보좌진과 국회 직원들이 계엄군의 본청 진입을 막는 가운데, 의원들은 오전 1시경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안건으로 상정했다. 1분 후 의원 190명은 만장일치로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계엄 선포 후 약 2시간35분이 지나 가결된 것이다. 행정부는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막을 권한이 없으므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이때 사실상 마감됐다. 계엄군은 국회 본회의 통과 후 약 10분이 지난 오전 1시11분부터 국회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대통령의 계엄 해제가 있을 때까지 계엄사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이 오전 4시26분 제2차 대국민 담화를 진행하고, 오전 5시4분 국무회의서 계엄 해제안이 의결되면서 약 6시간37분 동안 진행된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는 마무리됐다. 6시간 동안 이어진 충격과 공포 해제 의결에 적극 가담한 친한계 헌법 제77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전시·사변·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 발생 시 군사상 필요·공공의 안녕질서 유지 필요가 있을 때 한정해서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시 언급한 사유들이 과연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법률적 요건을 떠나, 윤 대통령으로서는 선포 당시 열거한 이유로부터 큰 위기감을 느꼈고,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전시·사변·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국회는 정부 출범 이후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소추를 발의했고, 22대 국회 출범 후 10명째 탄핵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2022년 12월11일 소속 의원 169명 전원이 참여해서 이태원 압사 사고에 대한 책임을 명분으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가결했다.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민주당과 정의당은 지난 2023년 2월 이 장관을 탄핵심판으로 넘겼다. 이는 헌정사상 최초의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였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같은 해 7월25일 만장일치로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를 기각했다. 야권의 탄핵소추는 이동관·김홍일·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이어졌고, 직무대행을 맡던 이상인 전 부위원장도 탄핵소추 대상이 됐다. 이 전 위원장·김 전 위원장·이 전 부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는 사퇴로 인해 폐기됐다. 사퇴하지 않았던 이 위원장은 탄핵안이 가결돼 현재 헌재서 탄핵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대선 출마 이후 윤 대통령과 줄곧 가까웠다. 김 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검사 재직 당시 상관인 서울중앙지검 3차장을 지냈다. 이 전 부위원장도 BBK 특검보를 지냈고, 윤 대통령은 당시 파견검사였다. 이후엔 윤 대통령과 가깝게 지냈던 검사들이 집중적으로 탄핵 소추됐다. 손준성·이정섭·강백신·김영철·엄희준·이창수·최재훈·조상원 등 탄핵 소추된 검사 대부분은 윤 대통령과 근무연으로 묶여있다. 이 중 강백신·김영철·조상원 검사는 윤 대통령이 ‘스타’로서의 위상을 굳혔던 ‘최순실 특검’에 함께 파견됐다. 손 검사는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재임 당시 핵심 요직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을 맡았고, 이정섭 검사는 윤 대통령의 대검 중수2과장 재직 당시 검찰연구관이었다. 엄 검사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재임 중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요직 배치를 요구했다. 이창수 검사는 윤 대통령의 총장 재직 당시 대변인이었고, 최 검사는 정보관리담당관이었다. 이들이 탄핵 소추되는 것을 보는 윤 대통령의 기분을 대변하는 옛 드라마 대사가 있다. 지난 2007년 방영된 KBS2 드라마 <한성별곡-정>의 임금은 수도 이전과 개혁을 추진하다가 독살당했다. 독살당하는 순간, 임금은 “신료들도 백성들도 나를 탓하기에 바쁘고, 나의 간절한 소망을 따랐다는 이유로 소중한 인재들이 죽어 나간다”고 한탄했다. 윤 대통령에게 그들은 ‘소중한 인재들’이었을 것이고, 그들에 대한 탄핵소추는 ‘죽어 나가는’ 것이었을 개연성이 있다. 특활비 삭감 표면적 이유 자신의 국정운영은 ‘간절한 소망’이었을 가능성이 크고, 국민과 야권의 비판은 ‘나를 탓하기에 바쁜’ 일이었을 것이다. 임금은 세자에게 양위한 후 자신은 수원 화성으로 옮겨 친위부대 장용영을 끼고 한양을 압박하는 친위 쿠데타를 기획했다. 윤 대통령과는 달리, 임금은 “반대하는 신하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내가 백성들을 설득하지 못해 지는 것”이라는 자기반성도 잊지 않았다. 측근 탄핵 못지않게 큰 위기감을 느꼈을 사안은 예산안이었다.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달 8일 2025년도 검찰 예산안을 확정하면서 특수활동비(이하 특활비) 80억9000만원과 특정업무경비(이하 특경비) 506억91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정청래 법사위원장(민주당)은 “내역이 입증되지 않는 것은 전액 삭감하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고 주장했다. 법사위 내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장을 맡은 민주당 장경태 의원도 “이렇게 성역과 예외와 특혜가 많은 부처는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서 이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대통령실 특활비 82억원 ▲경찰 특활비 약 31억 원 ▲감사원 특활비·특경비 60억원도 전액 삭감됐다.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필요한 활동에 소요되는 경비라서 영수증을 남기지 않는다. 사실 그동안 특활비는 적잖은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 2017년 4월엔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 서로의 휘하에 있는 후배 검사들에게 1인당 100만원 상당 돈 봉투를 건넨 정황이 밝혀져 정국이 발칵 뒤집혔다. 이 돈의 출처는 특활비였다. 인터넷언론 <뉴스타파>와 시민단체들은 검찰의 특활비 사용명세를 확인하기 위해 정보공개청구와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이어 큰 파문이 발생했다. 원래 밀봉해 보관해야 할 특활비 자료 중 사라진 명세들이 다수 확인됐고, 특활비가 기밀수사와 무관하게 정기적으로 후배 검사들에게 지급된 정황이 확인됐다. 큰 수사가 있을 때마다 지출이 있었다는 것을 토대로 “포상금으로 사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증빙 없이 특활비를 무단 사용한 정황과 별도 계좌·이중 장부가 사용된 정황도 확인됐다. 업무 추진비 사용명세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특활비의 정당성을 재차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의 특활비 전액 삭감 처리에 대해 “국가 본질 기능과 마약범죄 단속, 민생 치안 유지를 위한 모든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서 국가 본질의 기능을 훼손했다”며 “대한민국을 마약 천국, 민생 치안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성토했던 것은 ▲재해 대책 예비비 1조원 삭감 ▲아이 돌봄 지원 수당 384억원 삭감 ▲청년 일자리·심해 가스전 개발사업 등 4조1000억원 삭감 ▲군 간부 처우 개선비 제동 등이었다. 표적은 민주당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지난 1일 기자간담회서 “역대 정부서 예비비는 1조5000억원 이상 사용한 예가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소속 예산안심사소위 위원들도 지난 2일, 아이 돌봄 지원 수당·청년 일자리 예산 삭감에 대해 “여야가 이미 감액을 합의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94년 2월부터 2021년 3월까지 변호사로 활동한 1년을 제외하고 약 26년 동안 검사로 재직했다. 윤 대통령도 특활비가 친숙하게 여겨졌을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도 담화 중 특활비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했다.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즉위하기 전엔 많은 땅을 거느린 ‘땅 부자’였다. 그를 즉위시킨 이성계 세력은 토지개혁을 시도했다. 정도전은 가족 수에 따라 백성들에게 토지를 나눠주는 계민수전을 주장했다. 조준은 경기도 내 토지에 한정해 관리들에게 수조권을 부여하고, 다른 지역 토지는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과전법을 주장했다. 두 안 모두 분명한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고려의 모든 사전(私田)을 빼앗아 국유화한다”는 것이었다. 고려에선 많은 전란을 극복하는 과정서 공신들에게 나눠줄 땅이 부족해져 같은 땅을 여러 사람에게 반복해서 나눠주는 사태가 발생했다. 따라서 땅 하나에 2명 이상의 주인이 각자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백성으로부터 반복해서 세금과 소작료를 가져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성계 세력에 반대했던 보수파 이색도 최소한 소유권을 분명하게 정리하는 일전일주제를 주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보수파엔 정예 사병 가별초 2000여명을 거느린 이성계에게 대항할 수 있는 무력이 없었다. 최영은 위화도회군 이후 축출됐다. 이성계를 견제하던 조민수와 변안열도 위화도회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퇴출됐다. 정도전과 조준은 이성계의 무력을 기반으로 토지 몰수를 시도했다. 이성계의 선택은 과전법이었다. 과전법이 발표돼 많은 백성이 기쁨의 눈물을 흘릴 때, 공양왕은 슬퍼 눈물을 흘렸다. 개인 소유 토지가 모두 몰수됐기 때문이다. 비상계엄 사유로 특활비 삭감을 내걸었다는 것은 두고두고 회자될 가능성이 크다. 특활비에 대한 국민적 비판 여론이 높은 가운데, 윤 대통령은 반대로 “특활비가 삭감돼 민생 치안 공황 상태가 됐다”고 성토했다. 혹시 ‘윤석열 검사의 특활비’는 ‘공양왕의 개인 소유 토지’와 비슷한 의미였던 걸까? 고려 멸망 공민왕·공양왕 윤 대통령도 같은 길 걷나 비상계엄이라는 뜬금없는 선택을 하게 된 진짜 역린은 두 글자 안에 숨어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 두 글자는 ‘특검’이다. 특검은 딱 1번 언급됐다. 꾹 참고 숨기려다가 참다못해 터져 나왔던 1번이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띈다. 야권이 끈질기게 발의했던 특검의 대상자는 김건희 여사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다. 이 중 김건희 특검법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국회로 돌아와 오는 10일 재표결이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지난 7일, 본회의서 부결 처리됐다. 그렇다면 담화 중 언급된 특검은 김건희 특검법일 가능성이 높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는 지난 10월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카카오톡 갈무리 사진 1장을 올렸다. 김 여사와의 대화였다. 김 여사는 대화서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를 용서해달라”며 “무식하면 원래 그런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사과드린다”며 “오빠가 이해 안 간다, 지가 뭘 안다고”라고 덧붙였다. 이 ‘오빠’를 두고 “김 여사의 친오빠를 가리키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문제 제기도 있었다. 명씨는 “내가 김 여사의 친오빠와 토론했겠느냐”고 주장하다가 “친오빠가 맞다”고 번복했다. 하지만 다수설은 여전히 윤 대통령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수설대로 해석하면, 윤 대통령이 김 여사를 향한 반복적인 특검법 발의에 왜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로부터 부부의 굳건한 잉꼬 금슬을 확인할 수 있다. 김 여사가 취임 기념 만찬서 윤 대통령의 샴페인 음주를 눈짓으로 막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이 영상과 명씨가 공개한 카톡에 대한 다수설을 조합하면 자연스러운 흐름이 보인다. 아울러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와 통화했던 ‘황금폰’을 민주당에 제출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 부부의 금슬에 비견할 수 있는 부부로는 고려 공민왕·노국공주 부부가 확인된다. 공민왕은 즉위 후 아내의 지지를 기반으로 고려를 통치했다. 노국공주는 원나라 공주였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반원 정책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또 원나라 공주라는 신분을 반대파 압박에 사용했고, 부정부패도 저지르지 않았다. 공민왕은 아내의 강력한 지지를 토대로 친원파를 숙청했고, 북진정책을 추진했다. 측근 김용의 반란 당시 공민왕을 지킨 사람도 노국공주였다. 그런 노국공주가 출산 중 사망하자, 공민왕은 완전히 무너졌다. 이후 공민왕은 무명의 승려 신돈에게 국정 일체를 맡기고, 자신은 아내의 영전 공사에 몰두하는 등 기이한 행각을 일삼다가 암살당했다. 윤 대통령의 아내 사랑에 대해선 2개의 반응이 있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5월14일 “자기 여자 하나 보호 못하는 사람이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겠느냐”면서 윤 대통령을 두둔했다. 국민들 막았다 하지만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지난 2023년 12월14일 <폴리뉴스> 칼럼서 “자식을 사랑했기에 자식을 법의 심판대에 세워 속죄의 기회를 마련해줬던 YS(고 김영삼 대통령)·DJ(고 김대중 대통령)·MB(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하는 것이 진정 아내를 위한 길이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아내를 너무 사랑하고 의존했던 공민왕은 고려의 문을 닫았다. 반대로 가혹하게 처남들을 숙청했던 태종 이방원은 조선왕조 500년 기반을 닦았다. 따뜻한 남편의 길과 훌륭한 대통령의 길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아내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분노가 군을 동원한 진짜 이유였을까? 공민왕과 고려의 몰락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