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37·38) 파, 표고

귀하지 않지만 몸에 좋은…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식재료 이력서>엔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이 담겨 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파 ⓒpixabay

문득 육체 노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순간들이 생각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면 영락없이 파김치가 됐던 상황들 말이다.

파김치가 되다, 파김치가 익으면 단단했던 파의 기다란 줄기가 축 늘어진다는 이유로 그에 빗대어 ‘사람이 몹시 피곤하고 기운이 다해 사지가 늘어지고 나른해지다’라는 의미를 지닌 표현이다.

그런데 이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을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이런 이유로 고문서를 뒤지던 중에 흥미로운 글을 발견하게 된다.

이덕무의 시문집 <청장관전서>에 실려 있다.

脚軟如葱葅(각연여총저)

脚軟(각연)은 ‘다리가 연약하고 무력하여 서거나 걷기 곤란한 증상’을, 如(여)는 ‘처럼’을 그리고 이어지는 葱(총)은 ‘파’, 葅(저)는 ‘김치’를 의미한다.

위 문장은 ‘파김치처럼 다리에 힘이 쭉 빠졌네’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 조상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하필이면 파에 비유했고 또 언제부터 파를 김치로 담가 먹었던 것일까.

첫 번째에 대한 해답은 이규보의 시문집에서 구해본다.


<동국이상국집>에 실려 있다.

萬疊山深嵐翠重(만첩산심람취중)
만 겹 깊은 산 푸름 이내 짙으니
恰如瓊壁立靑葱(흡여경벽립청총)
석벽은 푸른 파가 서 있는 듯하네 

瓊壁(경벽)은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옥으로 된 벽’이다.

이를 확대 해석하면 옥처럼 푸른 빛을 띤 봉우리 즉 푸르게 깎아지른 산봉우리를 의미하는데 그 모습이 푸른 파(靑葱)와 같다고 했다. 

즉 우리 선조들은 파를 기세등등한 채소의 상징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무 따위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모습을 살피며 울울총총(鬱鬱蔥蔥)이란 말이, 이어 ‘파김치가 되다’라는 표현이 생겨난 것이다.

참고로 蔥(총) 역시 파를 지칭한다.

다음은 식품의 보조 재료인 파를 언제부터 김치로 담가 먹었느냐에 대한 의문이다.

아쉽지만 파김치는 조선 중기부터 등장하는데 이를 감안하면 파로 김치를 담가 먹은 시점은 상당히 늦은 듯 보인다. 

그런데 왜 우리 조상들은 파를 즐겨먹었을까.

그 해답을 이응희의 작품 ‘파’(葱, 총)에서 찾아보자.

味苦溫腸胃(미고온장위)
맛은 매워 장과 위 따뜻하게 하고
津甘補腎陰(진감보신음)
진액은 달아 신장 기능 도와주네
田翁長取食(전옹장취식)
시골 늙은이 오랫동안 먹으니
居下病難侵(거하병난침)
미천하지만 병에 걸리지 않네


이응희에 의하면 파가 신장 기능을 도와준다고 했다. 신장 즉 콩팥의 기능에 대해 살펴보자.

서울대학교병원 신체기관정보에서 인용한다.

「첫째는 대사 산물(중간 산물) 및 노폐물을 걸러서 소변으로 배출하는 배설 기능, 둘째로 체내 수분량과 전해질, 산성도 등을 좁은 범위 안에서 일정하게 유지하는 생체 항상성 유지 기능, 셋째로 혈압 유지, 빈혈 교정 및 칼슘과 인 대사에 중요한 여러 가지 호르몬을 생산하고 활성화시키는 내분비 기능을 한다.」

이를 살피면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파김치로 변한 몸을 파김치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 말이다.

결국 결자해지 차원에서, 파김치 상태에 처하지 않기 위해서는 파를 즐겨 먹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파를 서거정이 놓칠 리 없다. 

그의 작품 ‘파’(葱, 총)이다. 

五葷人所戒(오훈인소계) 
사람들은 오훈 경계하는데
我病不能無(아병불능무) 
나는 병으로 먹지 않을 수 없네
箇箇黃金本(개개황금본) 
하나 하나가 황금 뿌리 같고
鬆鬆白雪鬚(송송백설수) 
더부룩한 게 흰 눈 수염 같네
多功扶藥餌(다공부약이) 
약으로 도움 준 공도 많고
有味助庖廚(유미조포주) 
맛있어 식탁에 입맛 돕네
三斗誰能食(삼두수능식) 
누가 세 말 먹을 수 있나
鹽梅小所須(염매소소수) 
염매보다 덜 필요하네

五葷(오훈)은 자극성이 강한 다섯 가지 채소를, 鹽梅(염매)는 앞서 매실에서 등장했듯 소금과 매실을 지칭한다.

내친김에 쪽파를 노래한 김창업의 작품을 감상해본다.

水晶葱 俗名紫葱(수정총 속명 자총) 
수정총, 속명은 자총이다

有號水晶葱(유호수정총)
수정총이라 불리는 게 있으니
葱葉而蒜根(총엽이산근)
파 잎사귀에 마늘 뿌리네
此物爽人口(차물상인구)
이 물건 입 시원하게해주고
可同葷臭論(가동훈취론)
동시에 매운 냄새도 지니고 있네 

‘파김치’로 변한 몸은 ‘파김치’로 해결
황제의 반찬에서 ‘덜 귀한’ 음식으로

표고

표고를 논하기 전에 버섯의 종류를 살펴보자.

능이, 송이, 석이, 목이. 팽이, 양송이 등 거의 모든 버섯을 ‘이’라 지칭한다.

귀를 의미하는 耳(이)가 귀뿐만 아니라 버섯처럼 귀 모양을 지니고 있는 물체를 지칭하기 때문으로, 그런 이유로 버섯을 ‘이’로 지칭했다.

그런데 표고는 ‘이’라 하지 않고 표고(蔈菇)라 명명하고 있다.

왜 여타의 버섯처럼 ‘이’라 하지 않고 표고란 독특한 이름을 지니고 있을까. 

참고로 뽕나무에서 자라는 상황(桑黃)버섯은 현대에 들어 ‘누런 뽕잎’을 살피며 붙인 이름으로 결국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했던 버섯들은 거의 모두 ‘이’로 지칭된다는 사실을 밝힌다. 

이를 염두에 두고 표고란 이름에 접근해보자.

표고의 蔈는 능소화를 菇는 버섯을 지칭한다.

능소화는 시들 때까지 피어있지 않고 절정의 시기에 스스로 꽃을 떨군다.

이런 특성 때문에 명예를 상징하는 꽃이다.

표고(蔈菇)는 능소화 같은 버섯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표고가 가장 귀하게 대접 받았다.

실례를 들어보자.

조선왕조실록 문종 즉위년(1450년) 10월2일의 기록이다.

우부승지 이숭지에게 명해 두 사신에게 문안하게 하니, 윤봉이 말하기를 “원컨대 표고를 얻어 황제에게 바치고자 합니다”라고 했다. 
(버섯은 나무에서 나는 것인데, 세속에서 이를 표고라 한다)
命右副承旨李崇之, 問安于兩使臣, 尹鳳曰: "願得蔈古, 以獻于帝." 
(菌之生於木者, 俗謂之蔈古)

蔈古의 古는 菇의 약자로 보이는데, 윤봉은 조선 출신 명나라 환관으로 당시 명의 사신으로 조선을 방문 중이었다.

명나라 황제에게 표고를 바치고자 하는 그의 충정과는 별도로 표고가 황제의 밥상에 올라가는 귀한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상기 글 마지막 부분이 흥미를 끈다.

‘버섯은 나무에서 나는 것인데, 세속에서 이를 표고라 한다’라는 대목이다.

이를 살피면 조선 초까지 모든 버섯을 표고라 지칭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까지 일어난다. 

그런데 표고가 현대에 들어 능이, 송이, 석이, 목이에 비해 덜 귀하게 취급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인공재배에 있다.

표고는 인공재배가 가능하고 또 오래전부터 인공 재배됐기 때문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역시 조선왕조실록 영조 시절 기록을 간략하게 요약해본다.

영조 시절 부역을 위해 제주도에서 올라온 노비 중 한 사람이 영조에게 표고를 바치면서 아뢴 말이다. 

“신 등이 멀리 떨어져 있는 바다 가운데 살면서 자주 흉년을 만났지만, 굶어 죽는데 이르지 않았던 것은 진실로 우리 성상께서 곡식을 옮겨 구휼하신 은혜에 말미암았으니, 신 등이 비록 지식은 없으나 어찌 은혜에 감격하는 마음마저 없겠습니까?”

이에 감복한 영조는 이 노비가 바친 표고를 인원왕후(아버지 숙종의 계비)의 빈전에 바치도록 한다.

이 일로 당사자인 노비는 자신을 포함해 아들과 손자들 모두 영원히 천인 직을 면하는 보상을 받게 된다.

여하튼 표고가 영조 시절 구황작물로 이용됐듯이 오래전부터 인공재배가 가능했다.

이에 따라 일반에게 가장 손쉽게 가까이 가게 되면서 덜 귀한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이를 살피면 단지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귀하게 대접받지 못하는 표고가 은근히 애처로워진다.

그러나 표고의 진실을 조금이라도 알고 섭취한다면 그 만족감은 배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표고라는 이름 자체에 버섯이 내재돼있으므로 표고버섯이 아닌 표고로 지칭함이 옳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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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사법개혁 진짜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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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사법개혁안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사법부가 빌미를 제공했단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당리당략을 위해 허점이 많은 법안을 밀어붙인단 비판도 있다. 대통령 재판중지법 추진을 엮어 이재명 대통령까지 패로 쓰려 했던 민주당의 진짜 속내는 뭘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지난달 20일 ▲대법관 증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변경 ▲법관 평가에 변호사협회 평가 반영 ▲하급심 판결문 전면 공개 ▲압수수색 영장 발부 전 사전심문제 도입 등 5대 사법개혁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법 왜곡죄 신설과 재판소원 제도는 별도로 추진할 예정이다. 5대 개혁안 확정 발표 민주당의 사법개혁안 발표 이후 대법원과 야권은 즉각 반발했다. 대법원이 특히 반발했던 개혁안은 대법관 증원이었다. 민주당 안에 따르면, 현행 14명인 대법관은 4년 동안 매년 4명씩 늘려 30명까지 채운다.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내에 신임 대법관 16명과 임기 만료 후 교체되는 대법관 10명 등 총 26명을 임명한다.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실에 “대법관 증원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대법원은 “대법관 과반수 또는 절대다수가 일시에 임명되면, 정치적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후임 대법관 임명 때마다 논란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도 지난달 22일 국회서 진행된 ‘민주당의 입법에 의한 사법 침탈 긴급 토론회’에서 “민주당의 사법개혁안은 사법 해체안”이라며 “사법부의 중립성은 온데간데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사법부 스스로 민주당에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빌미로 작용하는 구체적 사례는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부장판사의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 취소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등이다. 지 부장판사는 지난 3월 윤 전 대통령 측의 구속 취소 청구를 인용했다. 핵심 근거는 “수사 관련 서류가 법원에 있었던 시간은 구속기간에 산입하지 않는 게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이어 “기술이 발달해 정확한 서류 접수·반환 시간을 확인할 수 있고, 관리하는 게 어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을 시간 단위로 계산한 후 “구속 기한이 만료됐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 제66조 제1항은 “구속기간의 초일은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1일로 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 부장판사가 집필에 참여해 지난 2022년 발간된 <주석 형사소송법>도 “구속기간 계산은 시간이 아닌 일(日)로 한다”며 “구속기간은 날짜 단위 계산법을 따른다”고 명시했다. 검찰이 지 부장판사의 구속 취소에 즉시항고를 제기하지 않아 반발은 더욱 커졌다. 이후 지 부장판사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재판을 비공개하거나 “보석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밝히는 등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 5월부터는 “고급 룸살롱에서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대법원은 제21대 대통령선거를 33일 앞둔 지난 5월1일 이 대통령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지난 3월28일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이 대통령 사건 기록을 받았고, 4월22일 전원합의체에 넘겼다. 이로부터 불과 9일 후 상고심 선고가 진행됐기 때문에 논란이 발생했다. 빌미 제공한 사법부에 몰아치는 민주 왜? 당리당략 위해 여야 번갈아 “대법관 증원” 민주당은 “기록 6만쪽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졸속 재판”이라고 반발했다. 법원 내부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초고속 절차 진행”이라며 “대법원은 왜 정치를 하느냐는 국민적 비판까지 감수한 무리한 행동을 하느냐”는 반발이 나왔다. 이후 범여권은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사법개혁안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특유의 일사불란한 몰아치기 전술로 사법개혁안을 한꺼번에 처리하려 하고 있다. 보복을 위해 대법원을 무력화하려는 것일 가능성도 스스로 노출하고 있다. 사법개혁안 중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추진 ▲법 왜곡죄 신설 등이다. 대법관 증원론은 1994년부터 제기됐다. 상고허가제는 밀려드는 상고심 접수에 대응하기 위해 1981년부터 운영됐다가 위헌 논란이 제기돼 1990년 폐지됐다. 대법관 증원론은 상고허가제 폐지 이후 대안으로 거론됐다. 대법원은 당시에도 반대 의견을 밝혔다.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심리불속행 기각 특례는 1994년 도입됐다. 하지만 상고심 접수는 나날이 늘었다. 지난해에 접수된 상고심 접수 건수는 동일인에 의한 과다 소송을 제외하면 1만3026건이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설치를 시도했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사건만 전담하고, 상고법원은 그 외 상고심을 맡아 사실상 4심 법원 체제로 운영하려던 시도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법원행정처를 내세워 ▲불법 로비 ▲재판 거래 ▲판사 사찰 등을 저질렀단 의혹이 불거졌다. 양 전 대법원장 등 당시 대법원 수뇌부는 현재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상고허가제는 “국민이 상고심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있어 섣불리 꺼내기 어렵다. 상고법원 설치는 금기시됐다. 심리불속행 기각 특례는 누가 봐도 한계에 부딪힌 지 오래다. 남은 대안은 대법관 증원밖에 없다. 하지만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론이 거론될 때마다 강하게 반대해 왔다. 사법부는 1994년에도 “인구 1억2000만명인 일본의 대법관 수도 15명”이라며 “법령 해석의 통일이라는 대법원의 고유 기능 측면에서 볼 때, 대법관 13명도 많은 숫자”라고 주장했다. 이후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론이 제기될 때마다 ▲전원합의체 유지 ▲파기환송 증가로 인한 송사 비용 증가 ▲재판 지연 ▲인사청문회·임명 지연 등 논점을 제시하면서 반대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정략적으로 접근한다. 국민의힘의 전신 한나라당은 지난 2010년 우리법연구회 좌편향 논란을 제기하면서 대법관 증원을 시도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비법관 출신 8명을 포함해 대법관을 24명으로 늘리자”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명박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하려고 한다”며 반발하는 등 현시점에선 기시감이 느껴지는 상황이 이어졌다. 대법원은 당시에도 크게 반발했다. 여야는 대법관을 20명으로 늘리기로 합의했다가 곧 백지화시켰다. 돌고 도는 직권남용 당시 한나라당이 우리법연구회 소속 법관들을 겨냥해 대법관을 늘리기로 한 것처럼, 민주당도 대법원의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이후 급하게 대법관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 재판에 대한 보복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발생했다. 우리 정치권은 눈앞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긴 안목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을 급하게 밀어붙여 부작용을 양산하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법 왜곡죄 신설은 지난해에 이어 다시 추진된다. 범여권은 꾸준히 법 왜곡죄 신설을 시도했다. 제20대 국회에선 정의당 심상정 전 의원이 발의했으나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제21대 국회에선 민주당 김남국 당시 의원(현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이 발의했다. 지난해엔 민주당 이건태 의원이 발의했다. 지난해까진 검사·사법경찰관 등 수사 업무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발의됐으며, 이번 추진엔 법관도 포함된다. 1년여 동안 법관도 법 왜곡죄 적용 대상에 포함돼야 할 정도로 달라진 변수는 지 부장판사 관련 논란과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엔 심각한 오류들이 있다. 민주당은 이미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쪼개는 검찰 해체 법안 통과를 완수했다. 이에 따르면, 중대범죄수사청에 소속될 검사는 수사관 신분으로 전환된다. 공소청에서 근무할 검사는 기소·공소 유지만 맡는다. 부장검사를 지낸 김상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는 지난 6월 발표한 <법 왜곡죄에 관한 소고>에서 “기소 이후엔 절차 지휘권이 법원으로 넘어간다”며 “검사는 판사에 의한 법 왜곡죄의 공범으로 가담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해체 이후 검사에겐 수사권이 없고, 공소 유지는 법관이 전담하는데, 검사가 어떻게 법 왜곡죄를 저지르는 주체가 되느냐”는 취지의 반박이다. 김 부교수는 법관을 법 왜곡죄 적용 대상에 포함하는 민주당의 시도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법 왜곡죄 도입이 특정인의 특정 사건을 염두에 두고 추진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도저히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해 법안엔 검사 등 수사기관으로 규율 범위가 한정됐지만, 대법원이 특정인에게 불리한 판결을 선고하자, 12일 만에 법관을 적용 대상에 추가해 발의했다”고 꼬집었다. 대통령 구하기? 그러면서 “이 의심은 막연한 추정이 아니라 고도의 개연성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 왜곡죄는 독일 형법으로부터 비롯됐다. 독일의 법 왜곡죄는 “법관 등이 재판 등을 하면서 당사자 일방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법을 왜곡하면 징역형에 처한다”는 취지의 법률이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다른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면 처벌한다”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이하 직권남용죄)의 법관 전용 특별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법 왜곡죄에 대해선 “법관에 대해서도 이미 있는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 있다”면서 “굳이 신설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아울러 직권남용죄에 대해서도 “정치권이 정치 보복 목적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다수의 고위공직자에게 직권남용죄가 본격적으로 적용된 시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루자들에 대한 것이었다. 이후 출범한 문재인정부의 검찰도 박근혜정부 인사들에게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기소하는 사례가 많았다. 문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을 지내면서 직권남용죄를 다수 적용했던 사람은 바로 윤 전 대통령이었다. 실제로 검찰의 직권남용죄 총처분 건수는 2011년 4057건서 2020년엔 1만4050건으로 늘어난 통계도 제시됐다. 직권남용죄에 대해선 “개념이 모호해서 악용될 소지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무원의 직권은 어디까지인지, 무엇이 남용인지, 직권과 행사에 방해를 받은 권리에 인과관계가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취지의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이렇게 하면 범죄가 성립돼 처벌을 받는다”고 명확하게 규정돼야 한다는 법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 수사·기소를 하는 수사기관과 판단을 하는 법관의 재량에 판단이 좌우되는 일이 많다. 권성 전 헌법재판관은 지난 2006년 직권남용죄에 대한 헌법소원 당시 “조항이 모호해서 정권교체 후 정치 보복을 위한 고위공직자 처벌에 이용될 우려가 있다”며 위헌 취지의 소수 의견을 냈다. 이 파기환송에 “판사 법 왜곡 처벌” 수사권 없어지는데 검사도 포함 추진 권 전 재판관은 지난 2022년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용을 방지하려면 요건을 명백히 규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위헌 의견을 냈다”며 “우려했던 현상들이 현실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가 의견을 밝혔을 때 서둘러 개정했다면,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진 않았을 거라서 아쉽다”고 덧붙였다. 권 전 재판관이 발언했던 시점은 윤 전 대통령 취임 후 약 5개월이 지난 시기였다. 문정부도 직권남용죄의 함정에 빠져, 문 전 대통령 재임 중인 지난 2019년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등이 직권남용죄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에 대한 징역 2년형을 확정했다. 산업통상자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통일부에 대해서도 “인사권과 관련된 직권남용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연루돼 기소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은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 2022년 10월엔 ‘서해 피격 공무원 월북 조작’ 의혹과 관련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 문정부 인사들이 불구속 기소됐다. 문정부 검찰총장으로서 다수의 직권남용을 지휘했던 윤 전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 다수의 직권남용 혐의 때문에 구속 기소됐다. 민주당은 한동안 “대통령 재임 중엔 진행 중인 형사재판을 중지한다”는 취지의 대통령 재판중지법을 추진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전 다수의 형사재판을 받고 있었고,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던 사건도 있었던 현실을 고려한 법안 추진이었다. 발의 시점도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 다음 날인 지난 5월2일이었다. 민주당은 ‘국정안정법’이란 별명까지 붙여가면서 이달 안에 처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반발은 정작 대통령실에서 나왔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3일 “재판중지법은 불필요하단 게 대통령실의 일관적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도 “여당에 사법개혁안 중 대통령 재판중지법 제외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후 “민주당이 이 대통령까지 옭아매 패로 쓰려던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다. 대통령 재판중지법에 따르면, 현직 대통령이 받는 형사재판은 임기 중에만 중지된다. 퇴임 이후엔 다시 진행되기 때문에 유죄를 선고받으면 수감 생활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따라서 일각에선 “진짜 이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공소 취소”라고 주장한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지난 6월 “공소를 취소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후 비판받은 사람은 민주당 정청래 대표였다. ▲유엔 총회 ▲아세안 정상회의 ▲APEC 정상회의 등 이 대통령의 정상외교 일정이 겹친 시기에 대통령 재판중지법을 강하게 추진한 사람이 정 대표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대통령을 구했다는 프레임을 설정해서 당 대표 재선에 활용하고, 차기 대권까지 노리려는 것”이란 일각의 분석도 나온다. 법률적 이해관계 민주당의 사법개혁안엔 이 대통령의 법률적 이해관계가 묶인 내용이 다수 포함돼있다. 아울러 “특정 정치인이 자기 정치를 위해 현임 대통령까지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법률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오류에 대한 지적에도 개의치 않는다. “보복·당리당략·자기 정치를 위해 막 던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는데도 특유의 몰아치기가 작동한다. 민주당이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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