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꿈이 현실로’ 야구광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11.30 13:08:14
  • 호수 12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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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분 째지는 ‘택진이형’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게임과 야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인물이 있다. 바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다. 김 대표는 게임계에 한 획을 그었지만 마음속엔 항상 야구에 대한 갈망이 컸다. 드디어 김 대표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의 한 페이지마저 장식하는 인물이 됐다. 
 

▲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2020년 한국 시리즈 중계를 본 사람이라면 엔씨소프트 대표 게임 중 하나인 ‘리니지2M’의 광고도 한 번 이상 봤을 것이다. 이 광고는 실제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특수분장을 하고 나서면서 장안의 화제가 됐다. 

NC 다이노스
통합 우승 축포

엔씨소프트의 야구단 NC 다이노스가 지난 24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0시즌 KBO리그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두산에 4대 2로 승리했다. 이로써 시리즈 전적 4승2패로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1승2패에서 내리 3연승을 잇더니 정규 시즌에 이어 통합 우승의 축포도 터뜨렸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 NC 다이노스 선수들은 마운드 위에서 ‘형’을 기다렸다. 선수들에게 소년처럼 달려 나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던 이는 ‘택진이 형’이라는 친근한 별명으로 익숙한 이들의 구단주, 게임사 엔씨소프트의 수장 김 대표였다.

그는 우승의 순간 엔씨소프트의 히트 게임 리니지의 주요 아이템 ‘집행검’ 모형을 만들어 마운드 위에 올렸다. 집행검은 강함과 승리를 상징한다. 선수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눈물을 글썽거리던 주장 양의지는 대표로 집행검을 뽑은 뒤 선수들과 함께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1967년 3월14일 서울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어린 시절 무척 가난했다. 그의 아버지가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내서 집안이 급격하게 기울었기 때문이다. 빚쟁이들에게 얼마나 빚 독촉을 당했던지 아버지는 그 괴로움에 집을 떠난다. 어머니는 행방불명된 남편을 찾기 위해 갓난아기였던 김 대표를 업고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아 다녔다. 

김 대표의 어머니는 지인으로부터 지방의 한 낚시터에서 김 대표의 아버지를 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의 아버지는 사업 실패 후의 좌절과 고통으로 인해 자살을 결심하고 낚시터에 갔던 것.

하지만 하늘이 도왔는지 물에 뛰어들기 바로 직전에 낚시터를 찾아 나섰던 김 대표의 어머니와 마주치게 됐다. 순간 어머니의 등에 업힌 아들과 눈이 마주치자 아버지는 차마 물속으로 뛰어들 수가 없었다. 

김 대표는 초등학생 때 육상선수였던 만큼 운동신경이 남달랐다. 학교에서 달리기 대회를 하면 항상 1등을 했고 학교 대표로 지역대회에 출전해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대개 사람들은 스포츠를 통해서 경쟁심과 승부욕 등을 배우기 마련인데 특이하게도 김 대표는 겸손을 배웠다. 

지역구 대회에서는 선전했으나 정작 서울시 전체에서 개최하는 큰 대회에 나가서는 성적이 좋지 못했다. 세상에는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한때나마 자신이 대단한 육상선수라고 생각했던 본인이 세상 물정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점을 깨달았다.

글러브 대신 컴퓨터 잡아 성공
대학 시절 ‘한컴’ 만들어 주목

그는 이때부터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세상의 수없이 많은 고수들과 경쟁해서 최고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더 값진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김 대표는 이후 야구에 매료된다.

만화 <거인의 꿈>을 보며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중학교 시절에는 빠른 볼을 던지기 위해 팔과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녔으며 커브볼 책을 구해 본 뒤 몇 달간 밤새 담벼락에서 혼자 피칭 연습을 하곤 했다. 학창시절에는 변화구 전문 구원투수 노릇도 했다. 변화구를 잘 던지는 롯데 최동원 투수가 어릴 적 영웅이었다. 그러나 공부에 비해 야구 재능은 별로 없었다. 

김 대표의의 관심사는 과학 분야로 옮겨졌고 ‘과학의 기본은 수학’이라는 말에 수학도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이미 중학교 시절에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을 마스터할 수 있었다. 수학을 공부하면서 김 대표는 세상의 원리에 집착했다.

그는 라디오키트를 사서 조립하기보다는 기판을 보면서 기계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더 고심했다. 어린 시절부터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호기심 많은 소년이었던 김 대표지만 그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의사나 변호사 같은 남들이 보기에 근사한 직업을 갖고자 했다.
 

▲ 인사말하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의 방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완전히 새로운 미래를 선택하게 됐다. 동생 방에 개인용 컴퓨터(PC)의 효시인 애플2가 있었다. 그는 애플2를 보자마자 그야말로 한 눈에 반해 버렸고 컴퓨터의 세계에 빠져 버렸다.

오늘날 게임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크리에이터들이라고 할 수 있는 빌 로퍼(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존 카멕(둠, 퀘이크), 사카구치 히로노부(파이널 판타지)도 애플2를 통해서 개발자의 꿈을 꿨었다. 

그런데 김 대표는 다른 게임 크리에이터와 다르게 애플2를 통해서 무언가를 새롭게 개발하는기보단 컴퓨터의 근본적인 작동원리를 알고 싶어했다. 이에 따라 컴퓨터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를 연구하기 위해 김 대표는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재학 당시 대학생 동아리에서 한글과컴퓨터를 만들었으며 이후 한메소프트를 창업하기도 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박사 과정 시절 현대전자 보스턴 연구개발센터에서 파견 근무를 하다가 1996년 국내 최초 인터넷 기반 PC통신 ‘아미넷(지금의 신비로)’을 개발했다. 이후 동료 16명과 함께 이듬해 3월 자본금 1억원으로 엔씨소프트를 세웠다. 설립 초기에 마이크로소프트(MS)의 한국 공인지역 대표를 역임하는 등 개발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집행검
뽑았다

그는 1년 뒤 세상에 ‘리니지’를 내놓았다. 리니지의 대성공으로 넥슨과 함께 그는 PC온라인게임 시장을 개척하며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른다. 한국의 억만장자들은 상속받는 경우가 대다수라서 김 대표의 억만장자 입성은 IT 성공 신화로 한때 세간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인터넷을 정보의 바다로만 볼 때 그는 온라인을 엔터테인먼트의 장으로 해석했다.


리니지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은 2000년대 초반의 정부 사업이었던 PC방의 확장세였다. 리니지는 PC를 기반으로 한 게임이었기 때문에 PC방 사업 확장은 리니지에 날개를 달아줬고 지금의 리니지를 만들어내는 데 가장 핵심적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전에도 리니지는 이미 성공할 준비가 돼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게임도 쉽게 배울 수 없다면 그건 하나의 벽이 돼 플레이어를 가로막는다. 하지만 리니지는 마우스 클릭만 할 줄 알아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조작이 단순하다. 시작부터 마우스와 키보드를 동시 조작하며 복잡하게 움직이는 법을 배워야 하는 여타 게임들과는 달랐다.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게임은 누구나 한 번쯤은 건드려 볼 수 있다는 의미기도 했다.

또 만화의 세계관과 배경을 다중역할수행목적게임(MMORPG)으로 만들었다. 리니지의 배경인 ‘아덴 왕국’은 가상의 10세기 유럽이다. 왕과 영주, 기사가 영토로 계약을 맺는 봉건 시스템을 게임 무대의 사회적·경제적 근간으로 하고 있다. 게임 유저들은 더 강한 ‘신분 상승’을 노리게 되고 결국 자연스럽게 리니지 내에 ‘경제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

리니지에 빠졌던 청소년들은 나이를 먹어서도 게임을 계속하게 됐고 이른바 ‘린저씨’(리니지 하는 아저씨)가 되면서 씀씀이가 커지기 시작했다. 직장인이 된 린저씨들은 게임 아이템을 구매하는 데 거금을 썼고, 리니지 게임에 생명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이후 리니지는 두 번째 시리즈인 리니지2를 출시해 큰 인기를 얻었고 PC게임에서 모바일게임으로 넘어가자 리니지2레볼루션, 리니지M, 리니지2M 등을 출시하며 인기를 이어 나갔다. 그러면서 엔씨소프트의 주가도 더불어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엔씨소프트는 넥슨, 넷마블과 함께 게임업계를 선도하는 빅3 게임사로 자리매김했다.


컴퓨터가
인생을 바꾸다

그러던 2011년 스포츠계에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진다. IT기업인 엔씨소프트에서 야구단을 창단한 것이다. 김 대표가 프로야구팀 NC 다이노스를 창단할 때만 해도 주변에서는 기대보다 우려가 훨씬 컸다.

1군 참가를 결정했을 때는 주변 구단들의 공공연한 반대에 시달렸다. 대기업만 있을 것 같던 프로야구 판에 중소기업이 끼어들었다가 자칫 전체 열기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2013년 3월 창단 승인식 당시 김 대표는 “온라인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청소년들에게 야구 서비스를 제공해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일부 지기 위해 창단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행동으로 약속을 지켰다.
 

대표적으로 다이노스 홈구장인 창원 NC파크는 장애인 친화구장으로 첫손에 꼽힌다. 계단 턱이 없는 것을 시작으로 휠체어 전용 창구,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바비큐 좌석까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김 대표의 의중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는 “산업보국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산다”고 했다. 야구단을 창단해 게임기업도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한때 꼴찌로 내려앉는 수모를 겪기도 했으나 급반등할 수 있었던 것은 창단 때부터 김 대표의 전폭적인 투자와 지원이 덕분이다. 

실제로 야구단 창단 이후에도 매년 창원에 내려와 직관을 하고 적극적으로 구단 운영을 지원하는 등 창단 당시 나왔던 우려들을 지워내고 있다. 또 구단에 대한 관심에 비례해 선수단과의 소통도 활발한 편이다.

2018시즌 종료 후 선수단을 초청한 자리에서 모창민이 김택진 구단주에게 “양의지는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며 양의지의 영입을 요청하자 본격적으로 영입 검토를 지시했고, 결국 4년 총액 125억에 양의지를 영입했다.

회사 자체는 다른 구단에 비해서 규모가 크지 않음에도 구단주의 의지에 힘입어 통 큰 투자를 보여줬다. 양의지의 NC 다이노스 행에 팬들도 격하게 환영했다. 특히 팬들은 양의지의 영입이 확정되자 리니지와 양의지를 합쳐 ‘린의지’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신임 감독도 구단과 철학을 공유하는 인물로 정했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 혹은 유명한 지도자 대신, 구단 창단 때부터 코치로 함께한 이동욱 감독을 임명했다. ‘파격적 선택’이란 시선도 있었지만, 구단 내부 평가는 전혀 달랐다. 이 감독은 창단 멤버로, NC 다이노스 선수와 코칭스태프는 물론 구단 문화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인사였다.

‘리니지 대박’ PC방 열풍 주역 
넥슨·넷마블과 게임업계 선도

무엇보다 수비 코치 시절부터 데이터 활용에 적극적인 지도자라 NC가 추구하는 야구를 누구보다 잘 구현할 인물로 꼽혔다. 적어도 구단에서 사다준 짜장면 재료를 갖고 짬뽕을 만들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김종문 단장과의 개인적인 친분도 두터워 서로 궁합이 잘 맞았다.

원래부터 NC 다이노스의 강점이었던 데이터 분석·활용 능력은 데이터 친화적인 이 감독을 만나 날개를 달았다.

외국인 선수 영입과 외부 FA(자유계약선수) 영입에만 활용하던 데이터를 시즌 준비 단계부터 전 선수단에 활용했다. 전 선수단과 코칭스태프에게도 태블릿PC를 지급해 언제든 필요한 데이터를 찾아볼 수 있게 했다. 그렇게 감독·코치·선수가 데이터 팀과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그 꿈과 목표의 첫 단추가 채워졌다. 9번째 구단의 첫 우승이 완성된 순간, 집행검 세리머니는 게임의 유니버스와 야구의 유니버스가 한 곳에서 만나 상징적인 의미를 더했다. 구단주가 아닌 양의지가 검을 뽑아들었다. 게임과 야구는 현실을 잊고 도망가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꿈을 꾸는 곳, 기회가 열리는 곳이 됐다.

한편 꾸준히 정치 입문설이 돌았던 김 대표가 이 같은 소문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김 대표는 지난달 27일 경기 성남 판교 엔씨소프트 본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미래산업일자리 특별위원회 현장 방문 및 정책간담회’ 이후 정치에는 관심이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전혀 없다. 나는(정치인이 아닌) 그냥 사업가”라고 강조했다.
 

이날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엔씨소프트를 직접 찾으면서 일각에선 국민의힘 차원에서 김 대표에 대한 영입 등 ‘러브콜’을 보낸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김 대표는 과거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던 미래한국당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당 차원에서 접촉을 시도했지만 김 대표가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로도 심심찮게 거론된다. 이날 김 대표가 공식적으로 이를 부인하면서 이 같은 정치 입문설 등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국회로?
정치 입문설

국민의힘 쪽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기업과 관련해 특별히 물어볼 게 있으면(김 대표와 다시) 만날 수 있겠지만 그 외에 꼭 만날 사항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날 공개발언에서도 특별히 정치 관련 얘기는 없었고, 이어진 비공개 간담회에서도 주로 인공지능(AI) 등 첨단 산업과 관련된 논의가 주를 이뤘던 것으로 전해졌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택진-윤송이 러브스토리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윤송이 엔씨소프트 신임 사장의 러브스토리는 비범하다.

김 대표와 윤 사장의 교제설은 지난 2007년 불거졌다.

같은 해 6월 모 일간지에 두 사람이 결혼식을 앞두고 제주도에 식장까지 예약했다는 기사가 보도되면서 교제설은 설득력을 얻었다. 

김 대표와 윤 사장은 당시 결혼설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발뺌했지만, 교제 사실은 부인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4년 3월.

당시 SK텔레콤 상무였던 윤 사장은 엔씨소프트 사외이사직을 겸하게 됐고 그때부터 김택진 대표와 연을 이어갔다.

이듬해 가을 무렵부터 두 사람이 이사회 자리가 아닌 곳에서 만나는 장면이 사람들에게 목격되기도 했다.

연인이 된 김 대표와 윤 사장은 결국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다. 1년여가 지나서야 두 사람은 결혼 사실을 공식화했다.

엔씨소프트는 2008년 보도자료를 통해 김 대표와 윤 사장의 출산 소식까지 알렸다.

서울대 출신인 김 대표는 31세에 엔씨소프트를 창업했고 ‘리니지’를 출시하며 우리나라 대표 온라인게임으로 성공시킨 인물이다.

윤 사장의 스펙도 이에 못지 않은데 29세의 젊은 나이로 국내 최대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 상무직에 올랐다.

윤 사장은 카이스트를 2년 만에 졸업하고 미 MIT 박사학위를 받은 ‘천재소녀’로도 유명하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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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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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처음에는 ‘설마, 그렇게까지?’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불과 1년여 만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말하지만 당사자는 거칠 게 없다는 태도다. 문제는 그 여파가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천조국’ 미국을 어디로 끌고 가는 걸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가 충격과 경악으로 물들고 있다. ‘이보다 더 놀랄 일이 있을까?’라는 반응이 거듭되는 모양새다. 되짚어 보면 이제 와 말이 안 된다고 하기엔 등장부터 파격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대선 출마를 선언할 당시에는 조롱과 웃음이 난무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를 선택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예상보다 더 파격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 기간 동안 공약으로 내세운 내용은 임기 중에 어떤 식으로든 진행했다. 그 공약이 ‘미치광이’ ‘사이코’ 등의 원색적인 비난으로 이어져도 요지부동이었다. 되레 외부 자극이 커질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더욱 거칠어졌다. 문제는 그 행보에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이 ‘유일한’ 패권국으로 군림하던 시기와 비견될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세계의 경찰’로 각국 상황에 관여했던 때보다도 영향력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그 배경으로 지목되는 게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세계 질서를 유지했던 틀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대표적인 게 관세 부과에서 비롯된 통상 전쟁과 국제 질서 유지를 내세운 타국에 대한 물리적 개입이다. 두 사안 모두 ‘평범한’ 미국 대통령이라면 생각은 해도 실제로 행하기는 어려운 내용이다. 당장 전 세계의 지도자가 반발할 테고 각국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이 겪어야 할 정치적 리스크가 매우 크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했고 또 하려 하고 있다. 모두가 ‘설마’라고 손사래 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1년 남짓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등을 미국 소유로 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냈다. 영토 확장이라는 제국주의 시기에나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을 공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무기’나 다름없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상대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전 세계와 통상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자리를 노리는 중국과는 서로 수천%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세계 경제를 흔들었다. 관세 부과로 흔들더니 그린란드로 공포 조장 과거 FTA 체결로 미국과의 무역에서 관세 0%를 유지했던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협상한 일본의 관세 부과율을 기본으로 깔고 조율이 이뤄졌다. 줄다리기 끝에 협상이 타결됐지만 관세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국가 간 외교에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전 세계가 통상 전쟁의 여파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영토 확장 문제가 불거졌다. 최근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군사 작전을 진행해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데려와 법정에 세운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베네수엘라 내부 상황을 언급했지만 속내는 석유라는 말이 나왔다. 베네수엘라는 제1의 석유 매장국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사업을 지배하겠다는 의지를 실행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를 차지하게 되면 세계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베네수엘라 석유를 등에 업은 미국이 세계 석유시장 개편에 나설 길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주변국은 물론 산유국은 크든 작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미국은 베네수엘라 자체를 통치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을 몰아내고 권력 지형을 ‘친미’ 또는 친미 우호 세력으로 개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을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정가에서는 공산 정권을 유지 중인 쿠바가 다음 표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판에도 마이웨이 베네수엘라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린란드’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린란드는 덴마크 자치령의 섬으로 한반도보다 9배나 큰 섬이다. 인구가 6만여명에 불과하고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인 땅이라 가치 평가가 낮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아래에 묻힌 광물을 채취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지정학적으로도 좋은 위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그린란드를 미국에 편입시키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트럼프정부 이전에도 그린란드를 미국령으로 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과거 미국정부는 그린란드를 사기 위해 돈을 제시한 적도 있고, 세계 2차대전 기간에는 점거하기도 했다. 하지만 덴마크의 반발, 무엇보다 그린란드 주민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노골적인 요구가 시작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상 이유를 들었다. 그린란드를 지킬 수 있는 건 미국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때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그린란드에 묻혀 있는 자원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외신들은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으로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압송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감이 붙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승리’라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을 비치면서 극대화됐다. 협상의 기술 자유자재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북대서양조약기구(이하 나토)에 참여 중인 국가들은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 미국과 유럽 간 오랜 시간 유지돼 온 ‘대서양 질서’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한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 등 8개국에 대해 대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부과, 무력 충돌 가능성 등으로 전운이 감돌던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이른바 다보스 포럼에서 출구를 찾는 듯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의 매우 생산적인 회담을 바탕으로, 그린란드와 사실상 전체 북극 지역에 관한 미래 합의의 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 8개국을 상대로 다음 달 1일부터 부과하기로 한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적었다. 미국이 그린란드 병합을 위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철폐하면서 상황 반전의 여지가 생겼다. 실제 그의 발언 이후 미국 증시 등은 오름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집단 반발, 금융시장 동요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한발 후퇴를 이끌었다고 진단했다. 계속 가다간 나토의 내부 분열은 물론 유럽의 실력행사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원하는 것을 취하는 ‘협상의 기술’을 또 사용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각종 협상 기술을 사용해 왔다. 과도한 관세 부과, SNS 사용 등이 그 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이어 광물 자원 노리고 장악 시도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아직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했을 뿐 그린란드에 대한 병합 의지 자체가 꺾인 건 아니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보스 포럼에서 진행한 연설을 통해 그린란드 병합의 당위성을 긴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그는 그린란드를 ‘전략 요충지’이며 ‘북미 대륙의 일부, 서반구 최북단에 있는 우리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만든 ‘불확실성’의 토대 위에서 실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좌충우돌’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예측불가의 행보가 계속될 때마다 우리나라 또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미국과의 관계인 만큼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후 관리를 위해 만든 ‘평화위원회’ 가입 초청장을 60여개국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의 평화지만 속내는 국제연합(UN) 등을 대체할 다자간 기구를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일고 있다.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 서방 및 친서방 국가와 러시아, 벨라루스 등이 초청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도 포함됐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지난 20일 “미국 측 초청에 따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한 언론에서는 우리나라가 평화위원회 가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 평화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할 명분을 만들려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언제나 영향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각) 임기 1주년을 맞았다. 불과 1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에 일으킨 풍파는 엄청나다. 앞으로 불어닥칠 태풍의 크기도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2029년 1월20일 정오까지다. 아직 3년이나 남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