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9부 능선 넘은 유명희 산업 통상자원본부장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10.26 11:10:27
  • 호수 1294호
  • 댓글 0개

국민 모두가 응원합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한국인 최초 세계무역기구(WTO) 수장이 나올 수 있을까.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사무총장 선거에서 결선에 진출에 성공했다. 그는 과거 통상 분야에서 폭넓은 경험과 전문지식을 쌓아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1967년 울산에서 태어난 유 본부장은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했다. 1991년 제35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전부터 통상 분야에 관심을 두고 노력한 결과다. 

여성 1호
협상 전문가

그는 지난 1995년 통상산업부의 여성 통상 협상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선발한 ‘정부 공인’ 제1호 여성 통상 협상 전문가다. 1998년 통상 기능이 외교통상부로 이관되면서 통상산업부에서 외교통상부로 자리를 옮겼다. 외교통상부에서 자유무역협정(FTA)정책과장, FTA 서비스교섭과장, 주중국대사관 1등 서기관과 참사관 등을 거치며 여러 협상에서 중요한 실무자로 참여했다. 

통상 업무가 외교부에서 다시 산업부로 통합 이관된 이후엔 산업부에서 FTA 교섭관 겸 동아시아 FTA 추진기획단장, 통상정책국장, 통상교섭실장 등 통상 현안을 진두지휘했다.

1948년 상공부(현 산업부) 설립 이래 여성 공무원으로서는 역대 최초로 실장급(1급) 고위 공무원에 오르면서 공직 사회의 ‘유리 천장’을 넘어선 인물로 주목받았다. 2014년 박근혜정부 때는 청와대 홍보수석비서실에서 외신 대변인으로 일한 이력도 있다.


그는 2018년 11월 돌연 사표를 제출했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하면서 당시 그는 “더 승진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일각에선 ‘남편 리스크’도 제기했다. 그의 남편은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정태옥 전 의원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그의 사표를 반려하고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승진시켰다. 전임 김현종 현 국가안보실 2차장의 추천이 있었다고 한다.

여권 핵심 인사는 “2017년 민유숙 대법관을 지명할 때도 남편이 안철수 전 대표의 최측근인 문병호 전 국민의당 의원이라는 점 때문에 논란이 됐지만 문 대통령은 민 대법관을 임명했다”고 전했다.

당시 청와대는 유 본부장에 대해 “공직생활 초기부터 통상 분야에서 활동해온 최고의 통상 전문가”라며 “굵직한 통상 업무를 담당하면서 쌓아온 업무 전문성과 실전 경험, 치밀하면서도 강단 있는 리더십으로 당면한 통상 분야 현안을 차질 없이 해결해나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초의 여성 본부장이 된 유 본부장은 일본 후쿠시마산 농수산물 수입금지 문제를 둘러싼 WTO 2심에서 승소했다. 1심에서 패소한 사건을 뒤집으면서 그 능력을 입증해보였다.

여성 최초 실장급 고위공무원 이력
일본 농수산물 2심 승소…능력 입증

무역 분쟁의 최종심 격인 상소기구는 한국의 수입금지 조치가 자의적 차별에 해당하지 않으며 부당한 무역 제한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1심에서 일본의 손을 들어줬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결정을 뒤집고 모두 한국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상소기구는 세슘 검사만으로 적정 보호 수준을 달성할 수 있는데도 수입금지와 기타 핵종 추가 검사를 요구한 조치는 무역 제한이라고 본 1심 패널 판정을 파기하면서 과도한 조치가 아니라고 봤다.

앞서 1심 패널은 한국의 수입 규제 조치가 WTO 위생 및 식물위생(SPS) 협정에 불합치된다며 일본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SPS 관련 분쟁에서 1심 결과가 뒤집힌 것은 처음이다. 다만 상소기구는 한국 정부가 수입금지 조처와 관련해 일본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절차적인 부분만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 WTO 상소 기구가 우리 정부의 일본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에 대해 판정한 데 대해 시민단체들이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 ▲ 유명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일본산 수산물 수입 대응 시민 네트워크’ 측은 “국민 안전이 승리했다. 1심 패소라는 불리한 상황을 뒤집기 위해 노력한 정부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지난 6월24일 당시 유 본부장은 WTO 차기 사무총장에 도전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유 본부장은 당일 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공식 출마를 선언했다.

유 본부장은 “WTO 사무총장이 되면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출마의 변을 밝혔다. 한국은 이번이 세 번째 WTO 사무총장 도전이다.

1994년 김철수 상공부 장관과 2012년 박태호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 출마했으나 최종 선출에는 실패했다. 차기 사무총장 선출 레이스는 브라질 출신 호베르투 아제베두 현 사무총장이 임기 1년을 남기고 지난달 돌연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본격화됐다.

선거 초반 구도는 흥미진진하게 짜였다. 입후보자 8명 중 미국·유럽연합·중국·일본·인도 출신은 없다. 세계무역기구 총장 선출 규정에 지역 안배가 ‘고려사항’으로 돼있으나 특정 지역마다 순번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국익에
도움될 것”

외신과 세계무역기구 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 안팎에서는 사실상 여성 후보 간의 대결로 압축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계은행에서 25년 근무한 이력을 발판으로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헤비급’으로 평가받는 오콘조이웨알라가 먼저 등록을 마쳤고, 이어 유 본부장이 도전장을 낸 뒤에 모하메드가 막판 가세했다. 유 본부장이 모하메드의 출마를 사전에 감지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모하메드는 2015년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 의장을 맡는 등 막강한 ‘국제통상 헤비급’으로 불린다. 일각에서는 “모두 특유의 언변과 뛰어난 조직 장악력을 갖춰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우리 정부 선거캠프도 ‘여성 후보 3파전’을 선거판 형세로 판단하고 전략을 짜는 분위기다.


일본 정부는 유 본부장에 대해 명확한 찬반 의사 표명을 하지 않고 있지만, 수출규제를 놓고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의 사무총장 후보를 향해 경계심을 갖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에 따라 WTO를 둘러싼 한-일 정부의 신경전이 거세지고 있다. 한국이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를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한 데 이어, 일본은 한국의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 도전을 적극적으로 저지할 태세다.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유 본부장이 도전하는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 선출에 관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가지야마 히로시 경제산업상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사무총장은 코로나19 대응과 세계무역기구 개혁 등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인지가 중요하다”며 “그런 관점에서 일본도 선출 프로세스에 확실히 관여해 나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마감 전날 오후까지 유 본부장을 포함해 멕시코, 나이지리아, 이집트, 몰도바 등 5개국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가장 유력한 주자였던 필 호건 유럽연합(EU) 무역 담당 집행위원은 최근 출마 포기 의사를 밝혔다.

‘한국인 첫 사무총장 배출’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는 가운데, 일본의 견제도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도 전 세계 외교망을 총동원해 ‘중견국·중재자론’을 앞세워 회원국 공략에 나설 방침이다.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 선출은 164개 회원국별로 후보 선호도를 조사해 지지도가 낮은 후보부터 탈락시켜 한 명만 남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최종 선출까지 통상 6개월이 걸리지만, 현재 사무총장이 8월 말에 사임한다고 밝힌 만큼 리더십 공백을 줄이기 위해 절차가 앞당겨질 가능성도 높다.


일본 언론도 유 본부장의 출마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눈치다.

정부도 
대통령도

<요미우리신문>은 유 본부장에 대해 “한국과 수출관리 강화를 놓고 대립하는 일본이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거리”라고 보도했다. 앞서 <지지통신>은 “일본 정부가 한국에서 사무총장이 나와 국제적 발언력을 높이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산케이신문>도 “한국 출신 사무총장이 탄생할 경우 일본의 통상정책에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WTO에 제소된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문제가 본격적인 심사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한국과 일본의 기싸움도 치열하다. 세계무역기구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회원국의 무역정책 전반을 논의하는 회의를 진행했고, 지난 6일 일본 차례가 됐다. 

40여개 국가·지역 대표들이 참여한 자리에서 한국 대표는 “일본 정부가 지난해 7월 한국에 대한 반도체 원자재 등 수출관리를 강화한 조치는 정당한 이유가 없어 모두 무효라고 주장했다”고 일본 방송 NHK가 보도했다. 일본의 조치가 부당하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호소한 셈이다.

결국 유 본부장이 WTO 사무총장 선거에서 최종 라운드 진출에 성공했다. 지난 8일 <로이터통신>과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유 본부장은 최종 결선에서 나이지리아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후보와 일대 일 대결을 펼친다.

최종 결선에서 오콘조이웨알라 후보와 유 본부장 여성 후보 두 명이 맞붙게 되면서 ‘새로운 여성 리더십’이라는 구호는 이제 무의미해졌다. 유 본부장이 결선 무대에 내세울 두 개의 칼날은 현직 통상 장관이라는 점과 상대적으로 우위인 국력이다.

유 본부장은 처음부터 후보 8명 중 유일한 현직 장관이라는 점을 어필해왔다. 특히 WTO가 각종 갈등으로 위기에 봉착해 난관에 빠져 있다는 점에서 이 무기는 그를 최종 관문으로 끌어올리는 데 빛을 발했다.

WTO는 세계 경제 1·2위 국가인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 짙어지는 보호무역 색채,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통상 차질과 경기 침체 등 난제에 직면했다. 여기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분쟁 해결 방식이 지나치게 중국에 친화적이라며 사실상 WTO를 보이콧하고 있다.

이에 유 본부장은 미국과 유럽을 잇달아 순방하며 “다양한 국가와 통상 협상을 타결시킨 경험을 갖고 있으며 현직 통상장관으로서 정치적 역량을 지닌 본인이 이 같은 WTO 개혁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적임자”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경쟁자인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는 비록 현직은 아니지만, 나이지리아 재무장관과 외무장관을 역임했으며 세계은행에서 오랜 기간 근무해 인지도가 높다는 부분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한국인 세 번째 WTO 사무총장 도전
나이지리아 후보와 2파전…가능성은?

둘째는 국력이다. 전 세계에 뻗은 한국 인맥과 자원을 총동원해 ‘아프리카 대세론’을 무너뜨린다는 복안이다. 당초 이번 선거는 아프리카에서 아직 한 번도 사무총장이 나온 적이 없어 아프리카 두 후보 간 결선 대결이 펼쳐질 것이라는 분석도 많았다.

결선까지 가게 된 유 본부장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7월부터 최근까지 스위스, 미국, 프랑스, 스웨덴 등을 방문해 각국 대사와 주요 인사를 만나 활발한 유세 활동을 벌였다. 
 

물론 아직은 낙관하기 어렵다. 최대 투표권을 보유한 아프리카 대륙이 결선 과정을 거치며 2명의 후보 중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로 자동 단일화가 이뤄져 표가 집중될 수도 있다. 또 한국과 무역분쟁이 얽혀 있는 타 국가들이 아프리카를 선호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일 룩셈부르크, 이탈리아, 이집트 정상과 잇따라 정상 통화를 하고 WTO 사무총장 선거 결선에 진출한 유 본부장을 지지해달라고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먼저 이날 오후 5시30분에 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와 통화한 데 이어 오후 6시에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와 통화했다.

문 대통령은 통화에서 “지난 1∼2차 라운드에서 보여준 유 본부장에 대한 유럽연합(EU)의 단합된 지지에 감사하다”며 “차기 사무총장은 WTO를 개혁해 자유무역 체제를 수호하고 다자무역 체제의 신뢰를 회복할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모든 대륙에 걸쳐 폭넓은 지지를 받는 유 본부장이야말로 WTO 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최적임자”라며 지지를 당부했다.

이에 베텔 총리와 콘테 총리는 유 본부장의 결선 선거 진출을 축하하면서 뛰어난 역량과 WTO 개혁 비전, 통상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갖춘 유 본부장의 선전을 기원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문 대통령은 오후 10시에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도 통화했다.

앞서 유 본부장의 WTO 사무총장 선출을 위해 총력 지원을 약속한 문 대통령은 지난 7월부터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호주, 러시아, 독일, 브라질, 말레이시아 등 정상과 통화하고 지속해서 유 본부장에 대한 지지를 요청해왔다. 

일본 경계
지원 총력전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재확산 우려를 표하며 국제사회의 연대와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베텔 총리와 콘테 총리는 한국의 모범적인 코로나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마힌다 라자팍사 스리랑카 총리, 세사르 기예르모 카스티요 레예스 과테말라 부통령과 통화를 하고 유 본부장을 지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유명희 남편 과거 막말 논란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남편 정태옥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의 과거 막말 논란이 재조명되고 있다. 

정태옥 전 의원은 제 20대 국회 초선 국회의원으로서 당시 새누리당 경선에 당선돼 정치에 입문해 2014년 8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대구광역시 행정부시장을 역임했다.

이후 2016년 5월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체제가 출범하자 새누리당 원내부대표에 임명됐다.

같은 해 12월 정우택 원내대표 체제에서도 유임됐다.

그는 지난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이혼하면 부천 가서 살고 망하면 인천 가서 산다”는 발언을 해 부천 및 인천 시민들에게 큰 질타를 받았다. 

자유한국당 대변인을 맡았던 그는 “서울 사람들이 양천구 목동 같은 곳에서 잘 살다가 이혼 한 번 하거나 하면 부천 정도로 가고, 부천에 갔다가 살기 어려워지면 인천 중구나 남구, 이런 쪽으로 간다”며 “지방에서 생활이 어려울 때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은 서울로 온다. 그런 일자리를 가지지 못하지만, 지방을 떠나야 할 사람들이 인천으로 오기 때문에 실업률, 가계부채, 자살률이 높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해당 발언은 ‘이부망천’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여야 모두에게 큰 비판을 받았으며 이후 정 전 의원은 사과와 함께 자유한국당 대변인직에서 물러났다. <구>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