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여의도 이슈메이커 류호정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8.11 11:22:36
  • 호수 12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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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튀는 개성파 새내기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정치인들은 본인 부고만 제외하고 이름이 뉴스에 나오는 게 좋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최근 ‘옷차림’ 하나만으로 이슈를 몰고 다니는 정치인이 한 명 있다. 바로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다. 그는 게임동아리, 스트리머 등 특이한 이력을 바탕으로, 국회에 입성하면서부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 최근 본회의장 옷차림 논란의 중심에 섰던 류호정 정의당 의원

지난 21대 국회의원 선거서 20대 여성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나온 류호정 의원은 한국 사회서 소외된 청년과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출마했다. 게임을 좋아하던 류 의원은 스마일게이트에 취업해 마케팅 등의 업무를 맡았다.

게임 덕후서
정치 입문까지

그는 이후 노동조합을 만들려다가 권고사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에도 김병관(더불어민주당)·이동섭(국민의당) 의원 등이 게임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는 했다. 하지만 류 의원은 20대 여성에다가 게임 스트리머 출신이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쏠렸다.

비례후보 명단 발표 이후 ‘대리 게임’ 논란이 불거졌지만 즉각적인 사과와 정의당의 지지에 힘입어 당의 지향인 여성·청년 활동으로 비례대표 1번을 꿰찼다. 결국 21대 총선서 무난하게 당선돼 21대 국회 최연소 국회의원, 유일한 20대 여성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도 거머쥐게 됐다.

류 의원은 “청년 정치의 앞줄에 서게 된 저는 낯선 정치인이 되겠다. 기득권과 기성세대의 권위에 도전하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겠다”며 “제2의 누군가가 되기보다 온전히 류호정으로 청년 정치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21대 국회 평균 연령은 54.9세, 남성 의원은 81%인 243명으로 집계됐다. 28세 여성인 류 의원은 그 존재감을 나타기에 충분했다. 초선 의원답게 톡톡 튀는 언행으로 많은 이들의 이목을 이끌었다. 고인물 같은 정치판서 감각적인 유튜브 활동은 신선한 바람이 됐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일, 류 의원의 옷차림을 두고 한창 논란이 일었다. 국회 본회의장에 붉은색 원피스 차림의 옷을 입고 출석했기 때문이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선 “국회의원 복장으로 적절하느냐”는 문제 제기와 함께 성희롱성 비난까지 쏟아졌다.

이날 류 의원의 분홍 원피스는 ‘2040청년다방’ 포럼에 참석할 때 입었던 옷으로, 류 의원은 당시에 “이 복장을 본회의에도 입고 가겠다”고 청년들과 약속했다고 한다.

본회 붉은색 원피스 차림 등장 화제
평소 입던대로 청바지·운동화 출근

이를 두고 온라인상에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일부 누리꾼은 “국회의원 제복을 정해서 그것만 입고 다니라 하던가. 조선시대서 왔느냐” “옷 가지고 이러지 마라. 뭘 입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라며 논란 자체를 비판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때와 장소에 맞는 옷차림이 분명 있다”며 원피스 복장을 지적했고, “원피스를 입더라도 좀 점잖은 색깔을 입어야지”라며 원피스 색에 대한 의견을 남긴 누리꾼도 있었다.

류 의원은 “저의 원피스로 인해 공론장이 열렸다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긁어부스럼을 만드는 게 진보 정치인이 해야 할 일 아닐까”라며 오히려 자신감을 드러냈다.

논란이 일자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지난 6일, 자신의 SNS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터넷과 자가격리했던 어제, 우리당 류호정 의원이 고된 하루를 보냈다”며 “원피스는 수많은 직장인 여성들이 사랑하는 출근룩으로, 국회는 국회의원들의 직장”이라고 옹호했다. 심 대표는 “국회의원들이 저마다 개성 있는 모습으로 의정활동을 잘할 수 있도록 응원해달라”며 “다양한 시민의 모습을 닮은 국회가 더 많은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다”고 적었다.


류 의원의 이색 복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류 의원은 자신의 공식 계정 유튜브서 “청바지나 반바지를 입고 국회에 출입을 계속 했다. 청바지는 3번, 반바지는 2번 정도 입었을 때 들켰다고 해야 하나, (미디어의)눈에 들어온 것 같다”며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이어 “(당시)의원님들이 뭐라고 하지도 않았고 평범하게 인사했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류 의원의 원피스 논란은 정의당 입장서 호재라는 얘기도 나온다. 정의당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당의 인지도를 높였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국회의원들의 복장으로 인해 논란이 됐던 적이 있었다.

지난 2003년 4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이른바 ‘백바지 등원’으로 동료 의원들의 지적을 받았다. 당시 유시민 국민개혁정당 의원은 흰색 바지에 회색 티셔츠와 남색 재킷을 입고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 올랐다. 이때에도 “여기 탁구 치러 왔나”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등의 항의가 빗발쳤다. 또 한나라당 의원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집단퇴장해 의원 선서가 미뤄지기도 했다.

복장 논란
당에 호재?

당시 박관용 국회의장도 “모양이 좋지 않다”며 “내일 다시 회의를 진행하겠다”고 했고 결국 유 의원은 다음날 정장 차림으로 등원해 의원 선서를 했다. 통합진보당 강기갑 전 대표는 한복을 입고 등원하기도 했다. 강 전 대표는 수염을 기른 채 두루마기와 고무신을 착용했다. 특히 그는 한복 및 고무신 차림으로 광화문 촛불집회를 누벼 <반지의 제왕>의 주연급 캐릭터 ‘간달프’를 빗댄 ‘강달프’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류 의원은 소신 있는 행동 만큼이나 의정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6월1일부터 의정활동을 시작한 그는 총 49건의 법률안을 발의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 공직자윤리법 일부개정법률안,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등을 발의했다. 이 외에도 류 의원은 다양한 의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류 의원은 지난 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저는 국민 안전과 관련된 핵 폐기물 관련 의제, 쿠팡 노동자들의 어떤 착취 문제, 차등 의결권, 비동의 강간죄 등에 대해 많은 업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맥스터'라는 말이 어렵다. 이게 핵 폐기물과 관련된 문제인데, 경주와 울산서 쟁점 사안이 되고 있다. 사실 원전 핵 폐기물 내용은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사고가 나면 전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문제가 되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게 지역 공론화, 그리고 전국 공론화를 하는 과정서 현재 정부가 소통을 하기로 했었는데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금 이미 여론조사에 대한 조작 의혹까지 나와 있는 상태여서 검증해야 되는 단계고, 많은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모두의 안전이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류 의원은 어릴 때부터 정치인의 꿈을 키운 건 아니었다. 부친의 폭력에 시달리면서 쌍둥이인 남동생 둘과 함께 어려운 환경서 자랐다.

류 의원의 블로그에 따르면 아버지의 폭력은 집을 벗어나는 목표를 갖게 했고 삼남매는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 삼남매 모두 같은 시기에 대학생활을 하기에는 경제적으로 무리가 있었다. 셋째의 재수, 둘째의 휴학, 첫째의 취업준비 등 일종의 로테이션으로써 한 삼남매는 똘똘 뭉쳤다. 사회에 첫 걸음을 내딛게 된 건 게임회사 스마일게이트였다.

그는 모바일 IO 스튜디오 기획팀˙마케팅 팀원, 게임 모델 등으로 재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재직 중엔 게임 스트리밍 업무도 도왔다.


스마일게이트서 사내 성폭력 피해를 당한 후배를 도와 징계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한다.

후배 사건 보고
젠더 이슈 관심

당시 류 의원은 “만약 내가 작년에 문제제기를 했다면, 이 친구가 같은 피해를 안 겪었을 거라는 후회와 미안함이 컸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피해 사원들과 류 의원의 증언에도 스마일게이트의 가해자에 대한 내부 징계는 감봉 3개월에 그쳤으며, 가해자로부터 분리하겠다는 명목으로 피해자를 인사이동시켰고, 부서도 가해자의 바로 옆 부서였다고 한다.

결국 해당 피해 사원은 입사 1년도 되지 않아 퇴사했다. 더불어 프로젝트가 중단될 때마다 직원들이 전환배치나 권고사직을 당했다고 한다.

류 의원은 후배의 사건을 겪은 뒤 SNS 젠더 이슈와 관련한 기사들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과거 유 의원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서 “용기가 없었는데, 후배의 퇴사를 보면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권고사직 뒤에도 전 직장 동료들의 노조 설립을 도왔던 류 의원은 2018년 12월 화섬식품 노조로부터 ‘선전홍보부장’을 제안 받아 민주노총 상근자로 이직하게 됐다. 판교테크노밸리를 거점으로 한 IT 노조들이 소속된 화섬식품 노조서 류 의원은 전 직장서 SNS 콘텐츠를 만들었던 전공을 살려 ‘민주노총 아재’와 노동과 진보 이슈에 관심이 있는 20∼30대 청년들을 연결할 수 있는 홍보를 시도했다.

화섬식품 노조의 애칭 ‘섬식이’, 화섬식품 노조 인스타그램 계정 ‘노조스타그램’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그는 민주노총이 갖고 있는 40대 남성의 이미지를 깨려고 노력했으며 SNS 홍보를 통해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려고 시도했다. 10∼20대가 많이 사용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든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2018년 12월에 40여명에 불과했던 화섬식품 노조 페이스북 팔로어는 류 의원이 ‘페북지기’를 맡은 뒤 2019년 7월 2700여명으로 늘어났다.

과거 ‘서울퀴어퍼레이드’ 때는 ‘무지개 화섬식품 노조 깃발’을 제작해 노조 홍보를 하기도 했다.

2017년 정의당에 입당한 그는 근무 중인 회사에 노조를 만드는 작업을 민주노총·정의당, 이미 노조가 있던 네이버 노조와 논의했다. 이후 회사서 퇴직당하고 민주노총의 (IT업체 노조가 가입돼있는) 화섬식품 노조 선전홍보부장으로 옮겼고, 처음에 당비라도 보태고 싶어 입당했다가 성남지역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성남시위원회 부위원장과 경기도당 여성위원장을 맡은 적도 있다. 그 후로 청년 할당의 혜택을 받아 지금까지 이어졌다.

92년생 역대 최연소 비례대표
게임 등 특이한 이력으로 주목

류 의원의 공약 중에는 ‘학력·학벌 차별금지’가 있다. 류 의원의 개인적 경험이 바탕이 된 것들이다. 회사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가 정규직으로 전환됐는데, 나중에 그 배경에 대해 인사담당자로부터 ‘학력이 작용했다’는 말을 들었다. 신입사원 교육서 조별 활동할 때도 ‘서울대 나온 남자’에게 반장을 하라고도 했다. 류 의원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서 “누가 저를 키웠는가 물으면 사회가 저를 키웠다고 답해야 한다. 그래서 학력·학벌 차별금지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류 의원에게도 크고 작은 논란이 꼬리표처럼 붙어다닌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한 사건이 있는데 바로 대리게임 논란이다. 지난 2014년 류 의원은 이화여대 게임동아리 활동을 하던 당시 남자친구에게 아이디를 빌려준 적이 있다. 당시 티어(레벨)가 골드1이었는데 다이아5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게임동아리 회장직을 내려놓고 사과문을 올린 적이 있다. 문제는 그 이후에도 커뮤니티엔 동아리 내에서의 류 의원에 대한 비난이 줄지 않았으며 지속적으로 다른 방송 및 언론 인터뷰에 출연하고, 대리 사건에 대해 자기들끼리 간간히 개그 소재로 쓰였다는 점이었다.

게이머들 사이서 대리 게임은 승부조작만큼이나 금기시되고 있다. 지금 20대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대리 게임 논란에 대해 “게임 생태계를 저해한 잘못된 행동”이라며 “게임 등급을 의도적으로 올리기 위해 계정을 공유한 행동은 아니다. 저도 당시 등급이 너무 많이 오른 것을 보고, 잘못되었음을 인지해 새로운 계정을 만들었다”고 사과했다. 이어 “얼마 후 매체의 인터뷰가 있었고, 그때 바로 잡을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새로 만든 계정의 등급은 대회 참가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았기 때문”이라며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반성했다.
 

블로그를 통해서도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특히 여성 유저의 능력을 불신하는 게임계의 편견을 키운 일이니,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준 셈”이라며 “당시에 썼던 반성문을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시 꺼내 읽었다. 저의 부주의함과 경솔함을 철저히 반성한다. 조금이라도 실망하셨을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거듭 사과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대리 게임 및 허위 등급을 이용한 게임사 비리 취업 의혹까지 제기됐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입사 지원서에 게임 등급을 기재한 데 대해 류 의원 관계자는 “롤 게임은 해마다 게임 등급이 리셋된다. 2014년 2∼3월 대리 게임을 통해 티어 상승이 이뤄졌고, 5월 달에 논란이 돼 사과했다. 사과 후 다른 부계정을 통해 1년 동안 연습했다. 2015년 등급이 리셋된 후 다시 원래 아이디로 돌아가 게임을 했다. 결국 당시 입사서류에 기재된 롤 등급은 류 위원장 본인 실력이 대부분 반영된 것으로 취업에 영향을 미친 부분은 사실상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소신있는 행동
총 49건 발의

지난달 10일에는 박원순 전 서울특별시장 사망 후 피해자 우선주의에 입각하여 미투 피해자에 연대한다고 조문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하며 주목받기도 했다.

일각에선 류 의원의 언행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는 같은 달 13일 언론과의 인터뷰서 “자신의 소신에는 변화가 없다”고 했다. 또, 피해자가 어떤 것을 주장하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답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티나는 ‘류호정 원피스’

류 의원이 입은 원피스에도 관심이 쏠렸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류 의원이 입은 원피스는 ‘쥬시쥬디’라는 브랜드의 원피스로 8만원 대에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쥬시쥬디는 캐주얼 업체 더베이직하우스가 2014년 선보인 브랜드다. 류 의원이 입은 원피스가 어떤 상품인지 알려지자, 원피스는 불과 몇 시간만에 품절됐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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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