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그렇게 떠나간 고 최숙현의 한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7.13 11:23:56
  • 호수 12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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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녀를 죽였나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였던 최숙현 선수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으로 드러난 소속팀 감독과 동료들의 가혹행위.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 마지막으로 그가 남긴 메시지가 그간의 고통을 방증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고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

고 최숙현 선수의 유족은 지난 1일, 팀 관계자들이 최 선수를 폭행하는 과정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했다. 지난해 3월 뉴질랜드 전지훈련 당시 녹음된 것으로 보이는 이 녹취록서 팀 닥터 안주현씨는 “나한테 두 번 맞았지? 너는 매일 맞아야 돼” “그냥 안 했으면 욕먹어” 등의 말을 내뱉으며 20분 넘게 폭행을 이어갔다. 이어 최 선수의 선배로 추정되는 선수를 호명해 “너는 아무 죄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뺨 때리기를 비롯해 신체를 폭행했다.

“너무 미안하다” 
안타까운 죽음 

김규봉 경북 경주시청트라이애슬론 팀감독 최 선수에게 폭행을 가하던 안씨에게 “선생님, 한 잔 하시고 하시죠. 콩비지찌개 제가 끓였습니다” 등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이들은 술을 마시며 최 선수의 뺨을 20회 이상 때리고 가슴과 배를 발로 차며 머리를 벽에 부딪치게 밀쳤다.

녹취록에는 안씨가 “이빨 깨물어. 뒤로 돌아”라며 최 선수를 세운 뒤 폭행하는 소리도 담겨있다. 감독이 “죽을래? 푸닥거리 한 번 할까?”라는 말로 최 선수를 위협하자 최숙현 선수가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아닙니다”라고 대답하는 음성도 담겨있었다.

유족은 전 소속팀 경주시청서 상습 폭행과 괴롭힘, 갑질 등을 당하며 선수 인생이 무너져 내렸다고 주장했다.


최 선수는 극단적 선택 전날 대한체육회 조사관과 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 선수의 생전 마지막 목소리가 담긴 이 통화는 10여분간 이어졌다. 관련 기관 여섯 군데에 도움을 요청했던 최 선수는 이 통화서 가해자 측이 반박 증거를 제출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지난 7일 YTN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날인 지난달 25일, 오전 훈련을 마친 최 선수가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조사관과 나눈 대화 녹취록을 입수해 공개했다. 대한체육회는 녹음된 분량의 전부라며 2분36초만 제공했다.

최 선수는 해당 통화서 “(경주시청팀 관계자들이)저희한테도 항상 비행기값이라고 하고 돈을 걷어갔지, 훈련비로 쓸 거라는 말을 한 적도 없었어요. 알고 보니까 시청서 비행기값을 다 대줬었다”고 말했다. 이후 경찰 출신 여성 조사관은 최 선수에게 “다른 선수들은 진술서를 저쪽서 다 받았더라고요, 반박할 증거가 있다면 그걸 보내줘요”라고 했다.

체중 감량 관련 폭언·폭행 일삼아
팀 닥터, 치료해준다며 상습 성추행

여성·청소년을 전문적으로 수사했던 경찰 출신 여성 조사관의 꼼꼼한 증거자료 요구에 최 선수는 목소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통화 초반 열심히 가해자의 잘못을 설명하던 최 선수는 통화가 길어지면서 낙담한 것으로 보인다.

최 선수는 “그런 게(반박 증거자료) 없어요, 지금 저희한테”라고 말했고, 조사관은 “기소라든지 불기소 의견 통지를 받은 거 있으면 그걸 보내주고”라고 재차 증거자료를 요구했다. 이에 최 선수는 “대구지검으로 넘어간다는 그 연락밖에 안 받았어요”라고 했다.

조사관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몇 회에 걸쳐서 얼마를 입금한 것을 정리해서 주시고, 비행기값이라고 해서 보내준 부분에 대해서 추가 증거로 할 수 있는 자료 있으면 보내줘요”라며 앞으로 자주 통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고 최숙현 선수를 괴롭혔던 것으로 알려진 해당 감독과 선수 ⓒ문병희 기자

조사관은 “어렵게 선택을 해서 진정까지 했는데 이 부분을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게끔 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연락이 조금 어렵더라도 자주 연락을 하고 내가 전화하면 잘 받고 그러세요”라며 통화를 마쳤다. 조사관의 당부에 최씨는 “네”라는 대답만 반복했다. 

최 선수는 체육회 측과 통화 다음 날인 지난달 26일 지인과 가족에게 “그 사람들의 죄를 밝혀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후 숙소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최 선수는 지난 4월 경주시청 소속 선수 및 관계자로부터 폭행과 폭언을 당했다고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신고했다.

최 선수가 지난해 1월부터 4월까지 작성한 일기장과 운동 기록에는 폭언과 폭행에 대한 압박감이 담겨있었다. 최 선수는 ‘마음이 불안하다. 집중할 곳이 필요해 글 쓰는 걸 선택해봤다’ ‘힘들 때 생각들을 정리해보려 한다’며 상세한 기록을 남긴 이유도 적었다.  

사망 전날
조사관과 통화

지난해 1월 최 선수가 남긴 글에선 우울한 기색이 없다. 당시는 최 선수가 스트레스로 약 1년간 운동을 쉰 후 실업팀으로 다시 복귀했을 때로, 다시 운동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열망이 담겨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화려하게 트라이(트라이애슬론) 복귀해보는 거야! 남들 말 신경 쓰지 말고!’ ‘나는 내 목표를 이룰 거야’ ‘숙현아 넌 할 수 있어 힘내자!’ 등이 그것이다. ‘1월의 마지막 날 행복하게 마무리했다’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는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최 선수는 같은 해 2월부터 스트레스가 심해지기 시작한다. 특히 살이 쪘다는 이유로 폭언을 들었다는 내용이 다수 적혀있다. 2월 초 최 선수는 ‘멘탈 솔직히 와장창… 다 모르겠다 나는 뭐지, 몇 백 그램 안 빠진 거로 이렇게까지 욕먹을 일인가’라는 글을 남겼다.

이후에도 ‘오늘 억울 그 자체. 물먹고 700g 쪘다고 욕먹는 것도 지친다’ ‘체중 다 뺐는데도 욕은 여전’  ‘K에게 욕먹었지만 어쩌겠어’ 등의 내용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3월 일기에도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운동하는데 사람을 버젓이 앞에 두고 욕을 하냐. 적당히 해 진짜’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았다. 이 팀은 아니다’ 등이다.
 

▲ 추가 피해진술하는 고 최숙현 선수의 동료들 ⓒ문병희 기자

이 시기 녹음된 파일엔 감독과 안씨가 최 선수에게 “이를 꽉 깨물라” “벗어”라며 약 20분 동안 폭행·폭언하는 정황이 담겼다. 이후 최 선수는 ‘하루하루 눈물만 흘리는 중. 조금은 무뎌질 수 있을 줄 알았다’ ‘감독 선배들은 자기들 아픈 건 엄청 아픈 거고 나는 아파서도 안 되는 건지 서럽고 서러운 하루다. 다 엎어버리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추가 폭로
녹취록 공개

일기장엔 구체적인 가해 선수의 이름도 등장한다. 최 선수는 ‘A는 대놓고 욕하는 건 기본이고 사람을 어떻게 저렇게 무시하지’라는 글을 남겼다. 최 선수와 같은 팀에 소속됐던 동료 선수는 “A 선수는 국가대표 출신으로 실력이 뛰어나 감독·팀 닥터도 쉽게 건들지 못하는 선수”라며 “A 선수가 폭력적인 분위기를 주도했다”고 말했다.


최 선수는 과거의 기억 때문에 힘들다고도 토로했다. ‘아직도 너희를 보면 옛날의 일들이 다 생각난다. 잊히지 않는다. 잊고 싶다’는 내용이다. 같은 팀에 몸담았던 동료 선수는 “2016년 김 감독과 안씨가 최 선수 등에게 토할 때까지 빵을 억지로 먹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료 선수는 “팀 닥터는 최 선수가 없는 자리서 ‘내가 그 선수를 극한으로 몰고 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해주겠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또 이 선수는 “선배 선수도 ‘너 뒤져라’ 등 발언을 자주 했다”며 “선배 선수가 나를 옥상으로 끌고 가 뛰어 내리라고 협박한 적도 있다. 나는 이들의 폭언과 폭행 때문에 팀을 옮긴 상태”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추가 피해에 대한 폭로가 이어졌다. 최 선수의 동료 B씨는 팀 닥터라 안씨가 폭언·폭행과 더불어 상습적인 성추행을 해왔다고 증언했다.

8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B씨는 “팀 닥터는 치료 목적으로 마사지를 하는 와중에 허벅지 안쪽으로 과하게 손을 뻗어 만지거나, 2018년 홍콩 대회서 허리 부상을 입었는데, 치료를 해준다며 가슴을 만졌다”고 증언했다.

이어 “(운동선수로서 팀 닥터의 행동이)의아하긴 했지만 의견을 못 내는 상황이라 말하지 못했다”며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이의를 제기하면)여러 가지 보복이 있을 것 같아 두려웠다”고 설명했다.

감독마저 해외전지훈련비 유용 의혹
6군데 도움 청했지만…증거 불충분


앞서 최 선수의 동료 선수들은 지난 6일 국회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의 감독과 팀 닥터인 안씨, 주장 선수에 의한 추가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팀 닥터인 안씨가 자신을 대학교수라고 속이고, 치료를 이유로 가슴과 허벅지를 만지는 등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해당 기자회견에 증언자로 나섰던 최 선수의 동료 선수 B씨는 이날 이후 공황장애 약을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회견 이후 언론 접촉을 피해왔다는 B씨는 가해자들의 뻔뻔함에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B씨는 라디오 인터뷰 끝에 결국 눈물을 쏟아냈다. B씨는 “기자회견 후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했음에도 힘든 부분은 있다”면서도 “그래도 숙현이의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 것 같아서 후련한 마음도 있다”고 전했다.
 

▲ 고 최숙현 선수

그뿐만 아니라 김 감독의 전지훈련비 유용 의혹도 불거져 나왔다. 경북경찰청 관계자는 지난 8일 김 감독을 포함한 경주시청 소속 일부 실업팀 감독이 매년 해외 전지훈련비를 유용한 혐의를 잡고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경찰은 김 감독이 지난해 1월19일부터 3월4일까지 45일간 뉴질랜드 오클랜드서 진행된 ‘해외 전지훈련’ 직전 C 여행사에 훈련비 8200여만원을 보낸 뒤 일부를 역송금 받아 개인적으로 착복한 의혹이 제기돼 수사 중이라고 덧붙였다.

경북도체육회 관계자는 “이 같은 해외 전지훈련비 유용사례는 경주시체육회 내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사법당국의 철저한 진상조사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 감독은 최 선수에게 해외 전지훈련에 앞서 본인의 왕복 비행기 항공료를 지원하라고 강요했으며, 최 선수가 이를 수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 경주시체육회 한 간부는 “해외 전지훈련 역송금 사례는 지난해 문제가 됐었다”며 “당시 훈련비 유용이 재발하지 않도록 지시했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국회서 열린 동료 선수들의 기자회견장서도 선수들은 “해외 전지훈련비 명목으로 개인당 100만원씩 갹출했다”고 폭로했다.

“방치도 
가해다”

한편 최 선수가 한때 소속돼있던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내 괴롭힘 피해 사례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경북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날 전·현직 선수 27명 가운데 15명을 상대로 피해 진술을 받은 데 이어 2명에 대해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부분 김 감독, 안씨로부터 폭행 등을 당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김 감독이 대한철인3종협회서 영구제명돼 그동안 피해 진술을 하기 꺼리던 선수들에게 태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스포츠 가혹행위 흑역사

‘최숙현 사건’과 관련해 스포츠계 고질병인 폭력과 가혹행위가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랐다. 이전부터 일어난 가혹행위에 대해 정리했다.

▲빙상 = 조재범 쇼트트랙 코치가 심석희 선수에게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상습적인 폭언과 폭행을 한 사실이 2019년 1월8일 심석희 측 법률 대리인을 통해 알려져 충격을 안겼다.

심 선수는 2018년 12월17일 조 전 코치에 대한 성폭행 관련 고소장을 경찰에 제출했다.

그해 1월 조 코치는 훈련 중 심석희 선수를 주먹으로 수차례 때려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히고 2011년부터 4명의 선수를 폭행한 혐의로 기소당했고, 그해 10월 1심 재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사건 이후 젊은빙상인연대는 다른 국가대표 빙상선수들도 성폭행과 성추행, 성희롱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유도 = 전 유도선수 신유용씨를 성폭행하고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유도 코치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제1형사부는 지난해 7월18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 유도코치 손모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또 8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5년간 신상 정보 공개, 10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허위 진술할 이유가 없고, 증인들의 진술도 이에 부합해 모든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다”며 “성적 가치관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어린 학생을 상대로 성범죄를 해 죄질이 나쁘고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피의자가 동종 범죄 전과가 없고 강제 추행 사실은 인정하는 점을 고려해 양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프리스타일 스키 =  지난 2018년에도 프리스타일 스키 모굴의 최재우 선수가 음주 및 폭행, 추행 등의 이유로 대한스키협회에서 영구제명됐다. 대한스키협회는 “3월12일 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를 통해 최재우와 김지헌의 영구제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최재우과 김지헌은 3월 초 일본 아키타현 다자와코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프리스타일 월드컵 모굴 경기에 출전했다.

이들은 대회 기간 술을 마셨고, 숙소에 들어와 함께 출전한 여자 선수들을 상대로 술을 같이 마실 것을 요구하는 과정서 폭행 물의를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매체에 따르면 최재우 선수는 여성 동료들의 몸 일부를 만지는 등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현장에 달려갔던 스태프는 “여성 선수들의 비명을 듣고 달려가 이들을 격리했다”고 밝혔다.

▲여자축구 = 여자실업축구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사령탑 시절 선수단 관계자를 성추행해 계약이 해지됐던 하금진 전 감독이 축구계서 퇴출당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스포츠공정위원회가 하금진 전 감독에 대해 최고 수위 징계인 제명 처분을 지난해 4월 내렸다.

이에 따라 하 전 감독은 감독을 비롯한 지도자를 맡지 못하는 축구계서 완전히 퇴출당한 것.

현행 축구협회 징계 규정은 성추행 지도자에 대해 ‘자격정지 3년 이상에서 제명’까지 하도록 돼있다.

하 감독은 2018년 9월 경주 한수원 사령탑 재임 시절 선수단 소속의 A씨를 성추행했고,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계약 해지를 당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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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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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추석 연휴 전에 검찰개혁을 진행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입장에 들어갔다. 검찰개혁 초안을 발표하려던 당의 의견에,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수장 정성호 장관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정 장관의 의견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했다. 당정 간 불협화음으로 검찰개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당 지도부와 정부는 뒷수습에 나섰지만, 완전히 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계속 강조해 온 ‘검찰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공언대로 ‘추석 전 검찰개혁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의견을 연일 내놓으며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나타났다. 속도전 앞두고… 민주당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의 대원칙인 수사권·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으로 수사권·기소권의 분리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한다. 그리고 기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이관하기 위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의 기소권을 이관받아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발부 등 검찰의 고유 업무를 도맡는다. 중수청의 경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외에도 국수위 설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 경찰을 비롯해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수사 기관 전체를 통솔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검찰 조직 재편으로 수사 기능을 갖게 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중 어느 소속으로 할지 등의 쟁점 현안들도 정리돼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소속돼있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당 안팎에선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국수위의 권한이 자칫 과도해지면, 정부의 수사 통제와 외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앞서 밝힌 것처럼 행안부 산하에 이미 경찰이라는 수사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중수청까지 포함될 경우, 행안부의 수사 기능이 자칫 과도하게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이견도 걸림돌이다. 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대원칙 측면에서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상황에서 원활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초안 발표 예정이었지만 구체안 두고 특위·법무부 입장 차 지난달 25일 민주당 검찰정상화특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최종안을 내지 않았다. 민형배 특위위원장은 지난 7일 비공개 당정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속도 조절론은 없다”며 이날 회의를 최종안 확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예고했지만, 180도 달라졌다. 대신 이날 회의는 법안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위 간사인 이용우 의원은 "초안이 사실상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야말로 특위안이고, 당정대 간의 논의 과정이라든지 국민적 공론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든지 이 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서 최종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속도조절 배경에는 개혁의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입장이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정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그렇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거나 인지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분리해낸다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 또는 재수사를 할 수 있는데, (사건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과거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이런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전건 송치를 할 것인지, 전건 송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사지휘권을 줄 것인지,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정 장관은 민주당이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경찰·국가수사본부·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4개 수사기관이 모두 행안부 밑에 들어가면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했다. 또 기존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헌법상 검찰총장 임명 관련 규정들과 검사 관련 규정들도 있기 때문에 위헌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다른 의견 국수위에 대해서는 “지금 나와 있는 안에 의하면 국수위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행을 담당하게 돼있는데 최근 통계에 4만건 이상 된다”며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4만건 이상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검찰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검찰을 해체한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검찰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아니”라며 “1차 수사기관, 특히 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검찰청 폐지로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정 장관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금융 범죄 또는 조세 사건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하고 법리적 쟁점들이 많다”며 “이런 전문 수사 역량을 중수청에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회의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은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견설 진상은? 그러면서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 부실 수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당 안팎에서는 정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당 지도부는 장관께서 좀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특위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당정에서 합의됐거나 의논해서 한 건 아니”라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말씀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이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데 대해서도 “당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이런 우려가 좀 있다”면서 “(장관이) 저희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내세워 정 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김용민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개혁은 아니다”라며 “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지 출발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도부·정부 나서 진화 “당 결정대로 따라갈 것” 민주당과 정 장관의 의견이 갈리면서 ‘당정이견’설이 분출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8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지도부 인사말에서 “개혁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흔들림·불협화음 없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국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성과는 당정대 원팀 정신이 그 중심에 있다”며 “다음 주부터 우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이재명정부 국정 기조와 국정 과제의 실천을 (당이)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정 일치 기조를 강조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도 수습·진화에 나섰다. 이날 워크숍 현장에 방문한 정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이 갖고 있다. 당에서 잘 결정되는 대로 잘 논의해서 따라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당과 법무부 사이 이견에 대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합의했다. 정부와 당이 각자 검찰개혁안에 대한 여러 가지 각론에 대한 의견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수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당과 정부의 의견만 다른 게 아니라 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각각의 의견들이 다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화 과정에 이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내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다만 바라건대 내용 자체의 토론에 좀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특정인과 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하지 말고 이렇게 내용 토론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조계 의견은? 한편 법조계에선 정 장관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소 소신과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한 법조인은 “정 장관은 외골수처럼 직진하기보다 남의 편을 설득하고 내 편을 혼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면서 “강성 개혁에 집착하기보다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