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4주년 특집②> 특별대담 -보수 향한 ‘친이계 좌장’ 이재오의 충고

“박근혜가 지폈고 황교안이 부채질”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21대 총선도 이변은 없었다. 미래통합당은 지난 2016년 이후 전국 단위 선거서 연속으로 4번 패배하면서 기나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공천 파동, 헌장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 보수 분열…. 이제 이들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일요시사>는 24주년 창간을 맞아 ‘친이(친 이명박)계’ 좌장이자 정치 원로인 이재오 전 의원을 만나 보수가 살아남을 길을 물었다.
 

▲ 창간 24주년 특별대담 갖는 이재오 전 미래통합당 의원 ⓒ고성준 기자

“보수를 궤멸시킨 건 박근혜 전 대통령이고 당을 궤멸시킨 건 황교안 전 대표다. 머리 깎고 단식하고 그게 무슨 당 대표가 할 행동인가?”

이재오 전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의 행보에 연신 답답함을 표했다. 그는 보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 해체 후 새롭게 창당하는 심정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MB(이명박)정권서 못다한 정책에 대한 아쉬움과,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킨 현정권에 대한 참담한 심정도 함께 밝혔다.

그가 진단한 보수의 현주소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가. 다음은 이 전 의원과의 일문일답.

-21대 총선서 통합당 참패의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미래통합당 때문입니다. 더불어민주당 때문에 무너진 게 아닙니다. 선거 전부터 당이 야당으로서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대안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무조건 광화문서 데모하고 정부를 종북·친북으로 몰아갔어요. 야당은 중도 실용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극우 쪽으로 점점 향했죠. 선거에 대한 전략과 전술도 없었습니다. 지난해 조국 사태로 분위기가 유리해지니 총선서 무조건 이긴다고 자만했습니다. 총선 전 코로나19가 터지니 여기에 대응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겁니다.


-선거 전 후보들의 막말 논란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제대로 정돈된 당이라면 이런 소리가 안 나왔을 겁니다. 선거 막판에 일부 후보자들의 적절하지 못한 발언이 나온 이유는 지도부가 당을 장악할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앙선대위가 제대로 된 선거 전략을 구상하지 못했고요. 선대위는 선거 위기 상황서 흐름을 바꿔줘야 하는데, 막판에 여권에 유리한 분위기가 형성된 상황에도 150석이 가능하다는 등 말이 안 되는 소리만 했어요.

-180석의 슈퍼여당이 탄생했는데 한국 정치에 어떤 변화가 있을 거라 보십니까.

▲의석 수를 많이 얻은 건 득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여당 쪽에서는 이번 총선 승리가 국민들이 문재인정부가 잘한 걸로 평가했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믿으면 문정부가 지금까지 저질러놓은 여러 정책들을 밀고 나갈 과오를 범할 수가 있어요. 남은 2년 동안 잘하라는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당 해체하고 새롭게 창당해야”
중도실용보수로 환골탈태 필수

의석 수 차이는 많이 나지만, 득표수로는 1434만여표와 1191만여표로 크게 차이나지 않습니다.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정동영 후보를 500만표 차이로 이겼는데, 집권하고 나서 얼마나 많은 반대에 부딪혔습니까. 240만표 차이는 사실 민심서 큰 차이가 난다고 볼 순 없습니다.

-다음 대선까지 남은 2년, 문정부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국가 경제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탈원전, 주52시간 등은 문정부 임기 2년 안에 수정돼야 합니다. 이는 경제 생태계를 파괴한 것으로 한국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문정부가 3년 동안 잘못해온 것에 대해 성찰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고칠 생각을 안 하면 대선 정국서 아주 어려울 것입니다. 선거는 원래 총선서 크게 이기면 다음 대선에서는 패하는 징크스가 있습니다. 또 여당이 자만하면 국민들이 낭패 보기 십상입니다. 이대로 계속 밀고 나가면 국민들은 물론이고 특히 없는 사람들이 어려워질 겁니다.

-이번 선거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코로나19죠. 처음에는 정부가 허둥지둥하면서 대책을 제대로 못했어요. 중국인 출입도 막지 않고, 중국에 마스크도 지원해주고. 처음에는 혼란스럽게 사태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확진자가 늘어나고 나서 의료진들이 발 벗고 나섰고 중소기업들이 진단키트를 빠르게 생산했어요. 민간서 코로나19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하니깐 정부가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거죠. 코로나19 초기에는 조국 사태와 경제 실정에 이어 정부의 대응 때문에 통합당이 무조건 이길 거라 생각했는데, 코로나19 중반기에 들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죠.

-통합당의 코로나19 대응, 어떻게 보셨습니까.

▲선거 막판에 정부는 현금살포 계획을 밝혔어요. 사실상 정부가 표를 산겁니다. 이는 결국 국가 빚이잖아요. 야당은 이에 대해 비판해야 하는데 한술 더 떴습니다. 정부는 한 가구에 100만원 준다고 하는데 황교안 대표는 전국민 1인당 50만원 공약을 내세웠어요.

정부가 현금 푸는 걸 막아야 하는데 말려들어간 거죠. 코로나19로 직접적인 피해를 본 국민들에게 집중적인 지원을 해야지, 왜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국민들에게 도움을 주냐며 비판하고 반대했어야 합니다. 야당이 대책을 못 세우고 큰 실책을 한 겁니다.
 

▲ 이재오 전 미래통합당 의원 ⓒ고성준 기자

-통합당 주호영 신임 원내대표의 과제는 무엇이라 보십니까.

▲현재 당 대표가 없기 때문에 주 원내대표는 당 대표 권한대행을 하게 됩니다. 당의 조직·재정·운영·전반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일을 맡게 되는 거죠. 첫째로는 선거 패배에 대한 원인 분석을 제대로 해야 될 겁니다. 야당은 중도 실용으로 가야 하는데 극우로 나아갔기 때문에 이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해야 됩니다. 둘째로는 전당대회를 통해 당의 새로운 지도체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존의 당을 해체하고 새롭게 창당하는 심정으로 당이 환골탈태하도록 해야 합니다.

-김종인 비대위 출범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습니다.

▲제약이 많아 어려울 겁니다. 새로 당선된 초선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힘겹게 당선돼서 왔는데 김 전 위원장이 전지전능한 사람도 아닌데 끌려가려고 하겠습니까. 처음에는 심재철 전 원내대표가 끌고 가니깐 어쩔 수 없었죠.

하지만 곧 개원인데 본인들 의견을 내고 싶어 하지, 남에게 끌려가지 않을 겁니다. 또 당 내 중진들은 김종인 비대위 체제 좋아하지 않습니다. 민주당에 있다가 여기에 왔으니 보수의 정체성이 확실하지 않다고 볼 겁니다.

-당이 정상화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빠르게 전당대회를 열고 지도부를 꾸려 주 원내대표가 이끌어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적어도 정기국회 전인 8월까지는 총선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고 지도부를 구축해 체질 개선에 들어가야 합니다.

-보수 진영 내 거물급 인사들이 이번 선거서 대거 낙선하면서 2년 뒤 대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어떤 인물을 대선 정국에 앞세워야 한다고 보십니까.

▲탁월한 지도력을 가진 분을 모셔야 합니다. 결단할 때 결단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우유부단해선 안 됩니다. 2년 후에는 국민들의 갈등과 분열이 더 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포용력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합니다.

황교안 대표는 실격이고요. 현재로서는 홍준표 당선인이 지지율이 얼마 안 돼도 유력한 상황입니다. 홍 대표는 판단력과 대응력이 좋습니다. 2년 동안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어 극복한다면 야권 후보로서 근접합니다.

-현재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민통합연대서 중도실용정당을 추구하고 있지만, 극우세력으로 꼽히는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이하 범투본)와 여러 활동을 함께 하셨습니다.

▲문정부 규탄, 조국 퇴진과 같은 정치적 이슈로 투쟁을 같이했을 뿐입니다. 투쟁을 함께한 거지, 노선을 함께한 게 아닙니다. 중도실용을 외친다고 하더라도 문정부가 잘못하면 반대 투쟁해야 합니다. 중도실용이란 말은 좌편향 우편향을 극복하고 바르게 나아가자는 겁니다. 앞으로도 그런 투쟁의 요소가 나오면 그건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하지만 문정부를 공산주의 정권으로 몰거나 문 대통령을 간첩으로 모는 데에는 우리가 같이할 수는 없습니다.


-21대 국회서 친이계 인물들이 대거 당선됐습니다. 친이계 좌장으로서 이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이 있으시다면.

▲사실상 계파가 다 사라졌지만… 지금 친이는 ‘친 이재오’라는 말도 나오는데(웃음). 이명박정부 때 녹을 먹었던 사람들과 당시 정치권에 입문했던 사람들이 21대 총선서 24~25명 정도 당선됐습니다. 알아서 잘하겠지만 한 정권을 담당했던 그때를 교훈 삼아 잘못했던 것은 반면교사 삼고, 잘했던 것은 흔들리지 말고 이어가길 바랍니다.

-MB정권이 잘한 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잘한 거야 많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도 두 차례나 극복했고요. 4대강 사업으로 홍수, 가뭄 다 막았습니다. 2010년 G20 회담, 2012년 핵안보 정상회의, 평창올림픽 유치 등으로 국격이 얼마나 높았나요. 임기 중 정치는 이명박 대통령이 제일 잘했다고 봅니다.

“MB 구속 참담…현정부 극악무도”
2년 남은 대선, 홍 근접 황 실격

구속됐지만 재임 중에 권력을 이용한 비리는 하나도 드러난 게 없었습니다. 이명박정부가 끝나고 난 후에도 당시 장관들이나 실세들 중 감옥 간 사람들 없었습니다. 정부 끝나면 정부 실세들 줄줄이 감옥 가지 않습니까. 우선 나부터도 정권 2인자 소리 듣는 사람인데 안 가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MB정권서 아쉬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행정부의 개편을 못했습니다. 행정부는 중앙-광역-기초 3단계로 이뤄져 있습니다. 기초행정 자치단체를 광역에 흡수시켜 정부의 정치·통치·행정 비용을 줄여 국민들을 위해 쓰고자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또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을 못했죠. 지금 제도로는 모든 사안이 문재인 대통령을 통합니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외교·국방·통일은 대통령이 갖고 나머지는 총리가 갖는 구조인데, 그걸 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보수정권의 전직 대통령들이 구속되면서 보수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보수가 궤멸됐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는데 이는 대통령이 탄핵된 게 아니라 보수가 탄핵된 겁니다. 황교안 전 대표가 대통령 권한대행일 때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그런데 정신을 못 차리고 낡은 보수를 이어받다가 이번 총선서 진 겁니다. 그러니깐 보수를 궤멸시킨 건 박 전 대통령이고 당을 궤멸시킨 건 황 전 대표입니다. 답답합니다. 머리 깎고 단식하고 그게 무슨 당대표가 할 행동입니까. 어떻게 국면을 바꿀 수 있을지 대안을 내야지. 대표라는 사람이 단식하고 삭발하고…. 그것도 용기긴 하지만(웃음).

-MB 최측근이셨는데, 구속을 지켜보는 심정은 어떠셨는지요.

▲탄생부터 몰락까지 지켜보면서 정말 참담했지요. 내가 이명박정부 실세 2인자로 불렸어요. 보수정권이 진보정권으로 들어섰으니 지난 정권의 비리를 찾고 조사를 할 거라곤 생각했지만 구속될 거라곤 진짜 생각 못했어요. 처음엔 국정원 댓글 갖고 넣으려 했다가 몇 달 동안 아무 것도 안 나왔잖아요. 그 다음에 개인비리 갖고도 안 나왔고요. 결국은 30년 전 회사 소유권 갖고 잡아 넣었어요. 본인이 내 회사 아니라고 하는데…. 막상 구속을 시키니깐 너무 참담하고 황당했죠. 이 정권이 참 극악무도 하구나. 전직 대통령 둘을 잡아가나 싶어서….

-앞으로 보수가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지금까지의 구태스러운 보수를 완전히 벗어나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새로운 보수는 중도실용적인 보수여야 하고, 이념에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옳고 그름을 얘기하는 건 현실과 동떨어진 겁니다. 쓸모 있는 지혜가 진리고, 뭐든 검증할 수 있을 때만 참이 되는 겁니다. 보수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헌법적 가치인 자유의 기조 위에서 정의와 공정을 외면하지 말길 바랍니다.

-<일요시사>가 창간 24주년을 맞았습니다.

▲주간지가 어려운 환경인데 독자들을 위해 좋은 기사를 제공해주고 계십니다. 좋은 기사가 제공되지 않으면 언론사의 수명은 길지 않습니다. 24주년을 맞은 건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겁니다. 비판과 견제라는 언론의 사명대로, 계속해 좋은 기사를 써주길 바랍니다.


<sangmi@ilyosisa.co.kr>

 

[이재오는?]

▲1945년 강원 동해 출생
▲중앙대 경제학과, 고려대 교육대학원 석사
▲15·16·17·18·19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대표
▲이명박정부 특임장관
▲현 국민통합연대 중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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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5000만원 관봉권’ 출처를 두고 소문이 무성하다. 검찰은 대통령실 특활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씨는 그저 ‘기도비’라고 진술 중이다. 검찰이 김건희씨까지 수사 대상에 올린 점을 보면 전씨의 진술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전씨가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김씨의 소환조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일가를 향한 수사는 그간 서울중앙지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로비 사건은 중앙지검이 아닌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포문을 열었다. 전씨는 통일교와 캄보디아 사업 및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돈을 받았다. 윤석열 일가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수상한 증거들 남부지검은 전씨를 수사하기 이전에 한 가상자산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최근 정식 부서로 신설된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해 7월 ‘퀸비코인(QBZ)’ 관계자 이모씨 외 3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사업 진행 능력이 없음에도 허위 자료를 제출해 스캠 코인을 상장했다. 1만명이 넘는 투자자로부터 가로챈 금액은 300억원에 육박한다. 남부지검은 수사 과정서 퀸비코인 관계자 이씨가 2018년 1월 자유한국당 경북 영천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정모씨를 전씨와 연결한 정황 및, 이들 간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정씨는 전씨 법당을 찾아 1억원을 건넸다. 이 사실을 파악한 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전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그의 법당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두 달여 전에는 경기 성남의 카카오 판교 서버를 압수수색해 전씨의 카카오톡 기록까지 확보했다. 전씨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캠프 네트워크본부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그의 처남으로 알려진 ‘찰리’ 김모씨도 전씨와 같이 활동했다. 전씨는 김건희씨가 운영하던 전시기획회사 코바나컨텐츠의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씨의 딸도 잠깐이지만 코바나컨텐츠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남부지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과 김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로비 행위를 벌였다고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실제 전씨가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남부지검은 지난달 30일 윤 전 대통령 사저인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피의자들이 2022년 4월부터 8월 사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제공했다”고 적시됐다. 청탁 사유로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교육부 장관 통일교 행사 참석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이 담겼다. 이 압수수색은 전씨를 통해 통일교 세계본부장 출신이자 2인자였던 윤모씨가 수천만원 상당의 그라프(Graff)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 가방, 천수삼 농축차 등을 김씨에게 전달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남부지검은 윤씨가 지난 2022년 7월 전씨에게 ‘김 여사가 물건(천수삼) 잘 받았다더라, 건강이 좋아지셨다고 한다’고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찍혔는데…통상 정부 예산 활용 금융권 “개인이 갖고 있을 수 없다” 일축 검찰이 지난 3일 전씨를 청탁금지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만큼 김씨에 대한 소환조사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남부지검 수사팀 내부에서는 김씨를 대선 직전에 소환조사해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목걸이와 명품백을 잃어버렸다. (김 여사가 잘 받았다는 문자는) 거짓 문자”라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김씨 측도 “전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검찰은 윤씨가 전씨에게 윤석열정부의 캄보디아 ODA 사업 추진을 청탁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검찰은 윤씨가 “윤 전 대통령과 독대했고 국가 단위 ODA 연대 프로젝트에 동의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 2022년 3월 윤씨가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과 김씨를 인수위서 만난 뒤 캄보디아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통일교는 같은 해 메콩강 핵심 부지에 ‘아시아태평양유니언 본부’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윤씨는 훈센(Hun Sen) 당시 캄보디아 총리와도 이 사업을 논의했지만 자금난으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윤씨는 2022년 5월 한 통일교 행사에서 “3월 22일 대통령을 만나 1시간 독대를 하면서 이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암묵적 동의를 구한 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ODA는 비영리기구(NGO)가 펀딩 가능하고 국가가 지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직후인 2022년 6월 기획재정부가 제4차 한-캄보디아 ODA 통합 정책협의서 대(對)캄보디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지원 한도액을 기존 7억달러에서 15억달러로 늘리는 기본 약정을 체결한 점을 주목했다. 한도액이 늘면 중기후보사업 승인 절차가 간소화돼 ODA 사업 수주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김씨가 나토 순방 당시 착용했던 6000만원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와 관련해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이 불거지자, 윤씨는 전씨에게 “김 여사에게 빌리지 말고 하고 다니라”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건넸다. 검찰은 지금까지 김씨 명의 휴대전화 3대를 확보했다. 이 중 1대는 김씨가 지난달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서 나오면서 보안 비화폰(안보폰)을 반납한 뒤 개통한 휴대전화다. 나머지 2대는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서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사실상 공기계로 알려졌다. 자택 압색 그 이후… 검찰은 100여개에 달하는 압수 대상에 윤씨 선물 명목으로 전씨에게 제공했다는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인삼주 등도 적시했지만 확보하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윤씨의 청탁이 성사됐거나 윤씨와의 직무 관련성 등이 입증된다면 김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와의 전화 통화에서 “카톡 기록과 전달됐거나 전달되려 했던 물품들은 이미 수사팀이 확보했으니 김씨가 대면 조사를 피하긴 힘들다”며 “남부지검서도 성역 없이 수사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상 공직자의 배우자를 청탁금지법으로 처벌할 수 없으니 직무 관련성 입증이 관건”이라며 “입증만 된다면 알선수재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가장 중요한 건 전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당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전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5만원권 3300매(1억6500만원)를 확보했는데, 이 중 5000만원은 비닐 포장이 벗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검찰은 전씨에게 이 관봉권의 출처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관봉권은 ‘제조권’과 ‘사용권’ 두 종류로 나뉜다. 제조권은 한국조폐공사에서 한은이 받아온 신권으로 돈다발에 십자 형태의 띠를 두르고 비닐로 싸 압축한 형태다. 사용권은 한은이 시중은행서 회수한 돈을 검수해 낡은 돈은 폐기하고 사용하기 적합한 돈만 골라낸 것이다. 발견된 돈다발 김씨와 전씨 사건서 등장하는 관봉권은 모두 사용권이다. 전씨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 돈다발은 한은이 적힌 비닐로 포장돼있었고, 비닐엔 기기 번호와 담당·책임자 일련번호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김씨 측이 옷값을 치를 때 썼던 관봉권은 비닐 없이 띠지만 둘러져 있는 돈다발 형태였다. 관봉권은 국가 예산으로 편성되는 대통령실(청와대)과 검찰, 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의 수사나 조사에 필요한 특수활동비로 쓰이기도 한다. 과거 정부에서는 이 특활비가 로비 자금으로 악용됐다. 한은은 전국에 16개 지역 본부를 두고 금융기관에 관봉권을 보낸다. 서울엔 남대문 본점 및 강남본부 등 두 곳이 있다. 이 중 강남본부가 대통령실과 사정기관 등에 예산 조달을 담당해 왔다. 다만 민간인의 집에서 관봉권이 발견될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대개 일반 정부 예산은 관봉권 형태가 아닌 계좌이체 등을 통해 전달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천만원 상당의 관봉권이 묶인 채로 남아 있는 건 영수증 내역도 남지 않는 특활비”라며 “통상 정보와 사정기관이 ‘돈의 주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검찰도 전씨의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 강남본부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이 관봉권에는 ‘2022년 5월13일’이라는 날짜가 기재돼있다. 윤 전 대통령 취임일 사흘 뒤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주로 돈은 ‘기도비’ 명목으로 받아왔지만 관봉권은 정확하게 누구에게 받은 돈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한은 방문 이후 전씨의 집에서 발견된 관봉권에 적힌 ▲기기번호 ▲담당자 ▲책임자 ▲발권국 항목 등의 의미를 확인했다. 기기번호의 뜻은 정사기(검수기) 기기번호와 기기호수를 뜻하고, 발권국 정보에는 정사 업무를 담당하는 발권국 화폐관리1팀을 의미하는 숫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MB 때 국정원 ‘입막음·로비’ 용도로 사용 검·정보 “이번엔 아니다”…남은 건 용산 포장지에 적힌 ‘2022년 5월13일 오후 2시5분59초’는 한은이 검수를 마친 시각이라고 한다. 다만, 한은은 개별 사용권이 어느 시점에 어느 금융기관으로 지급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금융기관서 화폐를 요청하는 경우 ▲지급한 금융기관명 ▲지급일자 ▲권종 ▲금액 등만 기록할 뿐, 어떤 사용권 묶음을 제공했는지는 별도 기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관봉권이 지난 대선 기간 전씨가 운영했던 윤 전 대통령 선거캠프 운영비일 수 있다고 보고 금융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올해 초 당시 네트워크 본부장으로 있던 오을섭씨를 소환조사하면서 양재동 캠프의 운영비 출처를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해당 관봉권 출처가 불분명한 만큼 특활비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한은 뭉칫돈은 대부분 특활비”라며 “특활비라면 한은 검수 이후 수천만원 상당의 돈이 필요한 곳은 보통 사정기관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예산은 뭉칫돈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결국 사정기관 담당자들을 불러 확인해봐야 하는데 정보기관에서는 특활비 활용 자체가 보안으로 분류돼 확인도 어려울 것이다. 출처 규명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와 접촉한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국정원 특활비’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앞서 이명박정부 청와대는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바 있다. 지난 2011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했는데, 당시 국정원은 관봉 형태의 특활비 5000만원을 장 전 주무관에 ‘입막음비’로 전달했다. 이 같은 내용은 검찰 수사와 공판 등을 통해 청와대서 국정원 특활비를 받아 장 전 주무관에 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분명한 출처 어디?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과거 국정원 특활비와 흡사해 보이지만 2022년 이후의 특활비 활용이나 대통령실을 통해 쓰인 ‘국정원 특활비’ 등에 대해서 들여다봤을 때 불법적이거나 위법하게 쓰인 사실이 없다. 한 개인에게 갈 일은 더더욱 없다”고 못 박았다. 검찰 관계자도 “남부지검서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검찰 특활비는 아니다. 남부지검 수사팀도 검찰과는 상관없는 관봉권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