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새해캠페인> 斷② 재계 5대 악습 되풀이 실태

로열패밀리 제버릇 ‘황제에서 황태자로…’

재벌그룹 도덕적 해이 등 고질병 매년 반복
기업 병폐 나라경제 직결 “털 건 털고 가자”

비자금 조성·정관계 로비, 주가 조작, 경영권·재산 다툼, 하청업체 죽이기, 이물질 파동…. 해마다 되풀이되는 재계의 뿌리 깊은 고질병이다. 지난해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구시대의 악습은 약속이나 한 듯 어김없이 되살아났다. 문제는 이런 병폐가 나라 경제와 직결된다는 사실이다. 불황의 벽 앞에서 극심한 불안과 절망으로 벌벌 떨고 있는 정부와 국민으로선 마땅히 질타하고 감시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2009년 새해를 맞아 <일요시사> 뉴 캠페인 ‘끊자 끊자’를 통해 ‘털건 털고 가자’는 의미에서 지난해 재계에서 사라지지 않은 고질병들을 되짚어 봤다.

재벌 집단은 지난 1990년대 말 대한민국 경제를 초토화시킨 IMF 외환위기 사태의 가장 큰 주범으로 꼽힌다. 정부의 뒷짐으로 가능했던 온갖 불법과 편법, 부실경영, 도덕적 해이 등이 환란의 한 축으로 지목됐다.

재계의 고질병이 기업은 물론 나라 전체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재벌 비판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각 그룹은 2000년대 들어 앞 다퉈 지배체제 전환을 서두르는 등 재정비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나라 경제는 다시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 결국 IMF가 재벌그룹의 투명경영을 공고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나 재계의 악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IMF에 못지않은 경제 한파가 또 다른 양상으로 들이닥친 지난해 충격적 추문은 유난히 기승을 부렸다.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으름장도 소용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전후 “경제계의 몇 가지 고질병을 고친다면 7% 성장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지만 재임 1년이 지난 결과 두 전제 모두 공염불에 그쳤다.


 
<1>기업 털면 정치인 나온다
비자금·로비의혹 줄이어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는 재계에서 끊이지 않는 추문이다. 1950년 6·25전쟁 이후 경영 1세대부터 줄곧 그랬다.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부인하지만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대기업 비리 의혹에 날 선 칼날을 들이댔다. 기업의 고질적인 병폐인 ‘검은 돈’을 집중적으로 털어냈다. 검찰은 부인하지만 특정인을 솎아내는 데 비자금만 한 통로가 없다. 비자금이 곧 정·관계 로비로 연결되는 탓이다.

검찰이 전 정권 인사들을 표적삼아 우선 기업들을 정조준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여기서 나온다. 검찰이 기업 비자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가장 먼저, 가장 이슈화된 비자금 사건은 2007년 10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서 촉발된 삼성그룹 비자금 및 정·관계 로비 의혹이다.

이 일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지난해 4월 대국민 사과와 함께 42년 만에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결단을 내렸다. 그룹 수뇌부인 이학수 전 부회장과 김인주 전 사장 역시 퇴진했다. 과거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전략기획실도 해체됐다.

삼성 특검에서 밝혀진 이 전 회장의 차명재산 규모는 약 4조5000억원에 달한다. 임직원 명의의 1천200여 개 차명계좌를 통해 관리된 이 돈의 출처와 용처를 놓고 세간의 추측이 무성하다.

지난해 1월부터 4월까지 100여일간 계속된 ‘삼성 수사’는 올해 초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내려질 전망이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10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등을 선고받았다.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도 비자금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수천억원의 회사 자금을 횡령하거나 배임한 혐의 등으로 백 회장을 구속했다. 프라임그룹 비자금 의혹으로 시작된 검찰 수사는 이주성 전 국세청장 구속 등 본격적인 정·관계 로비 수사로 접어들었다.

이외에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남중수 전 KT 사장과 조영주 전 KTF 사장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포스코 ▲유한양행 등도 비자금 또는 로비 혐의로 검찰에 이미 구속되거나 같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따라서 재계의 비자금·로비 후폭풍이 올해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재벌가 자제 ‘주식 장난’
꼬리에 꼬리 문 주가 조작

재벌 일가의 주가조작 사건도 도마에 올랐다. 특히 재벌가 2∼4세들의 ‘주식 장난’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지난해 재계를 뜨겁게 달궜다.

지난해 초부터 재벌가 자제들의 주가조작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의 첫 타깃은 코스닥 시장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 LG가 방계 3세 구본호(사진)씨였다.

구씨는 2006년 9∼10월 미디어솔루션(현 레드캡투어)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대우그룹 구명 로비에 연루된 조풍언 씨의 자금을 이용해 차입금을 자기자금으로 속이고 이른바 ‘검은머리 외국인’을 끌어들여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처럼 허위 공시해 주가를 상승시킨 후 수백억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후 재벌가 2∼4세 주가조작 수사에 탄력이 붙었다. 검찰은 상당수 재벌가 자제들이 연루된 정황을 포착, 수사를 확대해 지난해 8월 두산가 4세 박중원 씨를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의 차남인 박씨는 마치 자신의 돈으로 뉴월코프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처럼 거짓 공시를 해서 일반 투자자들을 속인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또 지난해 말 한국도자기 창업주 손자인 김영집 씨를 특경가법상 배임 및 횡령,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김씨는 코스닥 상장사인 엔디코프와 코디너스(당시 엠비즈네트웍스)를 인수해 운영하면서 수백억원 규모로 재산상 피해를 끼치거나 돈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대가 3세 정일선 씨 등 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아들 3형제도 같은달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정상적으로 돈을 투자한 것으로 밝혀져 무혐의로 풀려났다.

뿐만 아니다. 기형적인 투자로 주식 대박을 터뜨렸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재벌가 로열패밀리는 수두룩하다. 현재 A그룹 창업주 손자 N씨, K그룹 회장 아들 J씨, L그룹 3세 S씨 등이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라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 역시 투자한 회사의 시세차익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여기저기서 첩보를 수집한 검찰은 내사를 거쳐 표적에 바짝 다가선 형국이다. 특히 이 대통령의 셋째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의 사법 처리 여부가 관심사다. 조 부사장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가 조작 의혹을 캐고 있는 검찰은 조만간 조 부사장을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재벌그룹 총수의 주가조작 의혹도 불거졌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유티씨인베스트먼트가 허위공시를 통해 수백억원의 시세 차익을 남긴 정황을 포착했다. 이 회사는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창업투자회사다. 검찰은 임 회장이 주가조작에 개입했는지 집중 조사하고 있다.

<3>가족간 피 튀는 재산다툼
끊이지 않는 ‘골육상쟁’

재벌그룹 일가의 재산 다툼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경우도 빈번했다. 법정 공방은 기본. 피붙이의 치부를 낱낱이 파헤치며 말 그대로 진흙탕 싸움도 불사했다. 가히 혈투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겉으론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속내는 뻔하다. 십중팔구 목적은 ‘돈’이기 마련이다. ‘돈이 피보다 진하다’란 말이 실감되는 대목이다.

종근당 일가가 딱 그렇다. 이들은 15년 전 별세한 고 이종근 회장의 차명주식을 놓고 분쟁에 휘말렸다.

이 회장의 부인과 자녀들은 지난해 12월 “이 회장 사망 후 장남인 이장한 회장이 가족을 완전히 배제하고 종근당 등 관련 회사의 대표이사로 취임해 단독으로 경영권을 장악했다”며 종근당산업주식회사 등을 상대로 주주지위 확인 등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종근당 일가는 이 전 회장이 1993년 사망한 이후 줄곧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맛살 명가’오양수산 일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들의 골육상쟁은 고 김성수 오양수산 회장이 지난해 6월 타계한 뒤 상속지분 처분을 놓고 불거졌다. 2000년 11월 김 회장이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1000억원대의 재산을 놓고 갈등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해를 넘겨 지난해까지 계속됐다.

어머니와 가족들은 김 회장 소유 오양수산 지분(35.2%)을 경쟁사인 사조산업에 넘겼지만 장남인 김명환 전 오양수산 부회장이 반발하면서 다툼이 벌어졌다.

이 비극은 저 세상으로 떠난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도 연출될 정도로 파국으로 치달았고 급기야 법정공방으로 비화됐다. 결국 법원이 지난해 7월 1심에서 어머니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락됐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다.

대성그룹 일가인 고 김수근 창업주의 장남 김영대 대성산업 회장과 차남 김영민 서울도시가스 회장, 3남 김영훈 대구도시가스 회장 등도 김 창업주가 작고한 2001년 지분 다툼 이후 등을 돌려 아직까지 발길을 끊고 있다.

눈길을 끄는 점은 지난해 유난히 가족 간 분쟁이 마무리되는 사례가 줄을 이었다는 것이다. 2007년 5월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혼외 딸들이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등 창업주 가족을 상대로 낸 100억원대의 상속재산 청구소송은 지난해 2월 혼외 딸들에게 40억원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조용히 종지부를 찍었다.

2004년부터 5년간 이어지며 ‘진흙탕 싸움의 진수’를 보여준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강문석 전 이사의 부자간 경영권 분쟁도 강 전 이사가 지난해 말 동아제약 지분(2만500주)을 모두 매각하는 것으로 마침내 마침표를 찍게 됐다.

<4>‘먹는 음식에 장난을…’
식품업계 이물질 파동 반복

지난해 ‘먹거리 쇼크’도 되풀이됐다. 먹는 음식에 장난을 치는 기업의 두둑한 ‘배짱’이 또다시 도마에 오른 것. 먹거리에 비상등을 켠 사건은 ‘생쥐깡’과 ‘칼날 참치’ 파문이다.

지난해 3월 농심은 1971년 첫 선을 보인 이후 ‘국민 간식’으로까지 불리며 오랫동안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새우깡에서 생쥐머정되는 이물질이 검출돼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문제는 사건을 ‘쉬쉬’한 농심의 태도다.

농심은 이물질이 나온 사실을 알고도 한 달 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지난해 2월 말 충북의 한 소비자가 슈퍼마켓에서 산 새우깡에서 1.6㎝ 크기의 털이 난 이물질을 발견하고 회사 측에 통보했지만 농심은 식약청이 이 문제를 발표한 뒤에야 내부조사 사실을 털어놨다. 어이없는 사고를 터뜨리고도 이를 은폐하려다 위기를 자초한 셈이다.

‘칼날 참치’ 생산업체인 동원 F&B도 2006년 11월 참치캔에서 커터 칼날이 나왔다는 소비자 불만신고를 받았지만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사건을 덮으려 했다.

동원 F&B는 이를 신고한 소비자에게 참치 선물세트를 주며 사태 무마를 시도했다. 제품 수거조치도 없었다. 동원 F&B는 지난해 3월 참치에서 또다시 칼날이 나왔으며 이후에도 여러 제품에서 잇달아 이물질이 발견돼 진땀을 흘렸다.

사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구두충 꽁치, 다이옥신 삼겹살, 바퀴벌레 라면, 생쥐 냉동야채, 볼트 컵라면, 동전 시리얼 등 이물질 파문은 계속됐다. 해당 식품업체들은 즉각 수습에 나서지 않고 뭉그적대다 달랑 사과문만 발표하는 데 그쳤다.

이물질 충격이 채 가시기 전 지난해 9월 ‘멜라민 공포’가 엄습했다. 중국에서 시작된 멜라민 파동은 전 세계를 강타했고 분유를 비롯해 유제품, 사료, 가공식품 등으로 확대됐다. 국내 식품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잇달아 밝혀지면서 엄청난 파문과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멜라민 파동’에 휩싸인 식품업체들의 대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나몰라라’하는 업체들의 수수방관에 소비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멜라민 검출 제품이 늘어나면서 전국이 들썩거리고 있는데 반해 업체들의 느슨한 위기관리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해태제과 등 업체들은 멜라민 파문 초기 “자사 제품은 문제가 없다”고 하나같이 발뺌했다. 그러다 국내 식품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되자 돌연 입장을 바꿨다. 손을 놓고 있다가 뒤늦게 전량 회수에 나선 것. 롯데제과도 당초 “중국산 제품은 1개뿐”이라며 멜라민 식품 유통 사실을 숨기다 식약청의 판매금지 품목에 일부 제품이 포함되자 슬그머니 말을 바꿨다.

<5>말뿐인 대·중소 상생관계
‘하청업계 죽이기’ 여전

지난해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대내외 경영환경 악화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협력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아 쓰러져가는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얘기다.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은 1998년 6.01%에서 계속 하락세를 보이다 2007년 4.43%까지 추락했다.

이에 정부는 틈만 나면 긴급 간담회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대기업에 전했고 대기업들은 모두 협력을 다짐했다. 이 대통령도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자가 돼야 한다”며 대-중소기업간 상생을 여러 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30대 그룹의 상생경영 투자액은 지난 2005년 1조401억원에서 지난해 2조3484억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상생협력 전담 조직을 갖춘 기업도 2005년 5개에서 지난해 19개로 대폭 늘어났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중소업체들의 자금사정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 원자재가 상승, 매출감소 등으로 인해 자금수요는 늘어난 반면 현금결제 비중 감소 등에 따른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되는 추세다.

특히 하청업체들은 “대기업의 횡포가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실제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의 ‘대기업 불공정거래 사례 발굴 조사’결과 대기업들의 횡포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례별로 보면 ▲하도급대금 지연지급 ▲대기업 통신사의 부당한 거래관행 ▲PVC레진 가격의 비합리적 산정 ▲대기업의 비밀유지각서 강제 ▲대형 홈쇼핑사의 일방적 반품 및 비용상계 처리 ▲대기업의 일방적 납품단가 산정 ▲대기업의 서면교부의무 위반?일률적 납품단가 인하 등 ▲대형 SI업체의 일방적 거래거절 등이었다.

그럼에도 중소기업의 절반 이상이 대기업 보복이 두려워 참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지난해 말 국내 건설 대기업들이 주로 중소기업들로 구성된 하도급 업체에 선급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사실을 적발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대기업은 하도급 업체를 위협해 선급금 포기각서를 받았다.

대형 백화점·마트가 우월적 지위 남용해 입점업체들을 압박한 사례도 허다했다. 또 대기업의 ‘납품가 후려치기’란 고전적 수법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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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