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분쟁조정의 달인' 임성학의 실타래를 풀어라(24)

범을 풀어 여우를 쫓아라

컨설팅전문가인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은 자타가 공인한 ‘분쟁조정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침서 <실타래를 풀어라>를 펴냈다. 책은 성공이 아닌 문제를 극복해 내는 과정의 13가지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임 소장. 그의 숨은 비결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정신지체 딸이 돌아오지 않아 경찰에 신고
유사한 사건 해결한 경험담 들려주기로 해

6월 초순이라 그런지 햇살이 제법 뜨겁고, 느티나무 잎들은 짙푸르게 살이 올라 숲이 점점 진초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일부 등산객들은 산중턱 군데군데 피어있는 철쭉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기도 했다. 친구와 나는 얘기를 나누며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겼다. 관악산 정상 가까이 다다랐을 때 넓은 바위가 하나 보였다.

“어이, 윤 전무! 저기가 어떤가?”
내가 가리키는 바위를 보며 친구가 거기서 잠깐 쉬는 게 좋겠다고 했다. 우리는 차가운 물로 갈증을 달래며 바위에 걸터앉았다. 주변에는 먼저 온 등산객들이 음식을 나눠먹으며 쉬고 있었다.
“어이, 시원하다. 벌써 이렇게 더운걸 보니 올해도 더위가 만만치 않겠어?”
“그러게 말일세.”

우리는 다리를 풀며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초여름의 빛나는 태양아래 굽이치는 산들의 초록색 싱그러움은 마치 무슨 푸른 비단을 깔아놓은 것처럼 화사했다. 그 너머에는 안양 시내가 아스라이 보이고 있었다.
친구가 배낭 속에서 귤 몇 개를 꺼내 건네주며 못다 한 아들 얘기를 마저 꺼냈다. 아무래도 그 문제가 영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놈들이 우리 애를 다시 만나면 해코지 할까?”
“자네 말대로 그놈들이 또 다시 무슨 해를 끼칠 수도 있으니 지금이라도 늦기 전에 조치를 해서 그 싹을 잘라야 하네.”
나는 친구의 걱정을 함께 나눈다는 심정으로 말했다.
“어쨌든 자네는 이런 문제에 대해 전문가가 아닌가? 좋은 방안을 찾아 주리라 믿어.”
“에이, 이 친구. 자네는 급할 때만 나를 찾지? 평소에 형님! 하고 잘 좀 해봐. 하하하.”
“난 언제나 성님 편입니다. 잘 암시롱? 하하하.”

산행하며 상담

친구가 내 농담에 아부하는 흉내를 내다 멋쩍은지 따라 웃었다.
“아참, 지금 생각이 난 게 있는데. 이번 문제와는 내용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유사한 일을 해결한 적이 있어. 한번 들어보겠는가?”
“아니 그건 또 무슨 일인데?”
친구는 아들을 괴롭힌 것과 유사한 사건을 해결했다는 말에 동병상련의 심정이 들었는지 아니면 혹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내말에 솔깃하고 있었다. 우리는 좀 더 가까이 앉아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게……. 성추행범을 잡은 일일세.”
“아, 그래 빨리 얘기하게.”


친구가 성화를 하며 얘기를 재촉했다. 나는 땀을 말리려고 잠깐 벗어놓았던 모자를 다시 쓰고 친구를 바라보며 의미 있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친구도 왠지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기는지 마주 웃었다.
수년 전 내가 신용정보회사에 근무할 때 일이었다. 의류판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60대 중반의 김 사장이란 분이 있었다. 반포 쪽에 사는 그분은 나와 부담 없이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는 사이로, 술을 못 하는 분이라 식사약속을 하거나 만날 일이 있으면 주로 낮 시간에 만나곤 했다.
그런 양반이 어느 날 오전 일찍 전화를 했다. 내게 할 말이 있으니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는 거였다. 그러면서 식사하기 전에 먼저 내 사무실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있나 싶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분이 찾아와서 조심스레 가족 문제를 꺼냈다.

“임 이사, 내 누구한테도 말 못할 고민이 있어 결례를 하네.”
“아니 무슨 말씀을, 맘 편히 하시지요.”
나는 그에게 무슨 얘기든 하시라고 했다.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돕겠다고 하면서. 내가 성의를 보이자 그분도 작심을 한 듯 말문을 열었다.
“임 이사도 알겠지만 내 자식 4남매 중에 23세 된 막내딸이 있지 않은가? 좀 부족하긴 하지만…….”
김 사장이 말을 아끼며 뜸을 들이고 있었다. 김 사장의 막내딸은 약간의 정신지체장애인이었기에 그분을 뵐 때마다 다 같이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가족들이 얼마나 고민을 할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런 분이 그 딸애를 거론하자 특별한 감정이 일어 재촉하듯 물었다.

딸은 돌아왔는데…

“아니 무슨 일이 있습니까?”
“임 이사, 내가 말을 꺼내기가 민망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네.”
“괜찮습니다. 사장님과 저하고는 서로 믿고 존경하는 사이가 아닙니까? 그런데 못할 말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제가 사장님 댁에 가서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어디 한두 번입니까? 사장님 가족은 제 가족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시기 곤란하면 하지마시고, 꼭해야 될 것 같으면 어떤 말이라도 좋으니 편하게 말씀하시지요.”
“그래, 자네가 그렇게 생각해 주니 정말 고맙네. 어차피 누구에겐가 말을 하여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니……. 자네만큼 내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 어디 또 있겠나.”
“별 말씀을요.”

“그게 말일세, 막내딸애가 생각이 좀 부족하여 혹 무슨 일이 있을까봐 늘 노심초사 하고 산다네. 어디 외출을 나갈 때는 집사람이나 언니들이 꼭 동행해서 데리고 다니며 바람도 쐬고, 시장구경도 시키며 신발과 옷도 사주곤 했지.”
그러면서 김 사장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침묵이 흐르고…….
“그저께는 평소처럼 집사람이 볼일이 있어 외출을 하게 되었다네. 해서 딸애한테 엄마가 시장에 금방 다녀올 테니 어디 나가지 말고 집에서 TV보고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하고는 나갔는데……. 두어 시간 후에 집에 돌아와 보니 딸애가 나가고 없었던 거야.”
“아, 그런 일이!”

“처음에는 가끔 주변에 돌아다니다가 온 적도 있고 해서 오늘도 인근에 바람쐬러나갔나 하고 별 염려를 하지 않았어. 그런데 해가 넘어가는 저녁녘에도 돌아오지 않지 뭔가. 불안감이 들어 큰 딸들에게 연락해서 고속터미널상가와 주변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하였다네. 집에 다시 돌아와 실종신고를 해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다가 집사람이 나한테 전화를 하였다네. 그래서 내가 집에 들어갈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신고여부를 결정하자고 말해두고선 급히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상의를 하고 있는데 그때 마침 딸애가 돌아 왔다네.”
나는 딸애가 돌아왔다는 말에 그나마 안심을 했다. 다행히 큰 봉변은 당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전히 김 사장 표정은 어두웠다. 혹시 다른 일이라도?
<다음호에 계속>

 

임성학은?

- 대한신용조사 상무이사 역임


- 화진그룹 총괄 관리이사 역임

-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

- PIA 사설탐정학회·협회 부회장 겸 운영위원

- PIA 동국대·광운대 최고위과정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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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