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풍 몰고 온 4·11 총선] ⑨ ‘울고 웃는’ 재계 속사정

  • 김성수 kimss@ilyosisa.co.kr
  • 등록 2012.04.18 08:5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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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 잡는 ‘저승사자’들이 돌아왔다!

19대 총선 결과를 두고 대기업들의 표정이 엇갈리고 있다. 안도와 한숨이 교차되는 분위기다. 과거 질긴 악연이 있는 전 의원이 다시 ‘금배지’를 달아 골머리를 앓고 있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그동안 신경 쓰이게 했던 의원이 낙선해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기업도 있다. 또 의원 상당수가 교체된 만큼 새로운 관계설정을 위해 벌써부터 줄을 대느라 분주한 기업까지 눈에 띈다.

‘대기업 저격수’노회찬·심상정 투톱 국회 재입성
재벌개혁 주도 박영선·최재성·이용섭 행보 주목

“괜히 긴장했습니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가 싱겁게 막을 내리자 모 기업 관계자가 내뱉은 말이다. 후끈 달아올라야 할 국감장은 미지근하다 못해 서늘했다. 뻔한 질문에 뻔한 답변들이 오갔다. 그때뿐만 아니라 지난 4년 내내 ‘혹시나’했던 기대는 ‘역시나’로 끝났다. 몇몇 의원들이 재벌들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지만 새 정보 없이 기존의 논란거리를 재탕 삼탕 우려먹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18대 국회는 ‘재벌 저격수’들의 부재가 여실히 드러났었다. 그만큼 17대 국회에서 활동했던 재계의 숙적들의 빈자리가 더욱 커 보였다.

19대 총선이 끝났다. 당락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서민들이 반길만한 두 인물이 주목받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쌍두마차’ 노회찬 당선자(서울 노원병)와 심상정 당선자(경기 고양 덕양갑)다. 노 당선자는 57.2%의 지지율을 획득,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39.6 %)를 큰 격차로 앞서며 당선됐다. 심 당선자는 개표 완료 직전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초접전을 보이다 49.4%의 지지율로 손범규 새누리당 후보(49.2%)를 제치고 신승했다.

4년 만에 국회에 재입성한 이들은 17대 국회 임기 내내 재벌그룹들의 치부를 과감히 들춰냈다. 특히 국감 때마다 화끈한 폭로와 뜨거운 이슈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노 당선자는 재계에 거침없이 독설을 퍼붓는 ‘거포’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삼성 저격수’로 통한다. 그는 2005년 ‘삼성 X파일’ 논란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해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이후에도 대기업들의 비정상적인 경영 실태를 질타하는 등 줄곧 삐뚤어진 재벌그룹들의 행태를 꼬집어 화제를 모았다. 심 당선자도 재계를 벌벌 떨게 한 ‘대기업 저승사자’로 불린다. 그는 대기업 지배구조, 경영권 세습, 각종 비리 등을 문제 삼아 재벌그룹에 날선 비판을 퍼부은 바 있다. 이들은 당선이 확정된 후 첫 일정으로 노동자들을 찾아 시선을 모았다.


노 당선자는 4월12일 새벽 1시 한일병원 식당 노동자들의 점거투쟁현장을 찾아 “한일병원 고용승계 문제 해결에 통합진보당 차원에서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심 당선자는 이날 오전 서울 대한문 옆에 위치한 쌍용차 22번째 희생자 분향소를 방문했다. 노회찬-심상정 투톱의 등장에 재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당장 출자총액제한제와 순환출자 문제가 걸린다.

야권연대는 출총제 부활과 대기업 계열사 간 순환출자 금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기업들로선 여간 부담스런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두 법이 수정되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지배구조를 다시 짜야 하기 때문이다. 19대 국회가 시작되면 노회찬, 심상정 등 친노동 성향의 의원들이 출총제와 순환출자 카드를 곧바로 꺼내들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재계 관계들의 전언이다.

미지근했던 18대
19대 달아오른다

노회찬-심상정 못지않은 ‘재벌 저격수’ 박영선 의원도 19대 국회에서 볼 수 있게 됐다. 박 의원은 구로을 지역구에서 61.9%의 지지율로 강요식 새누리당 후보(35.1%)를 크게 따돌렸다. 3선 째다. 민주통합당의 대표적인 재벌개혁론자인 박 의원은 17대 국회 때 금산분리법을 주도하고 18대에선 일반지주회사의 금융회사 지분 보유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를 저지하는 등 꾸준히 대기업을 비판하며 재벌개혁을 주도해왔다.

박 의원은 올초 화두로 재벌개혁을 제시했었다. 공약에도 이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는 “이제 재벌개혁은 올 한 해 총선과 대선을 관통하는 99% 서민과 중산층의 화두”라며 “특히 재벌총수 사면금지 등을 포함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신속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민적 합의 없이 통과된 재벌 특혜 의혹이 있는 법안은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동영·강기갑·이종구… 낙선에 쾌재 부른 기업도
반재벌 의원들 동향 예의주시 정보력 총동원 사전 정보수집

최재성, 이용섭 등 재벌 공격수 2인방의 활약도 기대된다. 최재성 민주통합당 의원(45.15%)은 경기 남양주시갑에서 송영선 새누리당 후보(41.9%)를 제치고 19대 국회 입성을 확정지었다. 이번 당선으로 3선이 된 최 의원은 유세 내내 “MB정권을 반드시 심판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발언은 롯데 등 MB정부와의 유착 의혹이 있는 기업들을 긴장케 한다.


실제 최 의원은 2010년 정부가 제2롯데월드 건설을 허가하자 이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그는 “롯데 총괄사장에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동기동창이 취임한 것이 석연치 않다”며 “제2롯데월드가 MB정권의 신정경유착이 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이용섭 민주통합당 의원도 재선에 성공했다. 이 의원(74.7%)은 광주 광산을 지역구에서 황차은 통합진보당 후보(25.3%)를 여유롭게 따돌렸다. “1%의 이익을 위해서 99%가 희생되는 경제시스템은 더 이상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이 의원은 민주통합당 정책위의장을 맡아 당의 재벌개혁을 총괄 조정하고 있다.

사사건건 제동 걸 듯
각 기업들 바짝 긴장
 
그는 지난달 총선을 앞두고 당을 대표해 ▲경제력 집중 완화(출총제 재도입,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행위규제 강화, 금산분리 강화) ▲불공정 행위 엄단(담합·납품단가 부당인하·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기업범죄 유전무죄 풍토 쇄신) ▲사회적 책임 강화(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강화, 공공부문부터 중소기업 보호 강화, 사회적 책임 공시제도 도입, 대주주 전횡 방지 및 소수주주의 보호) 등이 담긴 ‘재벌 개혁 3대 전략과 10대 정책과제’를 발표한 바 있다.

각각 3선과 재선에 성공한 강창일, 박민식 의원은 앞으로 재벌 저격수로 활약할 가능성이 높은 인물로 꼽힌다.
강창일 민주통합당 의원(43.4%)은 제주 제주시갑에서 현경대 새누리당 후보(39.1%)를 누르고 3선에 성공했다. 강 의원은 대기업들의 이익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해체를 주장한 적이 있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 지식경제위원회가 주최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공청회에서 허창수 전경련 회장을 향해 쓴소리를 쏟아내 시선을 끌었다. 강 의원은 당시 전경련의 로비 문건 파문과 관련해 “전경련을 전국경제인로비연합회로 바꿔야 한다”며 “전경련이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 만큼 해체하는 게 국민경제나 재계를 위해서도 낫다”고 비판했다.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52. 4%)은 부산 북구강서구갑에서 전재수 민주통합당 후보(47.6%)와 접전을 벌이다 재선에 성공했다. 박 의원은 2008년 법무부 국감에서 무차별적인 재벌총수들의 사면을 문제 삼으며 ‘회장님 구하기 7대 비책’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끌면서 무마시키기 ▲불구속 수사 요구 ▲영장 기각 ▲집행유예 ▲법정구속 피하기 ▲구속집행정지 노리기 ▲사면 등 7단계 사면 순서를 나열하면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을 예로 들었다.

또 지난해 8월 ‘기업의 사회적 책임’ 공청회에선 정몽구 회장을 도마에 올리기도 했다. 박 의원은 “정 회장이 2006년 비자금 관련 공판 과정에서 7년 동안 8400억원의 사재 출연을 약속해 놓고 6년이 지나도록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재계는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만 없는 노릇이다.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자체 안테나를 여의도에 맞추는 등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다.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해 저마다 정보력을 총동원하고 있는 것.

국내 굴지의 기업마다 직원을 붙여 정보 수집 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각 의원들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부분 대관업무 담당자들을 국회에 상주시키는 등 일찌감치 방어 태세를 갖췄다는 후문이다. 의원실 탐색은 기본, 줄을 대기 위한 정보전도 뜨겁다. 흡사 정보기관의 첩보활동을 방불케 한다.

일부 대기업이 이미 검찰·경찰·국정원 등 수사·정보 인력을 대거 영입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재계 관계자는 “노회찬, 심상정 등 반재벌 성향의 의원들이 대거 국회에 입성해 그들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19대 국회가 시작하기 전까지 사전 정보수집을 통해 표적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파악해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대기업 한 임원은 “대선이 있는 연말로 갈수록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야당의 공세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일단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수를 넘어 안도하는 분위기지만, 대선을 앞두고 여당도 서민정책을 내세울 게 뻔해 언제까지 안심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대기업 때리기’에 앞장선 의원들이 낙선해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기업도 있다. 정동영, 강기갑, 이종구 등이 그 주인공.

정동영 민주통합당 후보(39.3%)는 강남을에서 김종훈 새누리당 당선자(59.5%)를 상대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정 후보는 지난해 노동계의 최대 이슈였던 한진중공업 해고 사태 해결을 위해 정치생명까지 걸어 큰 화제를 모았다. 그는 청문회에 출석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에게 “해고는 살인이다. 조 회장은 사람을 죽였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또 대기업들에 혜택이 돌아가는 한미FTA의 폐기를 주장해왔다.

경남 사천·남해·하동에 출마한 강기갑 통합진보당 후보(24.1%)는 여상규 새누리당 당선자(55.4%)와 이방호 무소속 후보(24.6%)에 밀려 3위에 그쳤다. 강 후보는 두말할 나위 없는 반재벌 인사다. 그는 항상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의 현장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해왔다. 지난 17·18대 국회에서도 그랬다. 대기업들의 편법과 불법, 특혜 등을 시원하게 꼬집었다.


“여야 정치권 공세
더더욱 심해질 것”

이종구 의원은 새누리당 전략공천 지역구인 강남갑에서 탈락한 후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를 지켜본 한화그룹은 한숨을 돌릴만 했다. 이 의원이 ‘한화 저격수’였기 때문이다. 17대 국회 때 입성한 이 의원은 줄곧 한화를 타깃으로 맹공을 퍼부었다.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가 초점이었다. 허위 컨소시엄 구성, 분식회계, 금융기관 부실책임, 뇌물공여 의혹 등을 문제 삼아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했을 당시 정경유착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의원과 한화가 앙숙이 된 것은 2001년부터다.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에 재직 중이던 이 의원은 인수 자격 부적격을 이유로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를 반대하다 결국 좌천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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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