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풍 몰고 온 4·11 총선] ⑨ ‘울고 웃는’ 재계 속사정

  • 김성수 kimss@ilyosisa.co.kr
  • 등록 2012.04.18 08:5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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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 잡는 ‘저승사자’들이 돌아왔다!

19대 총선 결과를 두고 대기업들의 표정이 엇갈리고 있다. 안도와 한숨이 교차되는 분위기다. 과거 질긴 악연이 있는 전 의원이 다시 ‘금배지’를 달아 골머리를 앓고 있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그동안 신경 쓰이게 했던 의원이 낙선해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기업도 있다. 또 의원 상당수가 교체된 만큼 새로운 관계설정을 위해 벌써부터 줄을 대느라 분주한 기업까지 눈에 띈다.

‘대기업 저격수’노회찬·심상정 투톱 국회 재입성
재벌개혁 주도 박영선·최재성·이용섭 행보 주목

“괜히 긴장했습니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가 싱겁게 막을 내리자 모 기업 관계자가 내뱉은 말이다. 후끈 달아올라야 할 국감장은 미지근하다 못해 서늘했다. 뻔한 질문에 뻔한 답변들이 오갔다. 그때뿐만 아니라 지난 4년 내내 ‘혹시나’했던 기대는 ‘역시나’로 끝났다. 몇몇 의원들이 재벌들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지만 새 정보 없이 기존의 논란거리를 재탕 삼탕 우려먹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18대 국회는 ‘재벌 저격수’들의 부재가 여실히 드러났었다. 그만큼 17대 국회에서 활동했던 재계의 숙적들의 빈자리가 더욱 커 보였다.

19대 총선이 끝났다. 당락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서민들이 반길만한 두 인물이 주목받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쌍두마차’ 노회찬 당선자(서울 노원병)와 심상정 당선자(경기 고양 덕양갑)다. 노 당선자는 57.2%의 지지율을 획득,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39.6 %)를 큰 격차로 앞서며 당선됐다. 심 당선자는 개표 완료 직전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초접전을 보이다 49.4%의 지지율로 손범규 새누리당 후보(49.2%)를 제치고 신승했다.

4년 만에 국회에 재입성한 이들은 17대 국회 임기 내내 재벌그룹들의 치부를 과감히 들춰냈다. 특히 국감 때마다 화끈한 폭로와 뜨거운 이슈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노 당선자는 재계에 거침없이 독설을 퍼붓는 ‘거포’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삼성 저격수’로 통한다. 그는 2005년 ‘삼성 X파일’ 논란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해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이후에도 대기업들의 비정상적인 경영 실태를 질타하는 등 줄곧 삐뚤어진 재벌그룹들의 행태를 꼬집어 화제를 모았다. 심 당선자도 재계를 벌벌 떨게 한 ‘대기업 저승사자’로 불린다. 그는 대기업 지배구조, 경영권 세습, 각종 비리 등을 문제 삼아 재벌그룹에 날선 비판을 퍼부은 바 있다. 이들은 당선이 확정된 후 첫 일정으로 노동자들을 찾아 시선을 모았다.


노 당선자는 4월12일 새벽 1시 한일병원 식당 노동자들의 점거투쟁현장을 찾아 “한일병원 고용승계 문제 해결에 통합진보당 차원에서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심 당선자는 이날 오전 서울 대한문 옆에 위치한 쌍용차 22번째 희생자 분향소를 방문했다. 노회찬-심상정 투톱의 등장에 재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당장 출자총액제한제와 순환출자 문제가 걸린다.

야권연대는 출총제 부활과 대기업 계열사 간 순환출자 금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기업들로선 여간 부담스런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두 법이 수정되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지배구조를 다시 짜야 하기 때문이다. 19대 국회가 시작되면 노회찬, 심상정 등 친노동 성향의 의원들이 출총제와 순환출자 카드를 곧바로 꺼내들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재계 관계들의 전언이다.

미지근했던 18대
19대 달아오른다

노회찬-심상정 못지않은 ‘재벌 저격수’ 박영선 의원도 19대 국회에서 볼 수 있게 됐다. 박 의원은 구로을 지역구에서 61.9%의 지지율로 강요식 새누리당 후보(35.1%)를 크게 따돌렸다. 3선 째다. 민주통합당의 대표적인 재벌개혁론자인 박 의원은 17대 국회 때 금산분리법을 주도하고 18대에선 일반지주회사의 금융회사 지분 보유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를 저지하는 등 꾸준히 대기업을 비판하며 재벌개혁을 주도해왔다.

박 의원은 올초 화두로 재벌개혁을 제시했었다. 공약에도 이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는 “이제 재벌개혁은 올 한 해 총선과 대선을 관통하는 99% 서민과 중산층의 화두”라며 “특히 재벌총수 사면금지 등을 포함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신속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민적 합의 없이 통과된 재벌 특혜 의혹이 있는 법안은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동영·강기갑·이종구… 낙선에 쾌재 부른 기업도
반재벌 의원들 동향 예의주시 정보력 총동원 사전 정보수집

최재성, 이용섭 등 재벌 공격수 2인방의 활약도 기대된다. 최재성 민주통합당 의원(45.15%)은 경기 남양주시갑에서 송영선 새누리당 후보(41.9%)를 제치고 19대 국회 입성을 확정지었다. 이번 당선으로 3선이 된 최 의원은 유세 내내 “MB정권을 반드시 심판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발언은 롯데 등 MB정부와의 유착 의혹이 있는 기업들을 긴장케 한다.


실제 최 의원은 2010년 정부가 제2롯데월드 건설을 허가하자 이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그는 “롯데 총괄사장에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동기동창이 취임한 것이 석연치 않다”며 “제2롯데월드가 MB정권의 신정경유착이 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이용섭 민주통합당 의원도 재선에 성공했다. 이 의원(74.7%)은 광주 광산을 지역구에서 황차은 통합진보당 후보(25.3%)를 여유롭게 따돌렸다. “1%의 이익을 위해서 99%가 희생되는 경제시스템은 더 이상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이 의원은 민주통합당 정책위의장을 맡아 당의 재벌개혁을 총괄 조정하고 있다.

사사건건 제동 걸 듯
각 기업들 바짝 긴장
 
그는 지난달 총선을 앞두고 당을 대표해 ▲경제력 집중 완화(출총제 재도입,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행위규제 강화, 금산분리 강화) ▲불공정 행위 엄단(담합·납품단가 부당인하·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기업범죄 유전무죄 풍토 쇄신) ▲사회적 책임 강화(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강화, 공공부문부터 중소기업 보호 강화, 사회적 책임 공시제도 도입, 대주주 전횡 방지 및 소수주주의 보호) 등이 담긴 ‘재벌 개혁 3대 전략과 10대 정책과제’를 발표한 바 있다.

각각 3선과 재선에 성공한 강창일, 박민식 의원은 앞으로 재벌 저격수로 활약할 가능성이 높은 인물로 꼽힌다.
강창일 민주통합당 의원(43.4%)은 제주 제주시갑에서 현경대 새누리당 후보(39.1%)를 누르고 3선에 성공했다. 강 의원은 대기업들의 이익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해체를 주장한 적이 있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 지식경제위원회가 주최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공청회에서 허창수 전경련 회장을 향해 쓴소리를 쏟아내 시선을 끌었다. 강 의원은 당시 전경련의 로비 문건 파문과 관련해 “전경련을 전국경제인로비연합회로 바꿔야 한다”며 “전경련이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 만큼 해체하는 게 국민경제나 재계를 위해서도 낫다”고 비판했다.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52. 4%)은 부산 북구강서구갑에서 전재수 민주통합당 후보(47.6%)와 접전을 벌이다 재선에 성공했다. 박 의원은 2008년 법무부 국감에서 무차별적인 재벌총수들의 사면을 문제 삼으며 ‘회장님 구하기 7대 비책’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끌면서 무마시키기 ▲불구속 수사 요구 ▲영장 기각 ▲집행유예 ▲법정구속 피하기 ▲구속집행정지 노리기 ▲사면 등 7단계 사면 순서를 나열하면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을 예로 들었다.

또 지난해 8월 ‘기업의 사회적 책임’ 공청회에선 정몽구 회장을 도마에 올리기도 했다. 박 의원은 “정 회장이 2006년 비자금 관련 공판 과정에서 7년 동안 8400억원의 사재 출연을 약속해 놓고 6년이 지나도록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재계는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만 없는 노릇이다.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자체 안테나를 여의도에 맞추는 등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다.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해 저마다 정보력을 총동원하고 있는 것.

국내 굴지의 기업마다 직원을 붙여 정보 수집 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각 의원들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부분 대관업무 담당자들을 국회에 상주시키는 등 일찌감치 방어 태세를 갖췄다는 후문이다. 의원실 탐색은 기본, 줄을 대기 위한 정보전도 뜨겁다. 흡사 정보기관의 첩보활동을 방불케 한다.

일부 대기업이 이미 검찰·경찰·국정원 등 수사·정보 인력을 대거 영입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재계 관계자는 “노회찬, 심상정 등 반재벌 성향의 의원들이 대거 국회에 입성해 그들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19대 국회가 시작하기 전까지 사전 정보수집을 통해 표적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파악해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대기업 한 임원은 “대선이 있는 연말로 갈수록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야당의 공세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일단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수를 넘어 안도하는 분위기지만, 대선을 앞두고 여당도 서민정책을 내세울 게 뻔해 언제까지 안심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대기업 때리기’에 앞장선 의원들이 낙선해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기업도 있다. 정동영, 강기갑, 이종구 등이 그 주인공.

정동영 민주통합당 후보(39.3%)는 강남을에서 김종훈 새누리당 당선자(59.5%)를 상대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정 후보는 지난해 노동계의 최대 이슈였던 한진중공업 해고 사태 해결을 위해 정치생명까지 걸어 큰 화제를 모았다. 그는 청문회에 출석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에게 “해고는 살인이다. 조 회장은 사람을 죽였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또 대기업들에 혜택이 돌아가는 한미FTA의 폐기를 주장해왔다.

경남 사천·남해·하동에 출마한 강기갑 통합진보당 후보(24.1%)는 여상규 새누리당 당선자(55.4%)와 이방호 무소속 후보(24.6%)에 밀려 3위에 그쳤다. 강 후보는 두말할 나위 없는 반재벌 인사다. 그는 항상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의 현장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해왔다. 지난 17·18대 국회에서도 그랬다. 대기업들의 편법과 불법, 특혜 등을 시원하게 꼬집었다.


“여야 정치권 공세
더더욱 심해질 것”

이종구 의원은 새누리당 전략공천 지역구인 강남갑에서 탈락한 후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를 지켜본 한화그룹은 한숨을 돌릴만 했다. 이 의원이 ‘한화 저격수’였기 때문이다. 17대 국회 때 입성한 이 의원은 줄곧 한화를 타깃으로 맹공을 퍼부었다.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가 초점이었다. 허위 컨소시엄 구성, 분식회계, 금융기관 부실책임, 뇌물공여 의혹 등을 문제 삼아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했을 당시 정경유착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의원과 한화가 앙숙이 된 것은 2001년부터다.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에 재직 중이던 이 의원은 인수 자격 부적격을 이유로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를 반대하다 결국 좌천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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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당원들의 도움으로 대선후보 지위를 유지했다. 확실한 명분을 쥔 김 후보는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당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김 후보가 당내 주도권 다툼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당원들의 반대로 진압한 후에야 선대위를 구성했다. 김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로 등록했고,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을 같은 날 진행된 의원총회서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갑툭튀 위원장 권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 교체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도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했다. 이날 진행된 의원총회엔 의원 107명 중 50명만 참석했다. 후보 교체 시도에 가담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거 불참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가 개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회의서 김용태·주호영·권성동·나경원·안철수·황우여·양향자 등 7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후보 교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을 대신해 박대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박 의원은 선대위서도 총괄지원본부장을 맡았다. 이틀 동안 확정·발표된 인선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 임명이었다. 30대 중반 막내 초선 의원을 당 대표격 직책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서 후보 교체 시도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1년 전당대회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준석 당시 대표가 이끌던 지도부에 참가했다. 이어 황우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던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 시절엔 소장파 ‘천아용인’ 중 1명으로 거론됐던 적이 있고, 이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장 발탁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장파로서의 행보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김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서 “친윤계가 김 비대위원장을 화살받이·방패막이로 앞세워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결별 및 출당을 제시했다. 함께 출연한 장윤선 정치 전문 기자는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김 비대위원장 자신일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대선서 크게 패배하면, 그 책임을 김 후보가 아닌 김 비대위원장이 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거들었다. 친윤계는 의원총회 불참으로써 김 비대위원장 지명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 후보는 당원투표로써 친윤계의 후보 교체 시도를 진압했기 때문에 명분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휘어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30대 초선 비대위원장 총알받이? 방패막이? 김 후보가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후 먼저 교체한 사람이 이 전 사무총장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 선거관리위원장 자격으로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와 새 후보 등록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후보 등록 신청 공고에 제시된 등록 신청 기간은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였고, 등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총 32종이었다. 등록 장소는 국회 본관 228호 비대위 회의실이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엔 공고를 본 후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러 왔다”면서 국회 경비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조롱성 방송을 진행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소동이 끝난 후 의원 단톡방에 김 후보를 비판하고 권 전 비대위원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어느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으로부터 “총장님 입맛에 맞는 정치평론가의 글을 단톡방서 읽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받았다. 김 후보로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후보 교체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 전 총장을 유임시킬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권 원내대표까지 교체해 파문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을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움직일 당 사무총장은 빨리 교체해야 했다.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휴전’ 메시지를 보낸 후 친윤계와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김 비대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어 실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신속하게 확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1991년 8월 발생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보수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KGB 알파그룹과 전차부대 등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된 군사작전이었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은 해체됐다. 이처럼 정치적 기획을 군사작전처럼 몰아쳐 진행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당 대표 2명과 비대위원장 1명을 쫓아낸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10일 “윤석열 지령, 국민의힘 연출로 시작된 대선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행보가 약하다” 윤 전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자수 아닌 자수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게시글엔 “김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이 과정을 겸허히 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김 후보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한 게시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김 후보와 친윤계의 대결이 ‘휴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시글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는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 후보를 거들었다. 이 중 친한계 좌장 6선 조경태 의원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논란이 분분했던 지난 9일에도 “무책임한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을 치를 거라면, 경쟁력 있는 이재명 후보를 데리고 오는 게 빠른 거 아니냐”면서 김 후보를 두둔했다. 이를 두고 “당원투표서 김 후보 교체 시도가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친한계 당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등 여러 사안서 의견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 대선서 패배하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당권 투쟁의 잠재적인 경쟁 상대다.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대표가 얻은 43.47%도 무시하긴 어려운 수치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전 대표의 선대위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계엄 및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내걸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사과 등 자신의 선대위 참여 조건을 제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김 후보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 후보는 당내 유력 계파들인 친윤·친한과의 불씨를 두고 있다. 두 계파 모두 앙숙이기 때문에 김 후보로선 두 계파 모두를 포섭하기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26년엔 국회의원들의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불씨가 들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소한 선거 상황에선 김 비대위원장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후보도 바보가 아닌 한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친윤계의 쿠데타로 인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직을 잃을 뻔했다. 대선 이후엔 곧바로 당권 투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당을 장악하려면 당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후보에게도 우군이 필요하다. 남겨놓은 갈등 불씨 김 후보는 지난 2020년 1월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후에도 경찰이 자가격리 조치를 어기고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자를 연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내가 김문수인데, 왜 가자고 그러느냐”라거나 “내가 국회의원을 3번 했다”는 등 호통을 치는 등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해 갑질했던 ‘도지삽니다’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목사는 후보 교체 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는 지난 10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는 이날 “멀쩡하게 뽑아놓은 김문수를 아웃시키고, 한덕수를 영입했다”며 “국민의힘이 사기 치는 것 봤죠? 이건 완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국본도 같은 날 배포한 입장문서 “국민의힘은 종북 좌파와 맞서 싸우겠다는 애국 보수만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회 초청 토론회서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기독교의 교회 조직과 말씀 때문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 목사 등 강경보수 성향 일부 교계를 극찬했다. 당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황서 친윤·친한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김 후보로선 우군이 절실하다. 김 후보는 강경보수 세력 내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24일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뉴스’에 출연했다. 전씨는 전 목사의 경쟁자로 통하는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전씨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면서 “김 후보가 기득권 정치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호남 지역 표심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TV 토론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고, 막판에 보수 우파가 단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와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인원 동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을 국민의힘 내부에 유입시켜 전당대회서 승부를 본다면, 김 후보가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서 급한 일은 의원들의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면,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후보 교체 시도 5적 지역구서 공천 전쟁? 김 후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 ▲성일종·박수영 의원이다. 이 중 이 전 총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서 ‘4적’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지도부였던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은 후보 교체 시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 의원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지만,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신경전을 이어가자 “김 후보 주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 전 총리는 가라앉고, 김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후보를 일컬어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이 취소됐던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스스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라면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어 캠프 내 측근들과 함께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방문해 대통령 후보실을 점거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왕년의 투사 김문수가 돌아온 것이냐”고 반응했다. 이날 김 후보의 대응을 돌아보면, 대선 이후 당권 투쟁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독자 영역을 구축한 친윤·친한과 달리 김 후보는 외부 세력을 당내에 유입시키기 위한 명분부터 구축해야 한다.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됐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과 785만여표(약 24%) 득표에 그쳤다. 이는 역대 대선 직선제 2위 후보 중 당선자와 최다 표차 낙선과 보수 정당 최저 득표율이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패배 이후 약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예나 지금이나 당내 세력이 미약한 홍 전 시장은 당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 차원으로 당대표직서 물러났다. 대선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던 것도 홍 전 시장의 지도력에 힘이 붙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 후보로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패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해서 명분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완전히 접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한선 35% 무너지나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이틀간 무선 10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3% 뒤처진 33%의 지지를 얻었다. 김 후보가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면 40% 이상의 독자 지지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저 하한선은 3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에겐 승패 여하를 떠나 많은 것이 달린 대선일 수밖에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