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분쟁조정의 달인’ 임성학의 실타래를 풀어라(11)

컨설팅전문가인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은 자타가 공인한 ‘분쟁조정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침서 <실타래를 풀어라>를 펴냈다. 책은 성공이 아닌 문제를 극복해 내는 과정의 13가지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임 소장. 그의 숨은 비결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어제의 적은 오늘의 아군… 영원한 협력자도 없어
모방송사 보도국장임을 내세워 반품 요구 협박

시대가 많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허세와 권위의식을 가진 협력자를 이용하는 자들이 간혹 있다. 그러나 자신의 장점인 지위와 권위를 가진 자가 도리어 약점이 되어 상대방에게 역공의 기회를 제공 할 수 있음도 알아야 한다. 또한 영원한 협력자는 없다. 비록 적의 협력자라고 하더라도 서로 이해만 잘 맞춘다면, 어제는 적의 협력자라도 오늘은 내편의 협력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적의 친구는 나의 친구도 된다’는 말처럼 누구를 얼마나 자신을 위해 유리하게 활용하는가가 바로 지혜로운 자이기 때문이다.

권위 이용해 협박

어느 해 초가을 날 오후의 일이다.
회사에서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인성교육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교육실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섰다. 돌아보니 사장 비서실 여직원이었다.
평소 깔끔하고 침착한 직원인데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모습으로 성급히 나를 찾고 있었다. 여간해서는 교육 중에 들어오지 않는 게 상식인데 무척이나 긴급한 상황인 모양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교육을 하다말고 멈춘 채 여비서에게 물었다. 여비서는 신입사원들 앞에서 말하기가 거북한 듯 잠깐 보자는 신호를 보냈다. 해서 교육 중인 사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갔다.
“죄송합니다, 이사님!”
“무슨 일인데 그래?”

“경비실에서 인터폰이 왔는데요. 오래전에 그만둔 영업판매사원과 낯선 남자들이 지방에서 봉고트럭으로 제품을 싣고 와서는 일방적으로 반품을 요구한다고 합니다.”
“사전 연락도 없이?”
“네. 그 사람들이 싣고 온 제품을 회사 내부로 반입하겠다고 하면서 주차관리 요원의 만류를 듣지 않고 주차장과 접한 도로에 제품을 내려놓은 채 무조건 사장님 면담을 요구하고 있어요. 지금 비서실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그런 무례한 사람들이 있나. 그래, 직원들이 그 사람들을 제지하지 않고 뭐 했어?”
“그러지 않아도 영업부 직원들이 사장님과 면담하기 전에 먼저 자신들과 대화를 하자고 하며 만류하였으나 영 듣지 않고, 사장님만을 만나야겠다고 막무가내로 우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장님께 보고를 드렸더니 바쁜 일정이 있다고 하시면서 먼저, 임 이사님께서 그들을 만나 회사의 규정과 원칙대로 처리하기를 원하셔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나는 일단 총무부 교육담당 팀장에게 다음 교육 일정을 당겨 실시하라고 지시하고는 바로 내 사무실로 돌아와 민원실 노 차장을 찾았다. 그러고는 예전 5월경에 있었던 일을 잠깐 회상했다.
5월 어느 날, 모 방송사 보도국이라고 하면서 사장님과 통화를 원하는 전화가 왔다. 마침 사장님이 외출 중이어서 통화가 어렵다고 하자 대신 회사 책임자를 찾는다고 해서 내가 전화를 받게 되었다.
수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는 묵직한 저음으로 50대 중반쯤으로 느껴졌는데, 통화를 하자마자 대뜸 자신이 모 방송국 보도국장이라고 했다. 그는 광주에 사는 누님의 부탁으로 전화를 했다면서, 누님이란 사람이 우리 회사 모 지점 영업판매 중간 관리자로 활동하다가 그만 두었다고 했다.
그는 누님이 회사를 그만 둘 당시 수천만원 상당의 팔지 못한 제품을 보관하고 있는데, 그 제품을 소비자가격으로 반품 받고 동시에 대금을 환불해 달라고 했다. 나는 전화한 남자의 의도가 충분히 짐작되어 다시 한 번 그의 신분을 모르는 체 물어보았다.

반격하자 ‘깨갱’

“잠깐, 지금 누구시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아, 나, 모 방송국 보도국 P국장입니다.”
그는 목소리를 쫙 깔고 무게를 한껏 잡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광주에서 활동하셨다는 누님의 성함은 어떻게 됩니까?”
“아, 그건 좀 곤란하고, 반품을 받아주겠다는 것만 말하세요!”
전형적인 고압 자세가 완전히 상대를 무시하는 말투였다. 나는 기분이 몹시 상했으나 어차피 상대방이 민원인이고 내 입장을 생각해서 꾹 참았다.

“알겠습니다만 어차피 반품을 하기 위해서는 신분을 알아야 합니다.”
“회사에서 약속해주면 대신에 다른 사람이 제품을 싣고 가면 되지, 굳이 신분을 알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그는 반말까지 섞어가며 무리한 요구를 했다.
“저희 회사는 반품을 승낙하는 규정과 절차가 있습니다. 회사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 제품을 싣고 와서 반품한다고 모두 받아주는 게 아닙니다.”
“그럼 받아주지 못하겠다는 말이요?”
그는 노골적으로 흥분하며 화를 돋우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침착하게 업무적인 태도로 말했다.
“못 해주겠다는 게 아니라 본인이 출고한 것에 대한 본인 여부 확인과, 출고 기간, 그리고 반품 가능한 상품 상태 여부 등을 검수하는 절차가 있다는 겁니다.”

“허어, 이거 안 되겠네요. 취재를 하러 가야겠구먼.”
가소롭다는 듯 협박까지 하고 있는 그를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뭐라고요?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취재를 하러 온다고요? 어느 방송국 보도국장이라고 했죠? 지금 당장 취재하러 오세요. 방송국에서 이권에 관련해서 취재를 하러 온다고요? 지금 회사를 협박하는 겁니까? 내가 방송국과 중재위원회에 보도국장이 누님의 이권에 관련해서 취재를 할 수 있는지, 그 문제로 기업에 협박할 수 있는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하신 말은 모두 녹음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바랍니다.”
나는 틈을 주지 않고 강하게 반격을 가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내가 먹혀들지 않고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느껴졌는지 슬그머니 꼬리를 낮추기 시작했다.
“내가 언제 현직이라고 했습니까? 전직 보도국장이라고 했지요. 그리고 제가 언제 취재를 하러 간다고 했습니까? 취재를 요청한다고 했지요.”
그는 자신이 방금 협박용으로 써 먹은 말들을 주워 담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발뺌하기에 바빴다. 나 역시 굳이 시비를 불러일으킬 의도는 없었다. 괜히 다투어봐야 회사입장에서 득 될 것이 없었기에 상대방이 자세를 낮추면 걸맞게 대응하면 될 것이라는 판단에 음성을 낮추며 말했다.
<다음호에 계속>

 

임성학은?

- 대한신용조사 상무이사 역임


- 화진그룹 총괄 관리이사 역임

- 임성학 멘토링 컨설팅 연구소 소장

- PIA 사설탐정학회·협회 부회장 겸 운영위원

- PIA 동국대·광운대 최고위과정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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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