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분쟁조정의 달인’ 임성학의 실타래를 풀어라(10)

“적을 어르고 달래서 안심시켜라”

컨설팅전문가인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은 자타가 공인한 ‘분쟁조정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침서 <실타래를 풀어라>를 펴냈다. 책은 성공이 아닌 문제를 극복해 내는 과정의 13가지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임 소장. 그의 숨은 비결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안심시키며 시간 번 뒤 소멸시효 원군 기다려
우여곡절 끝에 결국 보증 책임 면하게 돼

“자아, 그럼 이렇게 해봐요. 첫째, 지금부터 어떠한 경우라도 돈 한 푼도 지급해서는 안 되고, 둘째, 각서나 어떠한 증서를 작성해 주어서는 더욱 안 돼요. 셋째, 상대방이 녹음을 할 경우를 대비해서 보증금액에 대해 인정한다거나 채무를 승낙한다는 말을 해서는 안 돼. 넷째, 그 남자들에게 전화가 오거나 찾아 올 경우 모든 요구를 들어 주는 체하며 안심을 시켜야 해요. 다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채무를 인정하는 어떠한 말이나 증거를 남기는 서류를 작성해서는 안돼요. 다섯째, 그 남자들에게 전화가 와서 독촉을 하면 ‘예예’ 하며 내일 모레쯤 한번 만나서 얘기 하죠, 하는 등 적당히 시일을 끌다가 최종적으로 안 되겠다 싶으면, 지금 만나봐야 돈이 없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서로 감정만 상하지, 어차피 돈이 있어야 해결될 것이 아니냐? 조금만 시일을 주면 돈 나올 곳이 있는데 그때 가서 한번 얘기를 나눠보자는 식으로 상대방에게 희망을 주는 겁니다. 그러면 상대방 남자들은 약이 오르다가도 딱히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잘만하면 돈을 받아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살살 구슬리며 어떻게든 설득하려고 할 거야. 그러면 설득을 당하는 체 하는 등 그렇게 시일을 끌다가 더 이상 지연술이 먹혀들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마치 코너에 몰려 어쩔 수 없이 고백 하는 것인 양 말하는 거야. 정기예금을 탈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하고, 얼마 동안만 기다려 줄 수 없냐는 식으로 말하는 거지. 그러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만약에 채무를 인정할 경우 일정금액을 감액해 줄 수 있냐고 반문 하는 거야. 상대방이 믿을 수 있게 안심시킨다, 이거야. 그렇게 하여 최종 34일을 넘겨야 해요.”
그녀는 필요한 말들을 메모하면서 이해되는 부분에 가서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다가 그래도 여전히 뭔가 불안하듯 물었다.

눈치 채도 본전

“아니, 내가 서툴게 하다가 상대방이 눈치를 채면 어떡하지?”
“뭐, 눈치 챌 것이 있겠어? 그리고 설령 눈치 챈다 해도 지금보다 달라질 것은 없으니까 우리 차 사장이 손해 볼 것은 없잖아? 채무를 인정치 않고 돈을 줄 수 없다고 주장하며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하다가 조만간 돈이 생기면 그때 가서 대화를 해보자고 하는데, 기다리지 않고 굳이 시간과 경비를 들여가며 골치 아프게 법으로 조치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모든 게 심리전이라고 보면 되지. 상대방 페이스에 말려드는 것처럼 하다가 시간을 벌어 소멸시효라는 원군을 기다려 보증 채무를 면책 받으면 된다 이 말이야. 어설프게 하는 연기가 오히려 상대방으로부터 진실로 비쳐질 수가 있지 않겠어?”

나는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는 마치 이번 건을 해결할 수 있는 전략을 하달받기라도 하듯 말했다.
“그 다음엔 어떻게 하면 되지?”   
“일단 시효가 완성되고 난 다음부터는 마음대로 하라고 나자빠지는 거지. 그래도 곤란하면 상황을 봐서 차 사장이 채무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채무부존재소송을 거는 거야. 아니면 그 사람들이 약속어음금 청구의 소를 제기하면 소멸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돈을 지급할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거야.” 
“내가 이길 수 있는 거야?”
“결과를 봐야 하겠지만, 문제는 이 방법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거지. 아니면 보증 채무금을 갚아주든지?”
“내가 돈 갚을 능력이 있다면 왜 찾아와서 귀찮게 하겠어? 사실 나 이혼 직전이야. 지난번 하던 의류사업이 부도가 나서 이미 신용불량이 되어 죽을 입장이야. 그 여파로 남편도 매일 빚쟁이들한테 시달리고 있는데, 이번 보증 채무까지 알게 되면 내가 온전하겠어?”


“나 역시 차 사장이 친구에게 당해 억울한 보증을 섰고, 지금 처한 상황이 그렇게 어렵다고 하고, 무엇보다 그 남자들은 내가 보기엔 선의의 정당한 채권자들이 아닌 악의적인 진상꾼들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이런 방책이라도 조언을 해주는 거야.”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그 남자들이 집으로 찾아와 남편을 만난다거니 뭐니 하기에, 마음대로 하라고 하며 만약 찾아오면 경찰에 신고한다면서 화를 내니까, 그때부터는 말들이 부드러워지던데. 아마 뭔가 켕기는 게 있긴 있나봐?”  
“사실 원칙적으로 한다면 남의 돈을 빌렸거나 책임지기로 했으면 갚는 게 도리 아니겠어?” 하고 나는 그녀의 채무불감증을 지적하듯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정색을 하며 도리어 역정을 내듯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돈을 빌렸거나 그 돈을 단 한 푼이라도 받아썼다면 당연히 갚아야지. 아무런 책임과 문제가 없다고 하며, 괜히 나를 끌어넣어가지고 보증을 세워 덮어씌운 거야.  뭐 그 사람들은 잘한 건가? 아무 상관도 없는 남자들이 내 친구에게 돈을 빌려준 채권자인 최 뭔가 하는 여인의 사주를 받아 나를 협박하며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 하고 억울해 죽겠다는 몸짓을 했다.

보증에 운명이 달라져

“그래 알았어요. 어쨌든 한판 승부를 건다는 각오로 잘해보시고, 나머진 그때 가서 돌아가는 사정을 잘 살펴 대처하도록 해. 그리고 상황변동이 있으면 연락을 주고.”
“알았어, 오케이! 그래도 동지가 최고네. 아무런 대책 없이 밤잠을 설쳤는데 오늘부터는 편히 잘 수 있겠어. 임 이사, 바쁜데 좋은 얘기 정말 고마워. 많은 고민을 하다 찾아왔는데 역시 찾아오길 잘 했네.”
그 말을 끝으로 밝게 웃는 모습을 보이며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그 후 그녀가 전하는 말로는 그 남자들이 아마추어인지 모르지만, 별 수 없이 그녀의 지연술에 말려 약속어음 소멸시효인 3년을 넘기고 말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 남자들은 사실을 모른 채 말로만 협박이 아닌 뭔가 보여주기 위해 의기양양하게 그녀의 집으로 찾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남자들에게 돈 갚을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자 그제야 ‘아뿔싸’ 하고 화를 내는 등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편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녀는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돈을 갚을 이유가 없다고 하며 안심을 시켰다.
찾아온 남자들은 화를 내며 두고 보자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 다음 날 약속어음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녀는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답변서를 제출하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보증 책임을 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내게 연신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나는 가끔 차 사장을 생각할 때면 ‘사람이 한 번 인정에 이끌려 보증을 잘 못 서게 될 경우 자신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러면서도 보증을 서준 그녀보다 친구의 우정을 믿고 자신을 위해 보증을 선 친구를 배신하고 책임을 넘기는 사람과 더불어 무책임한 사회로 변모해가는 현 세태가 더욱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호에 계속>

 

임성학은?

- 대한신용조사 상무이사 역임

- 화진그룹 총괄 관리이사 역임

- 임성학 멘토링 컨설팅 연구소 소장


- PIA 사설탐정학회·협회 부회장 겸 운영위원

- PIA 동국대·광운대 최고위과정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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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