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전문가인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은 자타가 공인한 ‘분쟁조정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침서 <실타래를 풀어라>를 펴냈다. 책은 성공이 아닌 문제를 극복해 내는 과정의 13가지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임 소장. 그의 숨은 비결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큰 것 취하려면 작은 것 버릴 각오 있어야
강제경매 신청 보류하고 신용불량자 만들기
잠시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친구는 내 판단이 궁금한 듯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임 대감, 자네 생각은 어쩐가?”
가까운 친구들은 내게 이름대신 대감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정 상무 역시 나를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음… 글쎄, 전세입주자가 몇 명인지, 보증금은 얼마가 되는지를 정확히 모르는 입장에서 뭐라고 결정적인 판단을 하기가 어렵군. 다만 자네의 판단을 돕기 위해 한마디 한다면, 언젠가 신용정보회사 근무시절 자네 사건과 유사한 경우를 자문한 적이 있다네. 그분은 운 좋게 성공한 적이 있었네. 어디 한번 내 얘기 들어 볼 텐가?”
“아, 그려! 자네 실력이야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제.”
냉수를 들이켜며 친구가 어서 말하라고 재촉을 했다. 아무래도 이 일을 해결해야 속이 가라앉을 것 같은 모양이었다. 나 역시 그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되어 서둘러 말을 꺼냈다.
비슷한 사연 전달
“그 당시 강남 어디선가 약국을 운영하고 계시는 70대의 약사 한 분이 찾아 오셨다네. 첫눈에 그분은 무척 고민이 가득 담긴 모습이었지. 그분은 반월공단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던 오 사장이란 사람에게 운영자금으로 8000만원을 빌려주었다네. 오 사장은 처음 몇 달은 약정한 이자를 잘 주다가 그 후부터는 사업이 어렵다는 핑계로 이자는 물론 원금상환일자를 어기고 ‘날 잡아 잡숴’하는 식으로 나왔던 거야. 그 약사 분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해서 대여금 청구소송을 하여 승소판결을 받았다네. 그런데 강제집행을 하려고 채무자의 재산을 알아보니 거주하고 있는 강남 아파트 하나가 전부였어. 그 약사 분은 채무자의 소유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아 법무사에 가서 강제경매를 진행시켜달라고 의뢰를 하였다네. 그런데 그 법무사가 판단해보니, 그 아파트 시가보다 금융권과 일반 사채로부터 받은 대출금이 많아 경매진행 시 각하 될 확률이 많다고 한다는 거야.”
“아니,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과 똑같구먼.”
친구가 말을 가로채며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유리잔의 물을 마셨다. 주변은 그새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소란스러웠다. 친구는 내 얘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세우고 있었다. 나는 좀 더 톤을 높여서 얘기를 이어갔다.
“법무사는 강제경매대상 아파트 시가보다 대출금이 많아 강제경매를 진행 할 시, 경락대금에서 선순위 채권자들을 우선 배당하고 남는 잉여금이 없다면, 강제경매를 해보아야 실이익이 없으므로 신청을 보류하라고 권했다네. 그분이 내게 건네준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니 그 법무사 측에서 하는 말에 공감이 갔지. 그래서 민원직원을 시켜 현 시가를 조사하고 대출금과 대비 산출해보니 보유한 아파트 시가보다 대출 담보 설정최고액이 오히려 많았다네. 그래서 내가 그 약사 분에게 말했지. 이 물건만으로는 경매 진행을 하여도 별 실익이 없을 거라고. 그러자 약사 분은 아는 사람의 소개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찾아왔는데 방법이 없다고 하니 괜히 찾아왔다는 식으로 실망을 하더라고. 그러면서도 아쉬운지 다른 방법을 찾아달라고 매달리는 거였네. 그래 내가 잠시 고민한 끝에 한 가지 방법을 제안 했어.”
“그 제안이 뭐였는디?”
친구가 어떤 해법이든 달라는 듯 조급히 물었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게. 난 그 약사 분에게 방법이 하나 있기는 있는데 장담할 수가 없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네. 방법은 이거였네. 왜 우리나라 속담에 ‘먹지 못하는 밥에 재 뿌린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친구는 약간 의아하게 생각되는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 역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친구를 바라보았다.
“왜, 의아하지? 그러나 자네도 한번 생각해 보게. 시세보다 대출금액이 초과된 관계로 채권자는 별 볼일 없고, 채무자로서는 경락이 될 경우에 집에서 쫓겨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한단 말일세. 채무자로서는 현재 하고 있는 사업을 계속해야 하는 입장에서 기이담보조로 제공된 아파트가 경매로 날아가 버린다면, 거래상대방으로선 기존 담보가 없어져 앞으로의 거래를 하기위해 새로운 물건으로 담보제공을 요구할 것은 빤하지 않겠는가? 새로운 담보를 제공치 못하면 사업거래마저 단절될 건 당연지사이고. 무엇보다 대출금의 일부라도 상환치 못하게 된다면 신용불량자가 될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사업하는 자로선 치명적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어둠 속 한줄기 햇살
내 말에 친구가 목을 앞으로 쑥 내민 채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채무자 입장에서는 집이 비록 많은 대출로 인해 재산적 가치를 더 이상 이용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국내부동산이 호경기라 언젠가는 추가로 가격이 오를 것이 다분하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경매를 당한다면 그 기회마저 없어져 그야말로 쪽박을 찰 수가 있다는 말일세. 멍청한 채무자가 아니라면 아킬레스건과 같은 이 약점을 지키기 위해 채권자와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합의를 보고자 할 것이 분명할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네.”
“임 대감, 역시 대단해. 나는 생각조차 못 했구먼. 그래 그분에게 뭐라고 했는디?”
“그 약사 분에게 간단히 말했다네. 원금 8000만원을 날릴 것인가 아니면 경매비용을 날릴 것인지에 대해 선택해야 한다고. 지금 가만히 있으면 원금 8000만원과 이자를 포함한 돈을 받지 못하지만, 반면에 순수 수수료 비용 약 100만원 정도 날릴 각오하고 경매를 진행한다면, 이자는 받지 못하더라도 원금은 받을 수가 있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네. 그러자 그 약사 분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 까짓 거 8000만원도 날렸는데 돈 100만원 정도야 더 못 날리겠느냐’고 했다네.”
“옴마, 이제 이해가 되는구먼.”
친구가 무릎을 치며 어둠 속에서 한줄기 햇살을 발견한 듯 좋아하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