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대미관계 숨통 틀 ‘미국통’ 박 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

“한미FTA 우리가 먼저 비준해야 한다”

박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은 집권여당에서 손꼽히는 ‘미국통’이다. 특히 버락 오바마의 차기 대통령 당선으로 이명박 정부와의 전략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대미통이 절실한 여당으로서는 가뭄 속 단비와도 같은 존재로 각광받고 있다. 그런 가운데 박 위원장은 지난 11월17일부터 국회 외통위원들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해 국익차원의 활발한 의원외교활동을 펼치고 돌아왔다.


국회 외통위 방미단 단장인 박 위원장은 7일(11월17-23일)이라는 방미기간 동안 단 한시도 쉴 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박 위원장은 “이번 방미는 빡빡한 일정을 강행군하면서도 여야가 일심동체로 초당적인 외교를 펼쳤다”며 “레임덕 세션을 활용한 시의적절한 방미였고, 국익차원의 현안에 대해 질적으로 조율한 의미있는 방미였다”고 평가했다.
한나라당 황진하, 민주당 문학진,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으로 구성된 방미대표단은 방미기간 중 리처드 루가, 척 헤이글 상원의원, 하워드 버먼 하원 외교위원장, 애니 팔레오마베가 하원 외교위 동아태 환경소위 위원장, 애덤 스미스 하원의원 등 상하원 주요인사는 물론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 싱크탱크 관계자 등을 면담했다.
박 위원장은 앞으로 미국과 전략동맹 및 글로벌 파트너십을 추구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다음은 박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 먼저 이번 미국 방문의 의미와 활동을 간략하게 소개해 달라.
▲ 황진하 한나라당 간사, 문학진 민주당 간사, 박선영 선진과 창조의 모임 간사 등 초당적으로 구성된 외통위 대표단은 미국 의회의 대선 이후 임시회의 계기에 미국 오바마 신정부의 정책 방향과 한미동맹 발전 방향을 논의하고, 북한 핵문제와 한미FTA 비준 등 주요 현안과 관련한 폭넓은 의견 교환을 하기 위해 7일 동안 단 한 순간도 쉴 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이번 방미는 빡빡한 일정 가운데서도 여야가 일심동체로 초당적인 외교를 펼쳤다. 레임덕 세션을 활용한 시의적절한 방미였고, 국익차원의 현안을 실질적으로 조율한 의미있는 방문이었다.

- 미국 현지인들은 오바마 당선자에 대해 대체적으로 어떤 평가를 하고 있었나.
▲ 금번 방문 기간 중 면담한 모든 인사들은 오바마 당선자의 지도자적 자질을 높이 평가했고 오바마 당선자가 지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진취적 리더십과 겸손함을 갖추었으며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언변이 뛰어나며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좋게 평가했다. 아울러 워싱턴 정치 활동 경력이 짧은 것이 오히려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는 전망을 하였다.

- 한미 FTA 비준 동의안 처리문제와 관련해 미국 현지 반응은 어떠했나.
▲ 이번에 만난 미측 인사 중 재협상을 거론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우리 역시 마찬가지 입장을 견지했다. 미측 인사 대부분은 미 의회가 반드시 비준할 것이라고 말했다.

- 대표단이 한미 동맹과 한미 FTA와 관련해 미국측 인사들에게 밝힌 입장을 요약한다면.
▲ 첫째, 한미 동맹은 양국에 정치적 경제적 전략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며 오바마 신행정부 하에서 동맹 존중과 다자협력의 새로운 틀 속에서 양국 관계가 더욱 강화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둘째, 북미 관계 개선이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을 주고 남북 관계 개선이 북미 관계 개선에 중요하다는 점과 이를 위한 한미 양국간 사전협의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 대표단은 남북대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를 위하여 우리 국회가 적극적인 역할을 주도할 것이라는 점과 한미 양국 의회가 긴밀한 대화를 통해 대북 정책에 대한 공조를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밝혔다.
셋째, 한미 FTA가 단순히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한미 동맹의 새로운 전략적 맥락에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FTA로 인해 양국의 일부 국내 산업 분야가 어려움에 직면하는 측면이 있으나 이는 양국이 적극적인 국내 보완대책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넷째, 만약 한국이 비준을 하고 미국 의회가 비준을 하지 않는다면 이는 양국 모두에게 기회의 상실인 동시에 미국에 대한 신뢰의 상실을 가져오게 될 것임을 지적했다.
다섯째, 한미 FTA 비준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양국 의원들간 정책협의 추진을 제안했다.

6박7일간 일정으로 국회 외통위 대표단 이끌고 미국 방문
여야 의원 모두 국익 위한 초당적 의원외교활동 성과 커

- 한미 FTA 비준과 관련해 미 의회와 오바마 당선자의 예상 행보는.
▲ 최근 심각한 경제 위기로 인해 미 의회가 한미FTA를 비준하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현지 의견이 대세였다. 내년초 오바마 신정부 진용이 갖춰지면 FTA 문제가 검토될 것이지만 비준 문제는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거론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기존 합의를 존중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며 한미 양측 모두가 이득을 볼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오바마 당선자는 근본적으로 자유무역주의자이며 시장개방, 자유무역, 국제화를 지지하고 있다.


- 한미 FTA 관련 미국측 인사들의 견해는 어떠했는가.
▲ 한국은 현재 미국의 7대 통상국이며 아시아에서 미국의 2번째 금융협력국가로 한미 FTA는 무역, 투자 증대, 일자리 창출 등 양구에 공통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다만 미국 신정부의 정책순위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금융위기 극복이 우선적으로 다뤄질 것이다. 오바마 당선자는 근본적으로 시장개방, 자유무역, 국제화를 지지하고 있으나 한미 FTA에 관해서는 다소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일부 인사들은 오바마 당선자가 선거운동 기간 중 한미 FTA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을 했으나 앞으로 정부가 구성되면 입장이 보다 긍정적으로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반하여 일부 인사들은 어떤 형식이든 기존 합의에 수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한국의 선비준이 미국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미국측 인사들의 대체적 의견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한미 FTA 결의안을 비준할 것이며 기존 합의를 바꾸지 않더라도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방안이 있다는 견해다.

- 한미 동맹과 관련해 오바마 정부측의 예상되는 정책 방향은.
▲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에서 미국의 국익 추구 및 지역의 평화 안정을 위한 한미 동맹 강화가 필요하며 양국이 실질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한국과의 동맹관계를 생각하고 한미관계를 더욱 강화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동맹관계 발전을 위한 한국의 입장을 우선 경청하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그리고 국제무대에서 전략 동맹과 글로벌 파트너십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오바마 당선자의 정책 추진 전망은.
▲ 오바마 정부가 북한과의 적극적인 직접 외교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나 부시 정부 2기라는 성격 때문에 갑작스런 변화는 없을 것이며 차분하고 신중하게 일관성을 유지할 것이다. 오바마 당선자가 북한과 정상회담을 위해 바로 북한으로 달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차분하고 신중하게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북한의 주민을 굶주리게 하는 유화 정책이 아니라 북한 핵문제와 기아를 해결하고 북한의 진정한 변화를 유도하는 포용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 미국내 자동차산업 전망은.
▲ 오바마 정부는 자동차 문제와 관련해 어떠한 형식이든 적절한 체면을 살리는 조치를 기대하는 의견, 미국내 보호주의는 매우 지역적이고 민주당이나 오바마 당선자도 보호주의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의견, 미국의 자동차 업계가 한미FTA에 문제를 제기하고는 있으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는지 불분명한 상태며, 최근 자동차 업계에 대한 구제조치로 한미 FTA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더 이상 높일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 한미 관계와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양측이 서로 제시한 내용이 있는 걸로 아는데.
▲ 우리측 대표단은 한미 양국의 실질적 협의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미국측도 이에 동의했다. 오바마 당선인측은 한미 동맹이 실질적인 동반자 관계로 나아가야 하며, 양국 현안에 있어 한국의 입장을 우선 경청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미국측은 한국과 전략동맹 및 글로벌 파트너십을 추구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오바마 정부는 대북 직접 외교가 예상되지만 차분하면서도 신중하게 일관성을 유지할 것으로 본다.
 
- 이번 방미외교를 통해 한미간 최대 정책 현안이 순항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 우리측 대표단은 한미 양국의 실질적 협의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미측 인사도 이에 동의했다. 한미 FTA 비준안을 우리 국회에서 먼저 통과시키면 미 의회 인준에 모멘텀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한-EU FTA 조기체결도 미 의회 인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 한국이 먼저 비준했는데 미국이 안 하면 양국 간 이익의 기회를 상실하는 것이며,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신뢰 상실로 이어져 결국 미국 리더십 재건 계획과 상치된다는 점을 확실하게 미국측 인사들에게 전달했다. 실제로 한국이 먼저 비준해야 미국내 찬성론자들이 미 행정부와 의회에 독촉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인사들도 있었다. 피해산업에 대한 예산을 빨리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부터 비준해야 한다. 부시 정부가 오바마 측의 자동차업계 지원 요청을 수용하는 대신 한국 등을 상대로 한 FTA를 처리하는 빅딜 가능성이 미국 재계와 공화당,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외통위 방미 대표단의 향후 활동과 과제는.
▲ 외통위 대표단은 금번 방미를 통하여 한미 FTA의 성공적인 비준을 위해 양국이 공통의 이익을 찾을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외통위 방미단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외통위에 상정하는 문제를 포함하여 앞으로 FTA 문제를 국회에서 처리하는 방안에 관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초당적으로 협력해 나갈 방침이다.


박 진 위원장 프로필
△ 청와대 비서관
△ 한나라당 서울시당 위원장
△ 17대 대통령직 인수위 외교·통일·안보분과 간사
△ 제16, 17, 18대 의원
△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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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후폭풍> 윤석열이 삼킨 이슈들

[탄핵 후폭풍] 윤석열이 삼킨 이슈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과 몇 개월 만에 온 천지가 쑥대밭이 됐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폐허로 변했다. ‘내가 옳다, 너는 틀렸다’ 갈등을 빚는 사이 오랜 시간 쌓아 올린 공든 탑도 무너져 내렸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하는지 감도 안 오는 상황이다. 비로소 탄핵 정국이 끝났다. 지난해 12월14일 국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탄핵6 소추한 때로부터 111일 만이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로는 122일이 걸렸다. 역대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 중 가장 오랜 숙의 기간을 거쳤다. 결론까지 120여일 문제는 후폭풍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서 시작된 탄핵 정국은 4개월 만에 나라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정치권은 정쟁에만 몰두했고 정부는 기능이 마비돼 공회전을 거듭했다. 그사이 국민 여론은 완전히 반으로 쪼개졌다. 사태를 수습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컨트롤 타워는 붕괴했다. 무정부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외교다. 특히 미국발 공격에 한국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당선된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미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상 외교는커녕 실무진 간의 대화도 삐걱거렸다. 대통령 권한대행,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은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도 하지 못했다. 그사이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킨 미국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우방국, 동맹 관계는 허울뿐이라는 점을 강조하듯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도 관세를 부과했다. 당선 직후부터 스스로 ‘관세맨’이라고 칭하면서 전 세계를 상대로 싸움을 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도 예외로 두지 않은 것이다. 지난 2일 미국 정부는 한국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제품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과정서 “미국 제품에 막대한 관세를 부과하고 산업을 파괴하기 위해 터무니없는 비금전적 장벽을 만들었다”며 “미국 납세자들은 50년 이상 갈취를 당해 왔으나 더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멕시코, 캐나다, 중국 등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언급하면서 통상 전쟁에 불을 댕겼다. 이번 발표는 미국발 통상 전쟁을 전 세계로 확산한다는 일종의 선언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별로 중국 34%, EU(유럽연합) 20%, 베트남 46%, 대만 32%, 일본 24% 등의 관세율을 적용했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 만큼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일본, EU 등보다 높은 상호관세율이 적용되면서 불리한 여건서 경쟁을 벌이게 됐다. 나름의 ‘믿는 구석’이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사실상 백지화되면서 미국과 새로운 통상 협정을 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관세뿐만 아니다. 지난달 15일 미국 정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에 포함한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전인 지난 1월 초, 조 바이든 행정부가 결정한 조치로 파악됐다. 미국 에너지부는 국가안보나 핵 비확산, 지역적 불안정성, 경제 안보 위협, 테러 지원 등의 이유로 민감국가를 지정한다. 민감국가로 분류되면 원자력·인공지능(AI) 등 미국 첨단기술 분야와의 교류, 협력이 엄격하게 제한된다. 트럼프 취임 이후 대응 못 해 민감국가 지정 이어 관세 폭탄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한 언론서 관련 보도가 나올 때까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민감국가 지정 사실이 확인된 뒤에도 지정 이유를 파악하지 못했다. 보안 문제에 따른 것일 뿐 양국 간 과학기술 협력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정치권은 민감국가 지정 배경을 두고 서로를 탓하며 정쟁을 벌였다. 정부의 안일한 인식과 달리 민감국가 지정은 한국 과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홍기원 의원실은 지난해 8월 작성된 미국 에너지부 산하 국가핵안보국의 ‘예측과학 학술 연계 프로그램(PSAAP) 제4기 모집 공고문’을 입수해 공개했다. 공고문에 따르면 “PSAAP 자금은 미국 시민이거나 비민감국가 출신 비미국 시민에게만 사용할 수 있다”고 돼있다. 민감국가 출신은 자금 지원에 제약이 따른다는 점을 명시한 것이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민감국가에 등재되더라도 한미 간 공동연구 등 과학기술 협력에 새로운 제한은 부재하다는 게 에너지부의 설명”이라고 밝혔다. 물론, 당시 조 장관이 언급한 ‘한미 간 과학기술 협력’에 해당 프로그램이 포함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민감국가 리스트는 오는 15일 공식 발효된다. 정부는 발효 전 한국을 리스트서 빼기 위해 막판 협의를 벌이고 있다. 주한미군 주둔에 따른 방위비 분담금 압박도 거세질 전망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중순께 ‘임시 국가 방어 전략 지침’으로 알려진 9쪽 분량의 문건을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국방부는 ‘인력과 자원의 제약을 고려해 여타 지역서의 위험을 감수할 것이고, 유럽과 중동, 동아시아 동맹국이 러시아와 북한, 이란 등의 위협 억제서 대부분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국방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도록 압박할 것’이라고 적시했다. 한국과 미국은 내년부터 5년간 낼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 대비 8.3% 올린 1조5192억원으로 이미 정했다. 2027년부터 2030년까지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을 연동시키되 연간 인상률이 최대 5%를 넘기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정부 때부터 한국이 지금보다 더 많은 방위비를 내야 한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재협상 가능성이 남아있는 셈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언급하면서 북미 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김 위원장에게 연락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미 1기 정부서 김 위원장과 직접 소통한 경험이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 재개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동맹도 내친 미국 대통령 이 과정서 ‘한국 패싱’ 가능성 또한 나오고 있다. 100일 넘게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리더십 부재 상태가 계속된 부분이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시 말해 북한과 미국의 대화에 한국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그동안 북한 관련 대화는 주로 정상 외교를 통해 이뤄졌다. 내치는 더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12월3일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민생은 뒷전이 됐다. 여야는 탄핵소추안 표결로 갈등을 빚었고 이후에는 탄핵 심판을 두고 서로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사이 각종 문제가 불거졌지만 기능이 마비된 정부는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179명이 사망한 제주항공 참사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2월29일 승객과 승무원 181명이 탑승한 제주항공 2216편이 무안공항서 동체 착륙을 시도하던 중 폭발했다. 승무원 2명을 제외한 전원이 사망한 참사로 오는 7일로 100일째에 접어들었다. 사고 원인 규명, 피해자 보상 등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계엄, 탄핵 등의 여파로 국민의 관심으로부터 한참 동떨어진 모양새다. 일단 당국의 조사와 수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안타까운 점은 블랙박스에 사고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핵심 내용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사고 현장서 수거된 항공기 블랙박스와 엔진, 주요 부품 등 사고 원인을 가늠할 수 있는 증거를 종합적으로 분석, 시험하는 단계를 거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 의성서 시작돼 5개 시군으로 번진 대형 산불 피해도 만만찮다. 경북도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5개 시군의 피해 조사액은 8000억원에 이른다. 최종 피해액은 1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산불로 주택 3987채가 탔다. 3915채가 전소됐고 30채는 절반 정도, 42채는 부분적으로 불에 탔다. 여기에 농작물 3785㏊, 시설하우스 423동, 축사 217동, 농기계 6230대가 화재 피해를 입었다. 인명피해도 26명이나 났다. 경북경찰청 형사기동대는 경북 산불로 사망자를 낸 혐의로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A씨는 경북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한 야산에 있는 조부모 묘소를 정리하던 중 일대에 불이 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MF보다 더 어렵다 정부, 기업, 연예인 등 각계각층서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지만, 다 타버린 숲 등을 산불 이전 상태로 복구하는 데 수십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자영업자는 최악의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로 연말연초 대목을 놓친 데 이어 탄핵 정국이 길어지면서 위축된 소비심리에 폐업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일 여신금융협회의 ‘2025년 2월 카드승인실적’에 따르면 지난 2월 숙박, 음식점업 카드 승인 실적은 11조2100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4320억원 줄었다. 국내 자영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식업이 경영난에 허덕이는 상황과 궤를 같이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의 여파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비심리의 악화는 취미 생활 위축으로도 드러났다. 지난 2월 예술, 스포츠 및 여가 관련 서비스업 카드 승인 실적은 96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0% 가까이 감소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안 좋으니까 여가와 외식 소비가 줄어들면서 관련 업종이 전반적으로 부진하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은 빌린 돈은 갚을 수 없고 수입은 없는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지난달 31일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과 행정안전위 소속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양부남 의원에게 제출한 ‘개인사업자 대출 세부 업권별 연체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저축은행 연체율(1개월 이상)은 11.7%로 나타났다. 직전 분기와 비교해 3개월 사이 0.7%p 올랐다. 2015년 2분기 이후 9년6개월 만에 최고 기록이다. 빚을 여러 곳에서 낸 다중채무자가 많은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다중채무자는 가계대출 기관 수와 개인사업자 대출 상품 수의 합이 3개 이상인 경우를 뜻한다. 지난해 4분기 말 자영업 대출자 가운데 다중채무자는 56.5%에 이른다. 대출액 기준으로 보면 70.4%에 달한다. 1인당 평균 4억30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7일 공개한 ‘금융안정 상황(2025년 3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취약 자영업자는 42만7000명으로 집계됐다. 소득이 적고 신용도가 작은 자영업자가 43만명에 육박한다는 뜻이다. 이들이 전체 자영업자 차주서 차지하는 비중은 13.7%에 이른다. 소비심리 위축되고 자영업자는 망하고 2021년 말 28만1000명에서 2022년 말 33만8000명, 2023년 말 39만6000명 등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렇다 보니 아예 장사를 접는 자영업자도 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내놓은 ‘2025년 폐업 소상공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소상공인 10곳 중 4곳은 매출 부진 등의 사유로 창업 후 3년 이내에 문을 닫았다. 폐업 시점의 빚은 1억원을 웃돌았다. 조사 결과를 보면 3년 미만 단기 폐업자의 비율은 39.9%를 차지했다. 폐업 사유는 수익성 악화 및 매출 부진이 86.7%로 나타났다. 그 원인으로는 내수 부진에 따른 고객 감소가 과반(52.2%)을 차지했다. 인건비 상승(49.4%), 물가 상승으로 인한 원재료비 부담(46%), 임대료 등 고정비용 상승(44.6%) 등이 뒤를 이었다. 폐업 과정서 드는 비용도 평균 2188만원에 달했다. 송치영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지난 2일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만난 자리서 정치권의 대책을 요구했다. 송 회장은 “자영업자 수가 지난 1월 기준 두 달 만에 20만명이 줄고 수도권 상가도 공실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상공인과 민생을 위한 추경이 시급히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탄핵 정국이 마무리되면서 경제의 불확실성은 나름 해소 수순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이 부결된 이후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경제적인 관점서만 봤다고 전제하면서 “탄핵이 경제엔 더 낫다”고 말한 바 있다. 비상계엄, 탄핵 정국서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했던 사건이 급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전 정국을 뒤흔들었던 ‘명태균 게이트’가 다시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한 언론은 지난 3일 명태균씨와 홍준표 대구시장 간의 의혹을 보도했다. 윤 전 대통령 내외와 홍 시장 부부가 회동한 사실을 거론하며 이를 명씨가 주도했다는 취지로 보도한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3일 해당 내용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홍 시장 측근이 명태균을 통해 김건희 여사가 선호하는 동물 관련 기획을 전달했고 이를 계기로 부부 동반 회동이 성사됐다는 것”이라며 “명태균은 단순한 연결고리가 아니었다. 기획안을 준비해 김건희의 승인을 받고 회동을 성사시킨 핵심 인물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만약 사실이라면 공직자가 민간인과 손잡고 대통령 부부와 지방자치단체장의 사적 회동을 주선한 것”이라며 “홍 시장의 권력 네트워크에 명태균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홍 시장은 지난 3월14일 명태균 사건에 연루된 것이 밝혀지면 정계 은퇴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이제 그 약속을 지켜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묻혔던 사건 수면 위로? 시간상으로는 120일 남짓 지났을 뿐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한국에 남긴 상흔은 상당했다. 외부로는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내부에선 ‘IMF 때보다 힘들다’는 아우성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뼈아픈 대목은 본연의 자리서 일했어야 할 국민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탄핵 정국이 지나간 자리에 결국 국민의 상처만 남은 셈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