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벌써부터 선물 구입에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한우, 과일, 굴비, 건강기능식품 등 전통적인 품목들이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초고가 상품들의 고공행진도 눈여겨볼만 하다. 심지어 수천만원짜리 선물세트도 없어서 못 팔정도다.
지난해 추석에는 북핵 위기와 부정청탁금지법 등의 영향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주요 백화점서 선보인 초고가 추석 선물세트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불티나게∼
롯데백화점이 추석을 앞두고 100세트 한정으로 선보인 초고가 한우 프리미엄 선물세트인 ‘L-No.9세트’는 한 세트 가격이 130만원인데도 준비한 물량이 모두 동났고 360만원짜리 ‘법성수라굴비세트’도 20세트가 완판됐다. ‘울릉칡소 명품세트’(95만원)는 200세트 중 180세트가 팔렸다.
신세계백화점서 추석을 맞아 선보인 120만원짜리 ‘명품 목장한우 특호 선물세트’와 100만원짜리 ‘명품 한우 특호’도 날개 돋친 듯 팔렸다. 120만원짜리 ‘명품 특대 봄굴비 만복’과 98만원짜리 자연송이 선물세트도 마찬가지였다.
수천만원짜리 상품도 등장했다. 당시 롯데호텔서울은 프랑스 정통 꼬냑인 레미마르탱의 루이 13세 제로보암을 선물세트로 내놨다. 가격은 4000만원이다. 전세계 100병만 한정 생산됐으며 국내에는 단 2병만 들어왔다.
부산롯데호텔은 무려 7000만원짜리 로마네 콩티 한정판 1세트(12병)를 설 선물로 내놨다. 로마네 콩티는 와인 애호가 사이서 전 세계서 가장 희소하고 고가의 와인으로 손꼽힌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서 선보인 프랑스 화가 데이비드 자민의 마타히리 작품(시리즈 중 1점)이 1200만원에 책정돼 팔려나갔다. 데이비드 자민은 휴머니즘 작가로 영혼을 흔드는 자화상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은 이외에도 도예작가 이기조의 ‘사각제기 수반’ 1점을 800만원에 내놓았다. 이기조 작가는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린 명인으로 2007년 유네스코로부터 동아시아 공예가로 선정될 정도로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사각제기 수반은 백색의 점토판을 조각보처럼 이어 붙여 성형한 작품으로 고도의 기법과 깊은 사유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수작이다.
“비싸도 살 사람은 다 산다”
수천만원이 넘는 상품 매진
당시 업계 관계자는 “청탁금지법과 상관없는 부유층을 중심으로 초고가 추석 선물세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며 “특히 초고가 선물세트 판매 물량의 80% 이상이 강남지역 점포서 나갔다”고 말했다.
올해도 초고가 선물세트는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롯데백화점에선 한 병에 430만원 하는 프랑스 코냑 ‘루이 13세’(700mL) 10병이 지난주 다 팔렸다. 250만원에 달하는 ‘영광 법성포 굴비세트 황제’는 준비한 물량을 이미 25% 소진했다.
소고기 ‘1++ 등급’ 중에서도 최상위 부위만 선별해 담은 135만원짜리 ‘L-No.9 한우세트’도 지금까지 준비한 물량의 22%를 팔았다.
한 병에 200만원에 달하는 와인 ‘루이 라투르 로마네 생 비방 그랑크뤼’도 판매됐다. 이 같은 초고가 상품 판매 증가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가격 상승과 이로 인한 ‘부의 효과’, 소비의 양극화 현상 등 때문으로 유통업계에선 해석했다.
업계 관계자는 “상위 5%의 고소득층은 청탁금지법과 무관하게 추석 선물을 자유롭게 구매해 소비경기와 상관없이 초고가의 선물세트도 판매가 꾸준히 늘고 있다”며 “호텔 추석 선물세트도 수백만원대의 프리미엄 선물들과 10만원 이하의 선물로 양분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극화 심화
한 경제학부 교수는 “상·하위 가계의 소득 격차가 벌어지면서 소득 5분위 배율은 2008년 이후 10년 만에 최악의 수준으로 치달았다”며 “벌어진 소득 격차는 고스란히 소비 격차로 이어지면서 소비 양극화 현상도 심화돼 명절선물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