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돌아온 류현진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4.30 10:11:34
  • 호수 11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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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깨어난 코리안 몬스터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류현진이 이번 시즌 4번의 등판을 통해 메이저리그 에이스급 투수라는 것을 증명했다. 최근 3승을 이어가고 있으며, 다승 부문 내셔널리그 공동 3위에 올랐다. 2년간 어깨 및 팔꿈치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으며, 지난해 다소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그랬던 그가 이번 시즌 코리안 몬스터로 돌아왔다. 
 

그 동안 류현진은 온갖 악재로 부진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지난 2015년부터 2년간 어깨 및 팔꿈치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류현진은 지난해 복귀, 25경기에 나서 5승9패 평균자책점 3.77으로 다소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올 스프링캠프서도 안정적인 내용을 보여주지 못해 제 5선발로 밀렸다. 지난해 포스트시즌 엔트리서 제외된 것처럼 자존심이 크게 상할 일이지만, 냉정한 평가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 출신
역대급 활약

이로 인해 MLB 개막 전까진 류현진의 재기 여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미국 현지언론 또한 근육과 인대, 신경이 그물처럼 얽혀 있는 어깨 수술을 받은 투수가 예전 기량을 회복할 확률은 7%에 불과하다며 이 같은 입장에 동참했다. 그러나 류현진은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시즌 초반부터 5선발이 아닌 구세주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시즌 첫 경기는 미흡했다. 지난 3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상대로 마운드에 올라 3과 ⅔이닝 동안 5피안타로 3실점 한 뒤 강판됐다. 당시 패스트볼엔 힘이 없었고 변화구는 밋밋하게 떨어져 계속 선발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마저 나왔다. 

볼넷을 5개나 남발한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는 도망가는 피칭을 하다 4회도 채우지 못하고 강판된 뒤 “괜히 어렵게 승부하다가 볼이 많아졌다”고 후회했다. 투수가 어려운 공을 던진다는 건 자신이 없다는 뜻이다. 


류현진은 지난 11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전부터 확 달라졌다. 이어 17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 22일 워싱턴 내셔널스전까지 내리 3연승을 달리며 7.36이던 평균자책점을 1.99까지 떨어뜨렸다. 

최고 구속은 아직 전성기에 미치지 못하지만, 한층 더 예리해진 체인지업과 커브를 바탕으로 새로 익힌 투심과 컷패스트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상대편 타선을 침묵시켰다. 

LA 지역 매체 <LA 타임즈> 앤디 맥컬러프 기자도 지난 24일(한국시각) 독자들과의 질의응답 내용을 담은 기사를 통해 류현진을 호평했다. 

그는 “다저스가 지난 시즌 중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 다르빗슈 유를 영입했다. 오프시즌 다저스가 그와 재계약했다면 사치세를 피하기 위해 류현진이나 포사이드, 그랜달 등을 내보내야 했다”고 언급하면서도 “현재는 류현진이 가장 효율적인 선발 투수, 그랜달은 최고의 타자다.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전했다. 

135개 던져 피안타 1개 ‘살벌한 포심’
건강한 몸 입증하면 내년 FA 대박도

다만 특정 타자만 만나면 다시 도망 다니는 모습은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다. 지난 22일, 워싱턴 전 당시 볼넷 3개를 허용한 류현진은 브라이스 하퍼에게만 볼넷 2개를 기록했다. 아무리 MLB를 대표하는 강타자라고 해도 1회 2사 주자 없는 상황서 ‘3볼-0스트라이크’로 몰리다 결국 거르는 모양새는 좋지 않다. 

장타를 겁내 주자를 쌓아두면 오히려 더 큰 대량 실점의 위기에 봉착한다. 그럼에도 류현진은 ‘7%의 확률’을 기적처럼 이겨내며 올 시즌 확실한 부활을 예고했다. 


아쉽게 주간 MVP를 놓치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24일(이하 한국시각) 내셔널리그 '이 주의 선수'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왼손투수 패트릭 코빈을 선정했다. 코빈은 주간 2경기에 등판, 15이닝을 소화하며 2승을 거두고 단 2실점, 평균자책점 1.20을 기록했다. 

류현진 역시 코빈에 못지 않은 성적을 올렸지만 아쉽게 수상의 기회를 다음으로 미뤘다. 

마침 올해는 LA 다저스와 6년 계약이 끝나는 시즌이기도 하다. 류현진이 내년에 대형 FA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선 우선 아프지 않고 한 시즌 내내 건강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계약에 합의한 뒤에도 몸 상태를 하나하나 면밀히 체크하는 MLB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울러 특정 타자나 팀을 만나면 움츠러드는 모습을 극복한다면 추신수와 같은 ‘FA 대박’ 신화도 더 이상 꿈은 아니다.

류현진의 포심 패스트볼은 올 시즌 최고의 무기다. 투구 수 347개 중 135개의 포심 패스트볼(구사율 38.9%)을 던졌다. 이 중 안타가 된 공은 딱 1개밖에 없다. 첫 등판이었던 지난 3일 애리조나전, 폴 골드슈미트에게 내준 2루타가 포심 패스트볼을 던져 맞은 유일한 안타다. 

무시무시한 
초반 질주

피안타율이 겨우 6푼7리다. 올 시즌 잡아낸 삼진 27개 중 3분의 1인 9개를 포심 패스트볼로 잡았다. 8개가 헛스윙 삼진이었다. 

류현진의 포심 패스트볼은 지난 시즌 평균 구속 145.5㎞보다 오히려 구속이 조금 줄어 145㎞를 기록 중이다. 대신 회전수가 늘었다. 평균 2067회전서 2086회전으로 증가했다. 

메이저리그 평균이라고 할 수 있는 2261회전에는 못 미치지만 회전수의 증가는 기존의 속구와 다른 힘을 얻는다. 류현진의 평균 이상의 익스텐션(투구 때 릴리스 포인트를 포수까지 끌고 가는 거리)과 어우러지면서 위력이 커지고 있다. 
 

포심 패스트볼에 대한 자신감은 구사율서도 드러난다. 류현진은 지난 시즌 33.82%서 올 시즌 38.9%로 더 많은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고 있다. 지난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커터(컷 패스트볼)는 올 시즌 더욱 강해졌다. 평균 구속이 지난해 139.2㎞서 올해 140.3㎞로 1㎞ 이상 빨라졌다. 회전수 역시 속구와 마찬가지로 지난해보다 20회전 정도 늘었다. 

더 빠르고, 더 강한 회전을 가진 커터가 우타자의 바깥쪽 존을 파고들고 있다. 커터로 잡아낸 삼진은 7개. 그중 3개가 루킹 삼진이었다. 올 시즌 던진 커터 85개 중 53개가 스트라이크였다. 커터를 때리면 대부분은 아웃된다. 

류현진이 올 시즌 커터를 맞아 허용한 안타는 겨우 2개. 샌디에이고전 2루타 1개와 홈런이었다. 몸쪽으로 몰렸을 때 위험한 공이 될 수 있지만 2번째 등판 이후 커터는 안타 2개를 제외하면 모두 땅볼 아웃을 만들었다. 


류현진의 신무기 커터의 존재감도 묵직하다. 올 시즌 류현진은 직구, 커터, 커브, 체인지업의 4가지 구종을 주로 던지고 있다.  커터 구사율은 직구(43.4%)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23.3%에 달한다. 이는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데뷔 후 가장 강력한 무기로 사용해온 체인지업(15.1%)보다도 비중이 높다. 

현재까지 잡아낸 27개의 탈삼진 중 26%에 해당하는 7개의 탈삼진을 커터로 잡아냈을 정도로 그 위력도 상당하다.

사실 류현진의 커터 장착은 지난해 이루어졌다. 긴 재활서 돌아온 류현진은 부상 여파로 인한 직구의 구속 저하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구종 추가의 필요성을 느낀 류현진은 슬라이더보다 어깨에 부담이 덜한 커터를 본격적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데뷔 이후 꾸준히 15% 내외의 구사율을 보이던 슬라이더는 류현진이 커터를 던지기 시작한 이후 사실상 봉인됐다. 2017년 류현진의 커터가 실험 단계였다면, 올 시즌에는 체인지업과 함께 또 하나의 치명적인 무기로까지 발전했다. 

우려를 샀던 직구 구속도 전성기 때의 모습을 점차 회복하는 모습이다. 워싱턴과의 경기서 류현진의 최고 구속은 시속 93마일(약 150km)을 찍었다. 

<팬그래프닷컴>에 의하면 올 시즌 현재까지 류현진의 직구 평균 구속은 91.1마일로, 전성기였던 2013년과 동일하다. 단순히 공의 속도만으로 구위를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부상서 복귀한 뒤 구속 저하로 장타 허용이 급격히 늘어났던 점을 고려하면 이는 굉장한 호재다.  


류현진은 인천 출신으로 동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6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순위(전체 2순위) 지명을 받아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당시 등번호는 15번이었으나 한화 이글스서 15번을 달고 오랜 기간 활동했던 투수 구대성이 미국 메이저 리그 뉴욕 메츠에서 한화 이글스로 복귀하는 과정서 99번으로 변경됐다. 

당시 그는 별 생각 없이 99번으로 변경했으나 이후에는 소속 팀의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재현을 위해 99번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재현하지 못했다고 한다. 

4개 구종으로
타자들 농락

프로 야구 데뷔 첫 해인 2006년 다승, 평균 자책, 탈삼진 1위로 투수 3관왕에 오르며 신인상과 최우수 선수상을 동시에 석권했다. 신인이라고 하기엔 믿기 힘든 뛰어난 활약으로 '괴물' 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데뷔 첫 해 한국시리즈에도 등판했다.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2006년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에 선출되어 활동하기도 했지만 아시안 게임에서는 부진했다. 2006년 4월12일 잠실 LG전서 선발(첫 등판)로 나와 10개 탈삼진을 잡으며 프로 데뷔 첫 승을 거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본선에 국가 대표로 참가해 예선전인 캐나다 전과 결승전(대 쿠바)에 선발 등판했고, 캐나다전 완봉승을 포함, 17과 1/3 이닝 동안 10피안타 13탈삼진 2실점(평균 자책 1.04)의 뛰어난 성적으로 야구 국가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했고, 2009년 3월6일 벌어진 아시아 라운드 첫 경기 대만전에 선발로 등판, 3이닝 피안타 1개 탈삼진 3개 무실점으로 승리를 거뒀다. 

SK와이번스의 김광현과 LG트윈스의 봉중근과 함께 한국 프로 야구 3대 좌완 에이스로 꼽힌다. 그러나 사실 그는 공을 던질 때 외에는 오른손잡이다. 야구선수 중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좌투우타다.

2010년 아시안 게임 야구 국가대표로 출전했으며 대만과의 결승전서 선발로 등판해 철벽 마운드를 구축,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큰 공헌을 세웠다. 

CJ 마구마구 일구상 최고투수상, CJ 마구마구 프로야구 투수부문 골든글러브, 스포츠토토 올해의 투수상, 조아제약 프로야구 대상 최고 투수상, 제16회 2010년 아시안 게임 야구 금메달, CJ 마구마구 프로야구 최다탈삼진상, CJ 마구마구 프로야구 방어율1위투수상, 정규이닝 최다 탈삼진 기록상을 수상하고 방어율 1.82 전적 16승 4패 탈삼진 187개 등을 기록했다.

회전 늘려 주무기 사용
커터 위력도 더 강해져

2012년 11월9일 메이저리그 포스팅 시스템 기간이 종료된 결과 2573만7737달러33센트(한화 약 279억8978만원)의 포스팅 응찰액을 받았으며 최고 금액 입찰팀은 LA 다저스로 이적했다. 같은 해 12월10일, LA다저스와의 협상 끝에 계약 기간 6년 동안 총액 3600만달러(한화 약 390억원)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메이저리그 2013 시즌 성적은 14승 8패 평균자책점 3.00을 기록하면서 한국인 데뷔 최초 10승 투수가 됐다.

2014년 시즌 초반 어깨부상으로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들었지만 복귀 이후 투수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쿠어스 필드서 콜로라도 록키스에 승리를 거두는 등, 승수를 쌓아나갔다. 이 때부터 류현진, 클레이튼 커쇼, 잭 그레인키를 필두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연승을 거두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빼앗겼던 NL 서부 지구 1위를 되찾고 승차를 벌려나간다.

하지만 류현진은 8월 14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서 엉덩이 부상을 당하며 이틀 후인 8월 16일에 다시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오르게 됐다. 

9월1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복귀전서 7이닝 4피안타 7삼진 1실점으로 시즌 14승을 거뒀다. 하지만 2주 후인 9월 13일 샌프란시스코전에 등판, 1이닝 5피안타 1탈삼진 4실점으로 메이저 리그 데뷔 이래 최악의 투구를 했다. 

이때 3번타자 버스터 포지와 상대하던 중 어깨 통증이 재발해 이 같은 사태가 일어났다. 다행히 염증으로 끝나 부상자 명단에는 오르지 않았다.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카디널스를 상대로 6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지만, 다저스는 1승3패로 탈락하며 시즌을 마쳤다. 

2015년 시범경기 도중 어깨에 통증을 느꼈고, 정밀검진 결과 특별한 사항이 나오지 않았으나 통증과 구속 저하는 여전했고 60일 부상자 명단에까지 올랐으나 같은 해 5월22일 어깨 관절와순 파열 진단을 받았다. 결국 수술을 받으며 시즌 아웃됐다.

올시즌…
일낸다!

한국프로야구서 메이저 리그로 직행한 최초의 한국인 선수라는 특수성 때문에 류현진은 전 국민적으로 엄청난 관심을 받게 됐다. 그가 선발등판한 모든 경기가 MBC 공중파로 생중계됐고 시청률도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류현진은 전국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시즌이 끝나고 한국에 귀국한 후에는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수많은 CF를 찍었는데 CF수익만 40억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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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