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테마기획③ 구조조정 한파 뛰어넘기

서슬 퍼런 칼바람 속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힘들어”

골이 깊어지는 경기침체가 서민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다. 회사들이 저마다 구조조정 계획을 마련하거나 단행하면서 매서운 해고 한파가 몰아치고 있는 탓이다. 이같은 현상은 수출시장과 내수시장이 모두 얼어붙으면서 비정규직과 정규직,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가릴 것 없이 나타나고 있는 추세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인력시장은 혼탁한 양상이다. 대규모 구조조정 바람으로 최고의 인재들이 감원 태풍 앞에 몸을 떨면서 옮길 자리를 구하기에 한창이다. 반면 다른 한쪽에선 여러 명을 해고하는 대신 경쟁사 고급인력을 빼내오는 일도 자행된다. 실제 헤드헌팅 업체에선 삼성 등 대기업 임직원 출신 확보에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력시장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좇았다.


구조조정은 냉혹했다. 사회 구성원 전체를 옥죄고 있다. 사회 전반에는 냉혹한 한기만이 흐른다. 장기화된 경기침체 여파로 20∼30대 청년 취업시장이 닫혀 있는지 오래다. 특히 건설경기가 추락하면서 일용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지난 11월11일 오전 4시를 조금 넘긴 시간. 서울에서 몇 안 되는 인력시장 중 하나인 서울 구로구 구로동 7호선 남구로역 주변에 위치한 ‘구로동 로터리 인력시장’을 찾았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경기 한파를 가장 먼저 절감하고 있는 만큼 안전지대가 없다는 고용시장의 실상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아직 잠자리에 누워있을 시간이지만 이곳은 벌써 일용직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40대 초반부터 50대 후반의 노동자들이 주류다. 간혹 20대로 보이는 젊은 사람도 눈에 띈다. 20여분이 지나자 어느새 2백여명으로 불어났다.

새벽 인력시장 경기한파에 싸늘
이들의 모습은 각양각색. 저마다 어깨에는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메고 있다. 가방 속에 담겨있는 것은 망치와 못주머니 등 건설현장에 필요한 연장과 도구들. 두꺼운 점퍼를 껴입고 있는 사람도 보이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삼삼오오 모닥불을 쬐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선 짙게 배인 피곤함이 묻어난다.

곧 일감을 놓고 흥정이 시작됐다. 흥정에 걸린 시간은 1시간 30분. 이 시간 동안 일용직노동자들은 희비가 엇갈렸다. 임금 흥정이 끝난 일용직 노동자들은 각자 일터로 뿔뿔이 흩어졌다. 반면 흥정에 실패해 잔류한 일용직 노동자들은 연신 담배연기를 뿜어내며 그 속에 한숨을 섞고 있었다.

이들이 받는 금액은 잡부 7만원, 목수 12만원선. 또 철거 8만원, 벽돌운반(일명 곰빵) 9만원, 시멘트칠(일명 미장) 12만원, 벽돌쌓기(일명 조적) 12만원 등이다. 하지만 여기서 직업소개소에 10%의 수수료를 떼어줘야 한다. 또 5%는 운전기사의 몫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10년째 벽돌공을 하고 있다는 김모(43)씨는 “경기침체에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그나마 있던 일감이 줄어 올 겨울을 날 것을 생각하니 막막하다”며 허탕을 쳤으니 소주나 한잔 하러 가야겠다고 발길을 돌렸다.


칼바람에 쓰러지고 구직에 허덕이고
사업 실패 후 인력시장을 찾고 있다는 이모(50)씨는 “건설업계가 힘들어지면서 일용직 근로자들은 더 이상 살아갈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지난달에는 겨우 5일밖에 일을 하지 못했는데 처자식 보기 민망하다”고 고개를 떨궜다.

15년을 목수로 일하고 있다는 박모(54)씨는 “매일 인력시장에 나와도 일자리를 찾는 사람은 30%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한 달에 적게는 3일에서 5일 정도 일을 하는데 생활비 감당이 안 된다. 입에 풀칠하기도 버겁다”고 한탄했다.

일용직 노동자들의 삶은 이처럼 ‘전쟁’ 그 자체다. 건설경기가 추락하면서 일용직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어서다. 이들 중에는 어엿한 직장생활을 하다가 실직 후 흘러들어온 사람들이 태반이다.

실직 후 사업을 하다가, 장사를 하다가, 다른 직장에 다니다가 결국 막노동 시장까지 흘러들어온 사연이 부지기수다. 이들은 새벽부터 인력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일하는 날이 한 달에 열흘을 넘기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 버티기가 힘겨운 실정이다.

문제는 이같은 모습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 취업 전쟁이 청장년층을 넘어 사회 구성원 전체로 확대되면서 인력시장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포화상태다. 그만큼 삶 자체를 전쟁으로 삼아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서슬 퍼런 칼날 앞에서 좌불안석인 모습이 역력하다. 실적이 좋지 않는 사람들은 회사로부터 무언의 퇴사 압력을 받는 사례도 빈번해지고 있다.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서두르는 등 고용창출보다는 인력축소에 나서면서 더욱 불안해지고 있다.

유통업에 종사하는 회사원 유모(37)씨는 “농담 삼아 ‘회사 짤리면 택시나 대리운전이라도 하지’ 하고 말하지만 그들을 만나면 그쪽도 여의치 않은 것 같다”면서 “당장 그만두고 싶어도 마땅한 일자리도 없고 가족들 때문에 끝까지 버티고 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런가 하면 평생직장으로 분류되던 공직자들도 직장을 잃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정부와 자치단체들이 저마다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는 탓이다.

실제 도와 각 시·군은 공무원 감축계획에 따라 내년도 신규 채용 규모를 20% 이상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 공무원 합격자 2백30여명 가운데 절반인 1백20여 명이 임용되지 못하는 등 구조조정이 계속되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공기업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의 민영화 및 통폐합 정책으로 신규인력 채용 계획을 세우지 않거나 축소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취업 한파는 상당기간 사회를 짓누를 것이라는 게 사회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대기업출신 임직원‘무조건 잡고 보자’
하지만 해고 한파 속에서도 대우받는 그룹이 있다. 바로 대기업 출신 임직원들이다. 능력이 검증됐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삼성이나 LG 등의 출신들은 헤드헌터들의 표적으로 급부상하는 추세다.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들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들의 몸값은 더 높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대기업 출신들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는 이유는 이들이 가진 높은 직무능력과 국내외에 걸쳐 포진한 막강한 인맥에 기인한다. 이들 기업은 능력이 고만고만한 열 사람보다 능력이 탁월한 한 사람이 낫다는 포석으로 이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고급인력이 인력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것도 이같은 현상을 부추기는 분위기다. 각 기업마다 인사 적체 문제도 해소하고 실적이 좋지 않은 임직원들을 퇴출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20% 가량의 고급인력이 시장으로 나오고 있다. 임원출신은 그나마 한정되어 있지만 부장급 출신까지 확대하면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 것으로 관측될 정도다.

하지만 대기업 출신이라고 모두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휴대전화와 반도체, LCD 등과 관련된 업무 출신이 상종가다. 재무와 영업 분야 담당자들도 헤드헌터들의 표적이다. 경기침체 국면 탈피를 위해서다. 반면 신규사업 확장과 M&A 등의 목적으로 상종가를 쳤던 전략·기획통들은 요즘 하락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채용대란이 일어나면서 혼탁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인력난이 나날이 가중되면서 기업들이 경쟁사 고급인력에 눈독을 들이고 인력 빼오기 경쟁을 벌이고 있어서다. 때문에 간혹 인력 빼오기 논란에 휩싸인 기업들이 개인이나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하지만 사회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에 우려감을 표하고 있다. 인력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면서 기업은 물론 한국의 위상까지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사실 취업희망자들은 넘쳐나고 있다. 주요 업체들이 취업설명회를 하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풍경을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인력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그 이면에는 실무능력을 가진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가 자리를 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줄이기 위해선 업계와 취업 희망자들을 연결해주는 시스템과 교육기관 등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교육기관의 경우 실무능력에 초점을 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이들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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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