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남북 케미’ 조명균과 리선권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1.15 11:37:56
  • 호수 11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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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부처 vs 다혈질…그래도 같은 민족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25개월 만이다. 남북 고위급 회담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표단 파견 용의를 표하면서 급진전됐다. 조명균 통일부장관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하 조평통) 위원장이 지난 9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만났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할 것을 표명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위급 회담 
성공적 마무리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일 오전 9시30분부터 30여분간 <조선중앙TV>를 통해 발표한 신년사 육성 연설서 “새해는 우리 인민이 공화국 창건 70돌을 대경사로 기념하게 되고 남조선에서는 겨울철 올림픽경기 대회가 열리는 것으로 하여 북과 남에 다 같이 의의 있는 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그것(평창 동계올림픽)은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며 우리는 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환영한다’고 화답했다. 


다음날 문 대통령은 청와대서 금년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북한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북한 대표단의 평창올림픽 파견과 당국회담 뜻을 밝힌 건 평창올림픽을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의 획기적인 계기로 만들자는 우리의 제의에 호응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또 “통일부와 문체부는 남북 대화를 신속히 복원하라”며 “북한 대표단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실현할 수 있도록 후속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하명했다.

남북은 고위급회담에 ‘돌부처’ 조명균 통일부장관과 ‘다혈질’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을 각 수석대표로 내세웠다. 

남북 간 현안의 민감성 탓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차관급 회담부터 진행할 거라는 전망도 나왔으나 장관급을 내세우면서 무게감을 실었다. 조 장관과 리 위원장 모두 남북 협상 경험이 풍부하다. 두 사람이 남북회담 공식 석상에 마주 앉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조 장관은 1957년 경기도 의정부서 태어났다. 동성고등학교와 성균관대학교 통계학과를 졸업했다. 행정고시 23회에 합격한 후 통일부서 근무했다.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7년 남북적십자 대표 접촉서 대표를 맡기도 했다.

대체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핵 겨냥에 미묘한 신경전도

김대중정부에서는 통일부 교류협력국장,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 등 대북 사업 업무를 현장 실무서 담당했다. 정세현 당시 통일부장관조차도 “(조 장관이)실무협상을 많이 했는데 참 잘했다. 조용조용하게 하면서도 꼭 성과를 냈다”며 “실제로는 장관인 나보다 일을 더 많이 한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2002년 4월 통일부 교류협력국장 시절에는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의 ‘북한은 악의 축’ 발언 등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황을 풀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이 파견한 ‘임동원 특사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 같은 성과와 활동을 인정받아 2006년 7월, 대북정책의 핵심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을 맡은 그는 2007년 10월에 치러진 2차 남북정상회담에 깊게 관여했다. 

2007년 8월 김만복 전 국정원장과 함께 육로로 평양을 방문해 북한의 고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회담 의제를 조율했다. 10·4 남북정상회담 합의문 초안을 다듬었으며 정상회담 당시에는 기록자로 배석해 정상회담 대화록을 작성했다. 

그러나 4개월 뒤인 2008년 2월 이명박정부가 출범하면서 정상회담 대화록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MB정권이 ‘햇볕정책’의 산물인 6·15선언과 10·4선언을 사실상 폐기했다. 조 장관은  교육대기 상태에 있다가 결국 2008년 10월 사표를 내고 통일부를 떠났다. 
 

이후에는 가톨릭 신학을 공부하면서 종교활동에 매진했고 공직을 일절 맡지 않았다.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일으킨 NLL(서해북방한계선) 포기 논란에 휘말려 2007년 10월부터 2008년 2월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임의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폐기하고 봉하마을로 무단 반출한 혐의(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및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등으로 재판을 받았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

파격적이었던
김정은 신년사

이후 19대 대선서도 아무런 역할을 맡지 않았지만, 2017년 6월, 문재인정부의 첫 통일부장관에 내정됐다. 

당시 청와대 측은 “남북회담 및 대북전략에 정통한 관료 출신으로 새 정부의 대북정책과 남북문제 현안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정책기획부터 교류, 협상까지 풍부한 실전 경험을 가진 정책통”이라고 소개했다. 

인선 배경에 대해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새 정부의 남북관계 기본방향 정립 등 통일부의 주요 과제들을 유능하게 추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당초 송영길 전 인천시장 등 정치인 출신 통일부장관이 거론되었던 것을 고려하면, 북한이 아직 강경 노선을 지속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일단 통일부 관료 출신을 기용하여 정책 안정성을 우선 추구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됐다. 

지난해 6월29일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어 문재인정부의 첫 통일부장관으로 임명됐다.


조 장관은 유년시절 스케이트 선수로 활약하면서 동계스포츠와 인연을 맺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의정부중앙국민(초등)학교서 단거리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로 활약했다. 

통일부는 조 장관의 초등학교 당시 사진도 공개했다. 배경은 1969년 2월로 윗줄은 빙상부 담당 교사, 아랫줄은 빙상부 학생들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가장 왼쪽서 깃발을 들고 있는 학생이 바로 조 장관이다.

초등학교 스피드스케이트부가 지금도 흔치 않은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경력이다. 조 장관은 경기도 대회에 출전해 여러 차례 금메달을 땄지만 전국대회서 입상은 하지 못했다. 1970년대 한국 빙상 간판이자 스피드스케이트 1세대인 이영하 전 국가대표 선수와 초등학교 동창이자 같은 학년 선수로 활약했다. 

경기도 대회에도 함께 출전했다. 다만 종목은 단거리와 장거리로 서로 달라 함께 경기할 기회는 없었다.

조 장관과 협상 파트너인 리 위원장은 군인 출신에 대남 강경파로 저돌적인 성격이다. 과거 남북 군사실무회담서 리 위원장을 상대했던 문상균 전 국방부 대변인은 “대남 강경파 김영철을 빼닮은 ‘대남 협상꾼’으로 밀고 당기기와 판 뒤집기, 기선 제압 등으로 상대를 몰아붙이고 압박하는 협상 전술에 능수능란하다”고 평가했다. 

둘 다 남북 협상 경험 풍부
성격·대화 스타일은 정반대 


그는 군 출신으로 판문점대표부에 주로 근무했으며,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총 27차례에 걸쳐 남북 간 회담 및 실무접촉에 참여했다. 군사회담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리 위원장은 지난 2010년 5월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어 남측의 증거는 모두 조작됐다고 주장했으며, 이듬해 2월 제39차 남북군사실무회담에 북측 수석대표로 참가해 천안함은 모략극이라고 비난하며 퇴장하기도 했다. 

김정은 체제 출범과 함께 최고권력기구인 당시 국방위원회의 정책국 부국장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으며, 2014년 10월에는 국방위 정책국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북한이 2016년 6월 최고인민회의 제13기 4차 회의서 국가기구인 조평통을 설치한 이후 조평통의 수장을 맡은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남북협상서 리 위원장을 여러 차례 만난 한 인사는 그를 “회담 테이블에서는 주도면밀한 성격에 달변”이라며 “다만, 성질이 급하고 욱하는 면이 있다. 화가 나면 숨기지 않고 언성을 높인다”고 회고했다.

이번 회담의 실무진 면면도 주목할 만하다. 남측에서는 조 장관 이외에도 천해성 통일부 차관과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등 차관들도 회담에 나섰다. 통일부 장·차관이 회담장에 함께 들어서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 “보통 같은 부처 장·차관이 한꺼번에 대표단에 들어가진 않는다”며 “이번에 천해성 차관이 포함된 것은 향후 이어질 실무회담서 보다 책임있는 당국자가 회담을 이끌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천 차관은 실제 통일정책실장, 남북회담본부 본부장, 대변인, 인도협력국장 등 통일부 요직을 두루 거친 대표적인 정책통이자 남북회담 전문가로 꼽힌다. 

비핵화 문제는
뚜렷한 입장차

북측은 전종수 조평통 부위원장과 원길우 체육성 부상을 대표단 명단에 포함시켰다. 전 부위원장 역시 과거 남북회담에 모습을 자주 드러냈던 인물로, 가장 최근에는 2015년 12월 열린 제1차 남북당국회담에 북측 수석대표로 나왔을 정도로 남측 사정에 밝다는 평가다. 

북측에서는 황충성 조평통 부장도 나왔다. 2013년 7월 민족경제협력위원회 참사 자격으로 개성공단 관련 남북 회담에 참석했다.

이번 남북 회담에서는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군사당국회담 등 3개항에 합의했으며 대체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는 평가다. 종결회의 공동보도문 낭독 등도 원만하게 이뤄졌다. 

리 위원장은 조 장관과 공동보도문을 교환한 뒤 곧바로 남측의 비핵화 언급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양측이 뚜렷한 입장차를 재확인하며 신경전이 연출되기도 했다. 

리 위원장은 “남측 언론서 지금 북남 고위급 회담서 그 무슨 비핵화 문제 가지고 회담을 진행하고 있다는 얼토당토 않은 여론을 확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가 보유한 원자탄과 수소탄, 대륙간탄도로케트를 비롯한 모든 최첨단 전략무기는 철두철미 미국을 겨냥하는 것으로 우리 동족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것도 아니다”라며 “북남 대화와 관계개선을 지향하는 데 저촉되는 이런 문제를 과감히 극복하도록 주력해야 한다. 매우 유감스럽다”고 반발했다.

이에 조 장관이 상호존중 정신을 언급하며 북측의 이해를 구했음에도 리 위원장은 서해 군 통신선은 지난 3일 오후 3시 개통했는데, 이를 9일 개통한 것처럼 거짓보도했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조 장관이 “기술적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언론제도와 사회제도에 대한 이해의 마음을 가져달라”고 밝히자 리 위원장은 “북남 관계는 자기 체제 위에 놓여있다. 북남이 각기의 문화체제 특성을 운운하며 상호 존중을 거론한다면 잘못”이라고도 언급했다.

조, MB정부 보직 못 받고 퇴직
리, 국방위원회 정책국 실세로

리 위원장의 발언은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기존 입장의 재확인에 불과하지만, 후속 군사회담 등에서 남북이 직면할 갈등요소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간과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정부로서는 결국 남북회담을 북미대화, 6자회담 등으로 확산해 비핵화 해결의 방향으로 이끄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다만 이 발언으로 향후 비핵화 협상 전망을 예단하는 것도 부적절하단 지적도 나온다.

이번 회담의 남북 손익계산서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양측이 모두 원한 평창동계올림픽 관련 논의는 상호 원만한 합의를 이뤄냈으나 우리측 공동보도문 초안에 포함됐던 이산가족상봉 행사 개최가 빠졌다. 

향후 군사당국회담과 고위급회담 개최가 매우 포괄적인 선에서만 합의된 부분은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해 남과 북이 시급성과 중요성에 공감대를 이뤘다면서도 최종적으로 합의가 불발된 정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 북측이 금강산관광 재개나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집단탈북 문제와 연계시켰을 가능성과 설연휴 전까지 준비시간이 촉박하다는 실무적 문제 등이 거론되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이산가족 상봉행사 개최 의지가 높은 데다 김정은 신년사에서 남북 간 교류협력을 강조한 만큼 북측은 향후 이산가족 상봉을 레버리지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군사회담과 관련해서는, 평창올림픽 기간 북측 대표단의 통행 등에 국한한 실무적 논의를 진행될지 한미군사훈련 등 남북의 군사적 사안을 포괄적으로 다룰지 결정되지 않았다. 남북은 곧바로 판문점 연락채널 등을 통해 군사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협의에 착수한다.

올림픽 끝나고
앞으로가 문제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논의할 남북 실무회담이 늦어도 1월 안에는 개최될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스위스 로잔서 예정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남북이 참여하는 협의 이전에 평창 실무회담이 열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실무회담에서는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파견하기로 한 고위급대표단과 응원단, 예술단 등 방문단의 규모와 방남 경로, 숙소, 경비 부담 원칙 등이 조율될 것으로 보인다. 또 개회식 공동입장과 공동응원 등에 대한 추가 협의도 있을 전망이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남북관계 개선’ 국정·정당 지지율 보니…

문재인 대통령의 주간 단위 국정지지율이 다시 70%대로 올라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8일 리얼미터는 CBS의 의뢰로 지난 2∼5일 전국 성인 201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 ±2.2%포인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잘한다’고 평가한 응답자는 한 주 전보다 3.1%포인트(p) 오른 71.6%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는 0.9%p 하락한 24.1%를 보였다. 

문 대통령의 주간 단위 국정지지율은 4주 만에 70%대를 회복했다. 리얼미터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평창올림픽 대표단 파견 시사’ 신년사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즉각적인 환영 입장 표명과 9일 판문점 고위급 회담 성사 등 남북대화가 급물살을 타면서 남북관계 해빙에 대한 기대감이 급격하게 고조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지역별로 ▲대구·경북(57.7%·7.1%p↑) ▲경기·인천(76.6%·5.4%p↑) ▲대전·충청·세종(74.0%·5.1%p↑) ▲광주·전라(84.2%·3.0%p↑) ▲서울(72.8%·2.7%p↑)에서 올랐다. 연령대별로 ▲50대(67.4%·6.9%p↑) ▲20대(81.9%·4.5%p↑) ▲60대 이상(53.6%·4.2%p↑) ▲30대(83.2%·2.2%p↑) 순으로 상승 폭이 컸다.

정당 지지도에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50%대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1위를 지켰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0.6%p 오른 50.9%였다. 그 뒤를 자유한국당 18.6% ▲바른정당 6.0% ▲국민의당 5.0% ▲정의당 5.0% 순으로 이어갔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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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