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남북 케미’ 조명균과 리선권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1.15 11:37:56
  • 호수 11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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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부처 vs 다혈질…그래도 같은 민족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25개월 만이다. 남북 고위급 회담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표단 파견 용의를 표하면서 급진전됐다. 조명균 통일부장관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하 조평통) 위원장이 지난 9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만났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할 것을 표명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위급 회담 
성공적 마무리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일 오전 9시30분부터 30여분간 <조선중앙TV>를 통해 발표한 신년사 육성 연설서 “새해는 우리 인민이 공화국 창건 70돌을 대경사로 기념하게 되고 남조선에서는 겨울철 올림픽경기 대회가 열리는 것으로 하여 북과 남에 다 같이 의의 있는 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그것(평창 동계올림픽)은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며 우리는 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환영한다’고 화답했다. 


다음날 문 대통령은 청와대서 금년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북한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북한 대표단의 평창올림픽 파견과 당국회담 뜻을 밝힌 건 평창올림픽을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의 획기적인 계기로 만들자는 우리의 제의에 호응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또 “통일부와 문체부는 남북 대화를 신속히 복원하라”며 “북한 대표단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실현할 수 있도록 후속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하명했다.

남북은 고위급회담에 ‘돌부처’ 조명균 통일부장관과 ‘다혈질’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을 각 수석대표로 내세웠다. 

남북 간 현안의 민감성 탓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차관급 회담부터 진행할 거라는 전망도 나왔으나 장관급을 내세우면서 무게감을 실었다. 조 장관과 리 위원장 모두 남북 협상 경험이 풍부하다. 두 사람이 남북회담 공식 석상에 마주 앉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조 장관은 1957년 경기도 의정부서 태어났다. 동성고등학교와 성균관대학교 통계학과를 졸업했다. 행정고시 23회에 합격한 후 통일부서 근무했다.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7년 남북적십자 대표 접촉서 대표를 맡기도 했다.

대체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핵 겨냥에 미묘한 신경전도

김대중정부에서는 통일부 교류협력국장,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 등 대북 사업 업무를 현장 실무서 담당했다. 정세현 당시 통일부장관조차도 “(조 장관이)실무협상을 많이 했는데 참 잘했다. 조용조용하게 하면서도 꼭 성과를 냈다”며 “실제로는 장관인 나보다 일을 더 많이 한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2002년 4월 통일부 교류협력국장 시절에는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의 ‘북한은 악의 축’ 발언 등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황을 풀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이 파견한 ‘임동원 특사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 같은 성과와 활동을 인정받아 2006년 7월, 대북정책의 핵심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을 맡은 그는 2007년 10월에 치러진 2차 남북정상회담에 깊게 관여했다. 

2007년 8월 김만복 전 국정원장과 함께 육로로 평양을 방문해 북한의 고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회담 의제를 조율했다. 10·4 남북정상회담 합의문 초안을 다듬었으며 정상회담 당시에는 기록자로 배석해 정상회담 대화록을 작성했다. 

그러나 4개월 뒤인 2008년 2월 이명박정부가 출범하면서 정상회담 대화록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MB정권이 ‘햇볕정책’의 산물인 6·15선언과 10·4선언을 사실상 폐기했다. 조 장관은  교육대기 상태에 있다가 결국 2008년 10월 사표를 내고 통일부를 떠났다. 
 

이후에는 가톨릭 신학을 공부하면서 종교활동에 매진했고 공직을 일절 맡지 않았다.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일으킨 NLL(서해북방한계선) 포기 논란에 휘말려 2007년 10월부터 2008년 2월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임의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폐기하고 봉하마을로 무단 반출한 혐의(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및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등으로 재판을 받았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

파격적이었던
김정은 신년사

이후 19대 대선서도 아무런 역할을 맡지 않았지만, 2017년 6월, 문재인정부의 첫 통일부장관에 내정됐다. 

당시 청와대 측은 “남북회담 및 대북전략에 정통한 관료 출신으로 새 정부의 대북정책과 남북문제 현안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정책기획부터 교류, 협상까지 풍부한 실전 경험을 가진 정책통”이라고 소개했다. 

인선 배경에 대해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새 정부의 남북관계 기본방향 정립 등 통일부의 주요 과제들을 유능하게 추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당초 송영길 전 인천시장 등 정치인 출신 통일부장관이 거론되었던 것을 고려하면, 북한이 아직 강경 노선을 지속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일단 통일부 관료 출신을 기용하여 정책 안정성을 우선 추구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됐다. 

지난해 6월29일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어 문재인정부의 첫 통일부장관으로 임명됐다.


조 장관은 유년시절 스케이트 선수로 활약하면서 동계스포츠와 인연을 맺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의정부중앙국민(초등)학교서 단거리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로 활약했다. 

통일부는 조 장관의 초등학교 당시 사진도 공개했다. 배경은 1969년 2월로 윗줄은 빙상부 담당 교사, 아랫줄은 빙상부 학생들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가장 왼쪽서 깃발을 들고 있는 학생이 바로 조 장관이다.

초등학교 스피드스케이트부가 지금도 흔치 않은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경력이다. 조 장관은 경기도 대회에 출전해 여러 차례 금메달을 땄지만 전국대회서 입상은 하지 못했다. 1970년대 한국 빙상 간판이자 스피드스케이트 1세대인 이영하 전 국가대표 선수와 초등학교 동창이자 같은 학년 선수로 활약했다. 

경기도 대회에도 함께 출전했다. 다만 종목은 단거리와 장거리로 서로 달라 함께 경기할 기회는 없었다.

조 장관과 협상 파트너인 리 위원장은 군인 출신에 대남 강경파로 저돌적인 성격이다. 과거 남북 군사실무회담서 리 위원장을 상대했던 문상균 전 국방부 대변인은 “대남 강경파 김영철을 빼닮은 ‘대남 협상꾼’으로 밀고 당기기와 판 뒤집기, 기선 제압 등으로 상대를 몰아붙이고 압박하는 협상 전술에 능수능란하다”고 평가했다. 

둘 다 남북 협상 경험 풍부
성격·대화 스타일은 정반대 


그는 군 출신으로 판문점대표부에 주로 근무했으며,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총 27차례에 걸쳐 남북 간 회담 및 실무접촉에 참여했다. 군사회담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리 위원장은 지난 2010년 5월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어 남측의 증거는 모두 조작됐다고 주장했으며, 이듬해 2월 제39차 남북군사실무회담에 북측 수석대표로 참가해 천안함은 모략극이라고 비난하며 퇴장하기도 했다. 

김정은 체제 출범과 함께 최고권력기구인 당시 국방위원회의 정책국 부국장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으며, 2014년 10월에는 국방위 정책국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북한이 2016년 6월 최고인민회의 제13기 4차 회의서 국가기구인 조평통을 설치한 이후 조평통의 수장을 맡은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남북협상서 리 위원장을 여러 차례 만난 한 인사는 그를 “회담 테이블에서는 주도면밀한 성격에 달변”이라며 “다만, 성질이 급하고 욱하는 면이 있다. 화가 나면 숨기지 않고 언성을 높인다”고 회고했다.

이번 회담의 실무진 면면도 주목할 만하다. 남측에서는 조 장관 이외에도 천해성 통일부 차관과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등 차관들도 회담에 나섰다. 통일부 장·차관이 회담장에 함께 들어서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 “보통 같은 부처 장·차관이 한꺼번에 대표단에 들어가진 않는다”며 “이번에 천해성 차관이 포함된 것은 향후 이어질 실무회담서 보다 책임있는 당국자가 회담을 이끌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천 차관은 실제 통일정책실장, 남북회담본부 본부장, 대변인, 인도협력국장 등 통일부 요직을 두루 거친 대표적인 정책통이자 남북회담 전문가로 꼽힌다. 

비핵화 문제는
뚜렷한 입장차

북측은 전종수 조평통 부위원장과 원길우 체육성 부상을 대표단 명단에 포함시켰다. 전 부위원장 역시 과거 남북회담에 모습을 자주 드러냈던 인물로, 가장 최근에는 2015년 12월 열린 제1차 남북당국회담에 북측 수석대표로 나왔을 정도로 남측 사정에 밝다는 평가다. 

북측에서는 황충성 조평통 부장도 나왔다. 2013년 7월 민족경제협력위원회 참사 자격으로 개성공단 관련 남북 회담에 참석했다.

이번 남북 회담에서는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군사당국회담 등 3개항에 합의했으며 대체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는 평가다. 종결회의 공동보도문 낭독 등도 원만하게 이뤄졌다. 

리 위원장은 조 장관과 공동보도문을 교환한 뒤 곧바로 남측의 비핵화 언급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양측이 뚜렷한 입장차를 재확인하며 신경전이 연출되기도 했다. 

리 위원장은 “남측 언론서 지금 북남 고위급 회담서 그 무슨 비핵화 문제 가지고 회담을 진행하고 있다는 얼토당토 않은 여론을 확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가 보유한 원자탄과 수소탄, 대륙간탄도로케트를 비롯한 모든 최첨단 전략무기는 철두철미 미국을 겨냥하는 것으로 우리 동족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것도 아니다”라며 “북남 대화와 관계개선을 지향하는 데 저촉되는 이런 문제를 과감히 극복하도록 주력해야 한다. 매우 유감스럽다”고 반발했다.

이에 조 장관이 상호존중 정신을 언급하며 북측의 이해를 구했음에도 리 위원장은 서해 군 통신선은 지난 3일 오후 3시 개통했는데, 이를 9일 개통한 것처럼 거짓보도했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조 장관이 “기술적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언론제도와 사회제도에 대한 이해의 마음을 가져달라”고 밝히자 리 위원장은 “북남 관계는 자기 체제 위에 놓여있다. 북남이 각기의 문화체제 특성을 운운하며 상호 존중을 거론한다면 잘못”이라고도 언급했다.

조, MB정부 보직 못 받고 퇴직
리, 국방위원회 정책국 실세로

리 위원장의 발언은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기존 입장의 재확인에 불과하지만, 후속 군사회담 등에서 남북이 직면할 갈등요소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간과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정부로서는 결국 남북회담을 북미대화, 6자회담 등으로 확산해 비핵화 해결의 방향으로 이끄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다만 이 발언으로 향후 비핵화 협상 전망을 예단하는 것도 부적절하단 지적도 나온다.

이번 회담의 남북 손익계산서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양측이 모두 원한 평창동계올림픽 관련 논의는 상호 원만한 합의를 이뤄냈으나 우리측 공동보도문 초안에 포함됐던 이산가족상봉 행사 개최가 빠졌다. 

향후 군사당국회담과 고위급회담 개최가 매우 포괄적인 선에서만 합의된 부분은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해 남과 북이 시급성과 중요성에 공감대를 이뤘다면서도 최종적으로 합의가 불발된 정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 북측이 금강산관광 재개나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집단탈북 문제와 연계시켰을 가능성과 설연휴 전까지 준비시간이 촉박하다는 실무적 문제 등이 거론되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이산가족 상봉행사 개최 의지가 높은 데다 김정은 신년사에서 남북 간 교류협력을 강조한 만큼 북측은 향후 이산가족 상봉을 레버리지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군사회담과 관련해서는, 평창올림픽 기간 북측 대표단의 통행 등에 국한한 실무적 논의를 진행될지 한미군사훈련 등 남북의 군사적 사안을 포괄적으로 다룰지 결정되지 않았다. 남북은 곧바로 판문점 연락채널 등을 통해 군사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협의에 착수한다.

올림픽 끝나고
앞으로가 문제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논의할 남북 실무회담이 늦어도 1월 안에는 개최될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스위스 로잔서 예정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남북이 참여하는 협의 이전에 평창 실무회담이 열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실무회담에서는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파견하기로 한 고위급대표단과 응원단, 예술단 등 방문단의 규모와 방남 경로, 숙소, 경비 부담 원칙 등이 조율될 것으로 보인다. 또 개회식 공동입장과 공동응원 등에 대한 추가 협의도 있을 전망이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남북관계 개선’ 국정·정당 지지율 보니…

문재인 대통령의 주간 단위 국정지지율이 다시 70%대로 올라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8일 리얼미터는 CBS의 의뢰로 지난 2∼5일 전국 성인 201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 ±2.2%포인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잘한다’고 평가한 응답자는 한 주 전보다 3.1%포인트(p) 오른 71.6%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는 0.9%p 하락한 24.1%를 보였다. 

문 대통령의 주간 단위 국정지지율은 4주 만에 70%대를 회복했다. 리얼미터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평창올림픽 대표단 파견 시사’ 신년사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즉각적인 환영 입장 표명과 9일 판문점 고위급 회담 성사 등 남북대화가 급물살을 타면서 남북관계 해빙에 대한 기대감이 급격하게 고조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지역별로 ▲대구·경북(57.7%·7.1%p↑) ▲경기·인천(76.6%·5.4%p↑) ▲대전·충청·세종(74.0%·5.1%p↑) ▲광주·전라(84.2%·3.0%p↑) ▲서울(72.8%·2.7%p↑)에서 올랐다. 연령대별로 ▲50대(67.4%·6.9%p↑) ▲20대(81.9%·4.5%p↑) ▲60대 이상(53.6%·4.2%p↑) ▲30대(83.2%·2.2%p↑) 순으로 상승 폭이 컸다.

정당 지지도에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50%대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1위를 지켰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0.6%p 오른 50.9%였다. 그 뒤를 자유한국당 18.6% ▲바른정당 6.0% ▲국민의당 5.0% ▲정의당 5.0% 순으로 이어갔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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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