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고-억울한 사람들> (61)누명 쓴 교수님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12.26 11:35:45
  • 호수 1147호
  • 댓글 0개

서울대병원 논문 조작 진실은…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신설합니다. 매주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겁니다. 예순한 번째 주인공은 서울대학교병원 임홍국 전 교수입니다. 
 

임 교수(제1저자)는 지난 2010년 이정렬(연구책임자) 교수와 함께 ‘선천성 교정형 대혈관전위증에 대한 완전한 양심실 교정술의 장기 결과’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2년이 흐른 2012년 당시 공동저자로 참여한 서울대학교 흉부외과교실 김웅한 교수는 해당 논문이 ‘사망자 수를 실제보다 줄여 보고했다’ ‘대상 환자 수에 의혹이 있다’ 등의 이유로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이하 서울대 진실위)에 제보했다. 

법원서 승소

서울대 진실위는 제보자인 김 교수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면서 해당 논문은 조작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서울대 진실위 결과가 2013년 12월3일 한 언론 1면에 '국내 유력병원 의사들 심장수술 생존율 조작' '간접살인' 등으로 대서특필되면서 임 교수의 명예는 곤두박질쳤다. 

명예회복을 위해 임 교수는 법정행을 택했다. 학계의 예상을 깨고 1심 법정은 임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은 “‘연구데이터 조작 등 연구부정행위의 존재’가 실체적 진실에 부합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논문상 사망자 수가 조작됐다는 결론도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즉 해당 논문에 부정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아울러 서울지법은 “진실위 관계자가 내부 규정이 정한 비밀유지 의무를 위반해 조사 결과를 언론에 유포에 원고(임 교수)의 명예를 훼손한 것은 불법행위가 된다”고 판시해 서울대가 임 교수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봤다. 

1심 판결은 2000만원을 배상하라는 결론을 내렸고 2심, 3심까지 이어진 지리한 법정 공방서 원심은 확정됐다.

그렇다면 서울대 진실위는 왜 법정 판결서 뒤집힐 결론을 내렸을까. 당시 논문 조작 쟁점은 사망자 수였다. 

앞서 임 교수는 논문을 통해 심장기형 수술을 받은 환자들을 추적한 결과 사망자를 19명(원자료)으로 집계해 생존율 83%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진실위는 제보자가 제출한 2012년 9월 자료를 토대로 사망자가 26명(사후자료)에 이른다고 결론 내렸다.

임 교수가 자료를 취합할 당시 사망 사실을 알 수 없거나 사망했다고 보기 힘든 사람들이 제보자의 논문에는 포함된 것이다. 

임 교수는 “사후자료는 제보자 혼자 원자료에 있는 사망 자료를 모두 복사한 뒤 사망자료를 대거 추가해 만든 것"이라며 "추가된 사망 환자는 이중집계, 허위집계, 추정집계뿐만 아니라, 논문 게제 확정 후 사망이 확인되는 집계, 제보자만 알 수 있는 사망 환자 집계까지 시행해 원자료에는 사망으로 표시됐지만 진실위는 확인하지 못한 환자까지도 모두 집계돼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제보자 이외에는 아무도 조사에 관여하지 않고 조사 위원들은 아무도 제보자가 집계한 내용을 단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서울대 진실위에 공정한 제보가 이뤄지지 않고 제보자가 제보에 컨트롤타워가 돼 이 같은 만행을 저질렀다. 이 증거 자료를 모두 법원을 통해 확보했다”며 “처음부터 조작으로 꾸며 놓고, 원자료를 고의적으로 묵살한 사실이 법정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가 서울대 진실위 조사를 받을 당시 석연치 않은 정황도 있다. 

제보자가 집계한 사후자료를 서울대 진실위가 은폐한 것이다. 당연히 반론권 및 해명권 차원에서 사후자료를 임 교수에게 제공해야 하지만 사후자료를 요구하는 임 교수에게 서울대 진실위는 오히려 임 교수의 정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 원자료만 보여주며 해명을 요구했다.

법원 판결문에도 "심사기관으로서 취해야 할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사의무에 위반한 검증방법내지 검증절차상 하자로 인해 그 정당성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명시됐다. 

기피신청을 거부한 일도 있다. 당시 논문 연구책임자로 피조사자였던 이정렬 교수와 김용진 교수는 진실위 장윤희 조사위원에 대한 기피를 신청했다. 

‘평소에 제보자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 ‘해당 사안과 관련된 논문 연구 초기부터 연구에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서울대 진실위는 기피신청을 기각하고 장 교수를 조사위원에 포함시켰다. 

임 교수는 “장 교수가 조사위원에 포함된 것을 보고 함정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며 “장 교수는 제보자와 상당한 유착관계에 있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 교수를 포함한 모든 서울대 진실위원원들은 원자료와 사후자료를 단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다”며 “제보자와 공모해 본조사 위원회 보고서 일체를 제보자에 넘겨 언론에 제보토록 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임 교수는 "이 사건에 깊숙이 연관된 서울의대 A학장은 제보자와 동기로 서울대 법인화 직전 총장 당선에 기여했다"며 "내년에 서울대 총장 출마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진실위는 진실위의 행태를 반발하는 내용증명을 묵살하기도 했다. 임 교수는 언론 기자로 있는 처남을 통해 해당 내용이 한 언론에 제보됐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진실위는 조작 결론…결국 법정행 
재판서 뒤집혀…끝나지 않은 싸움

임 교수는 제보자 김 교수의 수상한 행적도 언급했다.

해당 논문의 내용만을 가지고 김 교수가 일본에서 개최된 국제학회서 구연 발표를 했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린 김 교수가 ‘일본서 해당 논문을 발표할 예정인데 슬라이드를 만들어달라’고 했다”며 “국제적으로 해당 논문을 가지고 본인의 업적으로 활동 해놓고 논문 조작을 지적하는 이상한 짓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이에 김웅한 교수는 “슬라이드를 받아 사건 논문 내용을 일본서 발표한 것은 맞다”며 “전체 내용 중 조금 포함된 내용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임 교수는 진실위의 무리한 논문 조작 결론 배경에 서울대병원 의사들 간 권력다툼이 있다고 봤다.

당시 서울대병원 기조실장을 맡고 해당 논문의 연구책임자인 이정렬 교수가 학교 측에 바른말을 하자 서울대 의과대학 집행부서 이 교수를 몰아내기 위해 논문 조작을 조직적으로 주도했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민사소송 판결을 토대로 김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진행했다.
 

하지만 검찰은 김 교수를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이에 임 교수는 “항고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김 교수가 제보조작 전반에 있어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는 증거를 모두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당초 민사소송서 임 교수는 손해배상액 1억을 청구했다. 이에 법원은 2000만원을 선고했는데 임 교수는 “당시 1만원만 배상액이 떨어져도 승리라고 봤다”며 “2000만원이 선고된 것은 법원도 심각한 문제라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조사에서 김 교수의 언행을 지적하기도 했다.

임 교수는 “경찰 조사서 김 교수가 법원이 2000만원 배상 판결한 것을 두고 김 교수가 ‘8000만원은 이겼다’고 말했다”며 “어떻게 법원 판결을 자기 맘대로 해석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대 진실위는 해당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부정해왔다. 임 교수는 "재발 방지를 위해 서울대 진실위 조사과정 및 내용이 모두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돼야 한다"며 "조사에 관여한 모든 위원들이 공개되고 결과에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진실위의 논문 조작 결론이 나온 이후 인사위원회에 회부됐고, 지난해 8월엔 임상교수 재임용에 탈락했다. 현재는 중앙보훈병원 흉부외과 과장으로 근무 중이다. 

문제 없다?

일련의 제보조작 파문과 관련해 김 교수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일단 형사 건 관련한 검찰 조사에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논문 조작과 관련해 “언론에 제보한 사실도 없다”며 “법원 판결과 별개로 의사의 양심상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