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돌아온 나훈아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7.17 10:36:57
  • 호수 1123호
  • 댓글 0개

11년 만에…다시 마이크 잡은 ‘가황’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대한민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 나훈아가 컴백한다. 그동안 세 차례의 이혼과 야쿠자에 의한 신체훼손설, 투병설 등 온갖 루머가 잇따르자 ‘마이크 잡기가 힘들다’며 11년간 칩거했다. 그런 그가 침묵을 깨고 신곡을 발표, 복귀의 신호탄을 쐈다. 
 

11년 동안 논란과 의문 속에 칩거 생활을 해왔던 가수 나훈아가 컴백한다. 그가 오랜 공백 끝에 발표할 대표곡은 ‘남자의 인생’이다. 나훈아의 소속사 나예소리는 나훈아가 지난 17일 정오 음원 사이트서 새 앨범 <드림 어게인>(Dream Again)을 발표한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2500여곡 취입
200여개 앨범

공연계에 따르면 나훈아는 11월3일부터 5일까지 서울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을 시작으로 24∼26일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 12월15∼17일 대구 엑스코 컨벤션홀 등 3개 지역 공연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언론과 방송활동은 일절 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앨범에는 7곡이 수록되며 온라인서도 들을 수 있다. ‘남자의 인생’은 유튜브를 통해 뮤직비디오로도 공개될 예정이다. 

소속사는 “나훈아가 11년 만에 마이크를 잡았다. 이런저런 가슴 아픈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꿈을 가슴에 차곡차곡 품고 돌아왔다”며 “나훈아는 떠날 때도 아무 말 없이 떠났듯이 돌아올 때도 그는 그냥 아무 말 없이 애타면서도 묵묵히 기다려준 음악 친구들과 혼신을 다해 준비했다”라고 덧붙였다.


나훈아는 지난 6월부터 복귀를 타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7일 서울 강남의 한 중식당서 원로 작곡가들과 식사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서 노래를 다시 시작해보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모임의 참석자들은 나씨가 1960∼1970년대 오아시스레코드 시절 함께 곡을 만들었던 이들로, 나훈아가 10년 동안 칩거에 들어가기 전까지 매년 한 번씩 지속적인 만남을 가져왔다. 

은둔 접고 컴백…드디어 신곡 발표
<드림 어게인> 전국 순회공연 기획

나훈아 콘서트는 유일하게 공짜표가 없는 공연으로 유명하다. 11년 만에 재개되는 나훈아의 콘서트는 티켓이 최하 10만원서 최고 15만∼16만원으로 책정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연계에선 티켓 평균단가 13만∼14만원일 경우 3개 도시서 펼쳐질 공연(총 9회) 수익만 수십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나훈아의 컴백으로 그의 인생사에 다시 한 번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나훈아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1947년 부산 동구 초량동서 무역상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 사이서 2남2녀 중 둘째로 태어난 나훈아는 1965년 서울로 상경, 서라벌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학창 시절의 나훈아는 노래를 좋아해 고향 뒷산서 친구들과 함께 기타를 즐겨쳤다고 하는데, 그의 지인들은 나훈아가 악기를 다루는 데 능숙하고 그 중에서도 피아노 실력이 수준급이라고 밝혔다. 1년 후 당시 19세였던 나훈아는 오아시스레코드를 통해 ‘천리길’이라는 곡으로 가요계에 공식 데뷔했다. 


자신만의 독특한 간드러진 꺾기 창법이 매력적이었던 나훈아는 1968년에 발표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크게 히트하며 인기 가수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1970년대에는 남진과 함께 라이벌 구도를 이뤘고, 대중가요를 주름잡았다. 

남진과 나훈아는 1970년대 가요계를 장악하면서 서로 경쟁을 벌여 보통 남진 아니면 나훈아가 가수왕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실제 방송사 기록을 보면 남진이 주로 1위와 동시에 가수왕상을 수상했으며 나훈아는 주로 2위를 한 것으로 집계됐다.

간드러진 꺾기
아직 살아있나

1972년에는 ‘고향역’과 ‘머나먼 고향’을 내놓으면서 당시 최고의 가수였던 선배 가수 남진과 함께 한국 가요계의 양대산맥으로 떠올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연회에 참석할 것을 초청했지만 나훈아는 자신의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사는 사람들에게만 노래를 한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전성기를 한창 누비고 있었던 나훈아는 1972년에 서울시민회관서 공연하던 중 한 남자에게 병 파편으로 피습을 당해 몇 개월동안 입원하기도 했다. 

이 같은 소식을 들은 나훈아의 팬들은 남진의 팬이 나훈아를 다치게 했다는 루머를 믿고 서로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양측 모두 사실을 부인하면서 루머는 일단락됐다. 이후 나훈아는 건강을 회복한 뒤 1973년 비밀리에 공군에 입대해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입대 직전 배우 고은아의 사촌인 이숙희와 결혼했다가 전역을 1년 앞둔 1975년에 이혼했다.

1976년 전역한 뒤 얼마되지 않아 영화계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여배우 김지미와 결혼을 발표하며 큰 화제가 됐다. 

나훈아는 김지미의 고향인 대전 신탄진동서 신혼집을 마련해 거주했다. 나훈아는 1981년에 ‘대동강 편지’ 를 발표하면서 가요계에 복귀했다.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했으며 1982년에 ‘울긴 왜 울어’를 발표해 다시금 대중들의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가요계 복귀로 인해 김지미와 사이가 나빠지며 1982년에 김지미와 이혼했다. 나훈아는 훗날 “김지미는 나를 남자로 만들어준 사람”이라 평했다. 김지미도 “진정 남편으로 믿고 의지할 남자였다”라고 평했다. 

나훈아는 김지미에게 수천만원의 돈을 건네줬는데 “여자 혼자 살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당시엔 이혼한 여자 혼자 살기 힘든 세상이긴 했지만 나훈아의 대인배적 면모가 보이는 일화다. 

한편으로 김지미와 나훈아의 결혼이 화목했던 기간은 별로 길지 않았으며 김지미는 주위에 간혹 나훈아와의 결혼이 좀 후회된다는 뉘앙스의 말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원래 둘은 평범하게 식당을 경영하며 싶었지만 나훈아가 다시 가수로 복귀하면서 둘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건물업으로 부를 축적했던 김지미가 “호텔을 다 준다고 해도 무대에 세울 수 없다”며 나훈아의 가요계 복귀를 반대했다.

이후 나훈아는 1년 만에 “아빠가 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으로 다시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나훈아의 아이를 낳은 주인공은 가수 출신 정수경이다. 

정수경은 1976년 음반 ‘여군 일등병’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데뷔했고 2년 뒤인 1978년 음반 ‘이름 모를 그 사람’을 발매한 14세 연하의 후배 여가수였다. 이들은 슬하엔 1남1녀를 두고 있다. 1984년에 조용필 다음으로 일본에 진출, 데이지쿠레코드와의 계약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1993년 나훈아는 ‘갈무리’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등 히트곡들을 내고 꾸준한 자기관리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0년대 나훈아는 간헐적인 콘서트(나훈아 빅콘서트라는 명칭으로 전국 순회 공연) 등 꾸준한 활동을 했다. 

하지만 순회 콘서트가 예정된 2007년 3월 공연 취소로 그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2007년 2월에 예정됐던 세종문화회관 콘서트를 돌연 취소하며 잠적했던 나훈아는 2008년 1월 모 스포츠지 기자가 블로그에 ‘중견가수가 가슴 큰 젊은 여배우 K와 스캔들이 나서 야쿠자에게 보복당했다’라는 글의 주인공으로 의심받으며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 소식은 여배우 K가 김혜수·김선아이며 나훈아가 야쿠자에게 폭행을 당해 신체 중요 부위가 절단됐다는 괴소문으로 번졌고, 결국 나훈아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해명에 나서야 했다.

피습 사건,
루머와 이혼

당시 그는 야쿠자로 인한 신체 중요 부위 훼손설을 해명하고자 기자회견 중 “5분을 보여주면 되겠느냐” 말과 함께 벨트를 풀고 바지를 벗으려는 행동을 보여 엄청난 화제가 됐다. 

자신과 연루된 김혜수·김선아에 대해서는 “의지 약한 성격이라면 이 두 여인은 자살까지 갔을 것이다. 여러분 펜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며 “사람들은 연예인에게 관심이 많다. 진실에 가까운 걸 말해야지 애매모호하게 글래머 배우 K라고 하니까 김혜수, 김선아 둘 중에서 차라리 이름을 댔으면 그래도 한 사람만 당혹하고 힘들고 한 사람이라도 산다”고 후배 연예인을 감싸줬다.

거침없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해명을 한 덕에 스캔들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이 기자회견 이후 잠정 은퇴했다. 

당시 그는 기자회견서 “가수는 꿈을 파는 사람이다. 꿈을 팔려면 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꿈을 잃어버렸다. 다시 꿈을 찾게 되는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며 활동 중단을 시사했다. 

지난 2011년 데뷔 45주년을 기념한 콘서트를 열자는 주변의 제안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던 중 나훈아가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120평 규모의 대지 면적에 연건평 300평에 이르는 2층 건물을 구입한 것이 알려지면서 조심스럽게 컴백을 준비하는 거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또 당시 지인의 결혼식장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컴백설에 더욱 힘이 실렸다.

“쉬면서 곡 많이 썼다
노래 다시 하고 싶다”

하지만 2011년 8월 세 번째 부인 정수경과 이혼 및 재산 분할 청구 소송이 제기되면서 컴백셜은 사그라졌다. 2013년 9월 대법원서 정수경의 소가 기각됐다. 그 이후 나훈아는 가평 자택에 칩거하는 중 결국 2016년 10월31일 법원은 이혼과 함께 12억원을 위자료로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는 5년 동안 진행한 이혼소송서 패소했다. 

나훈아는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공연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방송서 나훈아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명절 특집 프로그램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홍보와 마케팅에 집중하는 현대 가수들은 위험할 수도 있는 은둔 활동이라는 일종의 희소 가치는 그의 공연에 관객을 몰려들게 했고 그의 존재감은 전설로 상승했다. 

또한 주로 슬프면서 서정적인 본인의 자작곡들을 불렀는데 ‘갈무리’ ‘영영’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홍시’가 대표적이다. 나훈아의 자작곡 중 1987년에 발표한 ‘땡벌’ 은 발표 당시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2006년에 조인성이 <비열한 거리>서 이 곡을 불러 화제가 됐고 KBS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서 이승기가 극 중에서 어머니를 위로하는 곡으로 ‘땡벌’을 부르는 장면이 등장하며 인지도가 상승했다. 2007년 9월 21일에 방송된 KBS <뮤직뱅크>서 강진이 1위를 차지하며 ‘땡벌’은 발표된 지 20년 후에야 많은 인기를 얻었다.

파란만장 인생
이젠 꽃길만

나훈아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시대를 달리하는 끊임없는 히트곡 양산과 더불어 작곡과 작사 능력으로 싱어송라이터로 자리매김했다. 1990년대 초반 한국 가요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데뷔 이후 현재까지 약 2500여곡을 취입하고 정규 앨범 19장을 포함한 200여개의 앨범을 발표했다. 나훈아가 직접 작사하거나 작곡한 노래는 약 800여곡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