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돌아온 나훈아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7.17 10:36:57
  • 호수 11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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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만에…다시 마이크 잡은 ‘가황’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대한민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 나훈아가 컴백한다. 그동안 세 차례의 이혼과 야쿠자에 의한 신체훼손설, 투병설 등 온갖 루머가 잇따르자 ‘마이크 잡기가 힘들다’며 11년간 칩거했다. 그런 그가 침묵을 깨고 신곡을 발표, 복귀의 신호탄을 쐈다. 
 

11년 동안 논란과 의문 속에 칩거 생활을 해왔던 가수 나훈아가 컴백한다. 그가 오랜 공백 끝에 발표할 대표곡은 ‘남자의 인생’이다. 나훈아의 소속사 나예소리는 나훈아가 지난 17일 정오 음원 사이트서 새 앨범 <드림 어게인>(Dream Again)을 발표한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2500여곡 취입
200여개 앨범

공연계에 따르면 나훈아는 11월3일부터 5일까지 서울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을 시작으로 24∼26일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 12월15∼17일 대구 엑스코 컨벤션홀 등 3개 지역 공연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언론과 방송활동은 일절 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앨범에는 7곡이 수록되며 온라인서도 들을 수 있다. ‘남자의 인생’은 유튜브를 통해 뮤직비디오로도 공개될 예정이다. 

소속사는 “나훈아가 11년 만에 마이크를 잡았다. 이런저런 가슴 아픈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꿈을 가슴에 차곡차곡 품고 돌아왔다”며 “나훈아는 떠날 때도 아무 말 없이 떠났듯이 돌아올 때도 그는 그냥 아무 말 없이 애타면서도 묵묵히 기다려준 음악 친구들과 혼신을 다해 준비했다”라고 덧붙였다.


나훈아는 지난 6월부터 복귀를 타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7일 서울 강남의 한 중식당서 원로 작곡가들과 식사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서 노래를 다시 시작해보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모임의 참석자들은 나씨가 1960∼1970년대 오아시스레코드 시절 함께 곡을 만들었던 이들로, 나훈아가 10년 동안 칩거에 들어가기 전까지 매년 한 번씩 지속적인 만남을 가져왔다. 

은둔 접고 컴백…드디어 신곡 발표
<드림 어게인> 전국 순회공연 기획

나훈아 콘서트는 유일하게 공짜표가 없는 공연으로 유명하다. 11년 만에 재개되는 나훈아의 콘서트는 티켓이 최하 10만원서 최고 15만∼16만원으로 책정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연계에선 티켓 평균단가 13만∼14만원일 경우 3개 도시서 펼쳐질 공연(총 9회) 수익만 수십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나훈아의 컴백으로 그의 인생사에 다시 한 번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나훈아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1947년 부산 동구 초량동서 무역상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 사이서 2남2녀 중 둘째로 태어난 나훈아는 1965년 서울로 상경, 서라벌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학창 시절의 나훈아는 노래를 좋아해 고향 뒷산서 친구들과 함께 기타를 즐겨쳤다고 하는데, 그의 지인들은 나훈아가 악기를 다루는 데 능숙하고 그 중에서도 피아노 실력이 수준급이라고 밝혔다. 1년 후 당시 19세였던 나훈아는 오아시스레코드를 통해 ‘천리길’이라는 곡으로 가요계에 공식 데뷔했다. 


자신만의 독특한 간드러진 꺾기 창법이 매력적이었던 나훈아는 1968년에 발표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크게 히트하며 인기 가수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1970년대에는 남진과 함께 라이벌 구도를 이뤘고, 대중가요를 주름잡았다. 

남진과 나훈아는 1970년대 가요계를 장악하면서 서로 경쟁을 벌여 보통 남진 아니면 나훈아가 가수왕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실제 방송사 기록을 보면 남진이 주로 1위와 동시에 가수왕상을 수상했으며 나훈아는 주로 2위를 한 것으로 집계됐다.

간드러진 꺾기
아직 살아있나

1972년에는 ‘고향역’과 ‘머나먼 고향’을 내놓으면서 당시 최고의 가수였던 선배 가수 남진과 함께 한국 가요계의 양대산맥으로 떠올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연회에 참석할 것을 초청했지만 나훈아는 자신의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사는 사람들에게만 노래를 한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전성기를 한창 누비고 있었던 나훈아는 1972년에 서울시민회관서 공연하던 중 한 남자에게 병 파편으로 피습을 당해 몇 개월동안 입원하기도 했다. 

이 같은 소식을 들은 나훈아의 팬들은 남진의 팬이 나훈아를 다치게 했다는 루머를 믿고 서로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양측 모두 사실을 부인하면서 루머는 일단락됐다. 이후 나훈아는 건강을 회복한 뒤 1973년 비밀리에 공군에 입대해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입대 직전 배우 고은아의 사촌인 이숙희와 결혼했다가 전역을 1년 앞둔 1975년에 이혼했다.

1976년 전역한 뒤 얼마되지 않아 영화계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여배우 김지미와 결혼을 발표하며 큰 화제가 됐다. 

나훈아는 김지미의 고향인 대전 신탄진동서 신혼집을 마련해 거주했다. 나훈아는 1981년에 ‘대동강 편지’ 를 발표하면서 가요계에 복귀했다.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했으며 1982년에 ‘울긴 왜 울어’를 발표해 다시금 대중들의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가요계 복귀로 인해 김지미와 사이가 나빠지며 1982년에 김지미와 이혼했다. 나훈아는 훗날 “김지미는 나를 남자로 만들어준 사람”이라 평했다. 김지미도 “진정 남편으로 믿고 의지할 남자였다”라고 평했다. 

나훈아는 김지미에게 수천만원의 돈을 건네줬는데 “여자 혼자 살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당시엔 이혼한 여자 혼자 살기 힘든 세상이긴 했지만 나훈아의 대인배적 면모가 보이는 일화다. 

한편으로 김지미와 나훈아의 결혼이 화목했던 기간은 별로 길지 않았으며 김지미는 주위에 간혹 나훈아와의 결혼이 좀 후회된다는 뉘앙스의 말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원래 둘은 평범하게 식당을 경영하며 싶었지만 나훈아가 다시 가수로 복귀하면서 둘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건물업으로 부를 축적했던 김지미가 “호텔을 다 준다고 해도 무대에 세울 수 없다”며 나훈아의 가요계 복귀를 반대했다.

이후 나훈아는 1년 만에 “아빠가 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으로 다시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나훈아의 아이를 낳은 주인공은 가수 출신 정수경이다. 

정수경은 1976년 음반 ‘여군 일등병’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데뷔했고 2년 뒤인 1978년 음반 ‘이름 모를 그 사람’을 발매한 14세 연하의 후배 여가수였다. 이들은 슬하엔 1남1녀를 두고 있다. 1984년에 조용필 다음으로 일본에 진출, 데이지쿠레코드와의 계약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1993년 나훈아는 ‘갈무리’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등 히트곡들을 내고 꾸준한 자기관리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0년대 나훈아는 간헐적인 콘서트(나훈아 빅콘서트라는 명칭으로 전국 순회 공연) 등 꾸준한 활동을 했다. 

하지만 순회 콘서트가 예정된 2007년 3월 공연 취소로 그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2007년 2월에 예정됐던 세종문화회관 콘서트를 돌연 취소하며 잠적했던 나훈아는 2008년 1월 모 스포츠지 기자가 블로그에 ‘중견가수가 가슴 큰 젊은 여배우 K와 스캔들이 나서 야쿠자에게 보복당했다’라는 글의 주인공으로 의심받으며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 소식은 여배우 K가 김혜수·김선아이며 나훈아가 야쿠자에게 폭행을 당해 신체 중요 부위가 절단됐다는 괴소문으로 번졌고, 결국 나훈아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해명에 나서야 했다.

피습 사건,
루머와 이혼

당시 그는 야쿠자로 인한 신체 중요 부위 훼손설을 해명하고자 기자회견 중 “5분을 보여주면 되겠느냐” 말과 함께 벨트를 풀고 바지를 벗으려는 행동을 보여 엄청난 화제가 됐다. 

자신과 연루된 김혜수·김선아에 대해서는 “의지 약한 성격이라면 이 두 여인은 자살까지 갔을 것이다. 여러분 펜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며 “사람들은 연예인에게 관심이 많다. 진실에 가까운 걸 말해야지 애매모호하게 글래머 배우 K라고 하니까 김혜수, 김선아 둘 중에서 차라리 이름을 댔으면 그래도 한 사람만 당혹하고 힘들고 한 사람이라도 산다”고 후배 연예인을 감싸줬다.

거침없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해명을 한 덕에 스캔들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이 기자회견 이후 잠정 은퇴했다. 

당시 그는 기자회견서 “가수는 꿈을 파는 사람이다. 꿈을 팔려면 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꿈을 잃어버렸다. 다시 꿈을 찾게 되는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며 활동 중단을 시사했다. 

지난 2011년 데뷔 45주년을 기념한 콘서트를 열자는 주변의 제안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던 중 나훈아가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120평 규모의 대지 면적에 연건평 300평에 이르는 2층 건물을 구입한 것이 알려지면서 조심스럽게 컴백을 준비하는 거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또 당시 지인의 결혼식장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컴백설에 더욱 힘이 실렸다.

“쉬면서 곡 많이 썼다
노래 다시 하고 싶다”

하지만 2011년 8월 세 번째 부인 정수경과 이혼 및 재산 분할 청구 소송이 제기되면서 컴백셜은 사그라졌다. 2013년 9월 대법원서 정수경의 소가 기각됐다. 그 이후 나훈아는 가평 자택에 칩거하는 중 결국 2016년 10월31일 법원은 이혼과 함께 12억원을 위자료로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는 5년 동안 진행한 이혼소송서 패소했다. 

나훈아는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공연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방송서 나훈아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명절 특집 프로그램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홍보와 마케팅에 집중하는 현대 가수들은 위험할 수도 있는 은둔 활동이라는 일종의 희소 가치는 그의 공연에 관객을 몰려들게 했고 그의 존재감은 전설로 상승했다. 

또한 주로 슬프면서 서정적인 본인의 자작곡들을 불렀는데 ‘갈무리’ ‘영영’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홍시’가 대표적이다. 나훈아의 자작곡 중 1987년에 발표한 ‘땡벌’ 은 발표 당시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2006년에 조인성이 <비열한 거리>서 이 곡을 불러 화제가 됐고 KBS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서 이승기가 극 중에서 어머니를 위로하는 곡으로 ‘땡벌’을 부르는 장면이 등장하며 인지도가 상승했다. 2007년 9월 21일에 방송된 KBS <뮤직뱅크>서 강진이 1위를 차지하며 ‘땡벌’은 발표된 지 20년 후에야 많은 인기를 얻었다.

파란만장 인생
이젠 꽃길만

나훈아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시대를 달리하는 끊임없는 히트곡 양산과 더불어 작곡과 작사 능력으로 싱어송라이터로 자리매김했다. 1990년대 초반 한국 가요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데뷔 이후 현재까지 약 2500여곡을 취입하고 정규 앨범 19장을 포함한 200여개의 앨범을 발표했다. 나훈아가 직접 작사하거나 작곡한 노래는 약 800여곡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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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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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추석 연휴 전에 검찰개혁을 진행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입장에 들어갔다. 검찰개혁 초안을 발표하려던 당의 의견에,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수장 정성호 장관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정 장관의 의견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했다. 당정 간 불협화음으로 검찰개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당 지도부와 정부는 뒷수습에 나섰지만, 완전히 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계속 강조해 온 ‘검찰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공언대로 ‘추석 전 검찰개혁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의견을 연일 내놓으며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나타났다. 속도전 앞두고… 민주당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의 대원칙인 수사권·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으로 수사권·기소권의 분리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한다. 그리고 기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이관하기 위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의 기소권을 이관받아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발부 등 검찰의 고유 업무를 도맡는다. 중수청의 경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외에도 국수위 설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 경찰을 비롯해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수사 기관 전체를 통솔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검찰 조직 재편으로 수사 기능을 갖게 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중 어느 소속으로 할지 등의 쟁점 현안들도 정리돼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소속돼있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당 안팎에선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국수위의 권한이 자칫 과도해지면, 정부의 수사 통제와 외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앞서 밝힌 것처럼 행안부 산하에 이미 경찰이라는 수사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중수청까지 포함될 경우, 행안부의 수사 기능이 자칫 과도하게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이견도 걸림돌이다. 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대원칙 측면에서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상황에서 원활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초안 발표 예정이었지만 구체안 두고 특위·법무부 입장 차 지난달 25일 민주당 검찰정상화특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최종안을 내지 않았다. 민형배 특위위원장은 지난 7일 비공개 당정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속도 조절론은 없다”며 이날 회의를 최종안 확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예고했지만, 180도 달라졌다. 대신 이날 회의는 법안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위 간사인 이용우 의원은 "초안이 사실상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야말로 특위안이고, 당정대 간의 논의 과정이라든지 국민적 공론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든지 이 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서 최종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속도조절 배경에는 개혁의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입장이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정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그렇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거나 인지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분리해낸다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 또는 재수사를 할 수 있는데, (사건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과거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이런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전건 송치를 할 것인지, 전건 송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사지휘권을 줄 것인지,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정 장관은 민주당이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경찰·국가수사본부·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4개 수사기관이 모두 행안부 밑에 들어가면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했다. 또 기존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헌법상 검찰총장 임명 관련 규정들과 검사 관련 규정들도 있기 때문에 위헌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다른 의견 국수위에 대해서는 “지금 나와 있는 안에 의하면 국수위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행을 담당하게 돼있는데 최근 통계에 4만건 이상 된다”며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4만건 이상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검찰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검찰을 해체한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검찰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아니”라며 “1차 수사기관, 특히 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검찰청 폐지로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정 장관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금융 범죄 또는 조세 사건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하고 법리적 쟁점들이 많다”며 “이런 전문 수사 역량을 중수청에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회의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은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견설 진상은? 그러면서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 부실 수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당 안팎에서는 정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당 지도부는 장관께서 좀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특위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당정에서 합의됐거나 의논해서 한 건 아니”라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말씀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이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데 대해서도 “당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이런 우려가 좀 있다”면서 “(장관이) 저희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내세워 정 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김용민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개혁은 아니다”라며 “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지 출발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도부·정부 나서 진화 “당 결정대로 따라갈 것” 민주당과 정 장관의 의견이 갈리면서 ‘당정이견’설이 분출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8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지도부 인사말에서 “개혁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흔들림·불협화음 없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국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성과는 당정대 원팀 정신이 그 중심에 있다”며 “다음 주부터 우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이재명정부 국정 기조와 국정 과제의 실천을 (당이)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정 일치 기조를 강조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도 수습·진화에 나섰다. 이날 워크숍 현장에 방문한 정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이 갖고 있다. 당에서 잘 결정되는 대로 잘 논의해서 따라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당과 법무부 사이 이견에 대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합의했다. 정부와 당이 각자 검찰개혁안에 대한 여러 가지 각론에 대한 의견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수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당과 정부의 의견만 다른 게 아니라 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각각의 의견들이 다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화 과정에 이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내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다만 바라건대 내용 자체의 토론에 좀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특정인과 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하지 말고 이렇게 내용 토론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조계 의견은? 한편 법조계에선 정 장관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소 소신과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한 법조인은 “정 장관은 외골수처럼 직진하기보다 남의 편을 설득하고 내 편을 혼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면서 “강성 개혁에 집착하기보다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