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토이키노’ 박물관 손원경 대표

“토이키노는 부모와 아이 연결 ‘소통’의 장소”

서울 종로구 삼청동 박물관 거리는 익히 알려진 서울의 명소다. 최근 새로운 박물관이 속속 들어서며 그 면모가 더욱 새로워지고 있다. 현재 이 일대의 박물관은 모두가 개인 박물관으로 규모는 작지만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자랑한다. 특히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만화 영화 캐릭터 인형을 갖고 놀아 봤을 것이다. 유년시절의 ‘추억’으로 쉽게 잊혀졌을 법한 기억을 끄집어 내어 이를 고스란히 박물관에 재현한 공간이 있다. 바로 ‘토이키노’ 박물관이다. <일요시사>는 지난달 29일 삼청동에 위치한 ‘토이키노’ 박물관을 운영하는 손원경 대표를 만났다. 그의 어린 시절 꿈을 모아 놓은 ‘토이키노’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촌 일대는 예술의 거리로 유명하다. 은행잎이 가득한 거리에는 갤러리, 카페, 옷가게, 독특한 장신구 숍 등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기 저기 위치해 있는 독특한 미니 박물관들도 또 하나의 볼거리다.
지난 2006년 10월 문을 연 ‘토이키노 박물관’은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공간으로 유명하다. 토이키노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 엄마 손을 잡은 초등학생 2명이 재미있고 신기한 듯 영화 캐릭터 장난감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꿈 담은 박물관
유년시절의 꿈이 현실로

토이키노(TOYKINO)는 장난감의 TOY와 영화를 뜻하는 KINO를 합성한 이름이다. 이 재미있고 신기한 박물관을 만든 주인은 바로 손원경 대표(37)다.
“이곳 ‘토이키노’는 제 유년시절의 꿈이 현실로 이뤄진 곳이라 할 수 있어요. 어릴 때부터 하나 둘 사 모으기 시작한 영화 캐릭터 인형과 장난감이 의도하진 않았지만 저만의 취향,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놓았어요.”
토이키노에는 영화 및 만화 캐릭터를 소재로 한 각종 인형과 장난감들이 전시되어 있다. 손 대표가 중학 시절부터 20여년간 모아 온 소장품만 무려 40만점에 달한다고 한다.

“토이키노 박물관은 1, 2관으로 나눠져 전시되어 있어요. 1관에 3만~4만여 점, 2관에 2만여 점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공간의 제약 때문에 모두 전시하지 못하고 있죠. 대신 정기적으로 디스플레이 된 작품을 교체하고 있어요.”
1관에는 주로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 만화 캐릭터들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1관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스타워즈에서부터 슈퍼맨·배트맨·원더우먼 등 영화 주인공 캐릭터, 미국 프로야구(MBA)·미국 프로농구(NBA)의 스포츠 스타 캐릭터 등 다양한 테마로 방을 분류해 놓았어요. 2관에는 추억의 장난감들로 가득해요. 아톰·마징가 Z·은하철도 999 등 30~40대의 향수를 자극할 만한 만화 캐릭터들이 전시 되어 있죠.”

가족 단위의 방문객, 특히 장난감을 갖고 노는 시기의 아이들이 많이 방문하다 보니 2관에는 아예 보드게임 같은 간단한 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토이키노 박물관은 삼청동의 1,2관에 이어 헤이리에 3관까지 문을 열고 있다.
그런데 왜 이 많은 장난감을 수집했을까. 궁금증이 생겨서 손 대표에게 물었다.
“1977년도에 스타워즈가 개봉했고, 이듬해인 1978년에는 슈퍼맨이 개봉하면서 인기를 끌 때였어요. 여섯 살 때 부모님과 함께 허리우드극장에 가서 본 스타워즈가 기억에 남더군요. 또 마침 미국에 교환교수로가 계시던 아버지가 영화 속 캐릭터 장난감을 사다주시면서 자연스럽게 장난감들을 접할 수 있었고 좋아지더군요. 그때 잔뜩 기대감을 안고 아버지가 사오신 장난감을 풀었던 설렘이 지금의 제가 있도록 한 힘인 것 같아요.”
그가 영화 캐릭터 장난감을 이렇게 모을 수 있었던 것은 풍족한 집안 형편 덕분이었다. 손 대표의 할아버지가 유명한 서예가인 소전 손재형 선생(1903~1981)으로 하나 둘 골동품을 모으는 모습에 영향을 받았다고.

내 꿈 열어준 유년시절 캐릭터 조각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즐거운 ‘놀이터’


손 대표의 할아버지 소전 선생은 20세기 한국 서예의 거목으로 1945년 ‘서예’란 말을 처음 붙인 서예가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예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소전 선생은 일본으로 건너가 간곡한 설득 끝에 추사의 ‘세한도’(국보 180호)를 되찾아 온 일화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할아버지에게 모으는 취미를 전수 받은 것 같아요. 제가 어릴 적 할아버지가 돌아 가셨는데 할아버지는 고서와 고가구, 붓을 좋아하셨어요. 서너 살 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할아버지가 정성껏 벼루를 닦고 계셨던 모습이 떠올라요. 할아버지는 예술가이면서 정치에도 뜻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손 대표에게 할아버지 손재형 선생은 수집하는 것에 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지금도 손 대표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어디 가서 소전의 손자라고 하면 사람들이 한 번 더 봐주고 생각해주는 것이 할아버지의 영향인 거죠. 할아버지는 저희 가문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죠.”
손 대표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장난감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용돈만 생기면 명동, 중국 대사관 앞, 동부이촌동과 남대문을 찾아가 영화 캐릭터 장난감을 샀다. 영화를 보고, 영화관련 자료를 스크랩하면서 영화 캐릭터를 수집했다.

“집안 가구에 곰팡이가 생기니까 어머니가 옷가지를 종이 상자에 넣어 정리하는 걸 보고 저도 장난감을 분류하며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1997년부터는 인터넷으로 쉽게 영화 관련 물품을 모을 수 있게 되어 수집점수가 늘었고 결국 하고 싶었던 박물관을 만들게 된 것이죠.”
손 대표는 또 지금은 사라진 잡지를 사서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을 챙겨보거나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본 후에는 스크랩을 하고 영화감상을 적었는데 그 노트가 무려 30권. 그러다보니 영화보기, 영화음악에 자연스레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외롭고 힘든 ‘인생의 암흑기’
삶의 위로가 되어 준 장난감

그러나 손 대표에게 행복한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그는 외갓집으로 갔다.
“그 당시 제 인생은 암흑기였죠. 부모님이 이혼한 후 어머니를 따라 초등학교 때부터 외갓집에서 살았어요. 미국에 계신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는데, ‘아버지가 이러시면 제 인생이 비참해집니다’라고요. 어릴 때인데 어떻게 그런 단어를 떠올렸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 당시 영화 캐릭터 수집은 그의 상실감을 메워 주었고 위로가 됐다. 그에게 수집의 완성은 수집품을 진열할 공간을 꾸며 전시하는 것이었다.
“장난감을 하나하나 늘어놓으면 설치미술과 다를 바 없었어요. 분류하고 디스플레이하다 보니 인형 옷 하나하나도 중요한 요소라는 걸 새삼 깨달았죠. 사진을 전공한 덕에 수집품은 사진으로 한 장 한 장 기록되어 있어요.”

“장난감은 ‘시대적 유물’이자 ‘역사적 증거’를 말한다”
할아버지 평생 업적 담긴 ‘소전문화예술사업회’ 계획


토이키노를 세우기 위해 손 대표는 전 재산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진과 연극영화를 전공한 그는 사진과 광고 관련 일을 하면서 버는 돈을 모두 장난감을 사는 데 쓴다.
“학교에서 강의하고 받은 강의료나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어 번 돈을 모두 박물관 운영에 투자했어요. 개관 후에도 과연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보러 올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관객들이 입소문을 타고 찾아와주니 고맙더군요. 요즘은 경제가 어렵다 보니 관람객이 줄어서 걱정이에요.”
그래도 손 대표는 박물관을 세우고 나서 많은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박물관에 있다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가장 즐겁고 보람을 느낄 때는 가족 관객들이 왔을 때에요. 아이들이 잘 모르는 캐릭터 장난감이 나오면 아빠, 엄마는 어릴 때 보던 만화영화 이야기를 해주면서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공간이 돼죠.”
토이키노 박물관이 자연스럽게 소통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부모와 아이들이 정겹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그냥 기분이 좋아지죠. 요즘같이 부모와 아이들 사이에 대화가 단절된 것을 자연스럽게 캐릭터 장난감을 통해 풀어주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토이키노가 부모세대와 아이들 세대를 연결해주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죠.”     
팔면 안 되느냐고 끈질기게 요구하는 관객도 많다.
“그럴 때는 제가 수집을 통해 끈기와 상상력을 키웠던 것처럼 모으는 재미를 느껴 보라고 제안합니다. 적게는 몇백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대를 호가하는 장난감들도 있어요.”

“손 대표는 꿈 많은 사람”
간절한 꿈은 이루어 진다


아이들에게 장난감은 꿈이다. 우주를 날아가는 변신 로봇, 예쁜 드레스를 입은 공주 인형. 아이는 장난감을 통해 세상을 꿈꾸고 미래를 꿈꾼다. 토이키노 박물관이 바로 그런 곳이다.
“장난감은 시대적 유물 이예요. 또 역사적 증거인 셈이죠. 아이들은 장난감을 통해 세상을 보고, 미래를 꿈꿉니다. 어른에게 장난감은 추억인 셈이죠.”
손 대표는 토이키노에 이어 또 다른 꿈이 있다. 〈메가키노>라는 영화잡지를 만드는 게 꿈이다.
“영화잡지는 20대 때부터 만들고 싶었어요. 예전에는 방송사 프로듀서가 되고 싶어서, 시험도 준비했지만 마지막 관문에서 고배를 마셨어요. 이제는 직접 미디어를 기획, 운영해 보려고요. 내공이 깊어 좋은 잡지 하나를 더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재 영화 관련 잡지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추진 중에 있다. 그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꿈과 소망은 사단법인인 ‘소전문화예술사업회’를 추진하는 것이다.
“할아버지 고향인 전남 진도에 소전미술관이 있지만 너무 멀리 있어 사람들이 찾아가기 불편해요. 그래서 장난감 박물관과 더불어 할아버지가 평생을 바쳤던 서예를 위한 박물관을 서울에 세우는 게 꿈이에요. 아는 지인들과 함께 내년 초쯤 사단법인으로 ‘소전문화예술사업회’를 출범 하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손 대표는 내년에 공연뮤지컬도 계획하고 있고, 다시 다음 학기에는 대학 강의도 더 열심히 하려고 준비 중이다.
손 대표는 “결혼도 내년쯤 해야 하는데 이것저것 일을 많이 벌려 놓은 것 같아 약간은 걱정스러워요”라며 웃는다.
어릴 때부터 영화 캐릭터에 매료돼 문방구, 벼룩시장을 전전하던 한 소년이 어른이 된 지금 장난감 박물관을 세웠을 뿐 아니라 현재 영화·디자인 관련 일에 종사하고 있다.
손 대표의 ‘간절한 꿈은 현실로 이뤄진다’는 진부한 표현이 이곳에서는 유독 설득력을 갖고 마음에 와 닿는다. 그는 자신이 꿈꾸는 또 하나의 꿈과 비전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열정을 가지고걸어가는 중이다.

사진 송원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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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