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고-억울한 사람들> (51)재소자의 한탄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4.25 08:56:11
  • 호수 11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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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라고 막하는 겁니까”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신설합니다. 매주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을 예정입니다. 누구도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겁니다. 쉰한 번째 주인공은 인권을 침해당했다며 안동교도소 소장을 고소한 재소자 이은규(34)씨의 이야기입니다. (이 기사는 이씨의 가족과 고소장을 토대로 작성)

이은규씨는 안동교도소 소장을 비롯한 교정직원들 지난달 11일, 대구지방검찰청 안동지청에 고소했다. 이씨가 안동교도소 관계자들을 고소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은교씨는 지난 2014년 11월3일 보이스피싱 등 사기혐의로 구속돼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 평택구치소, 수원구치소, 안양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했다. 그러다 이씨는 지난 2월9일 안양교도소에서 안동교도소로 이입됐다.

“정신 차려라”

그런데 이입 첫날부터 이씨는 안동교도소 보안과 CRPT 직원들의 고압적인 태도에 잔뜩 겁을 먹었다. CRPT(Correctional Rapid Patrol Team)는 일명 기동순찰팀으로 교정 시설의 안전과 질서를 해하는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현장 출동해 초동진압을 한다. 평소에는 순찰활동을 수용질서 유지, 경계감호업무 지원 등을 한다.

이씨가 안동교도소에 도착하자마자 CRPT 직원들은 “여기는 서울교정청하고 틀려” “정신 똑바로 차려라” 등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사람은 누구나 낮선 곳으로 옮기면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범죄인조차 교도소라는 낯선 환경에 비관하며 자살 등 극단적 선택을 한 예가 많다. 이 때문에 법무부에선 신입수형자를 대상으로 고충상담반과 심리치료팀 등을 운영하고 있다.

반면 안동교도소는 법무부의 이 같은 정책에 역행한 채 신입 재소자 기선제압에 힘쓰고 있다고 이씨는 주장했다. 당시 CRPT 직원들은 팔각모에 군복 같은 근무복을 입었으며, 군화를 신고 있었다. 이씨는 “이들 대부분 마스크를 했으며, 고성을 지르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전두환 시절 ‘삼청교육대가 이렇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이후 CRPT 직원들은 다짜고짜 이씨의 물품을 검수했다. 이 과정엔 이씨가 수감했던 교도소에서 자비로 구입한 물품을 안동교도소 내규에 맞지 않는다며 한쪽으로 뺐다.

이후 어떠한 설명도 없이 “이건 안돼”라는 말만 하며 CRPT 직원들 중 한 명이 작성한 문서를 이씨에게 들이밀었다. 이씨는 “당시 문서를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 계속되는 고성과 공포 분위기에 정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다짜고짜 CRPT 직원은 이씨의 엄지손가락을 잡아끌어 인주를 묻힌 뒤 도장을 찍게 했다고 한다.

이씨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는 것을 강요하는 것 같아 “이게 뭐 하는 겁니까”라며 즉각 항의했다. 그러자 CRPT 직원들은 이씨를 노려보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한다. 이씨는 이 분위기에 압도돼 모든 항목에 도장을 찍었다.

이입 절차가 끝나자 멀리서 지켜보던 CRPT 팀장이 이씨를 불러 세워 놓고 “잘 지내라, 응”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이입 첫날 교정직원들의 행동이 부당하다고 느꼈다. 며칠 동안 자신이 당한 일이 수치스럽고 억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이씨는 안동교도소 재소자 중에서 자신과 같은 피해를 본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같은 달 13일 교정 측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교도소 소장·교정직원 상대로 고소
고압적 태도…수시로 인권 무시 주장

그런데 교정 측은 공개를 거부했다. 이에 이씨는 “정보공개 청구한 자료를 근거로 민원 등을 제기할까 봐 교정 측이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률에도 맞지 않은 사유 등을 들으며 공문서인 정보공개청구서에 허위기재했다”고 말했다.

정보공개청구를 요청한 뒤 CRPT 부대장이 이씨를 찾아와 “주시하고 있으니 생활 잘하라”고 말했다고도 한다.

이씨의 본격적인 불행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같은 달 24일 이씨는 공장에서 작업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같은 팀인 다른 수형자와 자리를 바꿔 대화도 나눴다. 그런데 갑자기 교정직원은 이씨에게 지정좌석 임의이탈을 이유로 규율위반적발보고서를 작성했다.

당시 이 직원은 “내용 다 알지?”라며 보고서를 보여주지도 않은 채 도장 찍을 것을 강요했다고 이씨는 주장했다. 이씨는 억울했다. 평소 공장서 수시로 팀원끼리 자리를 바꾸며 작업을 해왔으며, 옆 사람과 자리를 바꿨다고 관규 위반 처분을 받은 사례는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씨는 도장 찍길 거부했다. 그러자 이 교정 직원은 CRPT 직원 두 명을 불렀다. 이씨는 “당시 도장을 찍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것처럼 보이게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주장했다. 어쩔 수 없이 이씨는 보고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리곤 교정직원은 “세 번 걸리면 삼진아웃으로 징벌을 받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씨는 분한 마음에 교정 측에 공장 CCTV와 신입 수형자 대기실의 CCTV 녹화분에 대한 증거보전을 신청했지만, 불허 처분됐다. 이런 일이 있었던 뒤 지난달 7일 오후 2시경 CRPT직원들은 이씨의 거실 수검을 했다. 이때 베개 1개와 밥그릇 2개가 나왔다.

CRPT직원은 초과 비품 발견으로 규율위반적발보고서를 작성하며, 이씨에게 도장을 찍으라고 했다.

이씨 가족 측은 “교정 측에서 30여년 근무한 지인은 ‘초과 비품이 나왔을 경우 거둬가는 게 보통이지, 규율위반적발보고서를 작성한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통상 거실서 초과 비품이 나오는 이유는 재소자들이 전방·출소 등으로 놓고 가기 때문이다.

이씨 입장에서는 이 역시도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도장을 찍었다.


이후 며칠 뒤 또다시 교정 측은 이씨에 대한 수검을 했다. 이씨와 알고 지내는 수형자에게 친구의 전화번호를 적어줬다는 게 적발됐다. 교정 측은 관규 위반으로 규율위반적발보고서에 또 도장을 찍게 했다. 이로써 이씨는 세 건의 관규 위반으로 징벌 9일과 현재 독방(독방)에 수용됐다.

강제로 도장

억울하게 느낀 이씨는 지난달 11일부터 대구지방검찰청 안동지청으로 안동교도소장과 교정 직원을 직권남용, 직무유기, 허위문서기재 등으로 고소했다.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에 증거보전신청서도 발송했다.

지난 13일에는 법무부장관, 대구교정청장 앞으로 청원서도 보냈다. 그런데 이씨가 보낸 편지 1통을 비롯해 각 기관에 보낸 고소장과 청원서가 지난 16일 발송 불허 처분됐다. 이씨 가족 측은 “비록 죄를 범해서 수형생활을 하고 있지만, 인간으로서 권리는 지켜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안동교도소 측의 인권 탄압은 근절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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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속 기사> 교도소 측 입장은?


안동교도소 측은 재소자 이은규씨의 주장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안동교도소 측과 일문일답.

▲수감 중인 이은호씨가 안동교도소 소장을 고소했다고 하는데?
- 2017. 3. 24. 대구지검 안동지청으로부터 해당 수용자의 고소장이 접수되었다는 내용을 통보받은 사실이 있다.

▲이입 첫날 이씨에게 고압적으로 행동하는 게 있나?
- 부정 물품의 반입 및 각종 교정사고 예방을 위하여 허가되지 않거나 초과 보유한 물품을 소지·사용·수수·교환하는 등의 행위는 금지되고 있음을 수시로 교육하고 안내하고 있다.

▲이씨의 거실 검수 과정 배게 1개와 밥그릇 2개가 나왔다고 규율위반보고서를 작성했다는데?
- 해당 수용자의 거실검사결과 적발된 품목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음을 알린 후 임의로 자술서를 제출받은 사실이 있다.

▲이씨의 편지를 허락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해당 수용자의 서신은 관계 법령에 따라 일부 서신에 대해 발송을 불허한 사실이 있으나, 대부분의 서신은 정상적으로 발송했다. (*관계 법령 :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43조 제4항 및 제5항)

▲이씨는 교정직원들이 인권 탄압을 했다는데?
-안동교도소는 관계 법령에 따라 수용자의 인권을 최대한 존중하여 수용 관리하고 있다. 부당한 강제력을 행사하는 등 인권을 침해하였다는 수용자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님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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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