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흥해 토막살인 사건’. 피해자의 사체는 온몸이 토막 난 채로 이곳저곳서 발견됐다. 수사는 9년째 답보상태. 갖가지 추측들만이 난무한다. 실마리를 잡았어도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답답한 상황. 죽은 그녀는 말이 없다.
2008년 7월8일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읍 금장 2리 도로변의 갈대숲에 살구를 따러 온 황씨 부부는 살구나무 아래서 여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오른쪽 다리 하나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사체 따로 발견
황씨 부부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총 200명의 인원을 동원해 시신이 발견된 갈대숲 일대를 샅샅이 수색했다. 수색 작업 2시간 만에 경찰은 시신의 오른팔을 찾아냈고 저녁 6시경에는 왼팔과 왼쪽 다리를 찾아냈다.
그러나 머리와 몸통은 찾아내지 못했으며 시신이 발견된 때가 무더운 여름이라 부패가 심해 형체를 알아보기조차 힘들었다.
사체 부검 결과 피해자는 40∼50대 여성으로 추정됐지만 손가락 끝 마디가 모두 절단돼있어 지문 채취를 할 수 없었다. 사망자의 신원조차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데다 중요한 머리와 몸통이 발견되지 않아 얼굴 없는 여인의 죽음에 포항 일대가 크게 술렁였다.
사건 발생 2주 후 그 마을의 꽃길 작업반장이었던 소모씨가 작업 도중 시신의 머리와 몸통을 발견했다. 최초 사지가 발견된 갈대숲에서 약 1.2km 떨어진 음료 창고 부근에서였다. 그러나 역시 사체의 부패 상태가 매우 심각해 얼굴을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고 심하게 훼손된 탓에 사인을 판단할 수도 없었다.
경찰은 훼손된 시신 왼손에서 어렵게 확보한 지문을 통해 피해자의 신원을 밝혀냈는데 피해자는 포항에 거주하는 여성 차진숙(49·가명)씨로 밝혀졌다. 그녀는 발견되기 보름 전인 6월24일에 남편에 의해 실종신고 된 상태였다.
2015년 5월에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서도 이 사건을 다뤘다. 방송에 따르면 피해자 차씨는 사건이 일어나기 몇 달 전부터 심리적으로 매우 위태로워 보였다고 한다. 실종되기 직전 차씨는 늘 술에 취해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웃 주민들은 “마치 모든 걸 포기한 사람마냥 늘 술에 취해 있었다”고 증언했다. 차씨에게는 추문도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과거에 남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이웃들 사이에서는 차씨에 대한 평판이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다.
수사가 난관에 봉착한 이유는 범인을 찾아낼 만한 단서가 될 것들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범인은 피해자의 목을 손으로 짓눌러 죽인 후 사체를 훼손한 것으로 판단되는데 사체의 부패 및 훼손 상태가 매우 심해 범인의 지문을 채취해낼 수가 없었고 사체를 포장한 비닐서도 머리와 몸통이 들어있던 포대와 청테이프서도 지문이나 DNA 등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심각한 부패로 신원확인 어려워
전문가들 “범인은 가까운 사람”
피해자의 휴대전화가 거주지서 반경 1.5km 지역서 정지된 것으로 보아 혹 아파트 부근에서 납치된 후 살해된 게 아닐까 했지만 사건 당시 그 지역에 CCTV는 설치되지 않았다. 경찰은 실종 후 사체 유기장소까지의 모든 길에 있는 CCTV를 다 확인해 봤지만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그런 데다 더 안타까운 점은 2008년 당시 포항지역에 유달리 비가 많이 내렸는데 그 탓에 많은 증거가 씻겨 내려가 유실되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사체가 잔혹하게 훼손된 점을 들어 유영철이나 강호순 같은 사이코패스가 저지른 소행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의견은 달랐다.
범죄 심리전문가로 활동했던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이코패스들의 가장 큰 특징은 기본적으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번 사건의 범인은 그렇지 않다”며 범인이 사이코패스라는 주장을 부정했다.
즉 사이코패스들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므로 그만큼 대담하고 시간을 마음대로 활용하고 소유하는데 이번 사건의 범인은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 시체를 인적이 뜸한 곳까지 찾아가서 얼른 던져 유기한 것으로 보이므로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소행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범인이 피해자와 가까운 사이일 것이라는 공통적인 의견을 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사건 전후 남편의 행적이 여러모로 수상하다는 점을 밝혀냈다. 남편 정씨는 차씨가 살해됐던 시점에 친구에게 “제주도에 간 부인을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차씨는 제주도에 가지도 않았다. 또 정작 제주도에 있는 처가에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차씨 오빠의 증언에 따르면 정씨가 장모에게 전화해서 “아내가 지금 집에 들어오지 않으니 포항에 좀 올라와 달라”고 했다. 친구에게는 아내가 제주도에 간다고 해서 안 돌아오니 제주도에 간 기록을 확인해 달라고 하고 장모에게는 아내가 집에 돌아오지 않으니 포항으로 올라와 달라는 상반된 부탁을 한 것이다.
남편의 수상한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씨는 차씨가 실종되고 시신으로 발견된 그 사이에 난데없이 세면대 교체작업을 의뢰했다. 전문가들은 남편이 사체를 훼손한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이러한 행동을 했을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 문제의 세면대를 찾으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던 상황. 하지만 안타깝게도 설비업자가 그 문제의 세면대를 폐기 처분해버렸다.
그 밖에도 정씨가 차씨를 여러 차례 구타한 적이 있었다는 이웃들의 증언과 지인들의 증언과 인근 병원 관계자의 증언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정씨 본인도 아내를 구타한 사실을 시인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죽은 아내가 술 취해서 인사불성이 되는 일이 잦았다는 둥, 가출을 밥 먹듯이 했다는 둥, 남자관계가 헤프다는 둥 죽은 아내의 명예를 더럽힐 만한 이야기들까지 아무렇지 않게 쏟아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심증에 불과하다. 남편이 범인이라는 심증은 농후하나 그 사실을 입증할 물증이 없어 확정할 수가 없다. 차후 물증이 발견되지 않는 한 섣부른 추리는 금물이다. 남편의 행적이 수상쩍은 건 사실이지만 의외로 이 사람이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린 것일 수도 있다.
사건 발생 후 9년이 지났지만 뚜렷한 증거가 나오지 않아 수사는 여전히 답보상태에 있다. 2015년 9월에 경북지방경찰청은 미제사건 수사 전담팀을 발족해 이 사건을 원점서 재수사하고 있다. 주변 인물 동향 등을 관찰하며 모두 8권 2400쪽에 이르는 방대한 사건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꼼꼼하게 들여다보며 당시에 놓친 것은 없는지 분석하고 있다.
수상한 남편
주변 탐문도 다시 하고 날로 진화하는 감식 및 디지털 증거분석 기법 등을 활용, 휴대전화·DNA 분석 등도 다시 할 계획이다. 미제사건수사팀 수사관 최명호 경위는 “범인이 증거를 인멸했겠지만 증거 인멸 자체가 증거로 남게 된다. 당시 발견하지 못한 증거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서 반드시 범인을 잡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