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신문고-억울한 사람들> (39)의료보험 지적한 이수기씨

“무식하면 당해야 합니까”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신설합니다. 매주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을 예정입니다. 어느 누구도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겁니다. 서른아홉 번째 주인공은 아무것도 몰라 건국대 병원에서 비급여 수술을 받은 이수기(71)씨의 이야기입니다.

“환자가 지식이 있으면 그렇게 말하지만 무지한 환자는 당해야 합니까?”

이수기씨는 지난 4월1일 건국대학교 병원서 조직검사 후 같은 달 25일, 산정특례자로 등록됐다. 산정특례자란 본인 부담금이 높은 암, 중증 질환자, 희귀난치성 질환자의 본인 부담률을 경감해주는 제도다. 중증 질환자의 경우 외래 또는 입원진료 시 요양급여 총액의 5%, 희귀난치성 질환자의 경우 10%만 부담하면 된다.

‘갑’ 대학병원

이씨가 산정특례자로 신청한 이유는 습진 수술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씨는 “산정특례자는 본인 부담금이 공제된다고 들었다”며 “그래서 25만원을 주고 조직검사를 해 선정특례자로 등록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 5월25일 건국대학교 병원 성형외과서 습진수술을 했다. 그후 이틀 뒤인 27일 퇴원했다.

그러나 이씨는 퇴원 계산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 총 수술비로 209만원이 나왔으며, 이씨의 본인부담액이 68만원이나 나왔기 때문이다. 이씨는 산정특례자 중증질환자로 본인 부담금 3%인 6만원 정도 부담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씨는 “당시 계산서를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며 “산정특례자로 본인 부담금이 별로 안 나올 줄 알았는데 거의 30%가까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씨의 본인부담금이 이토록 가중된 이유는 뭘까. 바로 이씨가 받은 수술이 비급여이기 때문이다. 비급여란 의료 치료비에서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치료로, 환자가 전액 비용을 부담하는 치료비를 말한다. 이에 대해 이씨는 건국대학교 병원 측에 항의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씨는 치료 비용이 부당하다며 5월31일 국민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에 민원을 넣었다. 지난 7월12일 국민건강보험공단로부터 “건국대학교 병원이 병원비를 타당하게 청구했다”는 취지의 답변이 돌아왔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비급여와 급여 치료수술은 담당의사의 권한”이라며 “의사가 결정한 것에 대해 우리가 제재를 가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씨는 이 같은 답변에 대해 “담당 의사는 내게 비급여 수술인지 급여 수술인지 알리지도 않았으며, 당연히 난 급여 수술을 원했다”며 “나 같은 노인네가 뭘 안다고 급여 치료 비급여 치료 물어가면서 수술 받느냐”고 말했다. 이어 “우리같은 무지한 환자는 당해야만 하느냐”고 성토했다.

병원 측 비급여 진료 미고지
환자들 ‘병원비 폭탄’ 분통

이렇게 이씨처럼 비급여 진료로 ‘병원비 폭탄’을 맞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병원의 비급여 진료 미고지는 의료업계서도 많은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서울 소재 병원 5곳 중 2곳은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 진료비를 환자에게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지난 6월8일 서울시청 시민청서 열린 제1회 환자권리포럼에서 이 같은 내용의 ‘서울 소재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비급여 진료비 게시 현황 및 개선 방안’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11월 사이 서울 소재 상급 종합병원 14곳, 종합병원 42곳, 병원 429곳 등 총 485곳을 조사한 결과, 병원 홈페이지를 통해 정부의 지침대로 비급여 진료 비용을 제대로 안내하고 있는 곳은 59%인 286곳으로 나타났다. 41%는 정보 고지가 미흡했다.

초음파 검사료, 자기공명영상진단(MRI) 요금, 선택 진료비 등 비급여 항목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 부담이 크고, 병원이 가격을 임의로 정할 수 있어 병원마다 가격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환자가 자신의 경제적 수준에 맞는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진료비에 대한 접근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유 교수는 “정부가 고지하라고 한 항목 중 몇 개를 빠뜨리거나, 안내 배너를 누르면 고시 항목이 떠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 등 미흡한 부분이 많이 발견됐다”며 “서울보다 지방은 더 심각한 상황일 것으로 예측돼 현장서 어떤 식으로 운영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모니터링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로 보건복지부는 의료기관 비급여 고지 의무화를 법제화한 법안이 입법예고했다. 개정령안에 따르면, 비급여 진료비용 고지 의무화를 병원급으로 국한했다.

본인부담금 줄이려 했는데
계산서 받아보니 30% 부담

비급여 항목은 건강보험법 요양급여 기준에 관한 규칙과 건강보험 행위 급여, 비급여 목록표 및 급여 상대가치저수 고시 비급여 목록, 치료재료 급여 및 비급여 목록, 급여 상한금액표 고시 비급여 목록, 약제 급여 목록 및 급여 상한금액표 고시 약제 이외 비급여 약제 등이다.
 

또한 건강보험 행위 급여 목록 항목 중 요양급여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 고시 비급여 항목, 의료법 진료기록부 사본과 진단서 등 제증명수수료, 선택진료에 관한 규칙에 따른 추가비용 징수 선택진료 항목 등도 고시 의무화 대상이다.

비급여 진료비 현황 조사와 분석 및 결과공개를 위해 전문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는 조항도 신설했다.

전문기관은 비급여 진료비 공개를 위한 인터넷 홈페이지 구축 및 운영, 조사와 분석 및 결과 공개 연구교육 및 홍보, 그 밖에 비급여 진료비 조사 분석 및 결과 공개에 복지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개정안은 또한 사무장병원 개설 차단을 위한 의료법인 개설 허가 요건을 강화했다.

의사 따라 결정

의료법인 및 비영리법인에서 의료기관을 개설하고자 할 때는 의료기관 소재지 및 목적사업 등을 기재해 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서류를 첨부해 주무관청에 제출해야 한다. 주무관청은 개설 의료기관 소재 시도지사 또는 시장과 군수, 구청장에게 협의를 요청해야 하며, 협의 요청을 받으면 의료기관 개설 타당성 의견을 회신해야 한다.


이밖에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운영과 간호인력 취업교육센터 운영, 감염병 예방을 위한 정보제공 등을 새롭게 마련했다. 복지부는 지난 5월15일까지 의견수렴을 거쳐 9월 30일 개정 법안 시행에 만전을 기한다는 방침이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의료행위 관리체계 개편 

비급여 진료비 증가 등으로 인한 보장률 저하를 개선하기 위해 모든 의료행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분석하고 관리하는 기전이 마련될 전망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달 25일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표준화 등 효율적인 진료비용 운영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를 시행하기로 하고 연구자 공모에 나섰다.

이번 연구는 의료현장에서 시행되는 의료행위 관련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해 분석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으로, 수집된 자료를 토대로 의료행위를 통합 운영,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공공의료기관 47개소를 대상으로 기관별, 종별, 질병-수술명별 급여-비급여 항목의 현황과 진료비도 분석한다. 진료비용 분석은 단가부터 빈도-횟수 등에 대한 통계값을 내는 것인데 동시에 의료행위 진료비용 등을 표준화 하는 작업도 한다.

심평원은 이번 연구를 통해 만들어지면 비급여를 포함한 모든 의료행위의 분류, 행위정의(코드) 개발, 변경(삭제) 등 지속적인 관리체계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진료비용 공개대상 확대 및 시스템 고도화 등에 활용해 의료소비자의 알권리 및 의료선택권 강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번 연구는 계약체결일로부터 7개월간 진행되며 총 9931만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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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