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막말’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

‘보장된 삶’ 버리고 택한‘투쟁하는 삶’?


“이명박정부를 소탕해야 하지 않겠나.” “국민을 실망시키는 정권을 확 죽여 버려야 하지 않겠나.” 다름아닌 민주당 천정배 의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제1야당의 최고위원이 입에 올린 말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이처럼 도를 넘은 ‘막말’에 여당은 가시 돋친 말들을 쏟아내며 천 의원과의 공방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세인들의 시선은 온통 사건의 주역인 천 의원에 쏠렸다.

군사독재정권의 판·검사 임명장 거부…변호사 선택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정치권 러브콜 쇄도

전남 신안의 자은도란 작은 섬에서 태어난 민주당 천정배 의원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참고서 하나 구하기 어렵던 외지, 전라도 목포에서 혼자 힘으로 열심히 공부한 끝에 서울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한 데 이어 졸업과 동시에 사법시험도 합격 했다. 대학시절에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뭔가를 바꾸어 보겠다는 생각을 품기도 했지만 남들 앞에 나서기엔 숫기가 부족했고 수줍음도 많은 청년이었다.

5·18 광주항쟁
인권에 관심

그런 천 의원을 바꿔놓은 사건이 바로 5·18 광주항쟁이었다. 당시 군복무 중이던 천정배가 받은 충격과 분노는 상상을 초월했다. 또 다시 무고한 시민을 향해 자행된 그 같은 악행이 벌어진다면 그 땐 스스로 시민군이 되어 총을 들겠다는 마음을 먹을 정도였다.

이 마음속 분노는 평범하게 살아가던 천 의원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반독재 민주화와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것.
천 의원은 판·검사라는 보장된 미래가 아닌 변호사를 선택했다. 군사쿠데타와 양민학살을 통해 부당하게 권좌에 오른 군사독재정권의 임명장을 받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천 의원은 이른바 ‘잘 나가는’ 국제비즈니스 변호사였다. 국내 최대 로펌에서 4년 간 외환·무역·조세 등의 분야를 두루 거치며 국제변호사로서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의 폭압정치 아래 감옥으로 끌려가는 학생, 노동자, 재야운동가들을 보며 그의 마음은 바뀌게 된다.

결국, 힘들게 쌓아온 국제변호사로서의 보장된 미래를 과감히 떨쳐버린 그는 1985년 10월, <남대문합동법률사무소>를 열었고 본격적인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천 의원은 1988년 5월28일 창립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창립멤버로 상임간사, 국제인권위원장 등의 요직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폈다. 그러다보니 언제부턴가 천 의원의 이름 앞엔 인권변호사 꼬리표가 따라 붙었다.

정치권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천 의원의 진가를 일찍이 알아봤다. 천 의원에게는 러브콜이 쏟아졌다. 실제로 1988년에는 출마와 동시에 당선이 보장되는 고향 신안의 지역구까지 제안 받는 등 천 의원을 향한 정치권의 구애는 뜨거웠다. 하지만 천 의원은 이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자신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보다 6월항쟁 이후 미진한 한국사회의 인권을 증진하기 위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천 의원이 정치권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93년, 김근태 의장이 이끌던 재야단체 <통일시대 민주주의 국민회의>에 법조계 일원으로 참가하면서다.

본격적인 변화의 징후가 나타난 건 지난 1995년이었다. 당시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민회의 창당을 추진하던 시기, 그의 측근으로부터 정식 정치권 영입 제안을 받게 된 것. 그리고 그의 고민이 시작됐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천 의원은 ‘반세기가 넘도록 우리 사회에 갖가지 병폐를 심어놓은 보수세력의 집권을 막는 데 힘을 보태겠다’는 일념 하에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6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천 의원은 199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민회의 정책위원회 부의장이란 중책을 맡아 대선공약 개발에 온 힘을 쏟아 부었다. 그야말로 입과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녔다. 그 결과,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며 건국 이래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천 의원은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발굴,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천 의원은 2001년 7월 현역의원 최초로 노무현 후보의 지지선언을 했다. 언론은 시기상조론과 더불어 찻잔 속의 태풍으로 폄하했다. 당시 민주당 주류인 이인제 대세론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상황이었던 게 그 이유였다. 때문에 노무현이 이인제를 누르고 후보가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인제 대세론의 기저에는 대선에 패배하더라도 호남과 충청표를 묶으면 국회의원은 할 수 있으리라는 정치공학적 계산이 깔려있었다. 또한 대세를 벗어난 행동으로 정치적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두려움도 상당부분 차지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천 의원의 결단에 지인들의 만류가 이어졌다. 천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도 안산시는 호남과 충청 출신 유권자를 합하면 60%를 넘었고, 천 의원의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대선공약 개발

하지만 천 의원은 단 한 장의 필승카드가 노무현이라고 단언했다. 노무현 후보가 한국 사회의 개혁을 이끌 적임자라는 명분론과, 호남과 영남의 일부 그리고 젊은 개혁층의 표를 확실하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현실론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천 의원의 예측은 적중했다. 광주 경선의 승리를 발판으로 이인제 대세론을 뒤집으며 노무현이 민주당의 공식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것. 그러나, 노무현 앞에는 월드컵 바람을 타고 정몽준이란 새로운 태풍이 등장했다. 철옹성 같은 기득권세력을 대변하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가 실패한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정몽준과의 후보단일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노무현 후보 선대위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일부는 눈물까지 흘리며 후보 단일화를 반대하고 나섰다. 시선은 또 다시 천 의원에게로 쏠렸다.

모든 의원들은 천 의원이 후보 단일화를 반대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는 후보 단일화를 찬성했고 적극 나서서 추진했다. 그 때 계속 상승했던 정몽준 후보의 지지율이 하향국면에 접어들고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다시 오르는 추세라서 노 후보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결국 천 의원의 선택은 주효했고 집권에 성공했다. 그의 승부사적 기질이 민주개혁세력이 재집권하는 데 큰 몫을 한 것이다.

그런 천 의원에게 2003년 11월11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 중 하나다. 모진 산고 끝에 열린우리당이 태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정치개혁과 정당개혁을 위해 최초로 지구당위원장을 내던졌던 천 의원은 신당 창당 선언과 당의장 직선제 도입, 국민참여정치 실천 등 새로운 정치를 위한 수많은 어려움과 맞닥뜨려야 했다. 2002년 12월, 대선 직후부터 시작된 정치개혁 논의가 가시적 성과를 맺기까지 그야말로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천 의원은 민주당 안팎의 모든 개혁세력을 끌어안는 정치개혁을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민주당은 기존 정당의 틀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른바, 두터운 기득권의 벽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천 의원은 기존의 낡은 정치행태로는 새 정치를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비로소 신당창당의 불가피함을 깨닫게 된다.

그는 신당의 밑그림으로 제도개혁과 인물의 교체를 상정했다. 당헌, 당규에 국민참여를 통한 상향식 의사 결정, 대선 후보와 당의장의 직접 선거 등의 콘텐츠들을 채워 나갔다. 또한 원내대표제를 도입하고 의원총회를 최종 의사결정기구로 만드는 등 원내 정책정당화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열린우리당은 우리 정치의 오랜 폐단이었던 돈정치, 보스정치, 지역주의 정치의 타파를 위해 탄생한 최초의 정당이었고, 천 의원 개인으로선 정치생명을 건 또 한 번의 모험이었다.

그리고 지난 2004년 4·15 총선, 열린우리당이 국회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하며 역사상 최초로 개혁세력이 의회권력을 장악했다. 민생입법과 개혁입법을 처리할 최적의 기회를 맞게 된 것이다. 천 의원 역시 선거에 출마해 지역구를 누비며 국민이 바라는 정치개혁을 약속했고, 결국 승리를 거머쥐게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발굴, 참여정부 탄생시킨 장본인
모진 산고 끝에 열린우리당 창당 우여곡절 많아

이후 3선을 한 천 의원은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이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에 도전했다. 경쟁자는 5선의 전략가이자 현재 대선주자로 뛰고 있는 이해찬 의원이었다. 막강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치밀한 전략까지 마련한 이 의원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당내 중진들은 물론 재야파까지도 상대편에 줄을 섰다. 천 의원을 지지할 것이라 예상됐던 몇몇 측근까지 등을 돌렸다. 여기에 ‘청와대가 관리형 원내대표로 이 의원을 민다’는 소문까지 퍼지는 등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당 쇄신운동, 노무현 최초 지지, 열린우리당 창당 등 정치적 고비마다 한발 앞서 결단을 내리고 실천해 온 천 의원의 진정성은 마침내 초선들의 지지를 얻기 시작했고, 결국 국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첫 집권여당의 원내사령탑에 올랐다.

원내대표에 오른 천 의원의 첫 마디는 “정기국회 100일 동안 국회 반경 1km를 벗어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초기엔 아예 국회 안에서 주거를 해결했지만, 그로 인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직원들의 애교 섞인 원성(?)에 밀려 국회 근처 오피스텔로 거처를 옮겼다. 매일 아침 7시면 원내대표단 회의를 열었고, 수십 차례의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그 결과, 물리력을 동원한 한나라당의 끈질긴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 개혁입법 중, 과거사법과 언론개혁법을 통과시키는 성과를 일궈냈다. 또한 기금관리기본법, 민간투자법,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등 경제활성화를 위한 3대입법을 포함해 100여개의 민생법안을 처리했다.

막말 파문 난관
돌파할 해법 주목

이후 법무부장관 등을 지낸 천 의원은 국회 미디어법 강행 처리에 반발해 의원직을 사퇴했다가 올해 초 국회에 다시 복귀했다. 이 가운데 최근 막말 파문이 불거져나오면서 세인들의 싸늘한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다. 과연 천 의원은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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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1위 하이브, 수사 리스크 타개책 있나?

K-POP 1위 하이브, 수사 리스크 타개책 있나?

[일요시사 취재1팀 ] 장지선 기자 =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가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업계에서는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내부는 엉망진창이라는 풍문이 돌고 있다. 레이블 간의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 번졌고 주력 IP는 과거와 비교해 힘을 못 쓰는 모양새다. 연예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수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하려는 걸까? 2024년 5월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계열사 자산 총액과 자본 총액을 더한 자산이 5조원을 넘긴 곳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 2024년 3월 공개한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하이브 자산 총계는 5조원을 넘었다. 당시 기준으로 재계 순위 85위에 올랐다. 빛 좋은 개살구?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상 기업의 의무가 늘어난다. 엄격한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상징성도 얻는다. 실제 하이브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최초로 대기업집단에 지정됐다. 국가 차원에서 하이브가 ‘업계 1위’로 인정받은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K팝의 세계화로 앨범, 공연, 콘텐츠 등이 주요 수익원인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급격히 성장한 것이 반영됐다”고 지정 배경을 밝혔다. 하이브의 대기업집단 지정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의 갈등이 한창 불거질 무렵에 이뤄졌다. 앞서 2024년 4월 하이브는 그룹 뉴진스 등이 소속된 레이블 어도어를 이끌고 있던 민 전 대표가 경영권을 탈취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감사를 진행했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 이른바 ‘민-하 대전’의 시작이었다. 이후 뉴진스, 다른 레이블까지 싸움에 뛰어들었다. 뉴진스는 자신들의 프로듀서는 민 전 대표라고 주장하면서 계약 해지를 요구했고 다른 레이블은 민 전 대표가 제기한 표절 의혹 등에 반발해 소를 제기했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계약 문제도 송사로 번졌다. 그 사이 뉴진스는 쪼개졌고 멤버 1명은 계약 해지 후 피소됐다. 내부 문제 외에도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카카오와의 갈등도 현재 진행형이다. 카카오와 하이브는 ‘아이돌 명가’로 불리는 SM을 인수하기 위해 엄청난 출혈 경쟁을 벌였다. 인수전이 과열되면서 카카오가 주가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김범수 의장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구속됐다가 보석 석방되기도 했다. 1900억원대 부당이득 혐의 경찰 영장 청구, 검찰 반려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두문불출 상태였다. 미국에 머물다가 인터넷 방송 BJ ‘과즙세연(본명 인세연)’과 거리를 걷는 사진이 찍혀 입길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행보를 알기 어려웠다. 방 의장이 프로듀싱을 도맡아 온 방탄소년단(BTS)도 ‘군백기(군대+공백기)’ 상태였다. 하지만 BTS의 광화문 공연 이후 방 의장에 대한 언급이 늘었다. BTS는 멤버 전원이 군대에 다녀온 뒤 ‘완전체’ 첫 행보로 광화문 공연을 선택했다. 정부와 서울시가 하이브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성사된 공연은 각종 논란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하이브에 특혜를 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 시점도 이때다. 지난달 21일 광화문 일대는 경찰 등에서 동원된 경비 인원으로 삼엄했다. 광화문 인근을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문이 이뤄졌고 그 수위는 살벌했다. 공연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들도 검문 대상으로 지목됐고 결혼식 등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사람도 어김없었다. 정부와 전폭적인 지원에도 BTS 공연을 위해 광화문에 모인 인파는 예상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앞서 26만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공연 직후 경찰은 4만명으로 추산했고 하이브는 10만여명으로 발표했다. 어떤 기준을 갖다 대도 예상치보다 적은 인원이 모이면서 공연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와 모두의 광장인 광화문을 사기업이 특정 시간대에 독점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회사 뒤에 숨어 있나 실제 BTS의 광화문 공연은 ‘관급 행사’를 방불케 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연 전 국무총리가 하이브를 방문했고 서울시는 공연 당일 경비를 위한 회의를 여러 번 진행했다. 물 샐 틈 하나 없는 경비 체제를 구축한다는 명분으로 안전 관리에만 경찰 6700여명 등 모두 1만5000명에 이르는 인력이 동원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가세했다. 이 대통령은 공연 전에는 안전 관리를 당부하는 목소리를 냈고 공연 이후에도 호평을 남겼다. 이 대통령은 공연 이후인 지난달 2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번 공연은 광화문 홍보를 넘어 대한민국 홍보에 결정적이었다”며 “기획을 잘 해서 잘 진행했다”고 평했다. 대통령까지 언급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은 공교롭게도 방 의장에 대한 비판으로 튀었다. 방의장이 현재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점, 그 내용이 주식과 관련된 것이라 정부 정책에 반한다는 점 등이 화두가 됐다. 이 대통령은 ‘주가조작은 패가망신’이라면서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방 의장은 하이브 IPO(기업 공개) 이전인 2019년 기존 투자자들에게 상장 계획이 지연될 것처럼 설명하는 등 기망행위를 통해 주식을 매수하고 이후 자신과 관련된 사모펀드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에 지분을 넘기는 방식으로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이 추산한 부당이득 액수는 19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7월 이 대통령의 ‘주가조작은 패가망신’ 경고 이후 주식시장을 교란한 혐의를 받는 인사들에 대한 금융 당국의 제재가 강해졌다. 당시 지목당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방 의장이었다.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해 7월16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금지 위반 혐의로 방 의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경찰도 같은 혐의로 방 의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미국 압박 경찰 발끈? 검․경의 중복 수사 우려까지 불거졌던 사안은 경찰이 내사에 착수한 2024년 말 이후 1년 반이 지나도록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했다. 경찰은 지난해 9월 방 의장을 처음 소환한 이후 같은 해 11월까지 총 5차례 조사했다. 이후 5개월간 추가 소환이나 신병 확보가 진행되지 않으면서 ‘늑장 수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 21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방 의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구속영장 청구 하루 전인 지난 20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방 의장 수사는 거의 마무리됐다”며 “법리를 검토 중이고 머지않은 시간 내에 종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고 다음 날 방 의장에 대한 신병 확보에 나선 것이다. 방 의장 측은 즉각 유감을 표명했다. 그의 변호인단은 “장기간 성실히 수사에 협조했음에도 구속영장이 신청된 것은 유감”이라며 “향후 법적 절차에도 충실히 임해 최선을 다해 소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주한미국대사관의 압박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최근 방 의장의 미국 방문과 관련해 출국 협조를 요청하는 서한을 경찰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한에는 오는 7월4일 예정된 미국 독립기념일 250주년 행사 참석과 BTS의 월드투어 지원 필요성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방 의장은 출국금지 상태다. BTS 광화문 공연부터 특혜 의혹 솔솔 나와 주한미국대사관의 행보에 경찰 내부는 격앙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BTS 콘서트나 독립 250주년 기념행사 등을 고리로 미국 측을 움직여 수사 편의를 우회 압박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이번 사건의 공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지난해 미국으로 출국한 뒤 귀국하지 않는 상황이라 방 의장이 입을 맞추거나 도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고, 경찰의 신병 확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하이브는 국민 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주한미국대사관의 서한 발송이 당혹스럽다는 분위기다. 하이브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행사 참석을 요청받은 적도 없고 출국금지를 해제해 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다”고 전했다. 구속 갈림길에 서 있던 방 의장은 검찰의 구속영장 반려로 한숨 돌리게 됐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 24일 방 의장에게 신청된 구속영장을 돌려보냈다. 검찰은 “현 단계에서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 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보완수사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일단 구속 위기는 피했지만 방 의장의 사법 리스크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하이브의 최대 변수가 되는 모양새다. 하이브는 핵심 IP인 BTS 컴백으로 최대한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 상황에서 광화문 공연이 한 차례 논란이 된 데 이어 오너 리스크까지 덮쳤다. 무엇보다 방 의장이 하이브에 끼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만큼 향후 상황에 따라 발생할 예측 불가능한 수준의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너 리스크 K-팝도 영향 연예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방 의장의 사법 리스크가 하이브를 넘어 K-팝 업계에 미칠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우리나라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K-팝의 이미지가 업계 1위 수장의 오너 리스크로 얼룩질 수 있다는 걱정이다. 방 의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