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막말’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

‘보장된 삶’ 버리고 택한‘투쟁하는 삶’?


“이명박정부를 소탕해야 하지 않겠나.” “국민을 실망시키는 정권을 확 죽여 버려야 하지 않겠나.” 다름아닌 민주당 천정배 의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제1야당의 최고위원이 입에 올린 말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이처럼 도를 넘은 ‘막말’에 여당은 가시 돋친 말들을 쏟아내며 천 의원과의 공방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세인들의 시선은 온통 사건의 주역인 천 의원에 쏠렸다.

군사독재정권의 판·검사 임명장 거부…변호사 선택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정치권 러브콜 쇄도

전남 신안의 자은도란 작은 섬에서 태어난 민주당 천정배 의원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참고서 하나 구하기 어렵던 외지, 전라도 목포에서 혼자 힘으로 열심히 공부한 끝에 서울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한 데 이어 졸업과 동시에 사법시험도 합격 했다. 대학시절에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뭔가를 바꾸어 보겠다는 생각을 품기도 했지만 남들 앞에 나서기엔 숫기가 부족했고 수줍음도 많은 청년이었다.

5·18 광주항쟁
인권에 관심

그런 천 의원을 바꿔놓은 사건이 바로 5·18 광주항쟁이었다. 당시 군복무 중이던 천정배가 받은 충격과 분노는 상상을 초월했다. 또 다시 무고한 시민을 향해 자행된 그 같은 악행이 벌어진다면 그 땐 스스로 시민군이 되어 총을 들겠다는 마음을 먹을 정도였다.

이 마음속 분노는 평범하게 살아가던 천 의원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반독재 민주화와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것.
천 의원은 판·검사라는 보장된 미래가 아닌 변호사를 선택했다. 군사쿠데타와 양민학살을 통해 부당하게 권좌에 오른 군사독재정권의 임명장을 받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천 의원은 이른바 ‘잘 나가는’ 국제비즈니스 변호사였다. 국내 최대 로펌에서 4년 간 외환·무역·조세 등의 분야를 두루 거치며 국제변호사로서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의 폭압정치 아래 감옥으로 끌려가는 학생, 노동자, 재야운동가들을 보며 그의 마음은 바뀌게 된다.

결국, 힘들게 쌓아온 국제변호사로서의 보장된 미래를 과감히 떨쳐버린 그는 1985년 10월, <남대문합동법률사무소>를 열었고 본격적인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천 의원은 1988년 5월28일 창립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창립멤버로 상임간사, 국제인권위원장 등의 요직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폈다. 그러다보니 언제부턴가 천 의원의 이름 앞엔 인권변호사 꼬리표가 따라 붙었다.

정치권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천 의원의 진가를 일찍이 알아봤다. 천 의원에게는 러브콜이 쏟아졌다. 실제로 1988년에는 출마와 동시에 당선이 보장되는 고향 신안의 지역구까지 제안 받는 등 천 의원을 향한 정치권의 구애는 뜨거웠다. 하지만 천 의원은 이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자신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보다 6월항쟁 이후 미진한 한국사회의 인권을 증진하기 위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천 의원이 정치권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93년, 김근태 의장이 이끌던 재야단체 <통일시대 민주주의 국민회의>에 법조계 일원으로 참가하면서다.

본격적인 변화의 징후가 나타난 건 지난 1995년이었다. 당시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민회의 창당을 추진하던 시기, 그의 측근으로부터 정식 정치권 영입 제안을 받게 된 것. 그리고 그의 고민이 시작됐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천 의원은 ‘반세기가 넘도록 우리 사회에 갖가지 병폐를 심어놓은 보수세력의 집권을 막는 데 힘을 보태겠다’는 일념 하에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6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천 의원은 199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민회의 정책위원회 부의장이란 중책을 맡아 대선공약 개발에 온 힘을 쏟아 부었다. 그야말로 입과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녔다. 그 결과,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며 건국 이래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천 의원은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발굴,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천 의원은 2001년 7월 현역의원 최초로 노무현 후보의 지지선언을 했다. 언론은 시기상조론과 더불어 찻잔 속의 태풍으로 폄하했다. 당시 민주당 주류인 이인제 대세론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상황이었던 게 그 이유였다. 때문에 노무현이 이인제를 누르고 후보가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인제 대세론의 기저에는 대선에 패배하더라도 호남과 충청표를 묶으면 국회의원은 할 수 있으리라는 정치공학적 계산이 깔려있었다. 또한 대세를 벗어난 행동으로 정치적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두려움도 상당부분 차지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천 의원의 결단에 지인들의 만류가 이어졌다. 천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도 안산시는 호남과 충청 출신 유권자를 합하면 60%를 넘었고, 천 의원의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대선공약 개발

하지만 천 의원은 단 한 장의 필승카드가 노무현이라고 단언했다. 노무현 후보가 한국 사회의 개혁을 이끌 적임자라는 명분론과, 호남과 영남의 일부 그리고 젊은 개혁층의 표를 확실하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현실론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천 의원의 예측은 적중했다. 광주 경선의 승리를 발판으로 이인제 대세론을 뒤집으며 노무현이 민주당의 공식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것. 그러나, 노무현 앞에는 월드컵 바람을 타고 정몽준이란 새로운 태풍이 등장했다. 철옹성 같은 기득권세력을 대변하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가 실패한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정몽준과의 후보단일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노무현 후보 선대위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일부는 눈물까지 흘리며 후보 단일화를 반대하고 나섰다. 시선은 또 다시 천 의원에게로 쏠렸다.

모든 의원들은 천 의원이 후보 단일화를 반대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는 후보 단일화를 찬성했고 적극 나서서 추진했다. 그 때 계속 상승했던 정몽준 후보의 지지율이 하향국면에 접어들고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다시 오르는 추세라서 노 후보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결국 천 의원의 선택은 주효했고 집권에 성공했다. 그의 승부사적 기질이 민주개혁세력이 재집권하는 데 큰 몫을 한 것이다.

그런 천 의원에게 2003년 11월11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 중 하나다. 모진 산고 끝에 열린우리당이 태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정치개혁과 정당개혁을 위해 최초로 지구당위원장을 내던졌던 천 의원은 신당 창당 선언과 당의장 직선제 도입, 국민참여정치 실천 등 새로운 정치를 위한 수많은 어려움과 맞닥뜨려야 했다. 2002년 12월, 대선 직후부터 시작된 정치개혁 논의가 가시적 성과를 맺기까지 그야말로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천 의원은 민주당 안팎의 모든 개혁세력을 끌어안는 정치개혁을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민주당은 기존 정당의 틀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른바, 두터운 기득권의 벽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천 의원은 기존의 낡은 정치행태로는 새 정치를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비로소 신당창당의 불가피함을 깨닫게 된다.

그는 신당의 밑그림으로 제도개혁과 인물의 교체를 상정했다. 당헌, 당규에 국민참여를 통한 상향식 의사 결정, 대선 후보와 당의장의 직접 선거 등의 콘텐츠들을 채워 나갔다. 또한 원내대표제를 도입하고 의원총회를 최종 의사결정기구로 만드는 등 원내 정책정당화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열린우리당은 우리 정치의 오랜 폐단이었던 돈정치, 보스정치, 지역주의 정치의 타파를 위해 탄생한 최초의 정당이었고, 천 의원 개인으로선 정치생명을 건 또 한 번의 모험이었다.

그리고 지난 2004년 4·15 총선, 열린우리당이 국회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하며 역사상 최초로 개혁세력이 의회권력을 장악했다. 민생입법과 개혁입법을 처리할 최적의 기회를 맞게 된 것이다. 천 의원 역시 선거에 출마해 지역구를 누비며 국민이 바라는 정치개혁을 약속했고, 결국 승리를 거머쥐게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발굴, 참여정부 탄생시킨 장본인
모진 산고 끝에 열린우리당 창당 우여곡절 많아

이후 3선을 한 천 의원은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이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에 도전했다. 경쟁자는 5선의 전략가이자 현재 대선주자로 뛰고 있는 이해찬 의원이었다. 막강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치밀한 전략까지 마련한 이 의원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당내 중진들은 물론 재야파까지도 상대편에 줄을 섰다. 천 의원을 지지할 것이라 예상됐던 몇몇 측근까지 등을 돌렸다. 여기에 ‘청와대가 관리형 원내대표로 이 의원을 민다’는 소문까지 퍼지는 등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당 쇄신운동, 노무현 최초 지지, 열린우리당 창당 등 정치적 고비마다 한발 앞서 결단을 내리고 실천해 온 천 의원의 진정성은 마침내 초선들의 지지를 얻기 시작했고, 결국 국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첫 집권여당의 원내사령탑에 올랐다.

원내대표에 오른 천 의원의 첫 마디는 “정기국회 100일 동안 국회 반경 1km를 벗어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초기엔 아예 국회 안에서 주거를 해결했지만, 그로 인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직원들의 애교 섞인 원성(?)에 밀려 국회 근처 오피스텔로 거처를 옮겼다. 매일 아침 7시면 원내대표단 회의를 열었고, 수십 차례의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그 결과, 물리력을 동원한 한나라당의 끈질긴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 개혁입법 중, 과거사법과 언론개혁법을 통과시키는 성과를 일궈냈다. 또한 기금관리기본법, 민간투자법,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등 경제활성화를 위한 3대입법을 포함해 100여개의 민생법안을 처리했다.

막말 파문 난관
돌파할 해법 주목

이후 법무부장관 등을 지낸 천 의원은 국회 미디어법 강행 처리에 반발해 의원직을 사퇴했다가 올해 초 국회에 다시 복귀했다. 이 가운데 최근 막말 파문이 불거져나오면서 세인들의 싸늘한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다. 과연 천 의원은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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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고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丙午年), 불의 기운을 가진 말띠의 해다. 불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에너지가 강한 해라는 의미다. 그러나 치솟는 불길이 되레 화가 될 모양이다. 올해를 둘러싼 경제 전망이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 중이다. 과연 국민들은 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백운비 역리원장을 만나 병오년 대한민국 국운의 흐름을 들어봤다. 대한민국의 공기는 무겁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이 동시에 눌린 듯한 느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고환율·고물가 상황은 국민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느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일터에서는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체념 섞인 반응이 늘어났다. 나빠지다… 치솟는 불길 백운비 원장은 최근 몇 년간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가 급격히 달라졌다고 봤다. 그는 불과 10년 전 국운이 비교적 안정돼 있을 때만 해도 대체로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동네 구멍가게조차 유지가 가능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표현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후 약 9년간 국운이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흐름이 이어졌다고 봤다. 역리학적으로 보면 2026년은 ‘양화(陽火)’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해다. 불의 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열려 있을 때는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막힌 상태에서 불기운만 강해질 경우 화(禍)로 작용하기 쉽다. 백 원장은 “양화가 득세하면 좋은 것도 함께 올라가야 길한데, 지금은 차단된 상태에서 불만 위로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분노와 충돌, 사회적 마찰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마(火魔)와 비슷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충돌이 잦아지고, 사소한 문제도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백 원장은 “열은 많은데 출구가 없을 때 가장 위험하다”며 “2026년은 바로 그런 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6년 국운을 ‘사통팔달(四通八達)’이 막힌 상태’에 비유했다. 사통팔달은 사방으로 통하고 여덟 갈래로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예부터 역리에서는 운이 좋을 때를 사통팔달에 비유해 왔다. 길이 열려야 사람이 움직이고, 움직여야 살 길이 생긴다는 논리다. 반대로 사통팔달이 막혔다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는 의미다. 백 원장은 “전쟁이 나면 피난을 가야 하는데, 산도 물가도 사람 속도 안전하지 않은 형국”이라며 “움직일수록 위험하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운이라는 것은 원래 사통팔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사방이 열려야 길이 나고, 여러 가지가 순환하며 성취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방이 막혀 있다”고 봤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 헤맨다”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감록에 등장하는 ‘인근불·산근불·수근불’이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사람 속으로 가도 안 되고, 산으로 가도 안 되며, 물가로 가도 안 된다는 뜻으로, 결국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백 원장은 이를 오늘의 국운에 빗대어 출구 자체가 막혀 있는 구조로 해석했다. 이 막힘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 경기라고 했다. 백 원장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두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돌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경제의 본질은 순환인데, 지금은 그 순환 고리가 곳곳에서 끊어졌다는 것이다. “에너지·부동산·건설이 유일한 해법” “뛰어난 인재 등용으로 위기 관리해야” 불안이 커질수록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기업은 투자를 멈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경제 전체가 점점 움츠러드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경제 지표만 놓고 보면 아직 버틸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보유액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수출 역시 완전히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데 급급하고, 직장인들은 월급날이 와도 통장이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청년층 역시 미래 계획보다 당장의 생존을 먼저 고민하는 상황이다. 백 원장은 이런 체감경기가 쫓기고 쫓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쪽은 쫓기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쪽도 쫓기며, 소비자는 사기 위해 애쓰고 사업자는 버티기 위해 애쓴다. 몸과 마음을 다 써도 역부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2026년을 ‘마지막 고비’라고 표현했다. 고비가 있다는 말은 넘어설 구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넘는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백 원장이 올해를 ‘양화’로 설명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음화가 따뜻한 햇볕이나 곁불에 가까운 성격이라면, 양화는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불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이 있어, 표면적으로는 ‘올라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올라가고 산업이 살아나고 활력이 돌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백 원장은 지금의 국운이 이미 ‘차단’돼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즉, 불이 치솟는데 출구가 막혀 있으면 그 불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화마’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화기가 중천한다”는 표현을 쓰며, 이 기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사회 전반에 과열과 충돌, 갈등이 함께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걸까? 백 원장은 “답이 없는 해는 없다”며 화와 상생하는 것이 바로 토(土)와 목(木)이라고 설명했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방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방침은 곧 정책이다. 그는 답을 세 갈래로 정리했다. 에너지, 부동산, 건설이다. 백 원장은 “이 세 가지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해법 중 하나는 에너지 정책이다. 국내외 산업과 수출입 구조에서 에너지 비용과 수급이 흔들리면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 정책을 중심에 두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국가 경제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통팔달 생존 급급 부동산에 대해서는 규제로 묶어두는 접근을 경계했다. 자금이 회전하지 않으면 내수가 얼어붙고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말한 부동산은 단순한 주택 거래에 국한되지 않았다. 농지, 임야, 전답 등 토지 전반과 농업 관련 규제, 지역 단위 개발과 거래 규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같은 규제가 완화돼야 농업과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내수 회복의 여지가 생긴다는 논리다.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순기능이 더 크다면 이를 관리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 분야 역시 중요한 고리로 제시됐다. 백 원장은 오행의 상생 논리를 들어 불기운이 강해지는 해에는 ‘목(木)’이 연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자재, 설비, 인력, 금융 등 연쇄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분야다. 부동산과 건설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면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막히면 젊은 층의 기대가 꺾이고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책의 방향만큼이나 이를 실행할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 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개인의 운만으로 국운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그는 2026년을 두고 “성군(聖君)이 나오기 어려운 해”라고 단언했다. 국운이 나쁜 시기에는 누구든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군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도 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예로 들며, 국운이 기울어진 시기에 즉위한 지도자에게는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가 자리에 앉아도 비판을 받기 쉬운 환경이 형성된다고 봤다. 정치권 전반에 대해서는 국운의 분산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힘이 한 곳에 모이지 못하면 작은 사안도 쉽게 정치적 충돌로 번지고, 여야를 넘어 같은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양분과 분열의 해”라고 표현했다. 양분(兩分)은 둘로 나뉜다는 뜻이지만, 현실에서는 둘로 끝나지 않는다. 둘로 갈라진 뒤 다시 갈라지고, 결국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백 원장은 “이럴 때 정치권은 합치자는 말은 많아도, 실제로는 더 쪼개지는 흐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2026년 정치 지형에 대해선 “높이 쌓아 올린 알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형국”이라고 비유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일 수 있지만, 작은 충격에도 균열이 날 수 있다는 의미다. 권토중래 전복후괴 백 원장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을 꺼냈다.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한 사람, 즉 뛰어난 인재를 등용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해일수록 백 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인사(人事)’다. 국운이 나쁠 때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판단이 흐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사람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올해가 불안정한 만큼 ‘아첨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운이 나쁜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권력자나 부자에게 빌붙어 아첨하는 행동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배신과 척을 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전망도 같은 결로 이어졌다. 백 원장은 특징으로 ‘분산(分散)’을 들었다. 힘이 한 곳으로 모여야 외부 압력을 버틸 수 있는데, 올해는 국운이 흩어져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분산되면 허점이 드러나고, 허점이 드러나면 외부 공격이 들어온다는 논리다. 그는 이를 복싱에 비유했다. 복싱 선수가 가드를 올리면 상대가 쉽게 치지 못한다. 그런데 가드를 내리면 약점이 보이고 공격이 들어온다. 백 원장은 “우리가 튼튼하면 공격이 안 오는데 이번에는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공격은 군사적 충돌만을 뜻하지 않고,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공세, 국제 갈등의 심화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외교 혼동과 시행착오로 갈등이 심화되고 외부의 압력과 공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제 분야에서의 대응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백 원장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철저한 방어 준비’가 필요하며, 그 방어를 위해 ‘인적 자원 파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외로 사람을 내보내고,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협상과 조율을 담당할 인재를 배치해 허점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이번 해는 어느 해보다 인재 발굴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운이 바닥난 것이 아니므로 “틈새가 있다”고 했고, 그 틈새를 메우고 넓히는 것이 인재라는 뜻이다. “6월 지선 대대적 물갈이” “아첨하는 사람 조심해야” 오는 6월에 시행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키워드는 권토중래(捲土重來)다. 권토중래는 “실패했던 사람,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분기해 세력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판이 바뀌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번에 공천 못 받고 밀려났던 사람이 다시 부활하는 케이스’를 예로 들면서 “물갈이가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물갈이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전복후계(前覆後戒)”의 태도를 강조했다.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뒤의 사람이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전임 대통령의 실수를 경계 삼아야 한다”는 식으로 풀었다. 이는 이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관·부처·기관·기업 대표 등 ‘조직의 책임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이라고 했다. 즉, 불리한 국운의 해에는 새 일을 무리하게 벌이기보다, 전임의 실수와 실패를 분석해 같은 구멍에 다시 빠지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국민들의 삶도 우려했다. 백 원장은 지난 몇 년간 국민 갈등이 극심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2026년에는 그 갈등이 더하다고 했다. 그는 “운이 나쁜 해에는 인심이 각박해지며 배려와 용서가 줄고, 민감하고 예민해진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친했던 사람끼리도 견제 대상이 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적이 되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각자도생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원장은 의지하는 대상이 있더라도, 무너질 수 있는 해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책임 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조차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혼과 결별, 인간관계 단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경제적 불안과 심리적 피로가 겹치면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감이나 분노 조절 문제 등 정신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2026년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자는 더 못 살게 된다”고도 전했다. “마지막 고비다” 2027년에는 회복기로 들어선다. 백 원장은 “27년부터 회복기로 들어간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곧바로 후유증을 언급했다. 병이 나아도 후유증이 남듯이, 회복이 시작되더라도 이전의 고통이 흔적으로 남아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