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 큰 웃음(?) 선사한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보온병(兵)’ 출신에서 ‘동네북’으로…‘상수스럽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만신창이다. ‘보온병’ 발언과 관련, 모진 뭇매를 맞아서다. 국민과 언론, 정치권을 가리지 않고 매서운 주먹이 날아 왔다. 동네북이 따로 없다. 어찌나 두들겨 맞는지 측은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번 일로 안 대표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에 안 대표를 모를 이가 없을 정도다. 이에 따라 그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홀어머니 슬하에서 보낸 가난한 어린시절과 학창시절
야간고등학교 설립과 직장생활 그리고 사법고시 합격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그가 일곱 살 되던 해 부친이 돌림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부모가 운영하던 기와공장은 사기꾼들에게 넘어갔다. 그때부터 그의 모친은 막노동을 하며 2남3녀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5남매가 모두 장티푸스에 걸려 앓아눕는 일까지 벌어졌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데다, 치료약도 변변치 못해 그저 죽음만을 기다려야 하는 절망적 상황이었다.

하지만 모친의 지극한 간호로 그의 남매들은 모두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안 대표에게 지난날의 어려웠던 기억은 강렬하게 남았다. 안 대표가 ‘생활형편이 나아져도 늘 검소하고 청렴하게 살아야 한다’는 각오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라고 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공부한 안 대표는 서울대 법과대학에 진학했다. 여느 대학생과 마찬가지로 술, 친구들과 함께 대학 1학년을 보냈다. 하지만 2학년이 되면서 정치현실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안 대표는 후일 6·3학생운동으로 불리는 한·일 회담반대 단식농성을 시작으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3학년 때는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 성토대회 사회를 보다 주모자로 유기정학을 받았다. 또 박정희 정권이 저지른 6·8 부정선거 규탄시위에 참여했다 ‘집시법’위반으로 전과자가 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안 대표는 고향인 마산으로 내려갔다. 야간 중학교를 세워 진학을 못한 청소년들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의 소박한 꿈은 냉혹한 현실 앞에 무너져 내렸다. 자금난으로 1년도 안 돼 문을 닫은 것.

야간학교를 청산한 안 대표는 풍한방직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고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그는 2년 만에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고시준비에 돌입했다. 그리고 몇년 후, 안 대표는 각고의 노력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쾌거를 누리게 됐다.

서울법대 진학 후
학생운동 뛰어들어

안 대표는 전주 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첫 출발했고 1985년 3월부터는 서울지방검찰청에서 근무했다. 그러던 1987년 1월 운명적인 사건을 접하게 됐다.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이 바로 그것. 이는 23세의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조사 받던 중 고문으로 숨진 사건이다.

당시 정권의 안보와 관련된 시국사건은 외부 압력으로 소신껏 다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안 대표는 ‘정의에 반하여 비굴하게 사느니 명예롭게 사직하겠다’는 배수진을 치고 박군 사건을 처리해 나갔다. 결국 그는 진실을 밝혀냈고 6월 민주항쟁과 6·29 항복선언을 받아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후 검사직에서 물러난 안 대표는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박군사건의 영향이 컸다. 다시는 그와 같은 희생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끝에 안 대표는 언론과 국민들로부터 ‘인권의 파수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1994년 9월에는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1996년, 4·11총선에서 경기도 과천·의왕시에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한 안 대표는 승리를 거머쥠으로써 중앙 정치무대에 본격 진출하게 됐다.
이후 검사출신 의원으로서 옷로비 의혹과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등 국회 국정조사에 위원으로 참여해 두각을 나타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특보와 당대변인, 최병렬 전 대표 특보단장,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7대 국회 시절 박근혜 당대표 체제 하에선 김문수 경기지사와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주도했던 국가발전연구회와 수도분할반대투쟁위에서 활동하는 등 비주류 반박 진영에서 박 전 대표와 각을 세우기도 했다.
이어 17대 대선 당시 당내 공작정치저지 범국민투쟁위원장, 중앙선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아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했다. 이후 원내대표로서 18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고 정부조직 개편 협상을 진두지휘하면서 리더십을 인정받기도 했다.

안 대표는 18대 국회 출범 이후 국회의장 경선에서 5선의 김형오 의원에게 패배했지만, 2009년 5월 원내대표직에 재도전, 친이계의 지지로 두 번째 원내사령탑에 올랐다.

2009년 4·29 재보선 참패 이후 당내 무기력증을 극복하고 강한 여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안상수 원내대표 체제’를 재탄생시킨 것. 이를 반영하듯 그는 원내대표 취임 이후 ‘여권의 해결사’로 자리매김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민주당은 6월 국회 개회의 선결조건으로 대통령의 사과 등을 요구했으나 안 대표는 단독국회 소집으로 응수해 야당의 등원을 이끌어냈다. 또 야당의 ‘MB악법 저지’ 공세를 뚫고 미디어법, 4대강 사업 예산안 등 굵직한 현안을 처리하는 돌파력을 보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는 ‘친이 강경파’라는 이미지를 남겼고, 원내대표 임기말 터진 불교계 외압설은 본인에게 악재가 됐다. 이 때문에 전대 과정에서 안 대표는 ‘강경 친이의 구체제로 회귀해선 안된다’는 경쟁후보의 공격에 시달렸다. 그러나 안 대표는 탄탄한 조직력을 기반으로 당의 변화와 개혁, 화합과 상생을 내걸고 당대표가 되는 데 성공했다.

박종철군 사건으로
전국에 이름 떨쳐

하지만 안 대표는 최근 ‘동네북’으로 전락했다. 모든 것은 한편의 영상물 때문이었다. 문제의 영상물에는 지난 11월30일 연평도 피격현장을 방문한 안 대표의 황당한 실수가 담겨 있다. 안 대표가 잔해 속에서 시커멓게 그을린 보온병을 집어 들고 “이게 포탄입니다”라고 말한 것.

이에 네티즌들은 “안상수 매뉴얼-전쟁이 나면 군에 입대해 보온병을 들고 적진에 단신으로 뛰어 들어가서 적들로부터 밥을 훔쳐 행방불명된다” “윤봉길 의사는 도시락 폭탄을 던져 나라를 구하려 했고, 안상수 대표는 보온병 포탄을 제조해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안상수 함부로 까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웃음을 준 적이 있었느냐? (안도현의 시 <연탄재> 패러디)” 등의 패러디를 쏟아내며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다. 심지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하는 사람을 뜻하는 ‘상수스럽다’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이와 함께 네티즌들은 지난 흠결까지 들춰내며 조소했다.
지난 달 29일 북한의 연평도 도발 사태와 관련해 열린 토론회에서 안 대표가 “지금이라도 전면전이 벌어지면 어떻게 해서라도 입대해서 같이 싸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데 대해 “가야 할 때 가야지, 늙어서 군대를 왜 가냐”는 비판을 하고 있는 것.

보온병 들고 “이게 포탄입니다”…네티즌 패러디 봇물
해프닝으로 끝날 문제 확산된 건 병역 면제 받은 때문

이에 앞서 지난달 27일 해병대 연평부대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영결식장에 참석한 안 대표의 사진도 구설에 올랐다. 모든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거나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가운데 안 대표 홀로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 장면이 포착된 것. 이에 네티즌들은 문제의 사진을 퍼 나르며 그를 비난하고 있다.

이어 야당 의원들까지 가세하며 사태가 확산됐다.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분이니 착각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체하다 구긴 체면이라 한심스럽다”며 “더욱이 연평도에 가서 안보쇼를 벌이려다 생긴 해프닝이니 더욱 무안한 일”이라고 논평했다.

그의 실수는 자유선진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회자됐다.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이진삼 의원은 “탄두가 날아오지 어떻게 탄피가 날아오는가. 고무풍선으로 보냈다는 이야기인가”라고 일침했다. 105mm 포병부대 출신인 변웅전 의원 역시 “포를 쏘면 탄피는 포의 뒤로 빠지게 되어 있는데 어떻게 북에서 쏜 탄피가 연평도까지 날아올 수 있는가”라며 “보온병을 들고 이것이 포탄이라고 하면 보온밥통은 핵무기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조롱했다.

심지어 보온병 포탄 발언은 현재 외신에까지 보도되며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독일의 시사평론지 <포커스(Focus)> 인터넷판은 지난 2일 “여당 대표가 카메라 앞에서 포탄과 보온병을 헷갈렸다”며 안 대표가 포탄을 앞에 두고 앉아 있는 사진을 싣고 이번 해프닝을 자세히 다뤘다. 이 매체는 “한국 여당은 북한 미사일을 보온병과 헷갈리는 바람에 웃음거리로 전락했다”며 “네티즌들은 안 대표의 인터뷰를 보며 그의 미숙한 군사지식을 놀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 넘어갈 수도 있던 문제였다. 하지만 사태가 종잡을 수 없게 확산된 데는 안 대표가 병역을 면제 받았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

병무청 자료에 따르면 안 대표는 지난 1966~1967년 사이 징병검사를 기피한 뒤 1969년에는 질병으로 입영 시기를 연기했다. 또한 1970년에는 2급 입대판정을 받아 현역 복무 대상에 포함됐으나 입영을 기피했다. 그리고 다시 안 대표는 1973~1974년에도 입영기일을 연기했는데, 당시 사유가 눈에 띈다. ‘행방불명’된 때문인 것.

군 면제 사유가 통상 질병인 점을 감안하면 안 대표의 사유는 상당히 특이하다. 이후 안 대표는 1975년 질병으로 입영시기를 다시 연기했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인 1977년 무관후보생으로 편입됐으나 신체검사 및 퇴교 조치자로 입영의무가 면제된 이후 1978년 끝내 ‘고령’으로 소집 대상에서 제외돼 최종 면제 판정을 받았다.

입영 기일 연기
사유=‘행방불명’

작은 실수에서 비롯된 후폭풍은 그야말로 메가톤급이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뭇매에 안 대표는 만신창이가 됐다. 어찌 됐든 간에 이제 대한민국엔 그를 모를 이는 없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세인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안 대표는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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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고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丙午年), 불의 기운을 가진 말띠의 해다. 불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에너지가 강한 해라는 의미다. 그러나 치솟는 불길이 되레 화가 될 모양이다. 올해를 둘러싼 경제 전망이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 중이다. 과연 국민들은 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백운비 역리원장을 만나 병오년 대한민국 국운의 흐름을 들어봤다. 대한민국의 공기는 무겁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이 동시에 눌린 듯한 느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고환율·고물가 상황은 국민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느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일터에서는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체념 섞인 반응이 늘어났다. 나빠지다… 치솟는 불길 백운비 원장은 최근 몇 년간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가 급격히 달라졌다고 봤다. 그는 불과 10년 전 국운이 비교적 안정돼 있을 때만 해도 대체로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동네 구멍가게조차 유지가 가능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표현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후 약 9년간 국운이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흐름이 이어졌다고 봤다. 역리학적으로 보면 2026년은 ‘양화(陽火)’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해다. 불의 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열려 있을 때는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막힌 상태에서 불기운만 강해질 경우 화(禍)로 작용하기 쉽다. 백 원장은 “양화가 득세하면 좋은 것도 함께 올라가야 길한데, 지금은 차단된 상태에서 불만 위로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분노와 충돌, 사회적 마찰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마(火魔)와 비슷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충돌이 잦아지고, 사소한 문제도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백 원장은 “열은 많은데 출구가 없을 때 가장 위험하다”며 “2026년은 바로 그런 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6년 국운을 ‘사통팔달(四通八達)’이 막힌 상태’에 비유했다. 사통팔달은 사방으로 통하고 여덟 갈래로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예부터 역리에서는 운이 좋을 때를 사통팔달에 비유해 왔다. 길이 열려야 사람이 움직이고, 움직여야 살 길이 생긴다는 논리다. 반대로 사통팔달이 막혔다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는 의미다. 백 원장은 “전쟁이 나면 피난을 가야 하는데, 산도 물가도 사람 속도 안전하지 않은 형국”이라며 “움직일수록 위험하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운이라는 것은 원래 사통팔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사방이 열려야 길이 나고, 여러 가지가 순환하며 성취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방이 막혀 있다”고 봤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 헤맨다”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감록에 등장하는 ‘인근불·산근불·수근불’이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사람 속으로 가도 안 되고, 산으로 가도 안 되며, 물가로 가도 안 된다는 뜻으로, 결국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백 원장은 이를 오늘의 국운에 빗대어 출구 자체가 막혀 있는 구조로 해석했다. 이 막힘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 경기라고 했다. 백 원장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두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돌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경제의 본질은 순환인데, 지금은 그 순환 고리가 곳곳에서 끊어졌다는 것이다. “에너지·부동산·건설이 유일한 해법” “뛰어난 인재 등용으로 위기 관리해야” 불안이 커질수록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기업은 투자를 멈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경제 전체가 점점 움츠러드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경제 지표만 놓고 보면 아직 버틸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보유액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수출 역시 완전히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데 급급하고, 직장인들은 월급날이 와도 통장이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청년층 역시 미래 계획보다 당장의 생존을 먼저 고민하는 상황이다. 백 원장은 이런 체감경기가 쫓기고 쫓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쪽은 쫓기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쪽도 쫓기며, 소비자는 사기 위해 애쓰고 사업자는 버티기 위해 애쓴다. 몸과 마음을 다 써도 역부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2026년을 ‘마지막 고비’라고 표현했다. 고비가 있다는 말은 넘어설 구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넘는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백 원장이 올해를 ‘양화’로 설명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음화가 따뜻한 햇볕이나 곁불에 가까운 성격이라면, 양화는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불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이 있어, 표면적으로는 ‘올라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올라가고 산업이 살아나고 활력이 돌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백 원장은 지금의 국운이 이미 ‘차단’돼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즉, 불이 치솟는데 출구가 막혀 있으면 그 불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화마’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화기가 중천한다”는 표현을 쓰며, 이 기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사회 전반에 과열과 충돌, 갈등이 함께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걸까? 백 원장은 “답이 없는 해는 없다”며 화와 상생하는 것이 바로 토(土)와 목(木)이라고 설명했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방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방침은 곧 정책이다. 그는 답을 세 갈래로 정리했다. 에너지, 부동산, 건설이다. 백 원장은 “이 세 가지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해법 중 하나는 에너지 정책이다. 국내외 산업과 수출입 구조에서 에너지 비용과 수급이 흔들리면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 정책을 중심에 두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국가 경제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통팔달 생존 급급 부동산에 대해서는 규제로 묶어두는 접근을 경계했다. 자금이 회전하지 않으면 내수가 얼어붙고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말한 부동산은 단순한 주택 거래에 국한되지 않았다. 농지, 임야, 전답 등 토지 전반과 농업 관련 규제, 지역 단위 개발과 거래 규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같은 규제가 완화돼야 농업과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내수 회복의 여지가 생긴다는 논리다.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순기능이 더 크다면 이를 관리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 분야 역시 중요한 고리로 제시됐다. 백 원장은 오행의 상생 논리를 들어 불기운이 강해지는 해에는 ‘목(木)’이 연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자재, 설비, 인력, 금융 등 연쇄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분야다. 부동산과 건설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면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막히면 젊은 층의 기대가 꺾이고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책의 방향만큼이나 이를 실행할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 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개인의 운만으로 국운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그는 2026년을 두고 “성군(聖君)이 나오기 어려운 해”라고 단언했다. 국운이 나쁜 시기에는 누구든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군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도 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예로 들며, 국운이 기울어진 시기에 즉위한 지도자에게는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가 자리에 앉아도 비판을 받기 쉬운 환경이 형성된다고 봤다. 정치권 전반에 대해서는 국운의 분산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힘이 한 곳에 모이지 못하면 작은 사안도 쉽게 정치적 충돌로 번지고, 여야를 넘어 같은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양분과 분열의 해”라고 표현했다. 양분(兩分)은 둘로 나뉜다는 뜻이지만, 현실에서는 둘로 끝나지 않는다. 둘로 갈라진 뒤 다시 갈라지고, 결국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백 원장은 “이럴 때 정치권은 합치자는 말은 많아도, 실제로는 더 쪼개지는 흐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2026년 정치 지형에 대해선 “높이 쌓아 올린 알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형국”이라고 비유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일 수 있지만, 작은 충격에도 균열이 날 수 있다는 의미다. 권토중래 전복후괴 백 원장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을 꺼냈다.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한 사람, 즉 뛰어난 인재를 등용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해일수록 백 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인사(人事)’다. 국운이 나쁠 때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판단이 흐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사람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올해가 불안정한 만큼 ‘아첨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운이 나쁜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권력자나 부자에게 빌붙어 아첨하는 행동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배신과 척을 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전망도 같은 결로 이어졌다. 백 원장은 특징으로 ‘분산(分散)’을 들었다. 힘이 한 곳으로 모여야 외부 압력을 버틸 수 있는데, 올해는 국운이 흩어져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분산되면 허점이 드러나고, 허점이 드러나면 외부 공격이 들어온다는 논리다. 그는 이를 복싱에 비유했다. 복싱 선수가 가드를 올리면 상대가 쉽게 치지 못한다. 그런데 가드를 내리면 약점이 보이고 공격이 들어온다. 백 원장은 “우리가 튼튼하면 공격이 안 오는데 이번에는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공격은 군사적 충돌만을 뜻하지 않고,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공세, 국제 갈등의 심화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외교 혼동과 시행착오로 갈등이 심화되고 외부의 압력과 공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제 분야에서의 대응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백 원장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철저한 방어 준비’가 필요하며, 그 방어를 위해 ‘인적 자원 파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외로 사람을 내보내고,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협상과 조율을 담당할 인재를 배치해 허점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이번 해는 어느 해보다 인재 발굴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운이 바닥난 것이 아니므로 “틈새가 있다”고 했고, 그 틈새를 메우고 넓히는 것이 인재라는 뜻이다. “6월 지선 대대적 물갈이” “아첨하는 사람 조심해야” 오는 6월에 시행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키워드는 권토중래(捲土重來)다. 권토중래는 “실패했던 사람,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분기해 세력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판이 바뀌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번에 공천 못 받고 밀려났던 사람이 다시 부활하는 케이스’를 예로 들면서 “물갈이가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물갈이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전복후계(前覆後戒)”의 태도를 강조했다.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뒤의 사람이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전임 대통령의 실수를 경계 삼아야 한다”는 식으로 풀었다. 이는 이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관·부처·기관·기업 대표 등 ‘조직의 책임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이라고 했다. 즉, 불리한 국운의 해에는 새 일을 무리하게 벌이기보다, 전임의 실수와 실패를 분석해 같은 구멍에 다시 빠지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국민들의 삶도 우려했다. 백 원장은 지난 몇 년간 국민 갈등이 극심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2026년에는 그 갈등이 더하다고 했다. 그는 “운이 나쁜 해에는 인심이 각박해지며 배려와 용서가 줄고, 민감하고 예민해진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친했던 사람끼리도 견제 대상이 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적이 되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각자도생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원장은 의지하는 대상이 있더라도, 무너질 수 있는 해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책임 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조차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혼과 결별, 인간관계 단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경제적 불안과 심리적 피로가 겹치면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감이나 분노 조절 문제 등 정신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2026년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자는 더 못 살게 된다”고도 전했다. “마지막 고비다” 2027년에는 회복기로 들어선다. 백 원장은 “27년부터 회복기로 들어간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곧바로 후유증을 언급했다. 병이 나아도 후유증이 남듯이, 회복이 시작되더라도 이전의 고통이 흔적으로 남아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