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새누리 구원투수 김희옥 혁신비대위원장

두달짜리 수장 ‘급한 불부터 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새누리당 집안싸움이 점입가경이다. 4·13총선 참패 후 당을 이끌 혁신비대위원장 인선을 두고도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런 잡음 끝에 김희옥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혁신위원장에 임명됐다. 김 위원장이 임명되면서 새누리당 지도부 공백 사태는 일단락 됐다. 김 위원장은 전국위원회 추인으로 공식 임명된 후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지도부가 선출될 때까지 새누리당을 이끌게 된다.

새누리당이 지난달 26일 혁신비대위원장으로 김희옥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내정했다. 민경욱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국회 브리핑에서 “당내 여러분들이 좋은 분이라고 추천한 김희옥 위원장을 정진석 원내대표가 이틀 전 처음 만나 혁신위원장을 맡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며 “이에 김 위원장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간 몇 차례 통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민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수락 결심을 알렸다고 설명했다.

계속되는 갈등
포청천 노릇?

민 원내대변인은 “김 위원장은 청렴하고 원칙을 지키는 소신으로 국민의 눈높이에서 새누리당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내려놓을지 판단해 줄 수 있는 경륜의 소유자”라며 “우리당의 진지하고 활발한 혁신 논의를 이끌 적임자로 판단돼 발탁됐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의관을 했던 경험이 있어 국회 입법과정에도 매우 밝은 인사”라고 평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는 정당으로 혁신하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혁신하고 쇄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7월 말∼8월 초로 예상되는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가 선출될 때까지 당 대표를 겸임하며 당 혁신작업을 추진하고 전당대회를 준비하게 된다. 김 위원장은 계파 갈등의 기폭제로 작용했던 비대위원 구성과 관련해서 “정식으로 위원장이 되면 전면적으로 새로 검토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친박계 김선동 의원이 정 원내대표에게 추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박근혜 정부에서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국무총리·감사원장 후보로도 거론됐었다.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의원의 전 지역구인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으며,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인 이정현 의원과는 대학 동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계파 간 이해관계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비박계에서는 당이 여러 차례 인선 논란으로 분란이 극대화된 만큼 이번에는 자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비박계 한 의원은 “당이 어려운 상황이니 혁신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며 말을 아꼈다.

지도부 공백 일단락…전당대회까지 컨트롤
‘점입가경’ 총선 참패·당 내분 해결책 있나

이런 계파 갈등을 불식하기 위해 김 위원장은 계파 청산에 주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지난달 30일 김 위원장은 “부정적인 계파 분파 활동으로 통합을 해치는 구성원은 당의 공식 윤리기구를 통해 제명 등 강한 제재를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20대 국회 첫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위원장은 불과 두 달여 남은 전당대회 전까지 총선 참패와 당 내분을 해결할 대책 마련으로 할 일이 태산이다. 그가 순항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잠정적으로 8월 초로 예정돼 있는 전당대회 전까지 당초 계획한 새누리당의 혁신을 제대로 이룰지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김 위원장은 새누리당이 시급히 바꿔야 할 점이나 향후 과제, 계파갈등 청산해법 등을 묻는 질문에 “현재로서는 구체적으로 답하기 어렵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사실상 친박계의 의도대로 외부 인사가 혁신의 키를 잡았고, 정치 경험도 사실상 전무해 과연 김 위원장이 혁신의 칼을 제대로 휘두를 수 있겠느냐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이 결국 전당대회를 치르기 위한 관리형 위원장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의 첫 혁신 시험대는 비대위원 인선이 될 전망이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 인선과 관련 “전면적으로 새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비박계 중심의 비대위 인선이 친박계의 반발로 무산됐었던 만큼 어느 계파에도 치우지지 않은 기계적 인선을 할 가능성이 높다.

혁신 과제의 강력한 추진도 난제다. 김 위원장은 오랫동안 법조계에 몸담았고, 법조계를 떠난 후에는 동국대 총장과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을 지내 사실상 정치 경험이 전무하다.

현재 당 안팎에서는 혁신비대위가 총선 참패 원인을 분석해 계파 청산을 비롯한 혁신 과제를 내놓고 이를 강력히 실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지만 당 사정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김 위원장이 이를 힘있게 추진할 수 있을지에 물음표가 붙는다.

계파갈등 제재?
탈당의원 복당?

특히 오는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 출마자들의 혁신안을 놓고 총선 참패 책임을 묻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혁신 비대위가 총선 참패 원인 분석에 나설 지조차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이와 관련 정 원내대표는 “혁신 전대로 가겠다. 나오고 싶은 사람은 다 나와서 백가쟁명식 안을 갖고 진검승부를 해라. 그런 안이 하나 있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상 전대를 통해 총선 참패의 책임을 가리자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경상북도 청도 출신으로 경북고등학교와 동국대 법대를 졸업, 1976년 제1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검사가 됐다.

2006년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임명됐고, 2011년 동국대 총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총장 퇴임 후 지난 2월 까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왔다.

김 위원장은 헌법재판관 등으로 재임하면서 국법 질서 확립과 국민의 기본권 보장, 헌법 수호 등에 기여한 공로로 2011년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청조근정훈장은 공직자로서 직무에 최선을 다해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주는 훈장인 근정훈장 5종 가운데 최고 등급이다.

김 위원장을 둘러싼 논란도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4년 아들의 경기대 교수 특혜 임용 논란과 KCC 수의계약 등 각종 의혹에 휘말리며 동국대 총장 연임을 포기한 바 있다.

지난 2014년 김 위원장의 아들이 경기대 교수 특혜 임용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법학과 신임 교수에 지원한 김 위원장 아들은 최종 심사 결과 1순위 자에 비해 9.27점 뒤진 차점자였지만 당시 박승철 경기대 이사장의 영향력 행사로 1순위 자를 제치고 임용됐다.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은 2013년 경기대의 교수초빙 접수 직후 서울 모 처에서 경기대 법학과의 한 교수와 저녁식사를 했다는 '청탁'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저녁식사를 했다는) 법학과 교수과 박 이사장을 알지도 못한다, 교수 채용 과정에서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한 적도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출신
획기적 쇄신안 마련 자신


'청탁' 의혹의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법원은 채용 과정의 하자를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014년 12월 관련 교수 임용 무효 소송에서 “당초 전형과정에 없던 경기대 재단 이사장의 개별 면접과정이 추가돼 2순위와 1순위가 뒤바뀌어 김모 씨가 채용된 점이 인정된다”며 채용 무효를 판결했다.

KCC 수의계약 논란은 김 위원장이 동국대 총장 연임 도전 중 불거진 사안이다. 사학기관재무회계규칙에 따라 2억 원 이상의 공사계약을 체결할 경우 천재지변 등의 이유가 없는 한 ‘경쟁입찰’을 통해 업체를 선정해야 한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이를 지키지 않고 수백억 원 규모의 대형공사를 수의계약 형태로 KCC에 몰아줬다는 의혹이다.

특히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김 위원장이 법대 선후배인 점, 정 명예회장이 김 위원장의 총장 연임에 우호적인 인사였던 점이 주목됐다. 이 논란은 법적인 결론 없이 끝났다. 김 위원장은 2014년 11월 “모교 발전을 위해 한 번 더 봉사하고자 했으나 종립대학 총장직은 1회로 한정함이 좋고 연임은 좋지 않다는 종단 내외 뜻을 받들어 재임 뜻을 철회하고 18대 총장 후보에서 물러나고자 한다”라며 총장 후보에서 자진사퇴했다.

할 일이 태산
끝까지 순항?

김 위원장은 2006년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땐 병역기피 의혹으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당시 한나라당 이주영·박세환 의원은 “후보자가 1972년 징병검사를 기피한 것으로 돼 있고 1975년 질병으로 병역을 면제 받았는데 그 구체적 사유가 나와 있지 않다”라고 따져 물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징병 검사를 기피한 사실이 없다”라며 “최근 경위를 확인해 보니 행정 착오로 잘못 기재됐던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해명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비대위원 10명은? 내·외부 인사 5:5

새누리당은 2일 혁신비상대책위원회 내부 위원에 비박(비박근혜)계 김영우·친박(친박근혜)계 이학재 의원을 내정했다.

또 외부 위원에는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 유병곤 서강대 겸임교수, 정승 전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민세진 동국대 교수, 임윤선 변호사 등 5명을 내정했다.

이로써 새누리당은 김희옥 혁신비대위원장에 이어 비대위원 10명을 모두 내정했다. 비대위원 가운데 내부 인사와 외부 인사 비율은 5:5로, 내부 인사 중에는 정진석 원내대표, 김광림 정책위의장, 홍문표 사무총장 대행이 당연직 비대위원으로 포함됐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국위원회와 상임전국위원회를 잇달아 열어 비대위원장과 위원 인선안을 추인한다.

정진석·김광림·홍문표·김영우·이학재
오정근·유병곤·정승·민세진·임윤선

모두 11명으로 구성되는 혁신비대위는 오는 7월 말에서 8월 초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전당대회 개최를 준비하고 총선 참패 후 내홍을 겪어온 당을 정상화하고 쇄신하는 임무를 담당하게 된다.

김정재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비대위원 인선 배경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서 당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인사, 위공무사의 정신으로 흔들림 없이 당 혁신에 충실할 수 있는 인사, 당 화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인사를 인선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앞서 새누리당은 지난달 17일 정 원내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하고, 김용태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하는 비대위와 혁신위를 동시에 출범시키려 했지만 친박(친박근혜)계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당시 비대위원에는 김영우 김세연 이진복 홍일표 한기호 의원과 이혜훈 정운천 당선인 등이 내정됐지만, 새로운 비대위 구성과정에서 이중 김영우 의원만 비대위원에 포함됐고 나머지는 모두 제외됐다. <창>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