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돌아온 박지원 국민의당 신임 원내대표

야권 주도권 쥐고 정국 쥐락펴락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영원한 비서실장’에서 ‘영원한 원내대표’ 칭호를 얻게 됐다.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이 만장일치 합의추대로 원내대표가 됐다. 민주당, 민주통합당 시절에 이어 세 차례나 원내대표를 역임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로써 박 대표는 원내 제3당인 국민의당의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 국민의당은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 사이에서 제3당으로서 막강한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국민의당이 지난달 27일, 박지원 의원을 20대 국회 신임 원내대표로 합의추대했다. 국민의당은 경기 양평의 한 리조트에서 워크숍 이틀째인 27일 오전 당선인 전원이 참석한 비공개회의에서 이같이 의결했다.

“국민 의사 존중”
만장일치 추대

이로써 박 원내대표는 2010년 민주당, 2012년 민주통합당 시절에 이어 세 차례나 원내대표를 역임하는 진기록을 세우게 됐다. 비공개회의에선 차기 원내대표 출마 의사를 밝혔던 주승용 의원과 유성엽 의원이 출마 의지를 접으면서 박 원내대표 합의추대로 당선인들의 뜻이 모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주 의원은 “박 의원 같은 헤비급이 나오면 우리 같은 플라이급은 엄두가 안 난다”며 “박 의원이 나오면 힘을 실어주는 게 맞다”고 말했다. 유 의원 또한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다수가 합의로 추대 결정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었고 특히 엄중한 국회에 대비해서 출중하고 경륜이 갖춰진 박 원내대표가 좋겠다는 다수 의견이 모아져서 그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가 원내대표로 추대된 것에 대해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은 바짝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박 원내대표는 막후협상의 달인으로 통한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원내사령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정치권에서는 “직업이 원내대표냐”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여야가 대립할 때 한쪽 손을 들어줄 수 있게 된 국민의당은 이미 두 차례나 야당 원내대표를 지낸 박 원내대표를 전면에 내세우며 여야를 압박함으로써 존재감을 키우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민주통합당, 국민의당…
세차례 원내사령탑 역임 진기록

38석 확보로 소수 교섭단체 지위를 얻은 제3당 입장에서, 두 거대 정당의 틈바구니에서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활동 공간을 넓히고 몸값을 키우려면, 박 원내대표처럼 ‘유경험자 우대’가 필요했을 거라는 해석이다.

정치권에서 박 원내대표가 일방적으로 한 쪽 편을 들기보다는 현안의 성격에 따라 원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로 박 원내대표는 새누리당과 연립정부론을 주장하며, 새누리당과도 공조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또 야권 내부에서 유사한 지지층과 같은 지역기반을 두고 경쟁하는 더불어민주당은 대선을 앞두고 고사시켜야 할 ‘적’인 만큼 새누리당과의 전략적 동거를 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념성향이나 대북정책, 경제기조 등은 아무래도 한 뿌리에서 갈라진 더불어민주당이 새누리당보다 더 잘 맞기 때문에 정책공조를 하기에 유리하다. 이른바 ‘반박근혜 전선’을 이룰 수도 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역시 차기 국회에서는 모두 과반이 안 되는 비슷한 의석수를 갖게 되는 만큼 국민의당 의중을 살필 수밖에 없다. 자당의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보다는 국민의당을 우군으로 만들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여야는 박 원내대표에 대한 '구애' 경쟁에 나서고 있다.

영원한 비서실장
또다시 원내대표

이장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다선에 국정 경험이 풍부한 박 원내대표는 민생 문제에서 야당이 발목 잡거나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잘 알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합리적 조정에 나설 분”이라며 “시급한 경제 활성화나 청년고용 절벽, 부실기업 구조조정 등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분이므로 국정운영에 상당히 도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경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경륜있는 원내대표라 많은 기대를 한다. 특히 경제문제에 최대 역점을 두겠다는 말씀에 공감한다”면서 “총선 민의를 앞으로 잘 받들어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여소야대 국회의 운영을 잘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의 의지도 심상치 않다. 소수 교섭단체지만 원내활동을 주도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박 원내대표는 국민의당 당선인 비공개토론이 끝난 직후 “어떤 경우에도 캐스팅보트로서 당리당략적인 대권가도에 유리하게 이리 붙고 저리 붙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국민들이 선택해준 황금 3당체제를 성공하는 것이 국민 의사를 존중하는 길이고 국민의당이 성공하고 대한민국이 성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며 “옳은 판단을 따라서 원내대표직을 수행할 것”이라고 원내대표직을 수용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때로는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과 협력하면서도 견제를 하고 대화와 협상을 하면서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을 생각한다면 국민으로부터 생산적 국회이자 일하는 국회, 민생을 생각하는 국회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전부터 원내대표에 도전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던 박 의원은 “개인적으로는 목표하는 바가 있었는데 이것을(원내대표직을) 맡아야 하는 고민도 있었다”라며 “그러나 이번에 국민의 선택이 중요했고 신생 정당으로서 창당 멤버도 아니었던 저였기 때문에 부담 차원에서 한 번 더 무거운 짐을 지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여·야를 벌써부터 압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박 원내대표는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에 대해서는 “빨리 원내대표를 선출해서 5월 중으로 원구성 합의를 하자”며 “5월30일 20대 임기가 시작되고 물리적으로 보면 6월10일께부터 6월 임시국회가 가능하기 때문에 당장에 일하는 국회로 보이자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최측근
호남대표 정치인

박 원내대표는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호남 정치세력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 ‘DJ의 복심’ 또는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린다. 김대중·노무현 두 명의 대통령을 만들어낸 경력에 ‘불멸의 킹메이커’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민주당 내 구민주계와 호남을 대표하는 4선 국회의원이다. 1942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목포 문태고와 단국대 상학과를 나왔으며 30대 초반 미국으로 건너가 가발사업으로 크게 성공했다. 이후 뉴욕 한인회장과 1980년 미주지역 한인회 총연합회장을 지냈다. 1983년 미국 망명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고 1987년 김 전 대통령이 귀국하자 영주권을 포기하고 함께 귀국해 정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1992년 14대 총선 때 민주당 전국구의원으로 국회에 처음 입성했으며 최장기 대변인을 지낼 만큼 ‘명대변인’으로 활약했다. 1998년 국민의정부 출범 후에는 청와대 대변인, 공보수석을 지냈다. 1999년 5월 문화관광부 장관에 임명되며 청와대를 나왔지만 2002년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김 전 대통령을 임기 말까지 보필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때는 김 전 대통령을 수행해 방북,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기도 했다. 참여정부에서 6·15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이었지만 대북송금 특검 때 현대그룹의 대북사업 협조 명목으로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에게 150억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고초를 겪기도 했다.

‘정치 9단’ 여야 바짝 긴장
국회 주도 핵으로 급부상


하지만 대법원의 무죄 확정판결로 2007년 복권됐고, 2008년 4·9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후 곧바로 복당했다. 이후 법사위원, 정책위의장, 원내대표, 최고위원을 거쳤고 2010년 7·28 재보선 이후 당 지도부가 총사퇴하자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아 당을 이끌기도 했다. 박 원내대표는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로 쌓은 정보력과 정무감각을 바탕으로 한나라당과 정권의 저격수로 명성을 쌓았다.

2009년 7월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법사위원 자격으로 천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데 결정적인 의혹들을 폭로하면서 ‘청문회 스타’로 부상했다. 이후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이재훈 지식경제부장관,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낙마를 진두지휘해 이명박정권에 치명타를 안겼다.
 

특히 정 감사원장후보 청문회 때 박 원내대표의 활약은 압권이었다. 정 후보에 대해 각종 의혹을 제기하던 박 원내대표가 “사퇴하지 않으면 매일 한 건씩 추가로 폭로하겠다”고 여권을 압박하자 결국 정 후보는 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자진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통해 민주당의 아성을 확실히 회복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의 전투력도 높이 인정받았다.

줄타기의 달인
반박근혜 전선

당시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와 여야 간 협상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민주당 의원들의 출석을 일일이 체크하며 원내활동을 독려하기도 했다. 이후 당대표직에 욕심을 내며 도전한 지난 1월 전당대회에서는 호남지역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당권을 노렸지만 시민통합당 등과의 통합과정에서 당 지도부와 갈등을 빚으며 ‘반통합파’의 핵심으로 지목돼 첫 지도부 경선에서 4위에 머물렀다가 이번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min1330@ilyosisa.co.kr>

 


[박지원은?]

 

▲1942년 전남 진도 출생 ▲단국대 상학과 졸 ▲목포대 명예법학박사 학위 ▲조선대 명예경제학박사 학위 ▲동서양행 뉴욕지사 지사장 ▲미국 뉴욕한인회 회장 ▲한국인권문제연구소 이사장 ▲14대 국회의원 ▲민주당 수석부대변인, 대변인 ▲문화관광부 장관 ▲국민회의 대변인, 기획조정실장, 총재특별보좌역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 ▲문화관광부 한국문화산업진흥위원회 위원장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정책특보 ▲대통령비서실 실장 ▲김대중평화센터 비서실장 ▲18 19대 국회의원▲민주당 정책위의장 ▲민주당 원내대표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국민의당] 김성식 정책위의장은?

지난 4·13 총선에서 당선되며 화려하게 컴백한 김성식 국민의당 최고위원이 27일 당선인 워크숍에서 정책위의장으로 합의 추대됐다.

부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김 정책위의장은 한국노총 전국화학노련 정책부 역임 중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서울 동대문을에 출마하며 처음 정치권에 입문한 김성식 의장은 2004년에는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경기도 정무부지사로 발탁되기도 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선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 관악갑에 출마했지만 당시 열린우리당 유기홍 후보에게 패했으나 2008년 18대 총선에서 유 후보를 꺾은 바 있다.

특히 김성식 의장은 18대 국회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과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을 맡아 각종 경제정책과 세법을 다뤘다.

김 의장은 한나라당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의 공동간사를 지내며 당시 한나라당 내에서 중도성향의 소장파로 분류됐으나 2012년 현 새누리당으로 당명이 바뀌기 전에 당의 전면적인 쇄신을 요구하며 탈당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진심캠프에 합류한 이후 2014년 새정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자격으로 안철수 캠프에도 함께 했고 국민의당 최고위원까지 오르며 안 대표의 최측근 인사로 주목받고 있다.

김성식 의장은 합의 추대된 후 자신의 SNS에 “걱정이 많습니다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짧은 소감을 밝혔다.

한편 정책위의장은 원내대표와 사무총장과 더불어 당 3역 중 하나로 정책위원회를 대표하며 당의 정책에 관한 협의 및 조정의 역할을 한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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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