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퇴출 공포> ‘정리 1순위’ 살생부 추적

‘8월 위기설’ 제2의 IMF 온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의 기업구조조정 발언으로 재계는 초긴장 상태다. 이미 구체적인 내용이 논의되고 살생부 리스트까지 존재한다는 후문이다. 물망에 오른 업계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가운데 살기 위한 몸부림에 나섰다. 급속하게 바뀌고 있는 재계 분위기. 그 흐름을 파악해 본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미국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기자들을 만나 “공급 과잉업종과 취약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을 더는 미룰 수 없다”면서 “이미 비상계획을 세워놨다”라고 언급했다.

정부·정치권 주도
재계 초긴장 상태

유 부총리는 “제일 걱정되는 곳은 현대상선”이라며 “현대증권을 매각하는 등 자구노력 중이지만 용선료 협상이 잘 될지는 자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조선업 구조조정에 대해선 “고용 등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기 때문에 매우 고민된다”고도 했다.

정부는 해운업 회생의 근간으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 시나리오를 배제하고 용선료 재협상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실패 시 법정관리밖에 없다는 엄포를 놓은 상황이라 양사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업계에 따르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정부의 용선료 협상에 힘이 실리면서 독자생존의 희망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앞서 지난달 26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기업 구조조정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조선과 해운사의 빅딜이나 합병에 대해 “시기상조이고 적절하지 않다. 5월 중순까지 용선료 협상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선주들도 채권자로서 채무 재조정에 동참하라는 주문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양사는 이미 발표된 대로 용선료 인하, 사채권자 채무 조정, 협약채권자의 조건부 자율 협약 등 3개 과정을 거칠 예정이다. 양측은 한 달여의 시간을 벌었지만, 만약 협상이 실패하면 사실상 기업 회생절차(법정관리)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지난해 경영 정상화를 위해 대대적으로 자산을 매각하고 1500명 이상의 인력 감축을 단행했던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주채권은행과의 협의로 자구 계획을 마련하고 이행 상황 등을 점검해야 한다.

중소형사인 STX조선은 올 하반기에도 경영 정상화 행보를 지속하거나 회생 절차로 전환하는 방식을 통해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현대상선 신호탄 구조조정 서막
해운·조선 이어 건설·금융 정리 가시화

이밖에 공급과잉업종으로 분류된 철강·유화 업계에서는 기업활력제고법에 따라 개별 기업 또는 해당 산업이 자발적으로 인수·합병(M&A)이나 설비 감축 등의 구조조정 계획을 진행할 방침이다.

우선 건설업계는 한숨을 돌렸다. 건설업종이 정부의 부실기업 구조조정 최우선 순위인 경기민감업종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 기업 구조조정의 광풍에서는 벗어났지만 금융권이 돈줄을 옥죌 경우 부실기업의 자금난이 가중될 우려가 큰 만큼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 경기민감업종으로 선정한 철강과 석유화학, 건설, 해운 가운데 조선과 해운만 경기민감업종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나머지 철강과 석유화학은 과잉공급업종으로 분류해 설비감축과 인수합병(M&A) 등 구조조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건설업은 업종 차원의 조정 대상에서 빠졌다. 정부는 지난해 건설수주액이 전년 대비 48.3% 급증하는 등 건설업 전체의 경영 상태에 당분간 불안요인은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민간건설 부분의 수주가 102조5000억원에 달했고, 지난해 공공부문의 발주량도 전년 대비 8.9% 늘어난 28조8000억원을 기록해 당분간 안정적인 매출이 발생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다른 업종과 달리 건설업에 대한 인위적인 산업재편의 필요성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다만 개별기업 부실 발생 시에는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 원칙에 따라 워크아웃, 회생절차 등 구조조정을 진행하기로 했다. 현재 시공능력순위 100위권 가운데 워크아웃(기업개선절차)이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가 진행 중인 곳은 14개사다. 법정관리가 9곳, 워크아웃이 5곳이다.

또 무자격·부실업체 퇴출시스템 운영과 해외건설 저가수주 방지방안으로 건실한 건설업체 위주로 생존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의 적절한 지원책 없이 결국 건설업계는 기존 금융권이 주도하는 구조조정에 의지할 수밖에 없어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숨 돌렸지만…
자금난 가중

그동안 채권은행 중심의 기업 구조조정은 기업의 재무구조개선만으로 근본적인 정상화를 이루기 어려웠고, 은행도 기업 구조조정 시 당장 대규모 손실이 발생해 한계기업에 대해 여신을 유지하며 처리를 미루는 경향을 보이는 등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건설사를 대상으로 한 대출심사 강화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건설사들도 신용등급 하락으로 회사채 발행이 여의치 않는 등 자금 조달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미 취약 업종으로 분류된 건설사들의 대출잔액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건설사들이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대출잔액은 지난해 3분기 기준 40조3000억원에 그쳤다. 이미 주택업계에서는 은행권의 까다로운 대출규제로 집단대출 거부사태가 속출하며 분양을 늦추거나 취소하는 등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특히나 금융당국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은 대출규제 완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어 집단대출 규제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주택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집단대출 규제로 대출거부, 금리 인상 등 피해를 받은 세대수는 총 4만7000호, 금액으로는 7조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따르면 시공능력평가 30위권의 대기업중 3년째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업체가 9곳이나 이르고, 60위권의 중견 기업들의 평균 부채비율은 300%를 넘어 금융권이나 정부의 자금 지원이 절실한 곳이 많다.

자칫 정부와 금융권의 지원이 조선, 해운에 집중될 경우 건설업 구조조정은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는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된다. 그간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은 ‘기업 회생’보다는 ‘업계 퇴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M&A를 통해 새 주인을 찾지 못하는 이상 기업 회생은 불가능한 상황에 빠졌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건설업종이 경기민감업종에서 제외되며 분위기를 전환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는 했으나, 부동산 경기 침체와 해외시장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결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대상에서 제외돼 그간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건설사의 강도는 더욱 거세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국판 양적 완화
추진에 야당 제동

이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구조조정 방향에 급브레이크를 걸었다. 더민주 지도부들은 박 대통령이 구조조정을 위해 ‘한국판 양적 완화’와 ‘파견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에 대해 지난달 27일 “협조하지 않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박 대통령은 지난 지난달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단 간담회에서 “한국판 양적 완화를 긍정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구조조정에 앞서 국회가 할 수 있는 파견법부터 먼저 통과시켜야 한다”고 발언, 실업대책으로써의 파견법을 강조하고 나섰다.
 

새누리당의 총선공약이었던 ‘한국판 양적 완화’는 한국은행이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증권(MBS)과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의 채권을 사들여, 산은과 수은이 구조조정을 위한 실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판 양적 완화가 이뤄지려면 한은이 채권을 사들일 수 있도록 한은법을 개정해야 한다.

하지만 더민주는 양적 완화가 이뤄지면 대기업만 이득을 본다는 입장이다. 파견법에 대해서도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구조조정은 기업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될 지 모르지만, 그 안에 몸담은 이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실직을 의미한다. 조선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타면서 대규모 인원 감축이 우려되는 가운데, 일자리를 잃게 되는 직원들뿐만 아니라, 정부와 경영진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진영 비대위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정부가 기업구조조정을 빌미로 노동악법을 밀어붙이거나 부실기업 생존 연장에만 몰두한다면 단호히 협력을 거부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7월말 업종별 경영진단 보고서
사실상 부실기업 리스트 담아

진 비대위원은 특히 전날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에서 나온 가이드라인에 대해 “조선과 해운업 사태에 대한 정확한 원인 규명과 정부의 실패에 대한 반성이 없었다”며 “사태 해결을 위한 특단의 대책도, 우리 경제 전반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도 없이 모호함만 가득했다”고 혹평했다.

그는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려면 정확한 원인 진단과 부실·방만 경영 책임자에 대한 문책, 구조조정으로 인한 국민 피해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국민의 걱정을 덜어주고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계획을 정부가 제시한다면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주진형 더민주 전 국민경제상황실 부실장 역시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양적 완화 양적 완화하는데, 거기다 대놓고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지 못하겠다”며 “(박 대통령은)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큰 기업이니까 국가가 돈을 내줘야 한다는 식으로 조건반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라며 “경영진과 주주, 채권단 등이 어느 정도의 손실을 감수하고 분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5대 취약업종 가운데 특히 대규모 실직 우려가 큰 곳은 조선업계.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세 곳 직원만 총 4만4000여명인데다, 협력업체까지 따지면 수십만명의 생계가 달려 있다.

노동계는 구조조정을 앞두고 책임 문제를 들고 나왔다. 한국노총은 성명을 통해 “노동자를 해고하기 전에 경영부실을 초래한 대주주와 경영진들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도 기자회견을 열고, 대주주인 정몽준 전 의원이 개인 재산을 내어서라도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노동부는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되면 정부가 1년 동안 고용 유지 지원금이나 연장 실업수당 등을 지원하고, 전직과 재취업 훈련 등을 돕게 된다.

좀비기업 타깃
강제로 아웃!

구조조정의 큰 틀을 정한 정부는 8월을 주시하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과 부실기업 퇴출의 기준이 될 기업활력촉진법 이른바 원샷법의 8월 시행에 맞춰 사실상의 ‘살생부’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7월 말까지 ‘업종별 경영진단 보고서’를 협회를 중심으로 만들도록 지시했다.

보고서가 나오는 시점에 맞춰 6월까지 ‘기업의 생존과 퇴출’의 기준이 되는 원샷법 실무지침도 만들어진다. 정부는 업종별 보고서와 원샷법 실무지침, 여기에 대기업 신용위험평가까지 나오는 8월을 2차 구조조정의 적기로 보고 있다. 구조조정의 파도가 거세지는 가운데, 오는 8월 또 한차례의 대규모 구조조정의 회오리가 몰아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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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6·3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판을 달구고 있다. 여당 강세 지역인 만큼 민심은 물론 당심까지 한번에 훑어볼 절호의 기회다. 1차 예비경선도 ‘기승전 이재명’으로 막을 내렸다. ‘찐명’ 타이틀을 거머쥘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여당의 이목이 경기도에 쏠리는 이유다.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경기도지사 예비경선을 실시했다. ▲김동연 현 경기도지사 ▲추미애 의원 ▲한준호 의원 등으로 후보가 압축되면서 3강 체제가 굳어졌다. 권칠승·양기대 후보는 고배를 마셨다. 100% 권리당원 투표로 진행된 만큼 오직 당심으로만 결정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현역인 김동연 후보는 행정력을, 추미애 후보는 검찰개혁 선봉자와 6선의 중량감을, 한준호 후보는 친명(친 이재명)계 조직력을 바탕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평을 받는다. 당심 100% 첫 관문 본경선은 다음 달 5~7일 진행되며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2명이 15~17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본경선 투표는 권리당원 50%와 국민 여론조사 50%가 반영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 검찰개혁에 앞장선 추 후보는 강성 지지층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추 후보 역시 이를 동력 삼아 사법 3법(법 왜곡죄, 재판소원법, 대법관 증원법)과 중수청·공소청 설치 법안 강행 처리를 주도했다. 추 후보는 출마 선언을 통해 선명한 개혁과 강인한 리더십을 강조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난지원금과 청년기본소득을 적극 추진하며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수십 년간 지지부진했던 불법 계곡을 정비해 경기도가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던 것처럼 경기도에도 도민을 행정 중심에 놓는 사고의 전환과 강한 결단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 추미애는 개혁이 필요하면 정면으로 돌파했다. 원칙 앞에서 물러선 적이 없었고 어려운 이웃을 외면한 적이 없었다”며 “책임지는 행정, 실천하는 행정으로 경기도정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한 후보는 “경기도가 성공해야 이재명정부가 성공한다”며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 후보는 “이정부의 실용주의를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가장 분명하게 성과로 완성하겠다. 지금 경기도에 필요한 것은 망설임이 아니라 실행, 말이 아니라 결단, 계획이 아니라 책임지는 도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당시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추 후보는 정부를 이끌 리더십을 강조했다면 한 후보는 보조하는 조력자 역할에 방점을 찍었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명심을 내세웠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른 셈”이라며 “민주 당원도 어떤 역할이 이정부 성공에 도움이 될지 저울질하면서 선거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역인 김 후보는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 대통령에게는 일잘러 도지사가 필요하다”며 행정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김 후보는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를 지내던 당시 추진하던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등의 정책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사례를 성과로 제시했다. 김 후보는 “지금 이 대통령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속도와 체감’이다. 좌충우돌, 시행착오로 낭비할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며 자신이 이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국정 제1동반자’임을 거듭 강조했다. ‘강경’ 추 ‘친명’ 한 ‘비명’ 김 앞다퉈 “내가 국정 파트너 적임자” 정치권은 세 사람의 성향이 모두 다른 점에 주목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강성 추미애’ ‘친명 한준호’ ‘비명(비 이재명)이었던 김동연’이 한자리에 모였다. 경기도지사 선거를 빙자한 ‘친명 선발 토너먼트’인 격”이라며 “최종 후보가 선정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민주당 권력이 어디를 향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끼어들 틈이 없다 보니 민주당만의 리그가 됐다. 민주당 최종 후보는 경기도지사직뿐만이 아니라 ‘이재명의 복심’이라는 타이틀까지 얻는 효과를 본다. 민심과 당심의 향배를 모두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세 사람 모두 네거티브 경쟁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예비경선 득표율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후보 측이 “(예비경선) 2위를 확신한다”고 주장하며 불을 지핀 것. 득표율은 후보 본인에게만 공개되지만 본선 진출을 위해 각자 유리한 여론 조성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예비경선이 치러진 다음 날인 23일, 민주당 염태영 의원은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한준호 후보 본경선 전략 브리핑’을 갖고 “당이 후보별 전체 순위와 득표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추정치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서도 “한 후보가 상당히 약진했고,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2위를 했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중요한 것은 현재 수치보다 추세와 흐름”이라며 “경기도민과 권리당원들이 경기도의 미래를 이끌 새로운 지도자의 기준을 바꾸기 시작한 결과가 이번 예비경선에 반영됐다”고 해석했다. 이에 김 후보는 “순위 발표도 안 됐는데 각자 자기주장 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는 권리당원의 당심과 경기도민의 민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의 승리다. 김 후보는 당심이, 나머지 두 후보는 민심에 취약한 만큼 각각 절반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민심과 당심이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만큼 후보들은 전략 수정에 나섰다. 그동안 추 후보는 각종 개혁에 앞장서는 등 강성 이미지를 굳혀왔다. 하지만 강성 이미지는 양날의 검이 돼 2024년 하반기 국회의장 선거 당시 낙선 원인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강성 당심은 추 후보를 밀었지만, 의원 투표 결과 온건파인 우원식 후보가 당선되면서 급제동이 걸린 것. 추 후보는 6선의 중진이지만 이번 경기도지사까지 패배하게 되면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역풍 불라” 완급 조절 이를 의식한 듯 최근 추 후보는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내려놓고 행정가로서의 면모와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다. 추 후보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입법·사법·행정을 골고루 경험한 유일 후보”라며 “입법을 통해 큰 틀 아이디어를 냈다면 이제는 현장에 뛰어들어 성과를 내보고 싶다”고 말했다. 검찰개혁 완수를 본인의 최대 성과로 내세운 추 후보가 법사위원장을 내려놓고 선거에 뛰어든 것 역시 중도를 설득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권리당원 100%로 치러진 예비경선과 달리 본경선은 일반 여론조사와 당원 조사가 각각 50%씩 반영된다. 결국 줄어든 강성 당원의 영향력 만큼 중도층을 최대한 끌어오는 것이 관건이다. 추 후보는 사퇴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7개월간 법사위원장으로서 총 682건의 개혁법안과 민생법안을 처리했다”며 “법 왜곡죄를 도입하는 ‘형법’,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헌법재판소법’, 대법관 증원안이 담긴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 사법개혁 3법과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법안까지 검찰개혁 과제를 완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언제나 제 중심에는 국민이 있었고, 어떠한 가시밭길도 외면하지 않았다”며 “2021년 검찰개혁을 완수하지 못한 채 법무부 장관 자리를 떠나야 했던 무거운 발걸음이 아니라 이처럼 뜻깊은 결과를 여러분께 보고드릴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힘이 되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대한민국의 중심 경기도를 승리로 이끌고 이정부와 함께 국민주권시대를 만들어 내겠다”고 덧붙였다. 한 후보는 오히려 ‘이재명 픽’을 앞세웠다. 이정부를 흔드는 세력을 향해 각을 세우면서 전투력을 강조하는 등 기존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최근 한 후보는 ‘이재명 공소 취소설’의 근원지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대통령의 생각을 자꾸 언급하는 것 자체가 당을 지휘하고 있는 당 대표로서 맞냐는 생각이 있다”며 김어준씨와 정청래 대표 등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여권 갈등의 뇌관이 된 유시민 작가의 ‘ABC론’을 놓고 설전이 이어지기도 했다. 유 작가는 민주당 지지층을 A(가치 중시), B(본인 이익 추구), C(A, B의 교집합) 등 세가지 그룹으로 분류했으며 특히 B그룹은 “이익과 생존을 위해 친명을 자처하는 이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한 후보는 “갈라쳐서 얻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반응했고 유 작가가 재반박에 나섰다. 이후 한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작가님의 말씀, 무겁게 듣고 있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며 “저를 향한 비판과 비난은 기꺼이 감당하겠다. 하지만 이 대통령님과 정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의 모습은 불안한 외줄타기 같다”며 “선은 분명하다. 그 선은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끊지 못한 명 꼬리표 한 후보는 “53% 싸움”을 내세우며 본경선 승리를 위한 지지층 결집을 호소했다. 오는 6월 선출되는 경기도지사의 임기는 4년으로 이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맞물린다. 따라서 이정부와 합을 잘 맞추는, 명심을 잘 꿰뚫는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어야 한다는 게 한 후보 측 지지층의 핵심 메시지다. 한 후보 역시 “‘이재명 지사였다면 벌써 해결했을 일들’을 한준호가 가장 스마트하고 빠르게 해결하겠다”며 “딱 세 표가 부족하다. 나의 한 표에 더해, 가장 가까운 두 분만 더 설득해 달라”고 밝혔다. 김 후보는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1위의 김 후보를 추 후보가 뒤쫓고, 한 후보가 마지막 뒤집기 기회를 엿보는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중부일보> 의뢰로 경기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는 6월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은 결과 김 후보는 25%, 추 후보는 22%, 한 후보는 11%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전화면접조사 방식(CATI)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p, 응답률은 12.7%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김 후보는 당심 100%라는 가장 어려운 관문을 뚫었지만 질긴 비명 꼬리표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의 최대 약점은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본인에게 도움을 줬던 민주당 핵심 지지층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다는 국민 인식이다. 유 작가는 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 “(당시 이재명) 대표한테 붙어 지사가 된 사람이지 않나. 배은망덕”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2024년 임기 후반기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비명 프레임이 굳어졌다. 당시 김 후보는 민주당 전해철 전 의원 등 대표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영입했고, 친명계에서는 “유력 대권후보 주자인 이재명 당 대표에 맞서기 위한 결집 시도” 등 견제가 이어졌다. 김 후보는 표를 분산시키는 친비명 프레임을 깨고 인물론에 승부를 걸었지만 민주당 여론이 심상치 않다. 일부 친민주당 성향 커뮤니티에서 “친명계와 개딸(개혁의 딸)이 벼르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김 후보는 자세를 낮추고 당원에게 호소하는 메시지를 냈다. 2% 부족한 후보들…해법은? 이제 와서 고개 숙인 김동연 김 후보는 예비경선이 시작된 지난 21일 자신의 SNS에 “‘나는 동지들의 헌신에 보답했는가’ 되묻는다. 많이 부족했다”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김 후보는 “경기도의 저력도, 제가 여기에 서 있는 것 자체도, 당원 동지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갚을 길은 하나라고 믿는다. 이재명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저는 선택의 시간 앞에, 당원동지들 앞에 서 있다. 감히 청한다.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뛰어라, 당원의 마음을 명심하고 다시 한번 일하라.’ 저 김동연에게 그 기회를 주십시오. 당원 동지들의 뜻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호소했다. 김 후보는 친비명 논란에 거듭 선을 그었다. 그는 “이 대통령 중심으로 성공한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당의 친명(친 이재명)·비명은 의미가 없다”며 “경기도는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국정 제1파트너로서 충분히 뒷받침하면서, 필요하다면 앞에서 끌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한 후보와 마찬가지로 유 작가의 ABC론을 꼬집었다. 김 후보는 JTBC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가나다’론을 제시하며 “ABC 때문에 논쟁이 벌어진 거 같은데 저는 ‘가나다’로 얘기하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가’는 김대중 대통령을 좋아하는 민주당의 토대다. ‘나’는 그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하고 지지했던 분들, ‘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과 성과로 보여주는 리더십을 좋아하는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BC론이 조선시대 노론이나 소론도 아니고 가나다로 한데 뭉치고 더하는 민주당이 됐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민주당은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가 계파 분열의 초입이 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이에 민주당 원조 친명 핵심으로 꼽히는 김영진 의원은 김 후보를 향한 ‘반명 공세’에 “이 대통령과 어려움을 함께했던 소중한 민주당의 멤버”라며 직접 엄호에 나섰다. 또 김 의원은 2022년 대선 당시 김동연 대선후보(새로운 물결)와의 단일화 과정을 회상하며 “안철수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갔지만 김 후보는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어려운 선거를 함께 뛰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분열은 ‘독’ 친명 지원전 한 민주당 관계자는 김 지사의 화합 메시지와 호소력에 주목했다. 이 관계자는 “골수 친명은 김 후보에 대한 반감이 크다. 김 후보에게 친문 표가 약 30% 정도 있다고 본다”며 “김 지사가 막판에 승리하려면 이 30%를 유지하면서 당원에게 호소하는 전략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친명을 적으로 돌리면 답이 없다. 등 돌린 사람이 있는 곳에 가서 그 사람이 원하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