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공직선거법 허위사실공표죄 개정안의 후폭풍이 심하다. 정치권에서는 각 당의 대선후보까지 날선 비판을 이어가고 있으며 법조계서도 절차상 문제가 많다고 우려 중이다. 윤석열정부 내내 지속된 야권의 독단적인 법안 통과에 새로운 정권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권이 발의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의 요건에서 ‘행위’를 삭제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결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었다. ‘이재명 살리기’라는 정치권과 법조계 비판에도 강행한 것이다.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법사위는 지난 14일 전체회의를 열고 현행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1항의 요건 중 ‘행위’를 삭제하는 개정안을 가결했다. 개정안은 국민의힘의 반대 속에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찬성 표결로 통과됐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1항은 선거 당선을 목적으로 연설·방송·통신 등의 방법으로 출생지·가족관계·직업·경력·재산·행위 등에 관한 허위사실 공표를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요건이라 기소 남용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어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해당 개정안을 꺼낸 이유는 대법원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지난 1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전원합의체는 “2심이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차장과 관련한 ‘골프 발언’과 백현동 발언 부분을 무죄로 판단한 것은 공직선거법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끼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전원합의체는 이 후보가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과 골프를 쳤다는 의혹에 관해 ‘사진이 조작됐다’는 취지로 발언한 부분은 허위 사실 공표가 맞다고 판단했다. 백현동 용도변경과 관련해서도 “국토부가 성남시에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한 사실이 전혀 없는데도 피고인이 허위 발언을 했다”며 유죄로 인정했다.
1심은 이 후보에게 공직선거법상 피선거권 박탈형인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후보가 관련 의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고의로 기억과 다른 발언을 했다며 ‘김 전 처장과 골프를 한 적이 없다’ ‘국토부 압박으로 백현동 부지 용도를 변경했다’는 취지의 이 후보 발언을 모두 허위 발언으로 인정했다.
반면 항소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김 전 처장 관련 발언들이 ‘인식’에 관한 것으로, 허위 사실 공표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백현동 발언에 대해서도 “단순 의견을 표명한 것이므로 처벌할 수 없다”며 원심을 깼다.
파기환송 후 법사위까지
이전과 다른 대법원 입장
하지만 대법원은 대법관 12명 중 10명의 다수 의견으로 2심 판단을 뒤집고 두 발언 모두 허위 사실 공표로 판단해야 한다며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이흥구·오경미 대법관 두 명만 반대 의견을 냈다.
대법원은 그간 정치적 표현의 자유 보장을 이유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의 처벌 범위를 점점 좁게 해석해 왔다. 그러나 이번 판결서 선거인의 알권리와 그를 바탕으로 한 선거권 등 국민의 기본권을 더 강조하며 그간의 판례 경향과 다른 판단을 내놨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이 나오자 즉각 개정안을 발의했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다.
대법원은 그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를 적용해 처벌하는 것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이 같은 입장을 드러낸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역설적이게도 경기도지사 시절의 이 후보 사건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020년 ‘친형 강제 입원’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말한 혐의로 기소된 이 후보의 사건을 무죄 취지 파기환송했다.
이 후보는 2018년 경기도지사 후보자 TV 토론회서 김영환 당시 바른미래당 후보가 ‘형님을 보건소장 통해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했죠’라고 묻자 “그런 일 없다”고 부인했다.
원심(2심)은 유죄로 판단해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으나, 당시 대법원은 적극적으로 나서 허위 사실을 알린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질문에 반론하는 과정서 부정확하게 답변한 것이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하는 답변 또는 일부 부정확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표현을 곧바로 허위라고 평가하는 것은, 형벌 법규에 따른 책임의 명확성, 예측 가능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
뭐길래…
그러면서 토론회서의 발언이 다소 왜곡될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정치나 선거를 통해 단죄돼야지, 법의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면서 무죄 판단을 내렸다.
이후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공직 후보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허용 범위는 계속 넓어졌다. 이 후보의 과거 판결은 최근 무죄가 확정된 이학수 정읍시장 사건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시장은 2022년 지방선거서 상대 후보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가 기소돼 1·2심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후보의 2020년 판례를 인용해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며 파기환송했다. 이 시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지난 3월, 이 후보의 ‘김문기·백현동’ 발언 관련 선거법 위반 2심 무죄 판결에 다시 인용됐다.
대법원의 이 같은 입장은 정치인이 허위사실 공표로 처벌된 사례가 적다는 것에도 드러난다.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로 유죄가 확정된 대표적 사례는 국가혁명당 허경영씨다. 그는 2022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TV 방송 연설서 “나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양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선 정책보좌관이었다”고 주장했다가 대법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다. 10년간 피선거권도 박탈됐으나,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함으로써 징역살이는 면했다.
허씨는 2007년 대선 때도 “대통령이 되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결혼하기로 했다”고 주장해 그때도 피선거권 10년 박탈에 해당하는 중형이 선고됐다.

이 밖에도 허위사실 유포로 처벌받은 사례는 2023년 벌금 80만원이 선고된 조국혁신당 최강욱 전 의원과, 2008년 벌금 300만원이 선고돼 의원직을 잃고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 이무영 전 의원이 있다.
이번 개정안으로 정치권에선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다른 당 대선후보인 김문수·이준석 후보 모두 이 후보를 겨냥해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허경영도
유죄 확정
국민의힘 김 후보는 지난 15일 “세계 역사상 이런 독재자가 있었느냐. 법을 바꿔서 살겠다고 하는, 전 세계 오직 한 사람은 이재명”이라며 “이런 사람을 응징하지 않는다면 정치가 왜 필요하고 왜 민주주의를 외치나. 이건 국기문란 행위”라고 지적했다.
개혁신당 이 후보 역시 같은 날 “이재명 후보가 만약 대통령이 돼서 행정권을 장악한다면, 이제 사법부만 장악하면 본인이 실질적으로 모든 헌법적 권한을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래서 사법부를 장악하기 위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고, 결국 권력장악에 대한 욕심”이라고 일갈했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강하게 반발했다. 검사 출신의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 선거에 유리하도록 만드는 법안이자, 이재명 후보 한 명을 위해 선거제도를 완전히 망치겠다는 것”이라며 “(구성 요건상)‘행위’를 없애면 자신의 과거 실적을 막 떠들고 다녔어도 없던 일로 해버리면 처벌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김혜지 중앙선대위 상근부대변인은 논평서 “대법원이 이재명 후보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해당 법 조항을 손봐서 면소로 만들겠다는 의도 아니냐”라며 “차라리 ‘이재명 무죄법’을 만들라”고 꼬집었다.
김 상근부대변인은 “선거서 허위 사실을 퍼뜨리고도 처벌받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고, 결국 선거판 전체를 거짓과 왜곡으로 오염시키겠다는 것”이라며 “법이 더 이상 국민을 위한 기준이 아니라 특정 정치인을 위한 맞춤형 방패가 됐다”고 비판했다.
지난 1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서도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내놨다. 김용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선거의 공정성을 해하는 부분에 국한해서 ‘행위’의 개념을 정립시킬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반면, 판사 출신인 민주당 박희승 의원은 “저도 선거법 재판을 많이 해봤지만, 허위사실 공표죄는 정치의 사법화를 이끄는 가장 대표적 독소조항”이라며 “정치적으로 많이 악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과 법조계 우려
“야권 독단…입법 과속”
법조계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법부가 형해화돼 삼권분립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충분한 논의와 국민 의견수렴 절차 등을 거치지 않은 채 법안이 통과됐다는 점에서 절차상 문제가 많다는 비판이 나온다.
검찰 출신 안영림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인증 형사법 전문)는 “대법원서 사회의 변화를 고려해 처벌 여부를 결정하면서 판례가 바뀌며 처벌 규정이 없어지는 경우는 있었다. 그러나 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한 명분이 없는 상황서 이재명 후보를 위해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고도의 법 논리자들만이 할 수 있는 입법을 추진한 셈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을 뽑을 때 어떤 것을 보고 뽑아야 하는지 기준을 잃게 될 것”이라며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 선거에 유리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준범 법률사무소 번화 대표 변호사는 “법원은 존재하는 법을 해석하는 기관이기에 입법부에서 공직선거법 처리를 강행하더라도 특별히 할 수 있는 조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개정안 통과 후 가장 우선 적용될 것으로 점쳐지는 인물이 이재명 후보다 보니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는 비판이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같은 입법이 계속 만들어지면, 사회 정의가 무너지게 될 수밖에 없다”며 “일각에선 허위사실 공표죄가 정치 사법화를 이끄는 독소 조항이라고 하는데, ‘공직선거 후보자가 거짓말을 해도 되느냐’는 반론에 답하는 게 우선”이라고 부연했다.
한국부패방지법학회 상임이사인 김소연 변호사는 “허위사실 공표죄서 행위를 없애는 것은 법 자체를 없애는 것과 같다. 선출직 공무원들에게 일반 국민들보다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며 “소급 적용돼서 오래전부터 피선거권이 박탈돼 선거를 치르지 못한 사람들 입장에선 매우 억울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민 의견
수렴 패싱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입법 과속’을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패싱’한 채 대권 시계만을 의식해 법 개정을 무리하게 추진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지난 6일 “법이 문제였다면 진즉 (개정안을) 만들었어야지 (이 후보가) 걸리니까 법이 문제라고 한다”며 “지금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법은 보편적 적용을 위한 것이지 자기들의 특수한 이익에 따라 이리 만들고, 저리 만들고 하는 게 아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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