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국민의힘이 대선을 불과 3주 앞두고 후보 단일화 문제로 깊은 내홍을 겪고 있다. 당 지도부가 특정 후보를 두고 단일화를 강요하고, 심지어 원내대표가 단식농성에 돌입하는 초유의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에 공정과 중립을 지켜야 할 당 지도부가 오히려 편향된 입장서 당내 민심과 국민 여론을 무시한 채 일방적인 결정을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7일, 김문수 대선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 간 단일화 논의가 무산되자 국회서 열린 의원총회서 “단일화 없이 승리는 없다”며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권 원내대표는 “두 후보 간의 만남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며 “후보 등록이 11일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오늘(7일)은 선거 과정서 혼선을 최소화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가 불과 27일 남았다. 이제 남은 시간이 없다”며 “이재명 세력은 공직선거법상의 허위 사실 공표죄를 사실상 폐지하고 대법원장 탄핵까지 공언하면서 대한민국 헌정 질서의 마지막 숨통까지 끊어버리려고 한다. 반면 우리는 단일대오조차 꾸리지 못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경선 당시 김 후보는 신속한 단일화를 약속했다. 우리 당의 많은 의원 역시 이 약속을 믿고 지지 선언을 했다”며 “정치인이, 그것도 최고 정치를 지향하는 정치인의 중대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에게는 이재명 세력의 집권을 막아내야 할 역사적, 시대적 책무가 있다”며 “신속한 단일화를 통해 대오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식농성에 돌입하는 이유에 대해선 “더는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라고 호소했다.
이날 권 원내대표의 단식농성 돌입은 당 안팎서 지도부가 스스로의 기준으로 ‘약속 이행’을 재단하며 후보를 압박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단일화는 당원과 국민의 판단에 맡겨야 할 사안인데,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김문수-한덕수’ 틀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선거를 앞두고 당 지도부가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당원과 유권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며 “지도부가 특정 후보를 옹립하려는 의도로 보일 경우, 오히려 당의 결속력을 약화시키고 국민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단식은 국민 앞에서 책임 있는 자세로 문제를 제기할 때 쓰는 방식인데, 지도부가 이미 결론을 내린 뒤 형식적인 절차를 따르는 것은 오히려 정치적 연출로 비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권 원내대표의 단식 발표 이후, SNS와 정치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지도부가 후보를 정해놓고 국민 앞에서 연기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후보 경선 과정서 당원과 국민여론조사를 통해 원칙을 내세워 왔으나, 권 원내대표의 이 같은 행보는 공정한 절차와 민주적 가치에 배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선을 불과 20여일 앞둔 시점에 당 지도부가 특정 후보에게 단일화를 강력히 촉구하고 단식농성까지 벌이는 것도 전례가 드문 일이다.
결국 권 원내대표의 단식농성은 ‘대선 승리’라는 명분 아래 당 지도부가 공정성을 훼손하고, 당내 갈등을 조장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는 8일, 당 지도부를 향해 “강제 후보 단일화라는 미명으로 정당한 대통령 후보를 끌어내리려는 작업에서 손 떼라”고 거듭 촉구했다. 다만, 한 예비후보와의 단일화 추진 의사는 여전히 있다는 입장이다.
앞서 당 지도부는 전날 김 후보와 한 예비후보의 회동이 사실상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자, 심야 의원총회를 열고 자체 ‘단일화 로드맵’을 의결했다.
로드맵에는 이튿날(8일) 오후 6시 양자 토론회를 진행하고, 이후 7시부터 9일 오후 4시까지 당원투표(50%)와 일반 국민여론조사(50%)를 실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김 후보는 “후보의 동의를 받지 않고 당이 일방적으로 정한 토론회는 불참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아울러 당 지도부의 강제 단일화 압박이 계속될 경우, 법적 대응의 가능성도 예고했다.
이날 심야 의원총회에서는 지도부의 강경한 단일화 추진 방식에 대한 비토 목소리가 쏟아졌다. 당 지도부가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된 것이다.
5선 중진으로 당 대표를 지냈던 김기현 의원은 “당헌·당규에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사항을 억지로 확대 해석해 단일화를 강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나경원 의원(5선)도 “단일화를 억압적으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 한덕수 후보가 사퇴하더라도, 우리 당을 지지하고 함께 연대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강압적인 방식보다는 설득과 협력을 통한 단일화를 촉구한 것이다.
무리한 단일화 강행으로 인해 후보를 내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주호영 의원(6선)은 “(김 후보가 단일화에 반발해)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할 경우, 우리 당은 후보를 아예 내지 못할 수도 있다.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정치적 선택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므로, 신중하고 안전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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