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TV> “첩보 삭제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입 연 박지원 전 국정원장

[기사 전문]

김대중정부 시절부터 한국 정치계의 내로라 하는 순간에 함께했고, 파란만장한 검찰 조사의 역사를 살아냈으며, 그럼에도 결국 “정치는 상식”이라고 일갈하는 인물.

최근에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첩보 보고서를 삭제한 혐의로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일요시사>는 박지원 전 국정원장을 만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비롯한 여러 현안에 대해 물었습니다.

 

Q. 간단한 자기 소개.

소개할 필요 없는... 제가 유명한 박지원입니다.

 


Q. 대통령 지지율 하락, 어떻게 생각하나.

저는 맨 처음 윤석열 대통령께 네 가지를 고치십시오.

첫째는 '인사', 이게 잘못되어 갑니다.”

검찰공화국, 특히 남북 분단과 동서 갈등이 심화된 게 우리 한국 사회의 문제인데.

'실력 위주로 한다' 해서 특정 지역을 완전히 배제해버리면 그 지역 사람들은 실력이 없는가?

두번째로 제가 말씀드린 게 지금 얘기한 도어스테핑.

“신선하고 소통의 모습이 좋지만, 반드시 실수가 나옵니다”


세 번째는 김건희 여사의 공적 관리가 필요하다.

비록 선거 때 (제2부속실 폐지)공약을 했다 하더라도 국민의 양해를 구해서 부속실을 만드는 게 좋다.

네 번째, 제가 가장 중요하게 얘기했습니다.

사정(공직자 및 기관 감찰)은 하시라고. 그렇지만 간단하고 신속하게 해라.

경제, 물가를 잡는 대통령으로 가야 성공한다.

김영삼 대통령이 사정을 강하게 해 가지고 국민의 박수를 받고 지지도가 90% 이상 넘어갔지만 경제를 망쳐서 IMF 외환위기가 왔다.

김대중 대통령은 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서 국민에게 고통 분담을 눈물로 호소했고, 국민 통합을 이뤄 장롱 속에 숨겨놓은 애들 돌반지까지 내서 위기를 극복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실패한 김영삼 대통령의 길을 가지 말고 성공한 김대중 대통령의 길을 가라.”

내각과 대통령실의 인적 개편이 최소한 곧 있지 않으면 국민들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저는 그렇게 봐요.

 

Q. ‘현 정부가 이전 정부 탓만 한다’는 비판이 있는데.

선거 때야 문재인정권을 비난하고 탓할 수밖에 없지만, 대통령이 되어서 삼라만상을 문재인정부 탓하고 있는데...

이것도 국민들의 지지를 잃게 하는 큰 요인 중의 하나입니다. 누구 탓하지 말아야 해요.


‘세계 경제가 나쁘니까. 미국 물가가 올랐으니까 우리 물가도 오른다’ 우리 국민들이 납득할 것 같아요?

코로나가 세계적으로 다시 창궐하니까 우리도 창궐한다? 이건 안 먹혀요.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겠다’ 그런 미래지향적인 처방과 비전을 내세워야지, 과거 탓하지 말라 이거죠.

역대 정권이 다 그랬어요.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혁명의 산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청산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예요.

국민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정부의 잘못을 고치겠다”고 했으면... 국민들이 정권교체를 해주고 윤석열 대통령을 선택했으면, 그걸 믿은 거 아니에요.

그런데 지금까지 ‘어떻게 하겠다’ 없이 전부 문재인정부를 탓하면 그게 되겠냐는 거죠.

 

Q.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의 징계에 대해.

토사구팽된다고 했잖아요, 제가. 이준석 대표로서는 억울하죠.

30대 촉망받는 청년이 보수 야당에 가서 2030세대의 지지와 혁신을 해서, 정권교체를 해서 윤석열 대통령을 당선시켰고 지방선거에 압승을 해줬는데… 그전에 얘기됐던 성상납 문제가 이제 와서 징계를 받은 것은 억울하겠죠.

그렇지만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에서 징계한 건 사실이에요.

자기가 승복 못하면 재심을 청구하든 법적으로 가야죠.

저는 이준석 대표가 당의 결정에 순종해야 된다(고 봐요).

그리고 자기 길을 가는 거죠. 개척해서.

 

Q.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김규현 국정원장의 고발은 무슨 명목으로 이뤄졌나.

무엇으로 고발했는지 그것도 몰라요.

최소한 “전직 국정원장님을 이렇게 고발합니다” 하고 전화 한마디라도 해야 되는데, 그 예고도 안하고 “고발됐다”고 하니까.

기자들한테 그 내용을 들어서 그때그때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할 뿐이에요.

김규현 원장이 이제 취임한 지 한 달여 되는데, 원장은 아직까지 동서남북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리고 검찰 간부들이 국정원에 많이 들어갔어요.

이 검찰 간부들이 검찰의 시각으로 국정원 정보기관의 잣대를 대고 있지 않은가.

저를 고발해서 국방부에서 발표했잖아요.

MIMS(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 SI정보체계, 국방부가 관리하는데 어떻게 국정원장이 삭제합니까?

이 군사 기밀이 다 만천하에 공개되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첩보보고서를 삭제했다’

첩보보고서도 국정원은, 모든 직원들이 쓰는 PC는 메인서버에 자동적으로 저장이 돼요.

삭제를 지시했어도 (기록이)남아 있고, 삭제됐어도 나와 있고.

‘나는 삭제를 지시한 적이 없다’ 그랬더니 뭐 ‘청와대 지시받고 했다.’

또 이제는 ‘내가 비서실장한테 지시해서, 그 비서실장이 담당자에게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그런 적 없어요. 그런데 압수수색을 했다고 하면 그러한 것이 나와 있을 거예요.

저는 박지원, 서훈 두 전 원장을 본인들에게는 아무 소식도 없이 검찰에 고발하는 것을 보고, '문재인 정부를 용공, 친북 정부로 규정해서 보수정권이 본격적으로 차례로 사정을 시작한다' 이렇게 느꼈습니다.

국정원이 하는지 검찰이 하는지 모르지만 언론 플레이 계속 하잖아요.

마치 국민이 믿을 수 있게끔 오늘은 이 언론사에 주고, 오늘은 저 언론사에 주고... 그러면 언론사는 ‘단독’으로 보도하고, 다른 언론사는 저한테 전부 물어서 또 보도를 하고.

이게 민주주의 국가에서 인권을 중시한다고 하면, 고발이 됐으면 저에게 무슨 내용으로 고발됐는지 알려줘야 되잖아요.

안 알려주고 있어요. 뭔지 몰라요.

저도 이번에 처음으로 MIMS라는 정보 체계를 알았어요. 국정원에도 와 있대요.

그러면 국방부 발표는 그거예요.

자기들이 (MIMS를)관리하는데, 전 군에 다 깔려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어떠한 SI에 대해서는 열람을 제한하는 거지, 삭제가 아니다.

그러면서 국방부가 뭐라고 했어요?

"MIMS는 우리가 관리하는데 어떻게 국정원장이 삭제했다고 해서 우리 군사 비밀 체계가 다 이렇게 탄로나게 하느냐. 오히려 국정원을 조사하겠다” 하니까 이제 “첩보보고서를 박지원이 삭제했다” 그런 얘기입니다.

근데 제가 첩보보고서를 삭제한 적도 없고 첩보보고서가 생산되면 메인 서버에 남아요.

내가 삭제 지시를 해도 남아요. 삭제를 해도 남아요.

내가 왜 그 짓을 합니까?

 

Q.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당시의 상황은?

그걸 제가 설명하면 국정원법 위반이 돼요.

밝힐 수가 없죠.

하나 분명한 것은 7시간 SI, 제가 본 적이 없어요.

 

Q. 마지막 남기고 싶은 말.

저는 정치인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호남, 민주당, 김대중을 위해서 정치활동을 할 것이고,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조언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창당한 민주당... 저의 혼이 있는 민주당이 잘 해서 총선 승리를 하고 정권교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런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총괄: 배승환
취재: 차철우
기획: 강운지
촬영&구성&편집: 김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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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단독기획> 26년 만에 다시 꺼낸 산업증권 파산의 비밀(상)

[창간특집 단독기획] 26년 만에 다시 꺼낸 산업증권 파산의 비밀(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997년 말 국가부도 상황이 벌어졌다. 기업이 줄줄이 도산했고 수많은 근로자들이 길거리에 나앉았다. 자본금 수천억원, 국책은행을 뒷배로 둔 대형 증권사들도 고꾸라졌다. ‘절대 망할 리 없다’던 회사의 붕괴는 30여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피해자의 마음에 상흔으로 남아 있다. 산업증권 ‘파산의 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08년 10월2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공성진 의원이 한국산업증권(이하 산업증권) 파산 문제를 언급했다. 당시 공 의원은 “산업증권이 IMF 위기 시에 불·탈법적으로 강제 파산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산업증권은 한국산업은행(이하 산업은행)이 자본금을 100% 출자해 설립했다. 산업은행이 산업증권의 1인 대주주였던 셈이다. 망하지 않는다 이날 국감에서는 산업증권이 파산에 이르는 과정서 일어난 일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공 의원은 ▲산업증권 해산 과정서 이사회와 재정경제부의 허가 여부 ▲산업증권을 파산으로 끌고 간 1041억원 ▲개인명의의 계좌 ▲개인 계좌를 통해 한국산업선물로 흘러간 54억원 등에 대해 질의했다. 1998년 산업증권 해산 이후 10년 만에 당시 상황이 국감에 언급되면서 각종 의문이 제기됐다. 특히 개인명의의 계좌를 통해 오고 간 자금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됐다. MB(이명박)정부 들어 처음 열린 국감서 산업증권 파산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자 일부 언론은 이전 정부의 비자금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국감에 증인으로 참석한 이충현 전 산업증권 채권관리팀장은 여전히 사건을 추적하고 있다. 현재 서울 강서구의원으로 활동 중인 그는 “외환위기 당시 좌파 정부의 고위관료들은 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범죄적 구조조정과 부정부패로 천문학적 비자금을 조성하고 나라와 국민에게 회복 불능의 상처를 남겼다”고 일갈했다. 이 구의원은 산업은행에 근무하다가 산업증권 설립과 동시에 이직했다. 그는 산업증권이 파산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피해자이고 ‘강제파산’ ‘사기파산’ 의혹을 제기한 제보자, 산업증권강제퇴출피해대책위원장이자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원고로 26년을 보냈다. 그사이 소송서 패소했고 법적 시효는 끝났다. 그럼에도 이 구의원을 비롯한 피해자들은 산업증권 파산 사건을 놓지 못한 상태다. 산업증권에 근무했던 직접 피해자와 가족 등이 일한 간접 피해자들은 “IMF 사태였다고 해도 산업증권이 망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개인을 고객으로 하는 일반은행이 아니라 산업자본 조달을 위해 설립된 국책은행을 등에 업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산업증권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망했다. 400여명의 근로자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다. 문제는 1997년 12월 IMF 사태 이후 1998년 해산, 1999년 파산 선고 때까지 석연치 않은 의문이 여럿 나온 점이다. 특히 청산 절차가 시작된 이후 개인명의 계좌를 통해 자금이 움직인 증거가 나왔다. 이 구의원이 가지고 있는 71개의 이른바 ‘비밀 통장’의 존재가 드러난 것이다. 산업증권은 ‘산업은행이 발행하고 있는 산업금융 채권의 원활한 소화 및 국제업무 특화’를 목적으로 1991년 4월 설립됐다. 산업은행이 100%를 댄 초기 자본금은 1500억원에 달했고 1992년 11월 1000억원, 1998년 3월 1500억원을 증자해 1998년 7월25일 해산 당시 산업증권의 자본금은 4000억원에 이르렀다. IMF 사태로 증권사 강제 퇴출 산업은행 1인 대주주로 안정성↑ IMF 사태로 휘청이긴 했지만 산업증권은 명예퇴직, 임금 반납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통해 상황을 개선하려 했다. 산업은행 역시 산업증권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증자하는 등 위기 타파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산업증권 본사에서 근무하던 이 구의원과 지방 지점에 있던 김영수(가명)씨는 “회사에 큰 문제는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기류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98년 5월 산업은행에 새 총재가 부임하면서부터다. 특히 언론을 통해 ‘산업증권 연내 폐쇄’가 발표되자 내부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고객과 채권자들은 동요했고 예금인출을 서두르는 등 대혼란이 일어났다. 당연히 신규영업도 줄어들었다. 영업 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2개월 뒤 1998년 7월 산업은행은 산업증권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해산결의를 진행했다. 이후 1999년 2월 산업증권의 청산인은 ‘부채 초과 및 지급불능’을 이유로 파산선고를 신청했고 같은 해 3월13일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산업증권은 파산했다. 연내 폐쇄 발표부터 파산까지 채 1년이 걸리지 않은 셈이다. 이 구의원에 따르면 산업은행의 산업증권에 대한 해산결의는 노동조합과의 퇴출 위로금 규모를 합의하는 사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산업증권의 노조위원장과 산업은행의 대표이사, 부총재 등이 퇴출 위로금으로 24개월치 임금을 지급하기로 구두 합의를 진행하는 과정서 해산이 결정됐다. 당시 산업증권 대구지점서 근무하던 김영수씨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명예퇴직으로 나간 직원들은 20개월치 월급을 받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산업증권이 망한 이후 나간 직원들은 퇴직금 수준의 돈만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산업증권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명예퇴직을 신청하지 않았다.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이 구의원은 2010년 5월 산업증권 파산으로 직장을 잃은 피해자를 모아 산업은행, 금융감독원, 전 산업은행 총재와 부총재, 산업증권 청산인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산업증권 파산 과정서 피고들의 불법행위가 자행됐고 이로 인해 피해자(직원)가 생겼으니 이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해달라는 취지다. 수장 바뀌고 급변한 기류 이 구의원은 “먼저 산업은행의 산업증권에 대한 해산결의가 적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또 파산 신청의 원인이 된 자본잠식 상황은 조작됐고 1041억원의 대지급도 실제 진행됐는지 여부가 불분명하다. 무엇보다 산업증권 해산결의 이후 만들어진 수십여개의 개인명의 계좌와 이를 통한 자금흐름은 사기파산, 강제파산의 가장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1999년 2월 산업증권 청산인 명의로 서울지방법원에 제출한 파산선고신청서를 보면 ▲지급불능 ▲채무초과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1500억원에 달하는 산업은행의 유상증자, 대규모 인원 정리, 조직 슬림화 등 자구 노력에도 수습이 안 될 정도로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또 회계법인의 실사 결과 부채가 자산보다 많다는 점도 명시했다. 반면 이 구의원은 결산보고서와 회계법인이 청산 가치 기준으로 작성한 조사보고서를 근거로 해산일 기준(1998년 7월25일) 자산이 부채보다 약 100억원가량 많다고 주장했다. 일반 채권자에게 변제해도 돈이 남는 만큼 파산이 아니라 청산 형태로 종결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산업은행은 청산이 아닌 파산의 방식을 택했다. 청산은 재산관계를 정리해 이를 분배하는 절차를 뜻한다. 파산은 회사의 총 재산을 총 채권자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절차다. 파산은 법원의 결정에 따라 진행된다. 산업증권이 청산으로 마무리됐다면 산업은행은 유일한 대주주로서 손해를 피할 길이 없다. 하지만 법원이 파산 결정을 내리면서 산업은행은 대주주이면서 채권자가 됐다. 산업증권의 파산과 관련해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1041억원’의 존재다. 산업은행이 산업증권에 빌려준 단기자금으로 파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돈이다. 산업증권은 1998년 7월28일 ‘1998년 7월25일자로 회사 해산을 결의하고 청산 절차를 진행하던 중 1998년 7월27일 교환에 회부된 어음(금액 1041억원)을 결제하지 못해 1차 부도 조치를 당했다. 자체 자금 조달도 어려우니 추가 자금 지원을 부탁한다’고 산업은행에 요청했다. 의문점 많아 국감서 다뤄 산업은행은 이 돈을 산업증권 대신 갚았다(대지급). 다시 말해 산업증권이 산업은행에 빌린 돈을, 산업은행이 산업은행에 갚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산업은행이 대지급한 1041억원은 산업증권의 채무로 잡혔다. 이 과정서 부채가 자산보다 늘어나면서 산업증권 파산의 원인, 채무초과 상태가 됐다. 실제 회계법인이 작성한 1998년 10월31일 기준 산업증권의 부채는 2190억원, 자산은 1950억원이다. 부채가 자산보다 240억원 많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산업증권의 파산을 선고했다. 240억원이 산업증권 파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그 후폭풍은 400명이 넘는 산업증권 직원에게 미쳤다. 이 구의원은 산업은행이 대지급했다는 1041억원이 실제 거래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산업증권은 대지급 요청문서 ‘산업증권 청산 절차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라고 기술했고 현금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돼있지만 실제로 산업은행은 산업증권에 1041억원을 신규 지원한 사실이 없고 내부 문서에도 신규 추가지원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구의원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파산 절차 과정서 ‘사후관리대지급금’으로 1041억원을 파산채권으로 신고해 2009년 5월 기준 파산채권의 100%를 돌려받았다.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단 한 푼의 손해도 없이 대신 지급한 돈을 전부 회수한 것이다. 1041억원의 진실은 현재로선 알기 어렵다. 법원의 허가로 산업증권 메인 전산 서버가 파기된 상태기 때문이다. 다만 산업증권 청산 절차 과정서 개설된 통장은 실물로 존재한다. 이 구의원은 71개의 통장을 산업증권 전 직원에게 전달받아 보관해 왔다. 이 구의원은 해당 계좌들을 통해 수천억원에 이르는 자금이 움직였고 일부는 사용처도 불분명하며 최후의 사용처를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비자금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문제가 제기된 부분은 또 있다. 산업증권과 같은 날인 1998년 7월25일 청산 절차에 들어간 한국산업선물(이하 산업선물)에 송금된 54억원의 성격이다. 산업선물은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금융 선물거래를 위해 설립됐다. 파산으로까지 이어진 산업증권과 달리 산업선물은 1998년 정상영업이 시작되기 전에 청산 종결 처리됐다. 그런 회사에 1998년 8월11일 개인 명의의 계좌서 54억원이 이체된 것이다. 이 구의원은 “산업선물은 자본금 100억원의 회사로 산업은행 해산 당시 정식으로 영업개시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무엇보다 1998년 5월 산업증권 연내 폐쇄 발표가 난 상태서 산업선물에 54억원이라는 거액을 입금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1998년 7월부터 시중은행에 개설된 통장은 모두 개인 명의로 돼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계좌 명의자 가운데 2명이 산업증권에 대한 특별검사(1998년 7월25일~8월11일)에 투입된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검사역이었다는 점이다. 직원 400여명 한순간에 길거리로 법적 판단 끝났어도 문제 제기 중 이 구의원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서 피고 측은 “1998년 당시 고객예탁금은 한국증권금융주식회사에 별도로 예치 관리되는 현행 제도와 달리 증권회사의 고유재산과 구분해 관리되지 않았다”며 “금감원(피고)은 특별검사 기간 중 고객예탁금을 안전하게 고객에게 반환되는 것을 보장하는 적법한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IMF 사태로 금융회사 파산이 일어난 것은 1998년 이전에 없던 일로 제도가 미비했고 방법을 찾던 중 금감원 검사역의 개인 명의를 이용, 계좌를 개설해 이를 고객예탁금 관리 용도로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계좌를 개설했던 2명의 검사역 가운데 1명은 금감원에, 또 다른 1명은 증권사 감사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 명의 계좌와 관련해서는 2008년 국감서도 다시 한번 언급된 바 있다. 국감서 공 의원은 2명의 금감원 검사역 외 계좌를 만든 또 다른 개인 명의자에게 “누구의 지시로 개인명의 계좌를 개설했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해당 인물은 “금융감독검사국 직원들 지시로 그렇게 했다”고 답했다. 공 의원이 거듭 “산업증권의 자금을 개인, ○○○(명의 당사자)의 이름으로 관리하게 된 것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해당 인물은 “감독 당국의 지시에 의해서 한 것이다. 개인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은 2011년 이 구의원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며 피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총 주식을 한 사람이 소유하는 이른바 1인 회사의 경우에는 주주총회 소집 절차를 밟지 않거나 총회를 개최한 사실이 없다고 하더라도 1인 주주에 의해 의결이 있었던 것으로 주주총회의사록이 작성됐다면 그 내용의 결의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고 그 결의는 유효하므로 해산결의가 무효라거나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산업은행이 산업증권의 해산을 결의하는 과정이 절차적으로 하자가 없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해산결의 절차가 적법하고 유효한 이상 근로자에 대한 해고도 위법하지 않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또 소송을 제기한 시기가 사건 발생일 이후 10년이 경과된 상황이라 손해배상채권 시효가 소멸됐다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이 구의원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법적인 판단은 끝난 셈이다. 정치적 이유 끝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구의원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고 나섰다. 이 구의원은 2012년 법적 판결이 확정된 이후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해왔다. 현재 이 구의원이 용산 대통령실에 넣은 청원은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 반부패공공범죄수사과 등을 거쳐 금감원으로 이송된 상태다. 이 구의원은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았다면 인수합병, 매각 등의 방식을 써도 됐을 일이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1인 대주주라는 점을 이용해 산업증권을 없애버렸다. 산업증권의 파산이 정치적인 목적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정부가 산업증권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고르면서 429명의 직원과 그 가족들은 지금까지도 고통받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