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보다 더 비싼' 황금 번호판 뒷거래 실상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11.23 13:16:20
  • 호수 13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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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 넘버 ‘1111 2000만원’ 부르는 게 값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1111, 2222 등 희귀한 차량번호들은 이목을 끌기 마련이다. 이른바 ‘포커 번호’라고 불리는 이 희귀 차량번호들은 구하기도 힘들뿐더러 상당히 고액에 거래되고 있다. 비싼 가격에도 ‘눈에 잘 띄는’ 희귀 번호를 구하려는 사람이 늘면서 가격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숫자가 주는 의미는 상당하다. 1990년대 삐삐가 전 국민의 필수품이었을 때 숫자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예를 들면 8282는 빨리빨리, 486은 사랑해, 1004는 천사란 뜻이다. 이처럼 숫자에 의미가 부여되면서  삐삐용어란 말도 생겼다.

‘좋은 번호’
특별한 배열

삐삐 시대가 지났어도 숫자가 가지는 힘은 생각보다 막강하다. 이삿짐센터 전화번호는 2424, 부동산 중개업체들은 4989가 유리해 해당업계에선 국룰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음식점 배달 전문업체는 8282, 콜택시는 8255 번호를 선호한다. 

우리 일상에선 전화번호에서부터 자동차 번호판, 아파트 동·호수, 집 번지, 생년월일, 은행 계좌번호, 비밀번호 등이 언제부턴가 자신을 간접적으로 표시하는 수단이 돼버렸다.

2000년대 이전만 해도 눈에 띄는 차량번호는 국회의원 등 공무원들이 주로 사용했다. 의원들은 외우기 쉽고 ‘눈에 잘 띄는’ 3000번이나 5656, 5060 등의 번호를 확보하려고 애썼다. 구구단형 8756번이나 9545번도 좋은 번호로 꼽힌다.


의원들은 차량번호뿐 아니라 전화번호도 특별한 것을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눈에 띄는 번호는 권위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외우기 쉬운 번호가 권위로 격상하는 것은, 이 같은 번호에 대한 수요가 많고 공급이 적기 때문에 특별한 능력을 행사해 이를 취득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국회의원 비서관은 특별한 숫자에 집착하는 현상에 대해 “수험생이 시험을 치르듯 의원들은 4년마다 있는 선거에 이겨야만 하기에 의원들은 자기가 쓰는 차량과 전화의 번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2010년대로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황금 번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인기가 사그라들었다. 자동차가 많아지고 번호판 부정 배정 잡음에 따라 신청한 순서대로 받게 됐다. 황금 번호 차량은 부정번호의 상징이 돼버린 탓에 일반 시민은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났으며 배정받더라도 피하는 사람이 늘었다. 

‘눈에 띄는’ 번호 목돈 주고 배정
고객이 원하는 대로…짭짤한 딜러

사생활 노출에 대한 거부감이 커진 탓이다. 남의 눈에 쉽게 띈다는 점을 오히려 꺼림칙하게 생각하기도 쉬웠다. 또 눈에 띄는 차를 타고 다닐 경우 사람들은 인식이 ‘돈만 많고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 ‘부정적인 사람’ 등으로 인식해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서울 자동차 관리사업소에서 자동차 번호판을 제작하고 있다는 한 관계자는 “자동차 번호가 권위의 상징이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좋은 번호를 갖고 있다고 누가 우러러봐 주지도 않는다. 좋은 번호를 가지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시대착오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자동차 황금 번호를 다시 찾고 있다. 개인사업자가 늘어나면서 잠재적 고객에게 각인시키는 용도로 눈에 띄는 차량 번호를 다시 찾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중고차 카페에서 황금 번호를 구한다는 글도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유튜브나 블로그 등에서도 황금 번호를 받기 위한 방법이 공유됐다. 일반적인 차량번호 배정 방식은 완전 무작위 방식으로 이뤄지며 번호 공란 현황과 발급 상황 등 변수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진다. 주로 하루를 기점으로 바뀌지만, 때에 따라 하루에도 여러 번 바뀔 수 있다.

순서가 바뀌어도 차주가 원하는 번호를 찾는 방법은 있다.

자동차 등록 업무를 지원하는 구청 교통행정과나 차량등록사업소에 일일이 유선으로 문의하면 된다. 다만 서울의 각 구청 교통행정과로 전화 연결 시 상당수가 다산콜센터와 연동돼있어 통화 연결까지 꽤 오랜 시간을 대기해야만 한다.

유선 문의를 통해 해당 구청 혹은 자동차등록사업소에서 분출하는 차량 앞 두 자리 번호와 글자, 그리고 뒤 네 자리 번호의 첫 번째 숫자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차량 용도와 번호판 형식 등에 따라 다른 번호를 운용하기 때문에 유선 문의에 앞서 그 기준을 명확하게 정해줘야 한다. 

이삿짐·배달점
전번 의미 부여

확정된 앞번호와 달리 뒷번호는 당일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배정받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대략적인 번호 범위를 알려주는 경우도 있고 이미 확정된 번호를 알려주기도 한다. 단, 후자의 경우 황금 번호와는 상관없는 일관성 없는 번호만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등록일에 차주가 가장 마음에 드는 앞번호를 선택했다면, 그다음부터는 운에 맡겨야 한다. 

예를 들어, 차주는 ‘55오 5555’라는 희귀한 번호를 갖고 싶어 한다. 뒷번호가 5로 시작한다는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그렇다 한들 이미 5555 번호를 사용 중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앞뒤 번호가 모두 맞아떨어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해당 번호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데 있어 변수는 시간이다. 신차 출고와 동시에 등록까지 주어진 시간은 단 10일에 불과하다. 이후 10일 경과 시 5만원, 그 이후 1일에 1만원씩,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상황에 맞춰 모니터링이 필요하기에 자동차 번호 선택 시 적당히 타협하게 된다. 주어진 10개의 보기 중 ‘취향’에 맞는 번호를 고르게 되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다. 그나마 직접 등록할 때 이를 저울질할 시간이 제법 주어지는 편이다.

보통 등록 대행을 맡겼을 경우 이 선택의 시간은 30초 내로 한정된다. 


차량 등록 시 제시된 10개 번호를 확인한 이후, 그와 완전히 다른 무작위 배정이 가능한지는 배정 현황에 따라 약간 달라질 수 있다. 그 사이에 해당 번호가 빠진다면 새로운 번호로 보기가 추가되지만, 확인 직후 재배정 시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각종 서류 작성 및 제출, 비용 납부를 마친 뒤 원하는 번호판을 받을 수 있다.

발품을 팔지 않고 좋은 번호를 받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고액의 돈을 들여 황금 번호를 취득하는 것이다. 각종 중고차 카페나 거래 매매 사이트에 “황금 번호를 구한다”는 게시글을 올리는 것도 방법이다. 회원 수가 많거나 게시글이 많이 올라오는 등 규모가 큰 카페일수록 좋다. 

게시글을 올리지 않아도 구매 대행업체 직원이나 브로커가 ‘포커 번호(연속된 숫자를 의미)’를 구해줄 수 있다는 글이 올라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후 브로커가 연락을 준다고 한 뒤 한참 동안을 기다려야 한다. 

연락이 바로 오는 경우는 드물다. 브로커는 황금 번호 희망자에게 일 주일에서 한 달 정도의 날짜가 지난 뒤 연락을 취한다. 원하는 번호대를 확인한 후 수수료 명목으로 금전을 요구한다. 원하는 번호 등급에 따라 액수도 천차만별이다.

유튜브·블로그 
발급 방법 공유

1등급으로 불리는 포커 번호를 구해주는 데 수수료는 1000만원대까지 올라간다. 자동차 번호는 대표적으로 1등급부터 9등급까지 나누어져 있다. 


등급 별로 ▲1등급 앞뒤 포커(111가1111) ▲2등급 오름차순(123가4567) ▲3등급 앞 오름차순과 뒤 포커(123가7777) ▲4등급 포커(147가1111) ▲5등급 특정 차량 (페라리 0488, 0911 포르셰) ▲ 6등급 1000번대(1000, 2000) ▲7등급 오름차순 내림차순(1234, 4321) ▲8등급 AABB패턴(1122, 2211) ▲9등급 개인적인 선호 번호로 나뉜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번호는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다. 혹은 자신의 핸드폰 뒷자리를 차량번호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3년여간 네 자리 숫자가 동일하거나 0이 3개 포함된 황금 번호 대부분이 수입차나 국산 고급차에 집중됐다. 이 기간 황금 번호가 발급된 현대자동차 i30와 엑센트는 각각 55대, 134대에 불과하지만 벤츠 E클래스는 857대, BMW 5시리즈의 경우 499대나 황금 번호를 배정받았다.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좋은 번호를 얻는 건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대행업체를 거쳐 돈을 주고 번호판을 매매한다는 것에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각에선 차량등록사업소 출신 퇴직 공무원 등이 대행업체를 차리기도 한다는 점을 들어 유착관계를 의심하기도 한다.

중고차 카페·거래사이트 만남의 장
1~9등급 따라 수수료 가격 천차만별

황금 번호를 원하는 A씨는 서울의 한 구청을 방문했지만, 공무원이 아닌 번호판 발급 대행사 직원의 설명만 들어야 했다. 대행사 도움 없이 스스로 황금 번호를 얻고 싶었던 그는 다음날에도 구청을 찾았지만 원하는 번호를 뽑는 데 실패했다.

돌아가려던 순간 A씨는 다른 부서엔 들르지도 않은 채 번호판 발급 장소로 직행해 3000번을 달고 유유히 사라지는 사람의 모습을 목격했다.

A씨에 따르면 보험개발원 전산원에서 뽑아본 0이 3개씩 들어간 번호들은 다 외제차였다. 이 같은 경험은 온라인에서 비일비재하게 찾아볼 수 있다. 공식적으로 차량 번호판은 구청이 1000개 단위로 번호를 배정받아 10분의 1씩 잘라서 발급하고 있다. 

10개씩 무작위로 추첨한 것 중 차주가 고르기 때문에 비리는 있을 수 없다는 게 구청 공무원의 입장이다. 

그러나 1000단위로 딱 떨어지거나 한 가지 숫자가 연속되는 골드 번호를 취득하는 데 있어 대행사들이 분주해진다.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황금 번호가 나올 때까지 10개 단위의 추첨을 여러 번씩 반복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7777번이나 7788번 같은 ‘프리미엄 번호’를 얻으려면 대행사에 1000만원 이상씩 내야 한다는 것은 업계 정설로 통한다. 또 다른 구청은 민원인은 물론 대행사에도 좋은 번호를 주지 않기로 유명하다. 심지어 이미 발급됐어야 할 번호도 유보로 잡고 있다가 나중에 내주는 경우도 확인되곤 한다.

A씨는 중고차 사이트에서 이미 발급됐어야 할 차량번호를 입력했는데 미등록 번호로 나와 해당 번호를 달라고 문의했더니 “이미 나간 번호라는 답만 돌아왔다”고 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공무원과 공모해 좋은 차량 번호를 얻는 건 이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순서를 바꾸거나 미리 빼돌려 좋은 번호를 선점하는 건 명백한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원하는 번호를 콕 집어 얻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남은 좋은 번호 중에 기다리고 기다려서 구하는 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자동차 번호도 마찬가지다. 법적으로 범죄는 아니지만 문제가 있는 행위”라고 덧붙였했다. 

막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김 교수는 “황금 번호를 원하는 사람이 있고 돈이 들어가는 상황에서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법으로 규제하는 것보다는 성숙한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돌리고 돌려
미리 빼돌려

앞서 브로커가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좋은 번호를 구하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윤리적으로 큰 문제가 된다. 과거 명품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명품을 구매하는 행태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던 바 있다.
 

<9d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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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