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필자가 경험했던 사례를 소개해보자. 여러해 전, 필자가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중앙사무처 당직을 사직하고 다시 대학생(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과)으로 돌아갔을 때의 일이다.
한날 필자와 거의 같은 시기에 퇴직한 전 직장 동료로부터 연락이 왔다. 말인즉 우리가 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이 상당히 잘못되었다는 게 그 요지였다. 계산에 밝은 그 친구 이야기에 의하면 필자는 4000여만원을 덜 받았다고 했다.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곧바로 한나라당에 미지급된 퇴직금을 지급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깨끗하게 거절당했다. 그 이유가 걸작이었다. 퇴직금지급 소멸 시한인 3년이 경과했기 때문에 지급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필자의 짧지 않은 젊은 시절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한나라당의 대응은 심지어 배신으로까지 비쳐졌다. 하여 퇴직금에 앞서 그들의 소행이 괘씸해서 연말 정산금 지급 시기가 3년이 경과되지 않은 이유를 빌미로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소송을 전개했다.
1심 법원은 한나라당이 미지급한 퇴직금 3800여만원을 필자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더 기가 막히는 일이 발생했다. 한나라당이 1심 결과에 불복해 항소하고, 당내 변호사들을 동원해 전력투구해 고등법원 이어 대법원에서도 필자가 패소했다.
상기의 일을 굳이 사례로 든 이유는 법과 원칙에 대해 살펴보기 위함이다.
상기 건을 원칙에 입각해 처리하면 한나라당은 필자에게 미지급된 퇴직금을 줘야 했다. 그러나 법은 원칙과는 달리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음을 보여줬다.
간략하게 필자의 경우를 예로 들었지만 상세하게 살피면 법은 원칙이 아닌, 원칙을 저버리기 위한 변칙(變則) 혹은 원칙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말인즉 변칙에 불과한 법과 원칙은 본질적 측면에서 상이하다는 의미다.
이를 염두에 두고 최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그 이유를 “법과 원칙을 지켜 업무를 수행하는 게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 밝히고 문재인정권에 대해 “권력의 단맛에 취한 지금의 정권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른 직무 수행에 벽이 됐다”며 “그들은 정치적 목적 달성에 필요하다면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분열시키는 데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고 언급한 부분에 대해 살펴보자.
지난 주 입만 열면 헌법수호와 법치주의를 외쳤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 아니, 제1야당에 입당하기 전 해당 행위자들에게 주요 보직을 줬던 일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 일은 윤 전 총장이 주장하는 법치와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 후보 역시 윤 전 총장이 무색할 정도다. 결론적으로 최 후보는 원칙을 언급할 자격이 없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파격적인 성은을 입었고 최근까지 그를 누렸었다. 원칙에 입각하면 그는 대선에 국민의힘 후보로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그는 그도 모자라 문정권을 향해 지독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문정권에 대한 최 후보의 비판을 살피면 최 후보는 원칙주의자인 필자의 시선에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 철저한 기회주의자로 비쳐진다.
필자는 여러 차례에 걸쳐 정치는 딴따라류, 평생 외길을 걸어온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우물안 개구리식 사고에 함몰돼있어 원칙과 분탕질도 구분 못하며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라는 착각에 빠져있기 때문인데 최 후보 역시 그러하다는 말이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