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주년 특집> '투기? 투자?' 대기업 알짜 농업법인 대해부

합법적인 돈 묻고 돈 먹기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대기업들이 앞다퉈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하고 있다. 농업회사법인은 오래전부터 '투기의 장'으로 유명했다. 이 외에도 절세, 대출에 용이하다는 점은 대기업들에게 큰 메리트로 다가온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가 베일에 싸여있는 농업회사법인에 대해 알아봤다.

최근 농업회사법인의 투기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부동산매매, 토지개발이 엄연한 불법임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인 가운데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3년 주기로 실시하는 실태조사도 농업인 스스로 하는 등 감시 사각지대가 큰 것으로 확인됐다.

'뻥튀기' 빈번
사각지대

지난 18일 금융당국 및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최근 신도시 3곳 필지와 산업단지 예정부지 290억원어치를 매입하는 등 부동산투기로 문제된 대한영농영림은 감사보고서에 법상으로 금지된 '토지개발업 및 부동산매매업'을 주요사업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법인에 대해 감사의견으로 '적정'을 제시했던 한서회계법인은 지난 4일 돌연 '의견 거절'로 정정했다. 감사인은 "회사의 부동산매매와 관련된 활동이 농어업겸영체법에 따른 경작 여부, 부대사업 범위에 해당하는지 충분한 감사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며 "준거법령 위반사항은 계속기업의 존속능력에 대해 유의적인 의문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런 불법행위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데 있다. 영농목적이 아닌 시세차익을 위한 부동산매입이 전혀 통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농식품부가 밝힌 '2019년 기준 농업회사법인 통계조사'에 따르면 실질운영 중인 활동 법인은 총 2만3315개소로 나타났다. 영농목적으로 설립이 가능한 농업회사법인은 농업인 1명 이상이 주주로 참여하고 농업인 출자액이 전체의 10% 이상이어야 한다.

농업회사법인이 영농활동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실태조사는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농어업겸영체법에 따라 각 지자체가 조합원·출자, 사업범위, 경작유무 등을 3년 주기로 점검하지만 농업인이 스스로 작성해 제출하는 식에 그친다.

부동산개발을 하더라도 얼마든지 지자체 공무원을 속일 수 있는 것이다.

부동산투기 등 목적외 사업을 한 것이 드러나더라도 영업정지, 과징금 부과도 불가능하다. 오직 법원에 해산명령 청구만 가능한데 이 또한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는 세액 납부자료나 부동산거래 자료를 관계부처를 통해 받아 면밀한 검토를 하려 했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절세·대출에 용이…너도나도 농지로
영업정지·과징금 불가…정부도 답답

이런 상황에 앞다퉈 이뤄지고 있는 국내 주요 기업들의 농업회사법인 설립도 눈길을 끈다. 대기업의 농업 진출 사례로 유명한 곳은 현대건설의 서산간척지와 동아건설의 김포매립지.

이 두 곳은 1970년대 중동 건설 수주가 줄어들자 위기에 노출된 대형건설사들의 건설장비 문제 해결을 위해 '민간자본 유치'와 '농지조성을 통한 쌀 생산'을 명분으로 추진됐다.


현대건설은 1979년 서산 A·B 지구 간척지의 매립면허를 받아 1982년에 B지구 물막이를, 1984년에 A지구 물막이를 완료했다. 이 때 동원된 폐유조선 공법이 언론에 신화로 회자된다.

당시 현대는 "정주영 회장의 신화와 더불어 이곳이 단일경영규모로는 세계 최대이고, 선진 과학영농으로 50만명이 1년간 먹을 쌀을 생산한다"고 홍보했다. 매립 후 이 지역은 염분제거와 경지정리 후 1985년 시험영농에 들어가 10년만인 1995년 농림수산부로부터 농지 준공인가를 받았다.

그러나 현대는 애초 논으로 조성키로 한 서산 B지구를 밭으로 변경해달라고 끈질기게 정부에 요구해왔다. 2000년 부도사태를 맞은 현대건설은 경영안정을 위해 간척지를 담보로 토지공사로부터 수천억원을 차입하고 일부를 일반인과 농어민들에게 팔았다.

이후 지속적인 타용도 전용 시도가 성공하면서 2005년 정부로부터 간척지 상당 부분이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로, 2008년에는 바이오웰빙특구로 지정됐다. 

결국 농업용으로 허가받은 현대간척지는 현대 재벌가 내에서 주인이 바뀌며 대부분 산업용 등 타용도로 활용되거나 매각됐고, 일부만 현대서산농장이 직영하고 있다.

동아건설의 김포매립지도 농지를 조성한다는 이유로 공유수면 매립허가를 받아 1991년에 매립지를 준공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쓰레기 매립장, 복합화력발전소, 하수처리장 등으로 용도 변경됐다. 동아건설은 나머지 땅에 대해 농업용수 부족을 이유로 농사를 짓지 않고 방치하면서 지속적으로 용도 변경을 시도했다.

앞다퉈
진출 왜?

1998년 IMF 위기때 부도에 몰린 동아건설은 외자 유치를 내세우며 마이클 잭슨, 갑부인 사우디 왕자 등을 내세워 대대적인 용도 변경 공세를 폈지만, 정부에 의해 거부됐다.

결국 김포매립지는 동아건설의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1999년 5월 농어촌공사에 매각됐다가 다시 LH와 인천시 등에 넘어가 도시용지, 산업용지로 전용됐다.

동부그룹의 동부팜한농은 원래 1953년 한국농약으로 출발했으며, 농약·비료·종자·동물약품을 아우르는 국내 최대 농자재 회사였다.

2009년에는 자회사인 동부그린바이오(새만금팜)가 새만금간척지 대규모농어업회사 사업자로 선정됐고, 2010년에는 동화청과를, 2011년에는 천적곤충기업인 세실을 비롯해 동호제약, 대농종묘, 가야를 인수했다.

동부팜한농은 2012년 몬산토코리아로부터 영업권을 인수하기도 했다. 몬산토코리아는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때 국내 종자업계 1위 흥농종묘와 3위 중앙종묘를 인수한 세미니스코리아를 인수했었다.


특히 2012년에는 동부팜화옹이 경기도 화옹간척지 내에 일부 정부 지원을 받아 15ha규모의 첨단유리온실 단지를 건립했다가 농민들의 반발로 2013년 포기를 선언했고, 유리온실을 우일팜에 팔았다.

동부팜한농은 우여곡절 끝에 동부그룹이 부도위기를 맞자 LG화학에 매각돼 '팜한농'으로 출발했다.

동부팜을 인수한 LG가 농업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1973년 학교법인 연암학원을 설립하고 이듬해 연암대학의 전신인 연암축산고등기술학교(축산과)를 개교하면서부터다.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1995년 은퇴 후 천안 연암대 인근 농장에서 머물며 버섯 재배와 된장 등을 취급하는 수향식품을 운영했다. LG그룹은 2006년 리조트와 수목원에 조경수를 공급하는 농업회사법인 곤지암원예원을 설립하고, 같은 해부터 곤지암 화담숲을 조성, 2013년 개장했다.

대기업들의 농업 진출 시도는 정보통신업계에서 두드러진다. 카카오는 2015년 KAIST 출신들이 만든 식물공장 업체인 '만나씨이에이'의 지분 약 33%를 인수하고 유통과 마케팅을 지원하고 있다. 만나씨이에이가 생산하는 품목은 바질 같은 외래종 채소류다.

농민 구역
침해 논란도


이 업체는 다시 '팜잇'이라는 법인을 만들어 크라우드펀딩으로 공유농장이라는 사업모델을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 카카오의 행보는 농민들과 중소상인들의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을 빚기도 했다. 

노루표페인트로 잘 알려진 노루그룹도 2014년 자본금 100억원을 들여 노루기반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농업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노루그룹 산하에는 농산물 유통·가공·판매와 영농 자재를 생산·공급하는 더기반이 있고, 노루지에스는 무인기 기술, GIS(지리정보시스템)를 이용한 정밀 농업 분야 시장을 노리고 있다.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 KT·LG 유플러스 등 3사도 모바일 원격제어시스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KT&G는 2011년 인삼과 한약재 재배를 주력으로 하는 농업회사법인 예본농원을 설립했으나 실적이 없이 2014년 청산했다. 대성그룹의 경우 2012년 고구마와 감자를 재배하는 농업회사법인 굿가든과 굿랜드를 세웠다가 2013년 굿가든으로 흡수합병했다.

녹차브랜드 '설록차' '오설록'의 아모레퍼시픽은 1979년 제주도에 진출해 190ha규모로 녹차를 재배하면서 공장과 박물관까지 운영하고 있다. SK임업은 1972년 서해개발 주식회사로 시작해 천안, 충주, 영동 등에 조림지를 보유하고 조림, 조경, 임산물 사업을 한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왜 농업회사법인에 관심을 두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토지 투자에 가장 걸림돌 중 하나인 농지 취득 자격 제한을 받지 않고 ▲취득세나 종부세 등 세금을 회피할 수 있으며 ▲정책자금 등을 통해 대출을 받기도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전문가는 "농업회사법인이 땅 투기 수단으로 널리 쓰이게 된 건 오래전부터"라며 "농업활동을 하는 사람이 참여해야 한다는 제한이 있지만, 이를 회피할 수 있는 수단은 많은 데다 '편법'이긴 하지만 여러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유명 그룹 정보통신업계도 합류
총수가 앞장서…본질은 이윤추구?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세금이다. 부동산 관련 전문가는 "조세특례제한법 등에 따라 농업활동을 목적으로 농지를 매매할 경우 취득세와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이 있기 때문에 개인 명의로 사들이는 것보다 절세효과가 크고 대출 면에서도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농업회사법인은 영농·유통·가공에 직접 사용하기 위해 취득하는 부동산에 대해서는 취득세의 100분의 50을, 과세기준일 현재 해당 용도에 직접 사용하는 부동산에 대해서는 재산세의 100분의 50을 각각 2023년 12월 31일까지 경감한다.

상속이나 증여에도 농업회사법인은 뛰어난 절세 수단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법규상 개인 명의로 보유한 땅을 농업회사법인으로 넘기는 현물출자를 하는 경우 땅을 궁극적으로 판 게 아니라고 간주해 농업회사법인이 처분할 때까지 양도세를 유예할 수 있고, 현물출자를 통해 농업회사법인은 취득세 비용도 발생하지 않아 취득 면에서도 유리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농업회사법인에 대한 대출 형태로 법인 대주주나 그가 소유한 기업이 고리로 자금을 빌려주고 이를 비용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여럿이다.

신도시 개발 지구에 다수의 토지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한 농업회사법인의 지난해 자산은 330억원인데, 부채는 266억원이다. 이 농업회사법인은 두 회사로부터 각각 연리 5.0%로 118억원, 연리 5.6%로 125억원을 각각 빌렸다. 

농업회사법인 대표는 두 회사 중 한 곳의 감사로 재직하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지역농·축협에 16억원을 대출받았을 때 조건은 각각 연리 3.88%와 4.24%다. 경제민주주의21 관계자는 "과도하게 높은 금리로 자금을 빌려주고 이자수익 형태로 매각 차익을 미리 선취하는 방식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 사람 
여러 개

조사 결과 농업회사법인을 한 사람이 여러 개 가진 경우도 있다. 서울 테헤란로에 세워진 2017년과 2018년 각각 설립된 농업회사법인 두 곳은 대표이사가 동일하다. 이렇게 농업회사를 쪼개면 외부감사기준인 자산 100억원을 회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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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