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63호와 마찬가지로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 심사위원을 패자로 만들겠다.”
M.net <슈퍼스타K> 시즌1 이후 국내에서 수많은 오디션이 열렸던 가운데 출연자의 발언 중 가장 도발적인 문장이 지난 21일, JTBC <싱어게인> 30호를 통해 뱉어졌다.
앞선 무대에서 음악적인 재능은 물론 토크에서도 센스를 보여줬던 30호였기에 ‘치기 어린 행동’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이날, 30호는 이효리의 ‘치티치티 뱅뱅’(Chitty Chitty bang bang)으로 무대를 꾸몄다.
기대감이 충격으로 바뀌는 데는 5분이 걸리지 않았으며 원곡자 이효리는 완벽하게 지워졌다.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이끄는 속삭임으로 시작해 힘 있는 발성, 마치 예술가들이 몰입한 듯이 보이는 묘한 퍼포먼스, 심사위원에게 던지는 심드렁한 마이크, 그 과정에서 조금도 흔들림 없었던 기본기와 끝까지 치닫는 듯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다소간 뺀 마무리까지, 30호가 보여준 무대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신선함 그 자체였다.
“쟨 족보가 어디야?”라는 심사위원 유희열의 말처럼 어디서도 보기 힘들었던 패턴의 무대였다.
일각에서는 밴드 잔나비와 계보가 비슷하다고 하지만 꼭 닮은 느낌은 아니다. 30호가 무대를 통해 보여준 생경함은 ‘문화 대통령’으로 군림한 서태지의 출현 당시와 닮아있다는 의견이 더 힘을 받는다. 그만큼 ‘치티치티 뱅뱅’ 무대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과 더 가깝다는 것이다.
너무 놀라운 무대를 본 탓에 머리가 하얘졌던 것일까, 심사위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무방비 상태였는지 무대의 맥을 잡지 못한 평가로 오히려 대중의 뭇매를 맞고 있다. 특히 주니어 층을 대표하는 선미와 해리는 ‘기타의 부재’를 꼽았다가 대중으로부터 날 선 비판을 받고 있다.
대중의 반응을 살펴보면 30호가 보여준 무대는 기타의 유무로 좋고 나쁘고를 평가할 수 없는 무대라는 것.
차라리 곡 해석을 어떻게 했는지나 다소 특이한 퍼포먼스에 대한 이유를 물어보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의견도 나온다. 두 사람은 깊게 고민하지 못하고 던진 말로 인해 뮤지션으로서 탄탄하게 쌓아온 커리어마저 흔들리고 있다.
무대에 오르기 전 심사위원을 패자로 만들겠다는 말이 이러한 방식으로 구현될 줄은 30호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언제나 뛰어난 화법으로 공감을 일으키는 심사평을 해온 김이나 작사가도 ‘혼돈이었다’라는 말로 명확한 심사를 보류했고, 유희열은 서태지 데뷔 때를 거론하면서 정확히 모르겠다며 솔직함을 내비쳤다. 워낙 기묘한 무대였기에 ‘모르겠다’라는 두 사람의 반응이 오히려 대중의 공감을 일으켰다.
30호를 위한 극적인 스토리가 쓰여지기 위함일까. 30호는 엄청난 무대를 보여주고도 앞서 한 팀이기도 했던 63호와의 맞대결에서 3:5로 패했다.
너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다소 어려움을 느끼는 인간의 보수성이 드러난 것인지, 아니면 탄탄한 기본기로 어울리지 않았던 감성 발라드를 훌륭히 소화한 63호의 재능이 돋보였던 것인지, 명확히 이유를 알 수 없는채로 63호가 승리를 가져갔다.
63호와 30호 두 무대 모두 오디션이라 하기 힘들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기에, 승패는 사실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비록 30호는 패배로 인해 탈락의 위기에 놓이게 됐지만, ‘치티치티 뱅뱅’ 무대는 국내 오디션 역사에 오래도록 회자 될 무대로 남지 않을까 짐작된다.
색다른 기획으로 제작된 <싱어게인>은 수많은 무명의 실력자에게 기회의 발판이 됐다. 주어진 기회에서 30호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무대로 오디션의 품격을 높였다. 대중이 어떤 뮤지션을 원하는지 알고 가수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가 혜성처럼 등장해 방송가를 장악한 30호는 앞으로 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앞선 방송에서 “더 보여줄 것이 없다”고 공언했던 그의 거짓말이 오히려 더 큰 설렘과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