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취임 선서를 하면서 "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의 주권 의지가 일상적으로 국정에 반영되는 민주공화국을 만들겠다"고 했다. 김민석 국무총리 내정자 등 첫 인선을 발표하면서도 "저는 오늘 국민에 대한 충직함과 책임, 실력을 갖춘 인사들과 국민주권정부의 새 출발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언론은 일제히 “새 정부는 ‘국민주권정부’라고 보도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전에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름을 '국민주권정부'로 명명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국민주권정부’는 시민들이 헌법을 유린한 윤석열의 12·3 내란을 막아내며 그 열망으로 정권을 교체했으니, 이재명정부는 ”국민이 주인인 진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5일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브리핑서 이재명 대통령 취임과 함께 출범한 새 정부 명칭을 '국민주권정부'로 정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대통령실은 "확정한 사실은 없다"고 밝히며 "지금은 이재명정부"라고 선을 그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부를 상징하는 간판은 대통령의 국정철학 및 임기 내 국정운영 방향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된다. 특히 정부가 국민과 함께 한마음 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모토가 돼 어느 정부나 초기에 간판을 걸어왔다.
우리나라 6공화국 전반기엔 정부가 주로 정치 간판을 걸었다. 김영삼정부의 ‘문민정부’, 김대중정부의 ‘국민의 정부’, 노무현정부의 ‘참여정부’가 각 정부를 대표하는 정치 간판이었다. 당시 필자는 우리나라가 1996년 선진국 진입 관문격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는데도 정부가 경제 간판을 걸지 않고 정치 간판만 걸었다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당시 정치 간판이 군사정권의 ‘3,4,5,6공화국’ 간판보단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정치간 판이어서 다행이었지만, OECD 가입국 위상엔 맞지 않는 간판이었던 건 사실이다. 정치 간판은 ‘6공화국’ 간판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걸지 않았어야 했다.
우리 국민도 군사정권의 억압에 찌들어 있다 보니 민주주의 가치를 담고 있는 정치 간판을 반길 줄만 알았지 경제 간판을 걸지 않고 정치 간판을 건 정부에 무감각했다. OECD 가입 이후 세계 13위 경제대국까지 됐을 때도 우리나라가 정치 간판을 건 건 잘못이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새 정부 간판은 달라졌다. 먼저 이명박정부는 정치 간판 대신 ‘녹색성장’이라는 경제 간판을 걸었다. 그 후 박근혜정부는 ‘창조경제’, 문재인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경제 간판을 걸고 경제정책을 정부의 브랜드로 사용해왔다. 언론은 이 세 경제 간판을 'MB노믹스', '박근혜노믹스', '문재인노믹스'라고 불렀다.
안타깝게도 윤석열정부는 정치 간판이나 경제 간판(윤노믹스) 어느 것도 걸지 못했다. 간판이 없다고 정부가 휴업하거나 폐업하는 건 아니다. 다만 방향성이 없어 국정운영이 일관성이 없게 흐른다는 게 문제다. 국민도 정부의 상징적인 브랜드가 없어 정부의 정책이 없다고 체감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운동기간 중 최초의 민주 정부는 ‘국민의 정부’로 불렸고, 다음 정부는 ‘참여정부’로 불렸다”며“ 제가 정권을 잡으면 ‘국민주권정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취임 선서와 첫 인선서도 국민주권을 언급했다. 이에 언론이 이재명정부의 간판을 ‘국민주권정부’로 명명하자, 대통령실이 하루 만에 이를 부인한 점에 대해 필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재명정부가 정치 간판이 아닌 다른 간판을 걸겠다는 메시지로 들렸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재명정부에 당부하고 싶다. 이젠 정치 간판은 물론 경제 간판도 아닌 외교·안보·통상 간판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강국이지만 미중 패권싸움 틈바구니에 있고, 특히 미국이 우리나라에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프레임이 더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는 상황서 새 정부가 민생 회복과 경제 회생을 위한 경제 간판만 걸어선 안 된다.
국제 통상도 경제안보가 중요한 시대로 다자무역체제의 자유무역과 경제적 효율성보다 자국 경제에 대한 안보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경제안보’를 더 중요시해야 국제사회서 살아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특히 미국이 공급망 재편 수단을 활용해 첨단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신뢰와 가치의 공유를 요구하며 효과적인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국의 참여 유도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서 중국도 무시할 수 없는 우리나라가 외교·안보·통상 분야를 공고히 다져야 한다는 점을 새 정부가 명심해야 한다.
김민석 총리 내정자도 5일 “28년 전 IMF 위기 때엔 엄청난 경제적 충격이 있었는데 큰 경제적 추세는 상승이었으나 지금은 경제적 추세 자체가 하강과 침체 상태이기에 훨씬 어렵다고 느끼고 민생도 훨씬 어렵다”며 “민생과 통합, 두 가지를 매일매일 새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민석 총리 내정자 말대로 새 정부가 IMF 위기가 다시 닥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면 민생과 통합이라는 국내 문제를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외교·안보·통상 분야를 챙기는 데 더 역점을 두어야 한다. 민생과 통합은 우리 국민에게 와 닿는 말이지만 대선 때 사용했던 공약 멘트이기도 하다.
새 정부가 임기 내 ”우리나라를 세계 7대 경제강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다면 외교·안보·통상 간판을 반드시 걸고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기업과 국민이 업그레이드된 새 정부의 간판을 보고 새 정부에 박수를 보내며 응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