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교수의 대중범죄학> 한참 부족했던 대선 안전 공약

  • 이윤호 교수
2025.06.07 00:00:00 호수 1535호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Abraham Maslow)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구분하면서 하위 단계가 충족될 때 더 높은 단계의 욕구를 성취하려는 동기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1단계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면 2단계 안전의 욕구에 대한 동기가 생기고, 중간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5단계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동기가 생긴다고 봤다.



범죄학자로서 감히 말하건대 매슬로우가 인간의 욕구를 단계별로 나눈 건 옳았을지언정, 안전의 욕구를 인간 욕구 단계의 하나로 규정한 것은 문제가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누구나 신체와 생명의 안전이 담보돼야 낮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한 어떠한 욕구도 충족될 수 없지 않을까? 내가 안전해야 먹고 마시고 잠을 잘 수 있지 않을까?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전쟁터나 테러범으로부터 안전을 위협받는 환경에서 제대로 된 생활이 이뤄질까?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안전은 매슬로우가 말한 5단계 욕구 중 비교적 낮은 단계의 욕구가 아니라, 다른 모든 인간 욕구의 전제조건이 돼야 한다. 안전이 먼저 담보돼야 생리적 욕구도, 마지막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를 위한 동기가 발휘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안전이 모든 인간 욕구의 전제조건이라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아직 우리 사회는 안전의 중요성을 무겁게 다루지 않는 인상이 짙다.

최근 대선서도 선거공약이나 정당의 정강 정책에서 안전에 관한 공약이나 정책은 찾기 어려웠다. 물론 경제와 정치가 중요하지만, 안전 역시 우선시돼야 하는 가치다.


냉전시대에는 전쟁, 빈곤의 시대에는 가난과 굶주림이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였다. 냉전이 종식되고 절대적 빈곤이 상당히 개선된 오늘날은 범죄가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당연히 범죄를 필두로 하는 안전 문제와 안전 대책은 거의 모든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1988년 미국 대통령선거 초반 절대적 우위를 점했던 마이클 듀카키스가 조지 부시에게 완패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바로 형사정책, 즉 범죄자 문제였다.

듀카키스가 주지사로 있던 매사추세츠서 본인이 가석방시킨 보호관찰 대상자가 살인을 비롯한 일련의 연쇄 범행을 저지른 사건이 발생했고, 상대 후보인 부시는 이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부시는 잘못된 범죄 정책으로 국민을 위험에 빠뜨린 듀카키스에게 안전을 맡기겠냐고 네거티브 전략을 펼쳤다. 결과적으로 안전을 우려한 미국인들은 부시에게 표를 몰아줬고, 부시는 역대 미국 대선서 가장 일방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후 미국에서는 범죄로부터의 안전을 주요 선거공약으로 삼는 모습이 보편화됐다.

물론 이번 대선 과정서 범죄와 관련한 안전 문제가 아예 없던 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게 사실이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서 경제, 이념, 사상, 정치 등을 논하는 건 허공 속의 빈 메아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안전이 제일이다. Safety always comes first!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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