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8일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2명을 기습적으로 지명하자,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을 중심으로 “위헌적 권한남용”이라는 거센 반발이 쏟아지고 있다.
이날 한 권한대행은 열흘 뒤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명했다.
논란의 핵심은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에 대한 해석 차이서 비롯된다.
헌법학계에선 권한대행의 권한을 ‘현상 유지’ 수준의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권한대행이라는 자리가 국민의 직접적인 선택을 받지 않은 공직자라는 점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황교안 권한대행 역시 헌법재판관 임명을 자제하며 논란을 회피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 권한대행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 결정 이전까지 대통령 고유권한 행사에 대한 자제를 촉구했던 인물이다.
그는 지난해 12월26일 국회 몫 헌법재판관 3명의 후보자 임명을 거부하며 “대통령 권한대행은 나라가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안정적인 국정 운영에 전념하는 것”이라며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 권한대행의 이 같은 발언은 이번 헌법재판관 지명에 대한 비판 여론에 더욱 불을 지피고 있다. 민주당은 한 권한대행의 이번 지명을 “내란 잔존 세력에 의한 헌법재판소 장악 시도”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에 참석한 후 취재진으로부터 관련 질문을 받자 “한 권한대행이 자기가 대통령이 된 걸로 착각한 것 같다”며 “토끼가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호랑이가 되는 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황교안 전 총리조차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은 임명하지 않았다”며 “지금 한 권한대행은 그 선마저 넘어서려 한다”고 비판했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국회서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이번 지명은 내란 동조 세력의 헌법재판소 장악 시도로 본다”며 맞대응을 예고했다.
민주당은 권한쟁의심판과 가처분 신청 등을 통해 이번 지명을 무효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인사청문 절차 거부의 뜻을 밝혔다.
우 의장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헌법재판관 지명을 통한 헌법기관 구성권은 대통령 고유권한으로, 대통령 궐위 상태라는 특수한 상황서 권한대행이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에 부여된 고유권한을 행사하려고 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
현재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은 상황 속에서 한 권한대행이 파면된 전직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초유의 ‘알박기 인사’를 단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이완규 법제처장과 윤 전 대통령이 친분이 깊다는 점, 이 처장이 윤 전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대표적 친윤(친 윤석열) 인사인 점 등이 거론된다. 그는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법무부로부터 받은 정직 2개월 징계처분 취소 소송을 대리하기도 했다.
더욱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부분은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 하루 뒤 윤 전 대통령과 안가 회동을 가졌던 4인방 가운데 한 명으로 내란에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퇴임 예정인 문 권한대행, 이 재판관이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만큼, 이들의 후임으로 보수 성향의 인사가 임명될 경우 헌재의 구성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점도 논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더욱이 민주당은 지난달 31일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통해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제한하려 시도한 바 있어, 이번 사태를 계기로 관련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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